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클래식 100 - 음악 전문기자가 들려주는 오늘의 클래식 풍경
김성현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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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클래식을 어쭙잖게 즐겨듣고 찾아듣는 입장에서도 클래식 입문서 스타일의 저술들은 늘 새롭고 흥미롭습니다. 알고 있는 작곡가, 연주자, 작품 등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미처 눈뜨지 못했던 새로운 작품과 연주자들을 그야말로 '새롭게 발견'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지요.  

  

 『스마트 클래식 100』은 음악 전문 신문기자가 쓴 연재 코너의 글들을 모아 엮어낸 클래식 전반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작곡가나 작품, 연주자에 관해 쓴 꼭지도 있고, 공연장 안팎의 에피소드, 기억하고 기념할만한 특별한 일화나 곱씹을거리 등을 발굴해 써낸 꼭지도 있습니다. 모두 합해 정확히 100꼭지를 채워냈네요. 

  

 기자 특유의 간명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최대한 친숙하게 설명해주려는 배려로 인해 쉽고 가볍게 읽기에 그만입니다. '상임지휘자와 음악감독의 차이'처럼 기본적이지만 쉽게 설명하기 힘든 의문을 해소해주는 꼭지도 있고, '도이치그라모폰'처럼 세계적인 음반사의 탄생과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는 꼭지도 있습니다. 작곡가와 작품에만 집중된 기존 클래식 입문서와의 차별성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다만 전체적으로 각 토픽 간 수준이 그리 고르지는 못하다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카라얀'이나 '베토벤'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법한 거장들 이외에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카를로스 클라이버', '마리스 얀손스'정도까지는 익숙한 입장에서도, 굳이 이 사람은 알 필요가 있나 싶은 면면들과 조금 생소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있어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 첫 음악회'에 대해 조언하고 '대중가요와 오페라의 장르적 차이'를 설명하는 입문서에 걸맞지 않은 수준의 주제가 군데군데 제법 섞여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클래식 초심자 보다는 어느정도 클래식을 이해하고 찾아듣고 있는 기존의 관객에게 더 어울릴 법한 이야기들이 아닐까요. '어렵고 고루하게만 느껴졌던 클래식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다'고 하는 편집부의 호언을 고려해보면 살짝 정체성의 '곤란'을 느낄 법한 부분입니다. 아마도 처음부터 단행본으로서 특정 주제와 독자를 대상으로 쓴 책이 아니라 신문에 연재된 글들을 모아 엮어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몰랐던 부분들에 대한 깨우침, 흥미로운 일화들, 찾아 들어 볼 곡 목록 추가 등 제법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저자의 클래식 관련 저술들이 몇 개 더 있던데 생각날 때마다 한 권씩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그 책들을 통째로 가져다 통으로 읽으면 외려 지루하고 재미없지요. 여러 책을 읽는 사이사이 머리와 마음을 식히고 기분전환하듯 한 권씩, 매끼니 밥 먹다 사이사이 별식으로 몇 꼭지씩 나눠 먹어야 '스마트'하게 상쾌한 기분으로 온전하게 섭취할 수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 감상 역시, 사이사이 간식과 별식을 적절히 섞어가며 듣는 것이 내 귀와 마음에도 오롯이 더 잘 와닿는 효과적인 섭취법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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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케 전설 살인사건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김현희 옮김 / 검은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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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총 113편의 방대한 볼륨을 자랑하는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두 번째 작품 『헤이케 전설 살인사건』. 느즈막하게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고 이름을 알린 전작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과는 달리 작품 초중반부터 이리저리 뛰며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추리해 사건을 해결합니다.  

  

 간명한 문체와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명료하고 활달한 전개를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압축률 높은 이야기 밀도를 자랑하며 분명 전작보다 진일보한 수준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페리 여객선 선상에서 벌어진 추락사고, 한 건의 밀실트릭, 과거 태풍이 휘몰아치던 날밤의 아스라한 기억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아련함과 애틋함, 그로부터 비롯된 종내의 반전 등 다양한 트릭과 읽을거리를 짜임새 있게 꾸며놓았습니다. 그 수준이 첨예하여 하늘에 닿을만큼 높은 대작까지는 아닐지라도 읽는 이를 빨아들이는 몰입도와, 애처로운 사연이 녹아난 서글픈 이야기라는 점에서 충분히 고전 명작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 없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선상 추락사고와 밀실트릭,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반전 등 추리 자체에 관련한 솜씨 역시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다만 '헤이케 전설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오점내지는 단점이 될 수 있겠는데, 제목에서 풍기는 냄새는 분명 '김전일스러움' 혹은 '긴다이치 고스케스러움'이 진하지만, 이 시리즈에 대한 사전지식없이 얼핏 제목과 분위기만으로 이 작품을 집어든 독자라면 분명 강한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전설'과 결부되어 고풍스럽고 두려움을 자아내는 사건과 추리 가득한 '요코미조 세이시'류의 작품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외려 제목은 '무슨무슨 전설 살인사건'이지만 작품 자체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깔끔하며 세련된 외관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작가가 전작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이 전설이라는 제목 덕분에 더욱 흥했다고 보기에 차기작 제목 역시 '전설'이 들어간 제목으로 지었다고 하는군요. 이거야 원 '장미의 이름'도 아니고 말이지요. 

  

 어쨌거나 '헤이케平家(일본 중세시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淸盛의 가문과 세력을 일컫는 말)'나 '전설'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고 작품 자체의 분위기와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배신감보다는 '만족이라는 이름의 열매'를 손에 쥘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네 사정과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도쿄)로 상경하여 직업을 갖고 살지만, 깊은 정서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힘겨운 밥벌이와 팍팍한 인심에 지쳐, 못내 고향과 고향사람들을 그리워하는 타향살이의 고독함. 치밀한 보험사기를 일으키는 작품의 중심인물 세 명은 이런 고독함과 힘겨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또한, 숨겨진 도원桃源과도 같은 오추도 마을을 어린 나이에 떠나 각지를 떠돌며 외롭고 어두운 삶을 살아온 '타로'와 '노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역시 애틋하고 애처롭기 그지 없습니다. '그 날 그 태풍의 밤'에서 비롯된 사연 역시... 

  

 아사미 미쓰히코가 사건 해결을 위해 이곳 저곳을 다니며 보는 풍광과 묘사해주는 인상들이 자못 서정적입니다. 간명한 문체 속에서도 간간이 폐부를 찔러 오는 낭만적인 문장들이 고속도로를 달리며 휙휙 지나치는 저 먼 곳의 산수山水처럼 잠시 갓길에 차 세운 채 한 없이 바라만 보고픈, 눈 앞에 있는데도, 손에 닿을 것만 같은데도 결코 이르지 못하는 저 곳 '피안彼岸'같은 느낌으로 가슴에 아로새겨집니다. 높은 가독성으로 인해 쉴새없이 책장을 넘기다 잠시 멈춘채 여러번 덧읽고 곱씹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문장들.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가 갖는 큰 힘과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1980년대)를 감안하면, 우리나라보다 나이를 한살씩 적게 치고, 병역 의무가 없는 나라임을 생각하면 서른 세 살이라는 나이가 결혼적령기를 훌쩍 뛰어넘은 노총각임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아사미 미쓰히코. 명망 높은 집안의 키크고 잘생기고 명석한 이 노총각 젊은이에게 조금 뜬금없이 찾아오기는 하지만 사랑의 인연과 연정이 깃들기도 합니다. 이 나이 먹도록 장가 안가고 어머니 눈치 받으며 얹혀 사는 노총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뜬금없는 전개이기는 한데, 어쨌거나 이 연정과 사건이 얽히며 벌어지는 일들도 있어 전혀 '뜬금포'스러운 사랑인 것만은 아닙니다.  

  

 이 사랑과 인연은 어떻게 끝맺음 할지 다음 작품들을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작가 후기에서 이후 아사미 미쓰히코의 나이가 서른 셋에서 더 올라가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기에 결국은 못다한 사랑이 되어버릴 것이 예상됩니다. 고토바 전설 살인사건에서는 서른 두 살, 차기작 헤이케 전설 살인사건에서는 서른 세 살. 첫 번째 작품과 두 번째 작품 사이에 명탐정은 자연스레 한 살을 더 먹었지만 이후로는 서른 셋에 못박힌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또 다음 후기에서 밝혀준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다음 작품이, 아니 다음 작가 후기가 매우 기다려집니다. 무려 113편의 방대한 볼륨을 자랑하는 시리즈인데, '영원히 서른 셋'이라고 하니 '20년째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있는 어느 꼬마 명탐정'이 절로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방대한 시리즈 가운데 이제 두 번째 걸음. 아직 갈 길은 멀고 명석한 아사미 미쓰히코가 찾아올 날들은 무수히 많이 남아있지만, 이 볼륨 큰 시리즈가 모두 번역·출간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겠지요. 현지에서 얻은 인기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몰이를 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113편 가운데 명작이라 손꼽이는 작품들은 선별되어 모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나이 먹지 않는 명탐정'에 얽힌 작가 후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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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을 찾아라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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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추리는 추리소설 본연의 재미, 즉, 범인, 동기, 수법 등을 이리저리 추리해보고 맞춰보고, 실패도 해보고 하는 맛이 있어 사회파 추리소설과는 다른 맛이 있다. 그렇지만 수많은 작가들이 써낸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나올만한 트릭 다 나오고, 써먹을 것 거의 다 써먹은 요즘에는 이 본격 추리 한 편 쓰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은 모양이다. '관 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츠지 유키토의 경우, 본인의 작품에서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요즘 시대에 본격추리를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추리의 허술함을 까대는 독자들은 얼마나 무서운가를 피력하기도 했다.  

  

 솔직히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들은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측에 속한다. 어처구니 없는 방법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줄줄이 엮여있는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트릭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눈쌀 찌푸리게 하는 '그것' 때문에 다시 보고 싶은 마음 없는 《요리코를 위해》. 경시(지금은 총경이 된 모양이지만)의 아들이라고 그 아들이 경시인 것은 아닌데, 버젓이 일반인 아들까지 수사회의에 끌고와서 온갖 수사기밀 다 보여주고 들려주는 노리즈키 총경과 그의 아들 추리작가 린타로의 설정 자체도 너무 억지스럽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명탐정의 손자(아들도 아니고 무려 손자)라고 해서 경찰들이 그저 굽신대고 전적으로 신뢰해주고 수사를 맡기는 만화같은 상상력도 아니고, 그게 뭐야... 

  

 대상의 이니셜을 상징하는 네 장의 트럼프 카드와 살해 순서를 정하는 또 다른 네 장의 트럼프 카드, 네 명이 모여 모의한 네 건의 교환살인. 《킹을 찾아라》는 이 교환살인 모의 속에서 숨겨진 '킹'과 트릭을 찾아가는 본격 추리 요소를 지닌 작품이다. 완벽하다고 여겼던 계획은 여지없이 어긋나고, 불의의 사고는 발생. 이 틈을 노리즈키 총경과 아들 린타로가 파고든다. 역시나 수사 진행 상황과 일련의 단서들을 노리즈키 총경이 아들에게 주절주절 떠벌리고 아들이 이를 바탕으로 추리해 낸다는 설정은 여전한데, 그래도 수사회의에까지 데리고 가는 경악스러운 장면까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비판을 한 것이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던지, 일반인 신분으로 수사에 참여한다는 설정에 대해 살짝 수그리고 조심하는 표현과 서술들이 군데군데 엿보이기도.  

  

 설정도 추리도 나름 재미있다. 숨겨진 물리적·심리적 비장의 '카드'도 있고. 트럼프 카드의 상징성과 결합되어 좀 더 그럴싸한 사연과 매칭을 만들어 냈다면 더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있었을텐데, 1차원적인 매칭에만 머물렀을 뿐,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본격 추리나 사회파 추리나 마찬가지겠지만, 본격 추리는 최대한 억지스런 요소가 배제되고 추리 그 자체에 몰입해서 공정한 두뇌게임을 펼칠 수 있는 장場을 제대로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것을 의식하다 보니 적당히 끼워맞춘 부분들도 있고, 반대로 전적으로 '우연'의 요소에만 기댄 부분들도 눈에 띈다. 그리고 뜬금없이 '복합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피식피식... 아니, 이것저것 따지고 생각할 것도 없이 애초에 완전범죄를 꿈꾸며 무려 4중 교환살인까지 모의하는 놈들이 '카드'를 고이고이 간직하고 보관한다는 설정 자체가 에러. 

  

 쌓인 감정(?!)이 있어 그런지, 이것저것 지적질이 난무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출간된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 가운데 가장 짧은 분량(작은 판형으로 320여 페이지 가량)의 이 작품이 제일 읽을만 하다는 생각. '요리코를 위해'도 괜찮기는 했는데, 역겨운 '그것'때문에... 하-.  

  

 '범인도 동기도 모두 안다. 그럼에도, 충격적 결말'이라는 띠지 홍보문구가 이 작품이 가진 것 이상의 마력과 매력을 끌어내어, 절로 읽어 보고 싶게 만드는 욕구를 불러 일으킨다. 그렇게까지, 충격적 결말은 아닌데-. 

  

 그래도 나름 이 분야에서 이름과 명성을 쌓은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 그의 작품 가운데 '킹'은,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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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 1 로버트 랭던 시리즈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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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인터넷기사로 댄 브라운의 신작 소설이 필리핀 마닐라를 생지옥으로 묘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소 자극적인 그 기사를 통해 생각했던 것은, 필리핀 마닐라가 그런 곳이었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오, 댄 브라운 신작이 나오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출간소식을 접하고 책을 구매해 다 읽어보고 나니, 정작 마닐라 이야기는 잠시 잠깐 스쳐지나가는 이야기로 등장했을 뿐이더군요. 물론 소설 속에 묘사된 그곳의 어둡고 암울한 풍경과 격한 이야기들은 충분히 필리핀 쪽 입장에서는 발끈하며 격분하는 반응이 나올만도 한 것이기는 했습니다만. 

  

 소설이건, 영화건, 혹은 제목만이건,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듣고 접해보았을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 이후 출간된 《천사와 악마》, 《로스트 심벌》 등도 화제가 되며 인기를 끌었지만, 매 작품마다 비스무리한 전개와 반전이 너무 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투덜거림을 상쇄시킬만큼 지적知的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역사적, 예술적 지식들과, 각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나라와 도시 등 유명한 곳을 마치 여행하는 양, 관광하는 양 이끌고 다니는 로버트 랭던의 활약이 흥미진진해서 신작이 나오면 한번쯤 들춰보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의 무대는 이탈리아 피렌체입니다. 베키오 궁전, 두오모 성당, 미켈란젤로가 질시하고 극찬해 마지 않았다는 '천국의 문'으로 유명한 세례당 등 역시나 피렌체의 온갖 유적과 역사적 지식, 예술사적 지식들로 중무장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도 각종 관련 사진과 화보를 갖춘 스페셜 에디션으로 다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묘사된 유적과 장소 등을 실제로, 혹은 사진으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들끓어 읽는 중간중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했습니다. 피렌체는 유명한 관광지라, 직접 여행가서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려놓은 분들이 너무나 많더군요. 덕분에 다양하고 생생한 모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잘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곳 피렌체, 그리고 후반부 다른 유명한 도시(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도시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추격전, 그리고 반전. 늘 그렇듯, 로버트 랭던 교수의 곁에는 미녀가 따라 붙는데, 이번에는 시에나라는 금발의 여의사가 파트너로 등장합니다. 역시나 늘 그렇듯, 의심스러운 조력자들과 추격자들도 등장하고요. (개인적으로, 댄 브라운의 패턴에도 대입해보고, 이것저것 흘려주는 의심스러운 사실들을 살살 유추해서 1권의 중반부쯤에서 반전의 인물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인물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예상했던 것과는 살짝 다르기는 했습니다만...) 

  

 사악하고 거국적인 음모와 추격전, 액션활극 등 영화화되었을 때의 장면과 연출이 자연스레 상상되는 지극히 영상친화적인 전개와 서술. 로버트 랭던의 입을 빌어 술술 나오는 각종 지식과 추리 역시 무척 즐겁습니다. 

  

 그런데 중반부쯤 되자, 가만있자, 얘들은 왜 이렇게 치열하게 도망가고 쟤들은 왜 저렇게 미친듯이쫓아오는거지?!하며 살짝 이 작품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그것을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반전을 눈치챌 수 있었지요). 그리고 로버트 랭던의 단기기억상실로 인해 발생된 초반부 흥미진진한 전개와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여기 이 부분이 반전인거 아냐 하는 흥분과 기대감 등이 제법 즐겁고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은 그 설정이 다른 추리미스터리 작품에서도 몇 번 보았던, 너무나 작위적인 '그것'임을 알았을 때는... 차라리 그냥 일방통행으로 계속 직행해서 가지, 뭐하러 중간에 간선도로로 빠져 어디서 본 듯한, 이건 길도 아니다 싶은 길을 스스로 헤매는 얕은 수를 쓰느냐 말입니다, 댄 브라운씨~ 여기서 약간 실망. 그리고 소설은 몇 페이지 남지 않고 다 끝나가는데 이게 수습이 미처 다 제대로 안되고 그냥 그렇게 인류가 'OOO' 채로 결말지어졌을 때. 거기서도 슬쩍 비틀어 독자의 뒷통수를 탁- 때리는 멋진 반전을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출판사에 원고 넘길 시간이 다 되어 그랬던지, 쓰던 노트북 배터리가 다 되어가 꺼질랑 말랑해서 에라 모르겠다 대충 이렇게 마무리 짓자 하고 끝내버린 것인지. 아무튼 여기서도 살짝 실망. 

  

 뭐, 그래도 어지간한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읽는 재미가 출중한 작품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 '나쁜놈' 역할로 나오는 그 인물이 내세우는 전全지구적인 차원에서의 걱정고민과 논리가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화두를 제시해 주어 곱씹을 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가 내놓은 해결책과 방안이라는 것이 너무나 얼토당토 않은 것이긴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체적으로 단테의 '신곡'에서 많은 것을 가져와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제목 '인페르노'도 신곡의 '지옥편'에서 따온 것이지요. '신곡' 자체가 중요단서와 힌트가 되기도 하고, '신곡'의 '지옥편'에 빗대 댄 브라운이 작품 속 '나쁜놈'의 말과 행동을 빌어 전해주는 살아있는 지옥, 인류 생지옥에 대한 우려와 묘사도 인상적입니다. 덕분에 '단테 알리기에리'와 그의 걸작 '신곡'에 대한 흥미도 동해 이것저것 검색하고 찾아보기도 했습니다만, 선뜻 신곡 3부작 자체와 그에 관련된 서적들을 손에 잡고 들춰볼 엄두는 잘 나지 않네요. 신곡에 묘사된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힘겨운 길과 과정 만큼이나 어렵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 같아서. 그렇지만 언젠가는 한 번?! 하는 마음만은 늘 품어봅니다.  

  

 댄 브라운이 자신 있게 내놓은 신작 《인페르노》. '댄 브라운 코드'가 충만하게 차고 넘치는, 지극히 '랭던'스러운 전형적인 작품이지만, 이야~ 이거 정말 조사 많이 했구나, 이것저것 고민 많이 해서 맞춰 집어넣었구나 싶은 흔적들도 군데군데 진하게 보이고, 나름의 연출과 여러 장치들도 뒷 내용이 궁금해 자꾸만 책장을 재촉하게 만드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것저것 너무 진부하고 뻔하다 싶게 느낀다면, 하다 못해, 피렌체의 유적들과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예술가들의 일화, 여러 예술작품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만 머리에 남겨도 책값의 절반 이상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쩐지 '신혼여행이나 배낭여행은 이탈리아 피렌체로 오세요~!!'하는 홍보 캐치프레이즈가 절로 떠오르는, 작가양반이 피렌체 명예홍보대사로 임명되어도 될 법한, 피자와 파스타 냄새 솔솔 풍기는 '피렌체를 위한, 피렌체에 의한, 피렌체의' 작품이니까요.  

  

 댄 브라운, 아니 '관광 가이드' 로버트 랭던씨, 다음 여행지는 어느 도시인가요?!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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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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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채가 없다는 것,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도 별로 없고, 그저 주변 사람들이 그의 텅빈 마음 속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 이렇다 할 이야기도 핑계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떠나 사라져 버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속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를 표현하는 말이지만, 이 말은 하루키의 작품 그 자체를 그대로 관통해 잘 드러내주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긴 제목. 그저 처음에 몇 줄 끄적여 놓은 것에서 시작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될 지 아무것도 생각지 않은 채 붓에만 모든 것을 맡겨 나아갔다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세간의 혹평처럼 실체 없이 허세만 가득한 뜬구름 같은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지만, 책장을 덮은 뒤 냉정하게 되짚어보면, 꼭 읽어야만 하는 이야기라거나, 놓쳐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정거장 역시 아닙니다.  

  

 최근 모 영화에 대해 평한 한 평론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우리(너희)까지 이 이상한 열풍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즉, 하루키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하루키의 글을 맛있게 잘 먹는 사람들은 빼먹지 말고 이 하루키역에 교통카드 찍고 들어가 그대로 승차하면 될 일이고, 하루키를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이나 별 관심 없는 사람들, 하도 주변에서 하루키, 하루키 하니까 이게 뭔가 싶어 기웃거려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대로 지나쳐 자신이 목표한 지점을 향해 걸어가면 그 뿐입니다.  

  

 전철을 타고 햇살을 받으며 달리는 지상선로의 어느 지점 즈음에, 파릇파릇 돋아난 풀무더기 몇 포기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조약돌 몇 개에 눈길을 주고, 그 현상을 곱씹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보는 일. 누군가에게는 전혀 무의미한, 그저 눈 내리깔고 한숨 잠을 청하는 일만도 못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내면의 우주를 발견하는 깊고 깊은 사색의 찰나일 수도 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 특히 이번 신작을 읽는 일이란 그런 것입니다. 

  

 감각적인 표현과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해 주는 문장들이 '이것이 하루키의 근원이자 저력이지' 싶게 만듭니다. 쓰쿠루가 처한 상황, 쓰쿠루의 사색들, 쓰쿠루의 상실감 등 여러 상황에서 쓰여진 '적당히 잘 삶아진 파스타 면발'스러운 비유와 표현들이 '버릴까 말까'하는 마음의 갈등을 점점 연장시키며 소설의 종착역까지 이끌어 갑니다.  

  

 밑도 끝도 없이 죽음 운운하며 허세부리는 양 느껴지는 소설의 시작부터 강하게 올라오는 뜨거운 반감의 역류도 쓰쿠루가 겪어야 했던 일, 쓰쿠루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면서, 달궈진 쇳덩이가 차가운 물에 급격하게 식혀지듯 치익- 가라앉았습니다. 지나쳐 온 제 삶의 정착역 어딘가 즈음에도, 그렇듯 말없이, 일말의 변명 한 조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없어져 버린 사람들과, 자의적이건 혹은 타의에 의해서였건, 불시에 한없이 따스했던 원과 무리로부터 야멸차게 내팽개쳐져 튕겨 나갔던 경험의 쇳꼬챙이가 섬뜩하게 가시박힌 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따스하고 한없이 그리운 황금의 균형 상태를 상실할 것이 두려워, 나도 모르게, 어리석게도, 스스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매몰차게 외면하고 돌아서 버린 적도 있습니다. 한 두 번이 아니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쓰쿠루의 '상황'과 나이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제게도 순례를 떠나 산산이 조각난 채 상실의 우주를 떠돌고 있는 시간의 파편들을 거둬들이고, 창백한 피를 쏟으며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가슴의 용혈溶穴을 메워 없앨 수 있는 처절한 기회가 찾아오게 될런지. 그 순간이 찾아온들 한없이 부끄럽고 괴로운 역사의 한자락 앞에 똑바로 고개들고 눈 맞춰 제대로 응시나 할 수 있을런지. 미지수. 지금으로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심연沈淵의 나락那落 일테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불현듯 뒤털고 일어나 제대로 씻고 단장하지도, 옷도 제대로 갖춰입지조차 않은 채 맨발 맨걸음 내딛어 차갑고 어두운 바닥에 가만히 볼을 대어 볼 용기가 짜릿하게 스며들기를. 고개 돌린 채 지극히 이율배반적으로, 간절하게 바라 봅니다. 

  

 버릴 수 없이, 아끼고 아껴 곱씹는 감각적인 문장과 표현, 머리를 거치지 않고, 처지와 상황을 고스란히 가슴으로 받아들인 서글픈 공명共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전철 선롯가 어디 쯤에 자라난 풀 한 포기, 어디 즈음에서 눈에 들어온 돌멩이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과도한 선인세에 대한 많은 논란과 알맹이 없는 문학이라는 하루키 소설에 덧씌워진 멍에,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아니, 그것을 고스란히 차치하더라도. 

  

 크나큰 상실, 젊은 날의 고독과 방황.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와 메시지, 쓰쿠루의 행보 등을 가만히 지켜보면, 작가의 유명한 작품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떠올릴만 한 얼개와 형태를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고 의도하며 집필했는지, 그저 붓가는 대로 저벅저벅 나아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소설의 긴 제목을 '상실의 시대 II' 혹은 '핀란드의 숲'으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얼풋설풋 해 보았습니다. 작가가 그리던, 혹은 그리는 것처럼 보였던 '거기, 그 곳'에 차마 가 닿지는 못하고 중간에 어정쩡하게 멈춰 서버린, 또는 하이얀 포말을 흩뿌리며 도중에 해체되어 사라져 버린 메마른 양상이라 할 지라도.  

  
 색채가 없다는 것.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도 별로 없는 보통, 평균. 그저 주변 사람들이 그의 텅빈 마음 속 공간에 잠시 머물렀다 이렇다 할 이야기도 핑계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떠나 사라져 버린다... 늘 그래왔듯, 다자키 쓰쿠루는 하루키 분신이자 영념影念의 조각입니다. 독자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새겨 놓는 예술가는 아닐 지라도, 어딘지 모르게 텅비어 보이는 아스라한 공간이 영 마음쓰여 한번쯤 들어가 볼 여지를 남겨 주는 사람. 무심한 듯 무미건조하게 던져주는 활자 한 줌 가운데 서너 개 쯤 건져 훌훌 먼지털고 혀를 대어 볼 만용을 부리게 만드는 사람. 내 주변을 훑고 사라지는 수많은 시간 가운데 한줄기 이채로운 색채로, 본 듯 잊은 듯 생생하게, 그리고 흐릿하게 뇌리 속 바람길을 그대로 따라 스쳐 흘러가는 한가로운 미풍 한 조각. 그것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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