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를 달리는 여자 -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 9가지 룰(Rule)
크리스틴 코모포드 지음, 이향림 옮김 / 한국맥그로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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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를 달리는 여자>(2008, 크리스틴 코모포드 린치 지음, 한국맥그로힐 펴냄)의 저자인 크리스틴 코모포드 린치의 약력을 보면 참 대단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돈을 벌기 위해 뉴욕에 진출하고, 모델, 계약직 프로그래머, 승려, 학생, CEO 등 다양한 일을 해서 20대에 생애 첫 백만 달러를 벌고 중간에 실패도 많이 했으나 30대에 천만 달러를 벌어서 은퇴했다는 경력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면서 미국답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학력과 학벌, 명예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였다면,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어디 변변한 회사에 들어갈 수가 있었겠는가.
저자는 이단자인 자신도 할 수 있었으니 이 책을 읽는 어느 누구라도 그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성공의 길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저자는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첫번째 여성 계약직으로 입사해서 정규직과의 차별을 겪는다. 이런 계약직 직원들에 대해 연말정산 누락분을 해소하고자 자회사로 위장전입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기회를 잡아 첫번째로 창업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 배짱과 근성이 있다. 이렇게 시작하여 회사들을 세우고 운영하고 확장하는 부분에 대해 1장과 2장, 3장을 할애한다. 그는 MBA라는 학벌보다는 GSD(Gets Stuff Done), 피땀으로 얻어진 노력을 높이 사고, 네트워킹, 다시 말해 인맥 만들기도 중시한다. 알음알음으로 연결되어 나중에는 포춘 1000대 기업 중에서 700개 기업을 컨설팅 파트너로 했다는 성취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실패에서도 배울 점을 이야기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빌 게이츠와의 데이트 에피소드처럼, 자기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함께 하는 파트너의 권력을 빌리려는 것은 헛된 일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4개월간 게이샤 수업을 받으며 여성성을 키워보고자 했으나 게이샤의 실체를 알고 깨끗이 포기하면서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시작한 것을 반성한다. 또한 2년간의 승려 시절, 그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구루에게 맹목적으로 기대면서 자신을 내려놓았던 대가를 치른 이야기를 통해 자립정신과 주인의식을 강조한다.
마지막 8, 9장에서는 여유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주의 총책임자가 된 듯한 통제 강박증에서 해방되고, 나눌 수 있는 것은 기꺼이 나누며,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모습, 암으로 투병하는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느낀 가족애. 그것은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번아웃(소진) 현상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의미와 내실을 기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각 장의 끝에는 무료 사이트인 www.RulesForRenegades.com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을, 각 장의 내용과 연계하여 추천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자기계발과 관련된 여러 섹션이 있고 다양한 워크시트들도 다운받을 수 있으니, 실천에 옮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 천만장자, 빌 클린턴 등 어마어마한 사람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덕분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에게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성공을 이루기 위한 과정과 노력이 생각보다 적게 나오고 상대적으로 성공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듯한 일들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성공 과정을 배우기가 어려운 점이 좀 아쉽다.
배경 또는 도구보다는 자신의 야망과 열정과 노력으로 성공한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순발력과 노력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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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 모아 떠난 지구촌 배낭여행
이승곤 외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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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부러워진 사람은 바로 학교 선생님이다. 대개 그렇겠지만 최성수기에 겨우 1주일 남짓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다음 여름휴가까지는 명절 외에 긴 연휴가 없다. 명절이라고 쉴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니, 여름과 겨울에 1개월 이상씩 쉴 수 있는 학교 선생님들, 특히 보충수업이 없는 학년의 선생님들이 부럽다. 학교 선생님들도 방학에 연수를 통해 실력을 배양하느라 바쁘다고 하지만 그 여유로움은 일반 직장인에게 댈 것이 아니겠다.
남편은 중학교 미술 선생님, 아내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쌍둥이 아들들. 이렇게 다섯 명의 가족이 발칸 반도로 '물처럼 바람처럼 떠난 지구촌 마실'을 다녀와서 <사교육비 모아 떠난 지구촌 배낭여행> (2008, 이승곤, 김연숙, 이미루, 이길로, 이바로 지음, 삼성출판사 펴냄)을 만들어냈다. 2005년 여름에 22일 코스로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마케도니아를 둘러본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가족의 지구촌 마실을 함께 경험해 보자.

이 가족은 TV와 보습 학원 없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에 해당할 사교육비로 지구촌 배낭 여행을 몇 해째 다녀오고 있단다. 중국에서 시작해서 태국,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이집트와 서남아시아, 동유럽과 이탈리아 등을 다녀왔으니 베테랑 여행자들이다. 2005년에는 러시아를 다녀올까 했으나 뒤숭숭한 인종 문제 때문에 발칸 반도를 택했다고 한다.
여행에는 사전 준비가 반이다. 지도를 그리고 경로를 정하며 거기에서 보아야 할 장소들을 정하는 것은 그것부터가 흥미로운 교육이며 여행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마음만 먹으면 생생한 최신 정보까지 얻을 수 있으니 정보 수집이 많이 쉬워졌으나, 2005년 당시만 해도 발칸 반도는 여전히 분쟁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바람에 그다지 많은 자료가 없었다고 했다. 
아빠는 기록과 숙박, 교통 담당, 엄마는 기획과 정보 수집, 의사소통과 건강 담당, 큰딸 미루는 기록과 안내 담당, 큰아들 길로는 행동 대장, 막내 바로는 역사와 신화 담당으로 각자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많은 경험과 교육, 스스로 알아서 하는 즐거움에서 우러나온 것일 게다.

이렇게 준비해서 떠난 가족의 여행은 다른 여행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은 아이들의 기록이 등장해서 어른들이 보아낸 것과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중학생답지 않은 날카로움과 깊은 눈은 사교육이 필요 없을 정도의 성숙함을 보여주었고, 쌍둥이 아들들의 초등학생다운 글들은 귀여운 느낌을 주었다. 발칸 반도의 많은 교회와 성당과 수도원들, 그 한적함과 웅장함과 아름다움과 경건함 안에서 가톨릭 신자인 이들은 하느님께 조금 더 다가섰을까.
여행 정보는 간간이 들어 있다. 그러나 빠르게 개방되고 있는 이들 나라의 현실을 보면, 2005년의 사진 속 풍경들은 2008년에 많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겠다. 약간은 흐리고 뿌연 사진들 대신, 미술 선생님인 아빠의 그림들이 들어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잠깐 해 본다.

여행은 사교육의 대체재가 아니므로,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은 밀려 있는 방학 숙제와 2학기 예습에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아니라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어울릴 수 있는 열린 아이를 바란다면, 여행은 사교육에 비교할 수 없는 우등재이자 일생 동안 지속되는 교육으로서 작용할 것이다.
가족간의 오롯한 기억과 배려와 사랑과 성장 기록으로 남은 그들의 가족여행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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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매미 작은 곰자리 4
후쿠다 이와오 지음, 한영 옮김 / 책읽는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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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매미>(2008, 후쿠다 이와오 지음, 책읽는곰 펴냄)는 마음을 준비할 새가 없다. 딱딱한 겉표지를 넘기자마자 이치가 국어 공책을 사러 문구점에 갔다가 지우개를 훔쳤다는 고백을 한다. 전화를 받는 아줌마를 본 순간, 들고 있던 지우개를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는 것이다. 왼손에는 수학공책을 들고 있는데, 지우개는 오른손으로 집었다가 주머니에 넣었는지 오른쪽 바지 주머니가 불룩하다. 국어 숙제를 하려면 국어 공책을 샀어야 하는데, 허둥대다가 수학 공책을 산 것이다. 눈썹은 올라가 있고 땀이 흐른다. 아주머니가 이름을 불러줄 만큼 자주 다니는 문구점인데, 이치는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수영 가자고 하는 동생에게도 짜증을 내고, 숙제 다 했냐는 친구의 말에 문구점 아주머니가 떠올라서 괜히 매미 날개를 떼어 버리고, 저녁 먹고 목욕하는 중에도 아빠와 동생에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침울해 있다. 그렇게 길고 길게 지나간 하루, 꿈에도 문구점 아주머니가 나와서 이치의 주머니에서 날개 떨어진 빨간 매미를 꺼낸다.
이치는 빨간 지우개를 훔친 이후로 자꾸만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자신을 깨닫고 엄마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함께 문구점 아주머니께 사과하러 간다. 거짓말하지 않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을 한 다음, 이치의 얼굴은 참 밝고 행복해진다. 국어 숙제를 하고 동생과 물놀이를 하고. 여름 방학이 끝났을 때는 이치의 마음이 한뼘 더 자라 있을 것이다. 

아이 어린이집 친구의 생일 선물을 준비해야 할 때 문구점에 간다. 어린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알록달록 조그만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른인 나조차 정신을 홀릴 정도이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그다지 쓸데없는 것들에 혹해서 사온 것들도 몇 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지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기가 어려운 아이들, <빨간 매미>의 이치처럼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그냥 손이 나가 버리는 아이들 때문에, 문구점 구석마다 사각지대를 비추는 거울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좀 씁쓸하다. 문구점이라고 해서,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런 성향이 강한 것이 아니라, 수퍼마켓에도 다른 가게에도 CCTV라든가 반사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믿음을 잃어버린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다.
어찌 되었든 한때의 실수 때문에 이치는 하루종일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 얼굴이 얼마나 안 좋은지, 보는 내 얼굴마저도 찌푸려진다. 그러나 이런 불안과 죄책감은 건강한 것이고, 이를 통해 아이는 성장할 수 있었다.
아이 엄마로서 내가 지켜본 것은 아이가 마음 편하게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엄마의 넉넉함이었다. 내 아이가 그런 고백을 한다면 아마 나는 화를 벌컥 내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반성한다. 그리고 너그러이 받아준 문구점 아주머니도 고맙다. 이런 어른들의 포용 덕분에 이치는 더이상 나쁜 일을 하지 않을 뿐더러, 만약 나쁜 일을 해도 들킬까 숨기는 대신 고백할 자신감과 안정감을 얻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완곡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동화책의 효용이 있다. 빨간 지우개를 훔친 이치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아이들은 대리 체험을 할 거다. 그리고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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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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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의 전작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1996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어 개정판이 나오는 등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에서 시각인식 불능증, 음색인식 불능증, 역행성 기억상실증, 신경매독, 위치감각 상실, 투렛증후군, 자폐증 등 뇌와 관련된 많은 질병들을 통해 정상인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전작이 질병들에 대한 다양한 소개였다면, <뮤지코필리아>(2008, 올리버 색스 지음, 알마 펴냄)에서는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풀어놓는다.
음악 애호가인 저자는 1966년 심한 파킨슨병 환자에게 음악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음악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음악에 대한 신경학적 연구가 거의 없었으나, 이후 20년간 기술의 발달로 인한 뇌 연구의 발전 덕분에 음악이 뇌에 미치는 영향, 또는 뇌가 음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음악(music)과 사랑(philia)를 합친 단어인 musicophilia에는, 저자 자신의 연구와 함께 동료 과학자들의 연구 자료와 사례가 풍부하게 적용되어 있다. 이를 보면서 음악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저자는 번개를 맞고 갑자기 음악을 사랑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유명한 정형외과였던 토니는 가족모임에 갔다가 공중전화기를 통과한 번개에 맞고 유체이탈을 했다. 그랬다가 살아난 그는 기억장애를 4주간 겪었으나 이것이 말짱해지고 나서 갑자기 피아노 음악을 듣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그런 다음에는 머릿속에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이를 기록하기 위해 작곡도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으나 음악적 영감은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이처럼 음악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하루종일 음악의 한 구절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귀벌레, 특정 음을 들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음악발작, 절대음감과 실음악증 등 다양한 음악의 측면은 주로 부정적인 면에서 다루어지는데, 풍부한 감성 만큼이나 대상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무작정 부정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개선시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 엄마는 어렸을 적에 노래를 두어 번만 들으면 얼추 따라부를 수 있었다고 하신다. 반면 나는 출퇴근 동안에 한 곡을 반복해서 열번 이상 들어도 가사와 음정의 전개를 잘 외우지 못한다. 더구나 귀울림 증상 때문에 조용한 밤이면 귓속이 더 시끄러워서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상대적으로 음악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올리버 색스의 환자의 사례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음악에 압도되거나 지배받는 대신 원할 때 즐길 수 있는 것이 뮤지코필리아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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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
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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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위험인자가 많이 들었다는 SRM을 겨우 제외하고, 30개월 이상 된 소의 고기를 수입하기로 해서 전국이 들끓고 있다. 촛불집회는 벌써 2개월을 훌쩍 넘었는데,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장관 고시 이후로 판매가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판매대 앞에 줄지어 늘어선 구매자들은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한우의 1/4에서 1/3 정도 가격이라고 하면서, 돈 없는 서민들은 미국산 쇠고기라도 먹어야하지 않겠느냐는 인터뷰이의 말은 참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살장> (2008, 게일 아이스니츠 지음, 시공사 펴냄)에서 미국산 고기들이 준비되는 적나라한 모습을 본다면, 그런 싼 가격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미국산 고기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온몸으로 버팅기는 소의 실루엣 뒤로 핏빛 배경이 펼쳐지는 책 표지는 도살장의 이미지를 강하게 대표한다. 도살장의 취재를 하는 계기가 된 내부고발자 티모시 워커의 카플란 도살장 고백은 충격적이다. 소들이 산 채로 껍질을 벗기운다는 그의 이야기는, 도살장의 감독 기관인 미국 농무부로부터 부인되었으나, 저자가 잠입하여 사진을 찍고 도살장 종사자들과 인터뷰한 결과 정말 끔찍한 사실로 드러났다.
소나 돼지 같은 큰 동물들을 도살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강철못 발사장치(소)나 전기충격기(돼지)로 목숨을 끊은 후, 사슬에 묶어 들어올려서 목을 딴다. 피가 완전히 빠져나온 다음 껍질을 벗기고 머리와 자리를 자르고 몸통을 절반으로 자른다. 각 단계마다 검사관들이 있어서 질병이나 오염 등을 확인한다. 그러나 동물이 죽으면 피가 완전히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거짓으로 밝혀진 속설 때문에 도살장 주인들은 동물을 완전히 죽이지 않고 목을 따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목을 딸 때에도, 껍질을 벗길 때에도, 머리와 다리를 자를 때에도 여전히 동물들은 살아 있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런 동물들을 대해야 하는 도살장 인부들도 마찬가지이다. 고통에 발버둥치는 동물들에게 맞거나 사슬에서 떨어지는 동물에 깔리거나 하는 육체적 어려움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되는 정신적 황폐함도 겪는다.
거기에다 도살장의 비위생적 환경과 그에 따른 고기의 오염 실태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도살장의 문제는, 도살장에 도착하기 이전에 비인간적으로 동물들을 키우는 공장식 목장에서부터 시작되는 뿌리깊은 문제이다. 생명이 아니라 고기를 생산하는 기계처럼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그 무엇보다 생산성을 중시하고 품질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설파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인지도 모른다. 

시의 행사에서 어린 돼지를 능지처참하는 바람에 질타를 받은 사건, 모피를 쉽게 얻기 위해 동물을 산 채로 처리하는 모피 동영상 파동 등 우리 정서에는 산 채로 동물을 죽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공장식 목장과 양계장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도살장의 모습도 이렇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어지는 것이 섬뜩하다. 우리의 식도락을 위해 뭇 생명들을 필요없이 고통스럽게 하지 말자는 인간적인 면에 호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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