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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평점 :
'만화가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칭 만화지상주의자인 지은이는 주간 만화잡지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유명 만화잡지의 편집장을 지낸 후 만화와 관련된 여러 일에 두루 경험한 현장과 실무를 겸비한 대표적인 만화 전문가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 만화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올해로 탄생 100년을 맞이한 한국만화의 역사를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캐릭터는 서사 장르에서 흔히 '작중 인물'과 '인물의 성격'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대개 인물과 성격이라는 개념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즉, 캐릭터는 '인물이 내포하고 있는 성격', 혹은 '성격의 외연이 되는 인물'이라는 두 가지를 공유할 때 완벽하게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만화에서는 이러한 캐릭터의 의미에 더하여 인물의 회화적 특성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서사성과 회화성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만화의 본질상 만화 속 캐릭터는 인물의 내면과 외형적인 모습을 모두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화에 있어 캐릭터는 다른 구성요소에 비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인공 캐릭터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만화 창작에 있어서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만화가는 멋진 캐릭터 창조에 공을 들인다. 캐릭터가 만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점은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보았던 만화의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해 내지 못하더라도 그 만화 속 캐릭터의 이미지는 놀랄 만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을 찾아서 읽는 독자들은 대개 어려서부터 만화보기를 좋아했었을 것이고, 지금도 만화를 즐기거나 즐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린 시절 '소년중앙', '어깨동무'와 같은 어린이 잡지 별책부록에 들어있는 만화 속 이야기 세계에 빠졌을 것이고, 부모님 몰래 만화 대본소에 출입하다가 걸려 혼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조금 더 커서는 사방 벽면을 돌아가며 빽빽이 꽂혀 있는 만화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경로로 독자들과 만났던 추억의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40~50년대에 나왔던 '코주부' '고바우' '라이파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알고 있거나 좋아했었던 것들이라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좋았다. 먼저, 70년대 어린이 잡지에서 만났던 얼굴들이 반가웠다. 소년중앙에는 '꺼벙이' '번데기 야구단'이 나왔고, 어깨동무에서는 도깨비 감투의 '혁이'와 요철발명왕 '요철이'를 만날 수 있었다. 반항아 '독고탁'은 배경을 달리하여 여러 잡지에 등장하였는데 어깨동무에 나왔던 '아홉개의 빨간모자'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위에 언급된 것 외에도 '도전자 하리케인', '타이어 마스크', '바벨2세', '태양을 쳐라' 등과 같은 인기 만화와 그 캐릭터들이 인상적이었는데 후에 이것들은 일본 만화의 캐릭터를 베낀 것으로 알려져서 실망했었다. 또한, 대본소에서 만났던 '땡이'도 좋았고 어린 마음에도 참 유니크한 작품세계라고 생각했던 '김민'의 '불나비'도 기억에 남는 캐릭터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는 '이강토'이다. 어깨동무에 연재되었던 어린이 만화 '태양을 향해 달려라'에서 처음 만났던 이강토는 소년만화, 성인만화의 주인공으로 변신하면서 독자들과 더불어 같이 나이를 먹어 갔다. '카멜레온의 시'를 읽으며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공감하고, '아스팔트의 사나이'를 보면서 고단한 직장생활 속에서 판타지를 꿈꾸었다.
이 책은 한국 만화에 대해 깊이있는 지식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마다 만화에 얽힌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