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페르노 1 로버트 랭던 시리즈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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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인터넷기사로 댄 브라운의 신작 소설이 필리핀 마닐라를 생지옥으로 묘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소 자극적인 그 기사를 통해 생각했던 것은, 필리핀 마닐라가 그런 곳이었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오, 댄 브라운 신작이 나오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출간소식을 접하고 책을 구매해 다 읽어보고 나니, 정작 마닐라 이야기는 잠시 잠깐 스쳐지나가는 이야기로 등장했을 뿐이더군요. 물론 소설 속에 묘사된 그곳의 어둡고 암울한 풍경과 격한 이야기들은 충분히 필리핀 쪽 입장에서는 발끈하며 격분하는 반응이 나올만도 한 것이기는 했습니다만. 

  

 소설이건, 영화건, 혹은 제목만이건,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듣고 접해보았을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 이후 출간된 《천사와 악마》, 《로스트 심벌》 등도 화제가 되며 인기를 끌었지만, 매 작품마다 비스무리한 전개와 반전이 너무 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투덜거림을 상쇄시킬만큼 지적知的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다양한 역사적, 예술적 지식들과, 각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나라와 도시 등 유명한 곳을 마치 여행하는 양, 관광하는 양 이끌고 다니는 로버트 랭던의 활약이 흥미진진해서 신작이 나오면 한번쯤 들춰보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의 무대는 이탈리아 피렌체입니다. 베키오 궁전, 두오모 성당, 미켈란젤로가 질시하고 극찬해 마지 않았다는 '천국의 문'으로 유명한 세례당 등 역시나 피렌체의 온갖 유적과 역사적 지식, 예술사적 지식들로 중무장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도 각종 관련 사진과 화보를 갖춘 스페셜 에디션으로 다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묘사된 유적과 장소 등을 실제로, 혹은 사진으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들끓어 읽는 중간중간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했습니다. 피렌체는 유명한 관광지라, 직접 여행가서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려놓은 분들이 너무나 많더군요. 덕분에 다양하고 생생한 모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잘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곳 피렌체, 그리고 후반부 다른 유명한 도시(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도시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추격전, 그리고 반전. 늘 그렇듯, 로버트 랭던 교수의 곁에는 미녀가 따라 붙는데, 이번에는 시에나라는 금발의 여의사가 파트너로 등장합니다. 역시나 늘 그렇듯, 의심스러운 조력자들과 추격자들도 등장하고요. (개인적으로, 댄 브라운의 패턴에도 대입해보고, 이것저것 흘려주는 의심스러운 사실들을 살살 유추해서 1권의 중반부쯤에서 반전의 인물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인물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예상했던 것과는 살짝 다르기는 했습니다만...) 

  

 사악하고 거국적인 음모와 추격전, 액션활극 등 영화화되었을 때의 장면과 연출이 자연스레 상상되는 지극히 영상친화적인 전개와 서술. 로버트 랭던의 입을 빌어 술술 나오는 각종 지식과 추리 역시 무척 즐겁습니다. 

  

 그런데 중반부쯤 되자, 가만있자, 얘들은 왜 이렇게 치열하게 도망가고 쟤들은 왜 저렇게 미친듯이쫓아오는거지?!하며 살짝 이 작품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그것을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반전을 눈치챌 수 있었지요). 그리고 로버트 랭던의 단기기억상실로 인해 발생된 초반부 흥미진진한 전개와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여기 이 부분이 반전인거 아냐 하는 흥분과 기대감 등이 제법 즐겁고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은 그 설정이 다른 추리미스터리 작품에서도 몇 번 보았던, 너무나 작위적인 '그것'임을 알았을 때는... 차라리 그냥 일방통행으로 계속 직행해서 가지, 뭐하러 중간에 간선도로로 빠져 어디서 본 듯한, 이건 길도 아니다 싶은 길을 스스로 헤매는 얕은 수를 쓰느냐 말입니다, 댄 브라운씨~ 여기서 약간 실망. 그리고 소설은 몇 페이지 남지 않고 다 끝나가는데 이게 수습이 미처 다 제대로 안되고 그냥 그렇게 인류가 'OOO' 채로 결말지어졌을 때. 거기서도 슬쩍 비틀어 독자의 뒷통수를 탁- 때리는 멋진 반전을 만들 수도 있었을텐데, 출판사에 원고 넘길 시간이 다 되어 그랬던지, 쓰던 노트북 배터리가 다 되어가 꺼질랑 말랑해서 에라 모르겠다 대충 이렇게 마무리 짓자 하고 끝내버린 것인지. 아무튼 여기서도 살짝 실망. 

  

 뭐, 그래도 어지간한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읽는 재미가 출중한 작품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 '나쁜놈' 역할로 나오는 그 인물이 내세우는 전全지구적인 차원에서의 걱정고민과 논리가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화두를 제시해 주어 곱씹을 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가 내놓은 해결책과 방안이라는 것이 너무나 얼토당토 않은 것이긴 하지만.  

  

 이번 작품은 전체적으로 단테의 '신곡'에서 많은 것을 가져와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제목 '인페르노'도 신곡의 '지옥편'에서 따온 것이지요. '신곡' 자체가 중요단서와 힌트가 되기도 하고, '신곡'의 '지옥편'에 빗대 댄 브라운이 작품 속 '나쁜놈'의 말과 행동을 빌어 전해주는 살아있는 지옥, 인류 생지옥에 대한 우려와 묘사도 인상적입니다. 덕분에 '단테 알리기에리'와 그의 걸작 '신곡'에 대한 흥미도 동해 이것저것 검색하고 찾아보기도 했습니다만, 선뜻 신곡 3부작 자체와 그에 관련된 서적들을 손에 잡고 들춰볼 엄두는 잘 나지 않네요. 신곡에 묘사된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힘겨운 길과 과정 만큼이나 어렵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 같아서. 그렇지만 언젠가는 한 번?! 하는 마음만은 늘 품어봅니다.  

  

 댄 브라운이 자신 있게 내놓은 신작 《인페르노》. '댄 브라운 코드'가 충만하게 차고 넘치는, 지극히 '랭던'스러운 전형적인 작품이지만, 이야~ 이거 정말 조사 많이 했구나, 이것저것 고민 많이 해서 맞춰 집어넣었구나 싶은 흔적들도 군데군데 진하게 보이고, 나름의 연출과 여러 장치들도 뒷 내용이 궁금해 자꾸만 책장을 재촉하게 만드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것저것 너무 진부하고 뻔하다 싶게 느낀다면, 하다 못해, 피렌체의 유적들과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예술가들의 일화, 여러 예술작품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만 머리에 남겨도 책값의 절반 이상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쩐지 '신혼여행이나 배낭여행은 이탈리아 피렌체로 오세요~!!'하는 홍보 캐치프레이즈가 절로 떠오르는, 작가양반이 피렌체 명예홍보대사로 임명되어도 될 법한, 피자와 파스타 냄새 솔솔 풍기는 '피렌체를 위한, 피렌체에 의한, 피렌체의' 작품이니까요.  

  

 댄 브라운, 아니 '관광 가이드' 로버트 랭던씨, 다음 여행지는 어느 도시인가요?!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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