키도 그리 크지 않은 남자가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어딘가로 바삐걸어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다. 분초를 아끼며 뛰어다녀도 언제나 시간이 모자란 삶. 그게 바로 그의 삶이었다. - P77

그녀는 그의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됐다. 그것이 그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그가 즐겨 찾는 술집과 밥집에 이끌려 다녔고, 그의 친구들을 만났으며, 그가 읽으라는 책을 읽었다. - P80

물론 그들에게도 고민이나 괴로움은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그들에게는 신념이 있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 P80

간혹 술에 취한 그를 바래다줄 때 보았던 자취방은 몹시 비좁았고, 책장이 모자라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책들 탓에 미로 같았다. 그렇지만 그는 그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을까봐 단 한 번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P80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이 송두리째 변했을 어떤 사람들의 절망감과 두려움이 서서히 그녀 안에서 출렁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그토록 무감해지도록 그 사회를 도취시켰던 감정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 P83

만약 정말 바그너가 파쇼의 아버지고 그의 반유대주의가 나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면, 수많은 죽음이,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한 인간의 병든 마음을 토양 삼아 자라났다는 말인가. 그것은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도대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 P89

그는 때때로 그가 믿는 정의에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눈 속에서 빛나던 차가운 불꽃. 그렇지만 옳고 그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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