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사고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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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의 이사 집들이에 모인 7명의 청춘들에게 일어난 하루 동안의 사건을 각기 다른 다섯 명의 시선으로 한 편씩 그려 낸 소설이다. 연작 단편집으로는 볼 수 없고 장편이라 하기엔 다소 짧은 분량의 소설이다.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지만 젊은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세련된 문체로 그려 내고, 구성 면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뒤섞고, 동일한 일상을 각기 다른 다섯 명 등장인물의 시선과 나래이터를 통해 그려냄으로 독자들에게 소설 속 등장 인물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끼게하는 효과를 준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나카자와"와 그의 여자친구 "마키", 그녀는 꼭 사려고 마음 먹었던 치마가 벌써 팔렸다고 "몰라 몰라, 나 삐졌어"라고 투덜대는 '천상여자' 스타일의 인물이다. 나카자와의 소꿉친구 "케이토"는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철부지처럼 달려드는 스타일이다. 이 세 명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어 오사카에서 쿄토로 이사를 간 친구 "마사미치"의 집들이에 같이 참석한다.

이야기는 한바탕 요란했던 집들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눈을 뜬 "케이토"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빛에 눈을 떴다"라는 첫 문장에서 감각적인 작가의 문체가 느껴진다.

그리고, 돌연 시간을 되 돌리고, 화자도 바꾸어 "마키"의 시선으로 본격적인 집들이 풍경이 묘사된다. 집주인 "마시미치"의 집에는 한 명의 미남자와 각각 녹색과 검정 스웨터를 걸친 그녀들의 눈에 존재감이 약한 두 명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일곱명의 남녀는 "마시미치"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기분 좋게 취해간다. "케이토"는 미남자 "가와치"에게 집적대기 시작하고, "마키"는 술에 취해 일명 녹색 스웨터 "니시야마"의 머리를 잘라 주려다 엉망으로 망쳐 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와치"도 자신의 머리를 잘라 달라고 내민다. 그런데, 가와치의 머리는 그런대로 잘 다듬어 진다. "니시야마"는 이성에게 인기가 없는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시끄러운 스타일이고, "가와치"는 외모와 다르게 소심하고 착해빠진 성격이다. 다른 한 명의 스웨트 "사카모토"는 이 모든 소동에서 한 켯에서 벗어나 TV나 게임에만 몰두하는 마치 이방인같은 인물이다.

이야기의 바턴은 "나카자와"에게로 넘어간다. 그는 마키와 케이토를 태우고 오사카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케이토"와 "토요노"라는 친구와 함께 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하루를 추억하고, 잠에서 깨어난 "마키"와 함께 그 때 다녔던 그 학교 주변을 산책한다.

"가와치"의 이야기는 시간이 좀 더 앞당겨진다. 그는 이 집들이에 오기 직전, "치요"라는 여자친구와 동물원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다투어 버린다. 이 부분은 젊은 연인들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나카자와"와 "마키" "케이토"가 떠난 술자리는 "마시미치"의 시선으로 마무리된다. 술에 취해서 말로는 하지 못했던 마음속 생각들을 가격한 언사와 행동으로 가와치에게 퍼붓는 "니시야마"를 말리고, 부족한 술과 먹을거리를 사러 밖으로 나간 길에서는 이제 이름조차 가물 가물해진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에게 마음앓이를 주는 여자랑 쓸쓸한 통화를 한다.

그리고, 오늘같은 내일은 어김없이 그들을 찾아 온다.

이 소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일상이 이토록 풍요로운데 왜들 그렇게 드라마를 추구하는 걸까"라고 이야기한 영화 "오늘의 사건사고"를 만들었던 영화감독 "유키사다 이사오"의 말 처럼 이 소설은 특별하지는 않지만 마음의 울림이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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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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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고교 재학시부터 평론을 발표하고 연극 각본을 쓰던 문학청년이었다. 그가 다닌 고등학교는 '코베'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명문교였다는데, 당시 그의 목표는 '대학에서 교수를 하면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1969년 요코하마대학에 진학했는데, 그가 직접 쓴 '연보'에 그 시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모 국립대학을 입학했지만, 가보니 학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데모 중이었다). 얼마 지나서 다시 한 번 가 봤지만 역시 학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폐쇄 중이었다). 최근 마음을 고쳐 먹고 확인을 위해 다시 한 번 가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장소로 이전된 상태였다). 그러니까, 아마도 졸업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 많은 청년들이 그러하였듯이 그는 대학시절에 학생운동에 가담하게 되었고, 급기야 구치소에 구금을 당하게 된다. 구류상태에서 그는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생각할 때 조차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당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실어증에 걸리고 만다. 석방 후에도 그 감각은 계속 그를 따라다녀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심지어 생각하는 것 조차 거의 그만두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는 1970년대를 자동차 공장이나 철공소를 떠 돌며 육체노동으로 연명하며 보냈다.

'언어표현'을 이상으로 삼는 문학청년이 좌절을 겪고 그 격심한 좌절 속에서 필사적으로 재활 의지를 불태웠던 이력처럼 그의 저작은 '문학이 이렇게 잘 이해되어도 되는 것인가' '문학이 아닐 지도 모르는 증후군' '문학 따위는 무섭지 않다' 등 '문학 읽기'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다. 그는 '소설은 어떠해야 하는가'하는 의문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일반 독자들에게 꽁꽁 숨겨 왔던 '창의적인 스토리텔링' 비법을 이 책에 풀어놓고 있다. 이 책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창작 이론서가 아니라 마치 독자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쉬운 문장에 재치와 익살을 섞어,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쉽고 유쾌한 일인지를 들려주고 있다. 그렇다 이 책의 미덕은 여기까지 이다. 유쾌하게 읽기는 했는데 실용지식 면에서 무엇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언어"와 "소설" 그 자체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애정고백이다.

※ 지은이가 말하는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스무 가지 열쇠
(1)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를 충분히, 마음껏, 실컷, 즐긴다. (2) 첫 행은 되도록 꾹꾹 참고 최대한 늦게 시작한다. (3) 기다리는 동안 전혀 관계없는 것을 생각한다. (4) 쓰기 전에 고래 다리가 몇 개인지 조사해본다. (5) 언제부터 쓰기 시작할지 고민한다. (6) 쓰기 위해서 스스로 '바보'가 된다. (7) 정말로 알고 있는 것, 그것부터 시작한다. (8)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다. 붙잡는 것이다. (9) 철저히 생각한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다시 생각한다. (10)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본다. 혹은 완전히 다르게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11) 다른 이야기와 놀아준다. (12) 날아온 이야기 공에 본능적으로 몸을 맡긴다. (13) 그저 놀이 삼아 상대의 이야기와 함께 한다. (14) 이야기를 붙잡기 위해 내 쪽에서도 걸어 나간다. (15) 세계는 이미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음을 파악한다. (16) 그리고 아기가 엄마의 흉내를 내듯 흉내 낸다. (17) 흉내 내기는 가장 좋은 공부법이다. (18) 이야기는 말한다, 살아라, 라고. (19) 이야기는 사진 옆에, 만화 옆에 그리고 다양한 곳에서 돌연 태어난다. (20)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라. 다만, 아주 조금 즐거운 거짓말을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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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색에 물들다
강미승 지음, 장성철 감수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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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당시, 난 위태로웠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감이 왔다. 그리고 그 감은 정확했다.

해외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당연하 듯이 누리는 '자유'가 '자유'가 아니었던 기나긴 시절에 좋은 날을 누리던 그 사람들이 이제 도리어 '자유'의 열렬한 옹호자로 둔갑한 아이러니라니...) 그 당시에 김찬삼 박사의 세계여행기가 유행이었다. 그 책 속에서 보여지는 다른 세상의 풍광,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버린 사람들은 낯선 이방의 거리를 걷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언제쯤 오게 될 그날을 고대하였다. 

이제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아직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 없겠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해외로 떠나고 있다. 서점에는 여행에세이로 불릴 만한 책들도 넘쳐 난다. 프로 문필가, 유명인의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 의해 씌어진 여행기도 수두룩하다.

이 책도 수년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지은이가 자신의 여행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다. 시간적 공간적인 순서에 따라 엮은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느낀 여수(旅愁)를 열 개의 색깔로 분류하고 직접 찍어 온 사진과 함께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마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방불케 하듯 먼저 이미지를 보여 주고 그 이미지에 걸 맞는 짧은 글을 덧 된 것 같은 구성이다.

또 하나, "여행과 색 그리고 이야기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색감의 마인드 테라피 에세이"라는 기나긴 출판사의 선전 문구에 호응하는 듯 마인드 테라피스트의 감수의 글과 마음을 치유하는 열 가지 컬러를 설명하고 있다.

Blue는 불면증과 불안감 해소, Green은 차분함과 여유로움을 주고, Pink는 도전적인 성향과 원만한 대인관계 유도, Orange는 지루함을 느낄 때 감수성을 주고, Brown은 정신적 고통과 만성 피로감 해소, Yellow는 머리를 맑게 하고 신경질적 심리에 안정감, Violet는 영감과 상상력을 높여 창조적 활동에 영향을 주고 Red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감성을 자극하는 활동성이 강하고 White는 정적이고 긍정적인 상태를 불러오는 색이고 Black은 복합적이고 깊은 느낌을 주는 색이라고 한다.
각 장에 나오는 사진들이 대표 색으로 통일되어 있어 색깔이 상징하는 의미와 함께 컬러 테라피(Color Therapy)의 효과를 준다는 것인데,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생애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절, 내 나이 스물하고도 서너 해가 지났을 무렵이다. 하루하루 쫓기는 일상에 밤잠이 아쉬워 사무실을 집 삼아 선잠을 자던 날들 얼굴은 갈수록 핼쑥해졌고 다리는 퉁퉁 부어 올랐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에 대한 열정으로 남자친구에게마저 등을 돌려 버린 어느날 문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기계처럼 숨쉴 뿐이라는 깨달음이 스쳤다. 그 동안 나의 몸은 스스로를 과신해 진정한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 걸까. 순간 무작정 숨고 싶었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지은이의 육성이다.
위의 문장이 천둥과 번개처럼 가슴에 박히는 독자는 꼭 읽고, 살짝 이나마 마음을 스치고 지나는 듯한 독자들도 읽을 만 하지만, 아무런 감흥도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찾아서 읽지 않아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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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가출 중
미츠바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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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를 모시고 부모님과 2남1녀로 구성된 한 가족이 있었다. 어느날 권고사직이란 형태로 직장생활을 종친 아빠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의 대학 학자금 정도의 돈을 남겨 놓은 채 가출해 버린다. 아빠의 부재 앞에서 남겨진 남은 가족들은 저마다 자기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복잡한 관계로 얽힌 가족들의 사연들이 하나씩 공개된다. 
 
먼저 14세 중학생 '케이'는 '아! 시끄러'라는 말을 달고 사는, 육상 외에는 달리 잘 하는 것도 흥미로운 것도 없는 반항기 청소년이다. 아빠의 가출 후 그의 눈에 비친 가족들의 모습은 내키는 대로 술에 취하고, 꼴리는 대로 놀러 다니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망령을 부리는 다들 너무 제멋대로인 모습이다. 그는 이런 가족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육상도 그만두고 고교진학도 포기한 채 독립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신문배달을 시작한다. 언젠가 사고를 쳐서 불려 온 아빠가 드롭킥을 날리며 던졌던 "이런 짓거리를 하려거든 네 스스로 뒤처리를 할 수 있을 때 해라"는 말을 떠올리며... 

두번째, 17세 조숙한 고교생 '카나'는 아빠의 가출 후 단지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어서 밤늦게까지 오뎅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녀는 자기의 출생 때문에 아빠가 전부인과 헤어지고 재혼을 했다고 생각하여 착한 아이로 살아가고 있는데, 같은 책임을 짊어진 아빠가 무책임하게 사라져 버리자, 복잡한 심경으로 아빠의 부츠를 신고 심야 밤거리를 방황한다.

세번째, 27세 실질자 '류'는 10살 때 친 엄마랑 헤어지고 새로운 가족과 살아간다. 졸업후 집에서 독립하여 혼자 살다가 아빠의 가출을 계기로 집에 들어와 묘한 가장의식을 느끼며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공사현장을 떠돌며 육체노동에 고달프다. 그것 마저 여의치 않게 되자 오랜만에 친 엄마를 찾는다. 친 엄마에게 27살 시절의 아빠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묻는다.

네번째, 42세 '카오루'는 풍족했던 거품경제 시절에 적당히 직장 생활하면서 그런 대로 봐줄 만한 외모를 무기로 도시의 밤거리를 헤매고 다니며 적당히 향락적인 생활을 즐기고 다니던 일반적인 아가씨 시절에 가출한 아빠를 만났다. 그녀의 입을 통해 사라진 아빠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다섯번째 73세 '신조'는 3년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현재 치매가 진행 중이라 하루종일 먹는 것만 찾고 키우는 고양이만이 제대로된 대화 상대이다. 어린 시절 부잣집 양자로 들어갔지만 14살때 쫓겨나 2차대전 패전후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며 한 가정을 이루어 내었다.

이들 남은 5명의 가족들의 사연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아빠의 모습이 구체화 되고, 각자의 눈으로 바라본 사건들과 각자 털어놓은 사연들이 고리가 되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특별히 Plot이 탁월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시종 유머스럽고 경쾌한 문체로 '가족'이 무엇인지? 가족은 어떻게 지속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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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침묵
질베르 시누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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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나니, 문득 존 레넌(John Lennon)의 명곡 'Imagine'이 떠오른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하면 지옥도 없을 것'(Imagine there's no heaven/No hell below us)이라는 대담하고도 발칙한 노랫말은 당연히 교회의 지탄을 받았고 이매진은 사탄의 노래로 치부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멜로디의 이 노래는 실은 아나키즘, 원시공산주의, 평화의 아이콘으로 읽힌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 형식을 빌어 신의 문제, 종교의 분열과 갈등, 그리고 이해와 포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가볍지 않은 주제를 미스터리 스릴러의 겉옷을 입혀 얼마나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했느냐? 와는 별개로 소설의 도입부를 임팩트있게 시작하는데는 일조를 한 것 같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외딴 섬에 칩거하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 '그레이'부인의 집에 생면부지의 한 남자가 찾아오지만 도착하자 마자 목에 난 상처로 죽는다. 경찰에 연락하지만, 기이하게도 경찰이 도착하기전에 시체가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그 남자가 죽기 전에 부인에게 전달한 수하물표를 통해 부인의 손에 들어온 수첩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언어와 기호가 가득 씌어 있다. 부인은 수첩의 존재를 경찰에 알리지 않고 직접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암호를 풀어 나가 마침내 수첩의 내용을 해독해 보니, "연쇄살인범이 천국에서 열 명의 대천사들과 소천사들을 차례로 죽이고 있다 내용"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예수', '마호메트', '모세'라는 것이다.

어쩌면 황당할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작가는 곳곳에 복선을 깔고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며 박진감 넘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또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사실과는 다른 "이설"들이 소설의 내용과 무관하게 매우 흥미롭게 읽힌다.

특히,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마리아의 처녀 잉태설을 부인하고 당시 유대를 점령한 로마군 장교의 강간으로 예수를 낳았을 거라는 사생아설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 스스로 '부활'을 부정하며 심지어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까지 한다. 또한 예수가 가장 사랑한 수제자는 '유다'라고 하는 초기 교회가 이단서로 취급한 유다복음의 내용에 부합되는 내용도 있다. 유다복음에 따르면 예수를 배반한 것으로 알려진 유다는 실제로는 예수의 진리를 가장 잘 깨달은 자이며 그의 배반은 예수의 명령에 따른 것이고 한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언짢을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이설"은 항상 흥미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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