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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은 죽었다 ㅣ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냉소적인 여탐정 '히무라 아키라'가 등장하는 두 번째 연작 단편집이다. 전작에서 히무라는 청소전문가, 전화상담원, 자유기고가 등 열 손가락으로도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하세가와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녀는 얼핏 보기에는 평범하게 보이는 이십대 후반의 아가씨지만 생각지도 않은 사건에 휘 말린다든지, 난데없이 어이없는 누명을 쓰기도 한다든지, 심지어 살해 당할 뻔한 아찔한 순간도 경험한다. 이런 '트러블 메이커'의 면모에다가, '조사하고 확인해서 흑백을 가려내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버릇'까지 보태니 히무라의 사건에 '적당히'는 없다.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악의'와 '독', 그리고 '오싹한 뒷맛'이다. 작가가 그리는 '악'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존재하고 악인은 대개 우리 곁에 있는 보통사람들이다. 이러한 면이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이끌어 내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서 멀어지는 독자도 존재한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기묘한 사건, 악마같은 두뇌를 가진 범인과 천재적인 탐정이 펼치는 전통적인 구조의 미스터리는 마치 판타지와 같아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사건을 감상할 수 있지만, 와카타케 나나미가 보여 주는 일상의 '독'은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을 직면해야만 하는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국내에 소개된 4종의 작품이 모두 단편집이기도 하지만, 와카타케 나나미는 미스터리 단편을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의문의 죽음, 수수께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 등 미스터리에 걸 맞는 소재들을 이리저리 재단하여 오밀조밀하게 구성하는 솜씨에 오싹한 뒷맛을 남기는 마무리까지 그다지 흠잡을 것 없이 깔끔한 단편들이 많기 대문이다. 그리고, 작가는 연작 단편집의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서도 쉽게 가지 않고 한바탕 기교를 부리고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 구조가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처음 국내에 소개된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어느 해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매월 한 편씩의 이야기를 사보에 싣는 형식으로 구성되다가, 마지막에 전체를 아울러는 대담한 미스터리를 등장시키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네 탓이야'에서는 딸에게 빌린 분홍색 자전거를 타고 사건현장에 달려가는 중년의 경찰 '고바야시 순타로'와 히무라가 각각 한 편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역시 마지막 단편에서 마침내 한 사건으로 둘이 만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번 작품집 '의뢰인은 죽었다'는 한 계절에 한 편씩 이야기를 배치하고, 첫 번째 단편에 등장하는 짙은 감색양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마지막 단편에도 등장함과 동시에 다른 사건에도 일부 관여한 흔적을 남긴다.
수록된 9편의 단편 중 특히 좋았던 작품은 표제작인 '의뢰인은 죽었다'와 '여탐정의 여름휴가', 그리고 서술트릭이 구사된 제목을 밝힐 수 없는 단편이다. 검사조차 받은 적이 없는 난소암 통지서에 당황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의뢰인은 죽었다'는 단편이 가져야 할 미덕을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잘 구비한 웰메이드 단편이고, '여탐정의 여름휴가'는 읽을수록 어딘지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단편에서 볼 수 있었던 정취가 느껴지는 깔끔한 소품이었다. 마지막으로 단편에서도 효과적으로 서술트릭을 구사한 한 작품도 나름 나의 취향에 맞아 좋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