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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적인 정신의 소유자는 참을성이 많고, 강한 이성을 가진 자는 의지가 확고한 법이다...

유연한 마음, 위한을 구하는 성향, 흔쾌히 악에서 선으로 돌아서서 자신을 잊게 해줄 일거리를 찾는 힘은 오로지 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205

 

앤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화려한 연주실 또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의 행복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었다. 눈이 빛나고 뺨이 달아올랐지만 그녀 자신은 알지 못했다. 앤은 오로지 지난 심십 분간 일어난 일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247

 

"앤 엘리엇은," 그가 말했다. "오랫동안 제게 흥미로운 이름이었어요. 그 이름엔 꽤 오랫동안 제 상상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지요. 용기를 내서 말하자면, 그 이름이 결코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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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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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이 달의 토론 도서, 예전에 <민음사>편으로 읽긴 했지만, 하도 오래전 일이라, 새롭다.

 

 

종이에 무얼 쓴다는 것은 중대한 행위였다. 14

 

그들은 1,2초 동안 애매한 시선을 주고 받았으며, 그것이 이야기의 끝이었다. 그러나 폐쇄된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기억해 둘만한 사건이었다. 27

 

비극, 그것은 고대에나 존재했던 유물이고, 사생활과 사랑과 우정이 있었던 시대에, 그리고 가족이 이유를 알 필요도 없이 서로서로 우정이 있었던 시대에, 그리고 가족이 이유를 알 필요도 없이 서로서로 기대어 살아가던 시대에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42

 

신어의 완전한 목적이 사고의 폭을 줍히려는 데 있다는 것 자넨 모르겠나? 결국에 가서는 사상죄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해놓자는 걸세. 왜냐하면 그걸 나타낼 낱말이 없으니까 말이야. 69

 

정통성이란 무의식이다. 72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의 신경 조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떤 순간이든 자기 자신속에 있는 긴장이 자칫하면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83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자에게 있다! 267

 

 

 

흡입력있는 이끌림에 순식간에 다 읽었다.

예전에도 낯선 듯, 익숙한 듯, 마음 꼿꼿이 읽은 경험이 있다.

 

통제된 세상. 내 생각을 가질 수 없는 세상.

관계가 말살된 세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세상

권력이 목적인 세상.

스탈린체제를 비판해 쓴 책이라고 하지만,

1984년이 훨씬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이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살아있는 것 같다.

구조만 다를 뿐, 권력을 추구하는 세상은 언제나 변함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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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메르헨 문지아이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김서정 옮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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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도시에서는 눈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겨울이 와도, 찬바람만 씽씽 불 뿐, 하얀 세상은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들도 언젠가부터 눈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눈이 와도, 하얀 눈부신 아름다움은 잠시, 길가에 축축 검은진탕으로 변해 옷에 검은 투성이를 만들어내는, 그리고 '두 발 걷기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도시인들은 거침없이 내달리는 '네 발 자동차'의 편리를 위해 눈을 거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겨울이 오면 먼저 그리움부터 다가온다.

'눈을 만나고 싶다, 하얀 눈을, 내 눈을 가득 채워 주던 어린 시절의 함박눈들을, 백조인양 우아한 춤사위로 나를 환상으로 이끌어주던 그 눈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리움으로 회색빛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 보기를  여러 번,

그 그리움들이 하얀 눈으로 돌아왔다. 안데르센과 함께...

 

어렸을 때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세상속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옆에는 안데르센이 있었다. <못생긴 아기 오리>를 읽을때는 내 예쁘지 않은 모습이 언제가는 화사한 꽃처럼 피어날 거라는 믿음이 생겼고, <인어공주>를 읽었을 때는, 왕자의 행복을 위해 한 점 망설임없이 투명한 물방울로 돌아가는 그 소리없는 발걸음에 같이 울면서 꼭 하늘나라에서 '반짝이는 햇살'로 태어나기를 바랐던 마음을 만났고, <성냥팔이 소녀>는 나에게 마음이 아주 슬플 때, 내 마음 속 작은 성냥을 꺼내 따뜻하게 마음을 지피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안데르센은 내 어린 시절을 슬프지만 아름다운 동화세상으로 안내해 주었고,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만의 멋진 동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작은 아이가 소녀가 되고, 어른이 되어 세상속에서 투박한 걸음으로 뒤뚱거리면서도 내 안의 안데르센 동화세상은 멈추지 않고 자라난다.

세상 어른이 되어 내 안의 안데르센 세상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 본다.

안데르센의 메르헨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을까? 그 수많은 이야기들은 어떻게 태어나  사람들 마음속으로 들어가 빛이 되었는지 궁금해 진다.

 

나에게 이야기로만 인식되던 안데르센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라는 이름으로 재인식되었던 때는 바로, 2005년 서울국제도서전.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관에서 만난 안데르센은 여윈듯한 기다란 얼굴을 가진 슬픈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막연히 안데르센은 행복했던 사람이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던 사람, 동화의 아버지는 당연히 행복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단순한 믿음안에서 안데르센은 행복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안데르센은 참 외롭고 쓸쓸했던 사람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사랑의 답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사람.  

 

그런 안데르센을 2013년 다시 만나고 있다. 

안데르센은 1805년 4월 2일,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수선공이었던 아버지와 세탁부였던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은 안데르센 동화의 바탕을 이루는 사랑이 되어 주었다. 계급사회였던 당시, 하층민으로 태어나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발판삼아 상류사회 인사가 되었지만 평생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혐오했다고 한다. 자신의 뿌리를 끊임없이 부정해야만 했던 안데르센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힘듬들이 서로 섞이면서 묵혀지고 걸러지는 과정을 통해서 안데르센만의 동화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동화속에서 안데르센은 순수하게 증류되어 빛으로 승화된다.

 

창밖을 내다본다. 지금도 함박눈들의 흔적이 사방에 널려있다. 하얀 세상속으로 <눈의 여왕>이 

커다란 썰매를 내달리고, <성냥팔이 소녀>는 맨발로 걷고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던 눈사람은 눈동자를 이루던 작은 나뭇가지만 남겨 놓은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안데르센의 <눈사람>이 살아난다. 정말 끝내주는 추위에 태어난 눈사람은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다. 마당에는 집안에서 쫓겨난, 사슬에 묶여 있는 개가 있다. 해와 달을 구분하지 못하는 눈사람에게 개는, '머지 않아 너는 해에 의해 담벼락 옆 도랑으로 흘러가게 될 거야'라고 말해 준다. 그런 눈사람눈에 지하실 가정부 방안의 난로가 보인다. 새까만 작은 몸속에서 따뜻한 밝은 빛을 뿜어내는 난롯불을, 눈사람은 한 눈에 사랑하게 되면서 작은 소망을 품게 된다.

"내 안이 이상하게 삐걱거려요! 나는 저 안에 들어갈 수 없을까요?"

"넌 저 안에 절대 못 들어가! 그리고 난로 곁에 가면, 넌 사라질 거다, 멍!"

잠시라도 난롯불 옆에 다가가보고 싶은, 따뜻함을 느껴보고 싶은 눈사람의 열망은 개의 충고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추운 날씨가 풀리면서 눈사람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몸을 데운채 지하방 난롯불을 바라보면서 소리없이 사라져 간다. 몸 속을 이루던 부지깽이만 남긴 채...

 

동화의 대부분을 이루는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오래 오래 끝없이요.'

대신,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눈물이 있다. 그리움이 있다.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 있다.

안데르센의 외로움속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은 맑은 마법의 샘물로 목을 축이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따뜻한 위로가 된다.

'외로움'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세상의 사랑이 될 수 있다고, 안데르센은 귀에 속삭여준다.

고마워요, 내 안의 안데르센!

내 주변의 세상 모든 것들을 친구로 만들어 준 당신에게, 언제나 감사해요.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뭉뚱그려 무시할 게 아니라 저마다

그 이름으로 불어 주어야 합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이 책 <안데르센 메르헨>에는 43가지 이야기들이 각자의 상상력을 자랑하며 가득 담겨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책장을 다 덮었어도 여전히 이야기들은 방 안 가득히 떠 다니며,

거미가 실을 잣듯, 끝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안데르센의 메르헨은 현실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살아있는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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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꽃별이 > (2월 15일 두번째 시간, 첫번째 글입니다) 네루다의 바다

빨리 올리는게, 글 속에 묻힐 수 있을 것 같아서...올립니다...^^

 

 

 

네루다의 바다

-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민음사>를 읽고...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문학작품보다는 영화 ‘일 포스티노’로 먼저 다가온 작품이다.

 오래전, 시노래모임 ‘나팔꽃’ 공연 때 도종환 시인이 자신의 시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시와 사람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좋은 작품의 예로서 영화 ‘일 포스티노’를 추천해 주었다. 유명한 시인과 한 우편배달부의 아름다운 우정이야기라고, 시인은 ‘네루다의 바다’ 앞에 서 있는 듯, 눈동자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목소리는 투명하게 진동했다. 그런 시인의 모습은 그대로 내게 시가 되어 ‘일포스티노’는 언젠가 한 번은 꼭 보고 싶은 ‘시’를 품은 영화였다. 그런 ‘일 포스티노’를 우연히 서가를 정리하다가 한 권의 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이름으로, 진한 바다내음을 뿜어내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내 가슴은 기쁨으로 출렁거렸다.

 

 이야기의 배경은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 시간이 멈춘 듯 나태함과 왁자지껄함이 가득한 바닷가의 작은 섬마을이다. 이런 작은 섬에 위대한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가 휴양차 오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리오는 어부를 아버지를 둔, 그러나 어부가 되고 싶지 않은 치기어린 젊은 청년이다. 이런 마리오가 수신인이 단 한 사람뿐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취직하게 되면서 ‘시’에 눈뜨게 된다. 단순한 우편배달부와 수취인의 관계에서, 순박한 마리오의 질문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메타포, 그게 뭐죠?”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파블로에게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마리오는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에 귀 기울이며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노력하게 된다. 아름다운 영혼의 개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마리오에게 시가 선물처럼 찾아오게 된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베아트리체라는 아름다운 처녀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날마다 그녀에 대해 시를 쓰고 들려준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마리오의 영혼을 시의 본질속으로 성큼성큼 다가가게 하는 마법의 열쇠로 작용한다. 흐르는 시간속에서 시인의 메타포는 그대로 마리오의 삶속으로 들어가 삶의 본질에 눈뜨고 영혼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슴으로 ‘메타포’를 인식하게 된 마리오가 자신이 살고 있는 칠레의 현 실상을 파악하게 되고, 민중의 언어로서 ‘시’를 표현해 낼 때의 그 감동이란, 시와 삶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순수한 본질로서 다가와 커다란 감동을 주게 된다.

 

 이 작품을 쓴 안토니오 스카르메타(1940년~ )는 위대한 시인인 네루다가 누구와도 편하게 이야기하는 친근한 성격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을 발표(1985년)하기 전에는 이 작품을 자신이 직접 감독하고 배우로도 출연해 영화로도 만들었다 하니, 작가의 이 작품에 대한 열정을 가히 짐작해 볼 만 하다.

 

 경계가 사라진 바닷가를 앞에 두고 소박한 시어를 건넬것만 같은 파블로의 사진이 담겨있는 책을 덮는 순간, 내 가슴은 갓 잡아올린 한 마리 물고기처럼 생생하게 파닥거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위대한 만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에게 ‘위대한 만남’이란 다름아닌, 자신안의 어두움을 스스로 밝힐 수 있도록 내적인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만남을 말한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우연한 만남’이 ‘위대한 만남’으로 싹트는 계기가 있었다. 바로 시노래모임 나팔꽃과의 만남이었다.  아주 오래전, ‘꽃피는 5월’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싸늘했던 어느 날 오후, 친구와 공원을 거닐다가 우연히 시노래모임 ‘나팔꽃’공연에 참가하게 되었다. 추운 날씨에 몇 되지 않은 관객으로서 덜덜 떨면서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시노래속에 담겨있는 근원적인 그리움의 감정들이 내 무의식을 건드렸던 것 같다.  그 때 이후로 ‘시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으며 주위의 사물에 대해서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도 ‘메타포’가 찾아들었던 것이다.

 사물의 본질에 대한 물음, ‘나를 나답게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함...’

 마리오처럼 삶이 시가 되진 못했지만, 오랜 시간동안 ‘나팔꽃’ 꽃그늘에 머물다 보니 내 마음에도 어느새 나팔꽃을 닮은 작은 시마음이 넝쿨지고 있었다. 가끔식 일상에 지쳐 피곤해 질 때면,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팔꽃’ 향기를 맡으며 힘을 얻는다.

 

 

 나팔꽃 / 김현성

 

아침에 나의 머리맡에
부지런한 나팔꽃 인사하지
나를 위해 그대 빵을 굽고
방안 가득 커피향이 좋아

사는 날 가끔 힘이 들 때
망설이던 눈물 흘려도 되
하늘 향해 뻗는 나팔꽃 봐
마음까지 하늘에 닿겠네

이른 아침 창밖을 봐
높이 나는 새들 얼마나 힘찬지
또 밤새 서 있는 푸른 나무들 좀 봐
이른 아침에

 <김현성 시집 '그대 어서 와 그리움 나누고 싶다'에서>

 

삶의 ‘메타포’에 한번이라도 물음표를 가져 본 사람이라면, ‘시’의 본질에 느낌표를 가져보았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꼭 읽어보아도 좋을 문학작품이다. 그리고 한 사람과의 만남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말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 시노래모임 나팔꽃 : 작게, 낮게, 느리게

  '나팔꽃'은 1999년 봄, 시인 김용택 정호승 도종환 안도현 유종화와 음악인 백창우 김원중 배경희 김현성 홍순관 류형선 이지상 안치환 이수진 등이 모여 만든 시노래 모임입니다. 시와 노래의 만남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변방으로 밀려나던 시가 새롭게 존재 의의를 찾으며 대중을 만나는 작업이며, 신세대 문화의 홍수 속에서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고 있는 노래가 새로운 시정신으로 무장하여 서정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시와 노래는 한 몸, 시는 시집 밖으로 걸어나와 자연과 인간의 친구가 되는 노래가 되어 우리 삶 속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나팔꽃 소개글-홈페이지에서 데려옴)

아쉽지만 현재는 '나팔꽃' 활동이 잠시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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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나무의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아름답지 못할 때
숲에 들면
나무는 얼마나 많은 목숨을 살리는지
내 뼈마디가 다 꺽인다
햇빛을 향해 속살 말랑말랑한 가지는
휘어지고 문득 방향을 틀었지만
그건 억지도 도식도 아니다
햇빛도 나무 때문에 지구에 온다
나무는 햇빛의 속마음을 제 잎사귀에 적어두고
나머지는 온갖 꽃이나 벌레들의 색깔과
뭇 짐승의 체온으로 돌려준다
그래서 만산홍엽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위해 무엇 하나 하는 일이 없는데
나무는 제 일이 세상 일이고
세상 일이 제 일이다

지난여름 그 무서운 태풍과 겨뤄본 듯
내 허벅지만한 나무 한 그루,
입동 가까운 세상에게 제 몸을 말려 건네주고 있다
이 세상은 나무가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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