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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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배송되어 온 책을 처음 보고 곧 후회했다. 이런 책일 줄이야! 책표지를 둘러싼 띠지에 TV 방송국 예능 PD로 유명한 분이 "이 책은 엄청난 책입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직장일이 갑자기 바빠진 요즈음에 읽기에는 부담이 되는 책이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이 책은 지은이가 7년 동안 야생의 세계를 방랑한 사유의 기록이다. 그이의 발길은 온통 초록의 식물로 뒤 얽힌 아마존의 정글과 험준한 안데스 산맥, 캐나다의 작은 에스키모 거주지, 북극의 빙하, 인도네시아의 바다 집시 마을과 심해,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래사막, 웨스트 파푸아의 벌거숭이산, 외몽골의 외딴 사원으로 이어진다. 야생의 대지에서 인간의 정신을 탐색한다.

 

600페이지도 넘도록 빽빽하게 들어있는 글은 한 구절 한 구절 아름다운 문장이지만, 사유의 깊이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가령, 아무렇게나 책장을 확 넘겨도 아래와 같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바다 깊은 곳, 죽음과 어둠만이 존재할 것 같은 곳에서도 생명은 가벼워지는 바닷물을 통해 다시 위로 구르며 솟아 오른다. 비극은 생명의 정수가 아니다, 그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바다의 짭짤한 눈물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어둡고 무거운 슬픔의 바다, 그 내면의 심해로부터 순수하고 헤아릴 수 없는 가벼움이 고개를 쳐들고 몸을 뒤틀며 태동하기 시작한다."    

 

지은이는 야생의 의지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야성의 의지가 야성적인 아름다움 속에 자연력의 생기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드러내는지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이 자연을 구성하는 원소라고 믿었던 흙, 공기, 불, 물에 따라 여행의 밑그림을 그리고 야생의 땅을 상징하는 '숲', 얼음을 상징하는 '빙하', 물을 상징하는 '바다', 불을 상징하는 '사막', 공기를 상징하는 '자유'를 소제목으로 삼았고, 마지막은 비극의 황무지, 희극의 야생성으로 야생의 정신을 마무리한다.

 

처음 몇 챕터를 읽고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 것을 포기했다. 이런 문장의 향연은 정신의 현기증을 동반한다.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마음 내키는 대로 책장을 펼쳐서 조금씩 읽었다. 예능 PD의 말대로 '엄청난' 책이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호들갑을 떨 책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읽은 책 중에 인상 깊기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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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코마에 두부 - 생뚱맞고 시건방진 차별화 전략
이토 신고 지음, 김치영.김세원 옮김 / 가디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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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식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도쿄의 유명한 '쓰키지 어시장'에서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지은이의 눈을 홀린 것은 장화와 앞치마 차림을 한 생선장수가 벤츠를 타고 퇴근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는 것은 아마도 그 때부터 지은이의 혈관에는 창업자의 피가 흐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창업자의 능력이나 열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장사의 세계, 창업의 세계에서는 생선장수가 벤츠를 타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가 운영하고 두부를 생산하는 '산와토유 식품'에 입사한다.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의 경우도 두부는 수없이 많은 제조사에서 생산되고 가격도 저렴한 대중적인 식품이다. 너무 대중적이다 보니 제품을 차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두부 시장에서 그는 '바람에 나부끼는 두부장수 조니'라는 긴 이름의 신제품을 출시하여 두부에 기발한 '스토리'를 가미한 마케팅을 시작하여 성공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구상을 펼치기 위해 2005년에 '오토코마에 두부점'이라는 자기의 회사를 창업한다.

 

오토코마에 두부는 '남자다운 두부' 내지는 '사나이 두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창업하자마자 그의 회사에서 내 놓은 두부들은 불티나게 팔려 나가, 2006년에 매출 40억엔을 돌파하고 2008년에 매출 55억이라는 신화를 이루어 내었다. 오토코마에 두부는 2006년 닛케이 트렌드지가 선정한 히트상품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며 일본 비즈니스계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국내에도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비즈니스 3.0'에 '일본을 발칵 뒤집은 두 부 한모, 오토코마에 두부'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수많은 국내 CEO들 사이에서 '포화 시장의 진정한 차별화 전략'이라며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오토코마에 두부의 인기 비결은 남다른 컨셉에 있었다. 오토코마에 두부는 평범하지 않다. 흔히, 두부에서 연상되는 '고소한 두부', '부침개용 두부'등과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생뚱맞게도 두부에 '남자다움'을 덧씌웠다. 참으로 엉뚱하고도 남다른 착상이다. 만약 이 회사가 좋은 품질, 저렴한 가격 등과 같은 요소로 승부하려고 했다면 그렇고 그런 두부회사로 머물었을 것이다.

 

"조니, 언제나 너는 바람에 나부끼고 있구나.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너와 언젠가 마주앉아 이야기 하고 싶다" 공장 앞에 제품의 이름을 딴(바람에 나부끼는 두부장수 조니) 캐릭터의 동상을 세우고 키치하고도 센치한 문구를 새겨넣은 남다른 감성 마케팅이 소비자들이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 책은 오토코마에 두부점의 CEO가 직접 쓴 현장감 있는 성공 스토리이다. 두부 제조법에서부터, 디자인, 마케팅, 원소스 멀티유저 측면까지 남과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도전했던 일련의 과정과 사례가 짤막짤막하지만 생생하게 담겨 있다. 차별화 전략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기분전환 삼아 부담없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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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아와 새튼이 - 한국 최초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사건 현장 이야기
문국진 지음 / 알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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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법의학자 '에드몽 로카르'는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흔적을 찾는 사람 중에는 법의학자도 해당된다. 지은이는 한국 법의학계의 선구자격인 유명한 인물이다. 그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사람에게는 생명이 소중하고 문화인에게는 권리가 중요하다" 법의학은 문화가 발달된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론이다. 한국의 법의학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면, 한국인들의 권리가 아직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의 제자인 황적준 박사는 1987년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법의학으로 밝혀 거대한 역사의 한 흐름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1991년 '강경대 사건'에서는 법의학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정녕, 법의학은 그 나라의 인권과 문화의 깊이를 재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지은이가 80년대에 이미 발표한 두 개의 단행본에 실린 글을 다시 묶은 것이다. 이 책이 다시 나오게 된 배경은 같은 출판사의 인터뷰 시리즈에 지은이가 등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은이는 인터뷰 작가와 대화를 통해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된 '지상아'와 '새튼이'에 수록된 에피소드들이 젊은이들이 아직도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 단행본에 실린 글 중에서 일부를 택하여 문장을 다듬어 새롭게 출간하였다는 것이다.

 

제목으로 쓰인 '지상아(紙狀兒)'는 산모의 자궁 내에서 사망한 지 오래된 태아를 의미하고 '새튼이'는 '명도태자혼(明圖太子魂)'이라고도 하는데 어린아이의 미라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책 속에 실린 여러 에피소드들은 원래 어느 제약회사의 사보에 연재한 법의학 에세이가 바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각 에피소드는 분량도 길지 않고 내용 자체도 전문적이기 보다는 일반인들이 흥미진진하게 생각하는 그런 부분이 많은 편이다.

 

완전범죄, 성범죄, 지능적인 사건, 어처구니 없는 사건, 기이한 사건 등으로 장을 나누어 총 45개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보았던 점은 법의학적인 내용보다는 범죄와 사건을 통해 투영된 과거 한국 사회의 원초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현실이 소설보다 더 극적일 수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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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브레이크 호텔
서진 지음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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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억을 주제로 한 연작 단편집이다. 첫 번째 '부산'이 배경인 단편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배치하고 '샌프란시스코', '도쿄', '마이애미', '워싱턴DC', '라스베가스', '뉴욕' 등 일곱 도시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야기를 전개한다. 일곱 개 단편이 각각 독립적이지만 '하트브레이크 호텔'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라는 장치는 이 곳이 일종의 '차원 통로'로 이 연작 단편집이 '시간 여행'을 테마로 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수록작 중 두 번째 단편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40년 전에 신혼여행을 왔던 곳인 샌프란시스코를 홀로 찾아 온 미국인 노인의 이야기이다. 노인의 아내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부부는 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결국 결혼에 성공하였다. 아내는 5년 전에 세상을 떠나 버리고 노인은 홀로 살고 있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그 동안 모은 저축과 연금으로 그럭저럭 살 수는 있지만, 매일 저녁 티브이를 켜 놓고 냉동 음식을 데워 홀로 먹는 지독하게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외로움에 지친 노인은 자살을 결심하고 가장 돌아가고 싶고, 사랑스러운 기억이 있는 허니문의 도시에 홀로 온 것이다. 예전에 묵었던 그 호텔, 그 방, 그 침대에 홀로 누워 옛날을 회상하면서 비싸게 구입한 'Chew-X'라는 약을 목구멍에 털어 넣는다. 그 약은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고 은밀하게 돌아다니는 약이었다. 그런데, 노인에게 죽음 대신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가장 행복했던 그 허니문의 순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첫 번째 단편이 주인공 여대생이 연상의 물리학 여 강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동성애라는 코드가 있긴 하지만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가 두 번째 단편에서 갑자기 비약한다. 배경도 분위기도 문체도 완전히 바뀌어 버려 '어 이거 봐라!'하는 마음이 든다. 이어서 헤어진 미국인 연인을 찾아 난생 처음 미국행 비행기를 탄 일본인 아가씨, 마이애미에서 악몽과 같은 12시간을 보낸 쿠바 태생 건달남자, 인터넷 채팅 중에 자신도 모르는 자기의 정체가 미래에서 이 곳으로 보내진 시간 여행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여자, 라스베가스에서 인생의 막다른 순간에 몰린 청춘 남녀 커플, 그리고 뉴욕에서 소설가와의 만남을 꿈꾸던 여자가 차례로 등장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예전에 '하트모텔'이라는 제목으로 쓴 작품집 속에 있던 4개의 단편을 새롭게 확장하고 3개의 단편을 새로 썼다고 한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와 함께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는 '기억'과 '사랑'이다. 사랑은 가고 기억만 남은 외로운 저녁과 같은 달콤한 비애의 정서를 적어도 두 번째 단편에서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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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영웅들 김영사 모던&클래식
윌 듀런트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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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쓴 또 하나의 역자, '철학 이야기'를 읽던 기억이 새롭다. 고등학교 때 윤리 과목 선생님이 대학생이 되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 준 책이다. 질문이라곤 별로 없이 주입식 지식만을 머리 속에 집어 넣는 수업시간에 모처럼 철학적 명제에 대한 질문을 한 제자가 기특해서인지 지은이 이름과 책 제목을 직접 칠판에 써주셨다. 하루도 최루탄 냄새가 가신 날이 없었던 대학 1학년 봄에 이 책을 읽었다. 물론 내용의 반 정도는 이해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책은 '윌 듀런트'가 남긴 마지막 저작이라고 한다. 그가 50년에 걸쳐 인류의 문명사를 기록한 '문명 이야기'시리즈는 고대 문명의 기원에서부터 나폴레옹 시대까지의 역사를 유장한 필치로 그려 낸 역작인데, 이 책은 11권에 이르는 그 문명 이야기를 '인물' 중심으로 압축하여 다시 엮은 책이다.

 

제1장 '문명이란 무엇인가'는 다음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류 역사는 생물학의 한 부분이다. 인간은 수 없이 많은 종들 가운데 하나이고,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싸움과 살아 남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들의 경쟁을 피할 수가 없다." 문명을 시작한 것은 '여자'이고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동물이라는 지은이의 통찰이 재미있다. 그는 문명을 떠 받치는 다섯 기둥으로 가족, 종교, 교육(학교), 법, 대중의 의견(여론)을 지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를 관찰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영웅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영웅이란 정복자, 권력자, 장군 등과 같은 부류의 인물 뿐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나 예술가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한결같이 위대함과 더불어 인간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다. 지은이는 영웅들의 위대성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슬그머니 그들의 약점도 거침없이 털어 놓고 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에 이어 4대 '고대문명'을 한 차례씩 훑고는 곧 이어 서양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와 '로마문명'을 개관한다. 이어 '기독교의 성장과 중세시대', '르네상스 시대', '종교개혁', 그리고 이성의 시대가 도래함을 알리는 '세익스피어와 베이컨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중도에 끝이 난다. 인류의 역사라기 보다는 서양의 역사와 문명을 휴머니즘 관점으로 정리하였다.

 

쉽게 손이 나가는 그런 책은 아니지만 끈기있게 조금씩 읽어 내면, 분명 남는 것이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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