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안개마을'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지금은 사라진 도쿄의 '가스미초'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청춘과 가족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씌어진 여덟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연작 단편집이다. 표제작인 '가스미초 이야기', '굳바이 닥터 해리', '해질 녘 터널', '여우비'는 우정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고, '푸른 불꽃', '평지꽃', '유영', '졸업사진 등에는 잔잔하지만 깊은 가족들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설 속 등장 인물들간의 '관계'에 주목하며 읽는 것도 이 작품집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가령, 어용 사진사로서의 긍지가 높았던 주인공 '이노'의 할아버지와 한 때 최고의 게이샤로 이름 났던 할머니의 관계와 함께 가슴 속 앨범의 한 귀퉁이에 여전히 아픈 사랑으로 남아 있는 노신사와 할머니의 관계가 동시에 등장한다. 끝나지 않은 할머니의 첫사랑까지도 마음으로 품어 주는 할아버지의 넉넉한 사랑과 첫사랑이 준 꽃다발을 눈물 흘리며 강물에 던져 버리는 할머니의 사랑이 애틋하다.
그리고,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스승이자 장인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계와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벽을 넘어 누구보다도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친구같은 할아버지와 주인공의 관계도 독자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 준다. 스승을 위해 자신의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손자의 18년 삶 순간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아사다 지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을 쓸 때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쉽게 그리고 아름답게 쓰는 것이다. 아름다운 소설은 읽는 순간 독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사라지게 한다"
최소한 여지껏 내가 읽은 범위 내에서 아사다 지로의 작품 세계를 이 말보다 더 예리하게 집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은 정말 잘 읽힌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탁월한 면이 있는 작가이다. 그런데, 아름답게 씌어진 그의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울림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가 그리는 인간애, 가족간의 사랑, 아련한 노스텔지어, 신파성 멜로 등은 좀처럼 예측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지는 않기 때문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는 아사다 지로의 최대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한계로도 작용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