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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브레이크 호텔
서진 지음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사랑의 기억을 주제로 한 연작 단편집이다. 첫 번째 '부산'이 배경인 단편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배치하고 '샌프란시스코', '도쿄', '마이애미', '워싱턴DC', '라스베가스', '뉴욕' 등 일곱 도시를 배경으로 환상적인 야기를 전개한다. 일곱 개 단편이 각각 독립적이지만 '하트브레이크 호텔'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라는 장치는 이 곳이 일종의 '차원 통로'로 이 연작 단편집이 '시간 여행'을 테마로 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수록작 중 두 번째 단편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40년 전에 신혼여행을 왔던 곳인 샌프란시스코를 홀로 찾아 온 미국인 노인의 이야기이다. 노인의 아내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부부는 양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결국 결혼에 성공하였다. 아내는 5년 전에 세상을 떠나 버리고 노인은 홀로 살고 있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그 동안 모은 저축과 연금으로 그럭저럭 살 수는 있지만, 매일 저녁 티브이를 켜 놓고 냉동 음식을 데워 홀로 먹는 지독하게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외로움에 지친 노인은 자살을 결심하고 가장 돌아가고 싶고, 사랑스러운 기억이 있는 허니문의 도시에 홀로 온 것이다. 예전에 묵었던 그 호텔, 그 방, 그 침대에 홀로 누워 옛날을 회상하면서 비싸게 구입한 'Chew-X'라는 약을 목구멍에 털어 넣는다. 그 약은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고 은밀하게 돌아다니는 약이었다. 그런데, 노인에게 죽음 대신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가장 행복했던 그 허니문의 순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첫 번째 단편이 주인공 여대생이 연상의 물리학 여 강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동성애라는 코드가 있긴 하지만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가 두 번째 단편에서 갑자기 비약한다. 배경도 분위기도 문체도 완전히 바뀌어 버려 '어 이거 봐라!'하는 마음이 든다. 이어서 헤어진 미국인 연인을 찾아 난생 처음 미국행 비행기를 탄 일본인 아가씨, 마이애미에서 악몽과 같은 12시간을 보낸 쿠바 태생 건달남자, 인터넷 채팅 중에 자신도 모르는 자기의 정체가 미래에서 이 곳으로 보내진 시간 여행자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여자, 라스베가스에서 인생의 막다른 순간에 몰린 청춘 남녀 커플, 그리고 뉴욕에서 소설가와의 만남을 꿈꾸던 여자가 차례로 등장한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예전에 '하트모텔'이라는 제목으로 쓴 작품집 속에 있던 4개의 단편을 새롭게 확장하고 3개의 단편을 새로 썼다고 한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와 함께 이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는 '기억'과 '사랑'이다. 사랑은 가고 기억만 남은 외로운 저녁과 같은 달콤한 비애의 정서를 적어도 두 번째 단편에서는 강하게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