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모아 떠난 지구촌 배낭여행
이승곤 외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학교 다닐 때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부러워진 사람은 바로 학교 선생님이다. 대개 그렇겠지만 최성수기에 겨우 1주일 남짓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다음 여름휴가까지는 명절 외에 긴 연휴가 없다. 명절이라고 쉴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니, 여름과 겨울에 1개월 이상씩 쉴 수 있는 학교 선생님들, 특히 보충수업이 없는 학년의 선생님들이 부럽다. 학교 선생님들도 방학에 연수를 통해 실력을 배양하느라 바쁘다고 하지만 그 여유로움은 일반 직장인에게 댈 것이 아니겠다.
남편은 중학교 미술 선생님, 아내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쌍둥이 아들들. 이렇게 다섯 명의 가족이 발칸 반도로 '물처럼 바람처럼 떠난 지구촌 마실'을 다녀와서 <사교육비 모아 떠난 지구촌 배낭여행> (2008, 이승곤, 김연숙, 이미루, 이길로, 이바로 지음, 삼성출판사 펴냄)을 만들어냈다. 2005년 여름에 22일 코스로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마케도니아를 둘러본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가족의 지구촌 마실을 함께 경험해 보자.

이 가족은 TV와 보습 학원 없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에 해당할 사교육비로 지구촌 배낭 여행을 몇 해째 다녀오고 있단다. 중국에서 시작해서 태국,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이집트와 서남아시아, 동유럽과 이탈리아 등을 다녀왔으니 베테랑 여행자들이다. 2005년에는 러시아를 다녀올까 했으나 뒤숭숭한 인종 문제 때문에 발칸 반도를 택했다고 한다.
여행에는 사전 준비가 반이다. 지도를 그리고 경로를 정하며 거기에서 보아야 할 장소들을 정하는 것은 그것부터가 흥미로운 교육이며 여행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마음만 먹으면 생생한 최신 정보까지 얻을 수 있으니 정보 수집이 많이 쉬워졌으나, 2005년 당시만 해도 발칸 반도는 여전히 분쟁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바람에 그다지 많은 자료가 없었다고 했다. 
아빠는 기록과 숙박, 교통 담당, 엄마는 기획과 정보 수집, 의사소통과 건강 담당, 큰딸 미루는 기록과 안내 담당, 큰아들 길로는 행동 대장, 막내 바로는 역사와 신화 담당으로 각자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많은 경험과 교육, 스스로 알아서 하는 즐거움에서 우러나온 것일 게다.

이렇게 준비해서 떠난 가족의 여행은 다른 여행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은 아이들의 기록이 등장해서 어른들이 보아낸 것과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중학생답지 않은 날카로움과 깊은 눈은 사교육이 필요 없을 정도의 성숙함을 보여주었고, 쌍둥이 아들들의 초등학생다운 글들은 귀여운 느낌을 주었다. 발칸 반도의 많은 교회와 성당과 수도원들, 그 한적함과 웅장함과 아름다움과 경건함 안에서 가톨릭 신자인 이들은 하느님께 조금 더 다가섰을까.
여행 정보는 간간이 들어 있다. 그러나 빠르게 개방되고 있는 이들 나라의 현실을 보면, 2005년의 사진 속 풍경들은 2008년에 많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겠다. 약간은 흐리고 뿌연 사진들 대신, 미술 선생님인 아빠의 그림들이 들어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잠깐 해 본다.

여행은 사교육의 대체재가 아니므로,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은 밀려 있는 방학 숙제와 2학기 예습에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아니라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어울릴 수 있는 열린 아이를 바란다면, 여행은 사교육에 비교할 수 없는 우등재이자 일생 동안 지속되는 교육으로서 작용할 것이다.
가족간의 오롯한 기억과 배려와 사랑과 성장 기록으로 남은 그들의 가족여행이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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