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색에 물들다
강미승 지음, 장성철 감수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당시, 난 위태로웠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감이 왔다. 그리고 그 감은 정확했다.

해외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당연하 듯이 누리는 '자유'가 '자유'가 아니었던 기나긴 시절에 좋은 날을 누리던 그 사람들이 이제 도리어 '자유'의 열렬한 옹호자로 둔갑한 아이러니라니...) 그 당시에 김찬삼 박사의 세계여행기가 유행이었다. 그 책 속에서 보여지는 다른 세상의 풍광,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버린 사람들은 낯선 이방의 거리를 걷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언제쯤 오게 될 그날을 고대하였다. 

이제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아직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그럴 수 없겠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해외로 떠나고 있다. 서점에는 여행에세이로 불릴 만한 책들도 넘쳐 난다. 프로 문필가, 유명인의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 의해 씌어진 여행기도 수두룩하다.

이 책도 수년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지은이가 자신의 여행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다. 시간적 공간적인 순서에 따라 엮은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느낀 여수(旅愁)를 열 개의 색깔로 분류하고 직접 찍어 온 사진과 함께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마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방불케 하듯 먼저 이미지를 보여 주고 그 이미지에 걸 맞는 짧은 글을 덧 된 것 같은 구성이다.

또 하나, "여행과 색 그리고 이야기가 어우러진 다채로운 색감의 마인드 테라피 에세이"라는 기나긴 출판사의 선전 문구에 호응하는 듯 마인드 테라피스트의 감수의 글과 마음을 치유하는 열 가지 컬러를 설명하고 있다.

Blue는 불면증과 불안감 해소, Green은 차분함과 여유로움을 주고, Pink는 도전적인 성향과 원만한 대인관계 유도, Orange는 지루함을 느낄 때 감수성을 주고, Brown은 정신적 고통과 만성 피로감 해소, Yellow는 머리를 맑게 하고 신경질적 심리에 안정감, Violet는 영감과 상상력을 높여 창조적 활동에 영향을 주고 Red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감성을 자극하는 활동성이 강하고 White는 정적이고 긍정적인 상태를 불러오는 색이고 Black은 복합적이고 깊은 느낌을 주는 색이라고 한다.
각 장에 나오는 사진들이 대표 색으로 통일되어 있어 색깔이 상징하는 의미와 함께 컬러 테라피(Color Therapy)의 효과를 준다는 것인데,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생애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절, 내 나이 스물하고도 서너 해가 지났을 무렵이다. 하루하루 쫓기는 일상에 밤잠이 아쉬워 사무실을 집 삼아 선잠을 자던 날들 얼굴은 갈수록 핼쑥해졌고 다리는 퉁퉁 부어 올랐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일에 대한 열정으로 남자친구에게마저 등을 돌려 버린 어느날 문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기계처럼 숨쉴 뿐이라는 깨달음이 스쳤다. 그 동안 나의 몸은 스스로를 과신해 진정한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 걸까. 순간 무작정 숨고 싶었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지은이의 육성이다.
위의 문장이 천둥과 번개처럼 가슴에 박히는 독자는 꼭 읽고, 살짝 이나마 마음을 스치고 지나는 듯한 독자들도 읽을 만 하지만, 아무런 감흥도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찾아서 읽지 않아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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