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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 미국 산 육류의 정체와 치명적 위험에 대한 충격 고발서
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광우병 위험인자가 많이 들었다는 SRM을 겨우 제외하고, 30개월 이상 된 소의 고기를 수입하기로 해서 전국이 들끓고 있다. 촛불집회는 벌써 2개월을 훌쩍 넘었는데,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장관 고시 이후로 판매가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판매대 앞에 줄지어 늘어선 구매자들은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한우의 1/4에서 1/3 정도 가격이라고 하면서, 돈 없는 서민들은 미국산 쇠고기라도 먹어야하지 않겠느냐는 인터뷰이의 말은 참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살장> (2008, 게일 아이스니츠 지음, 시공사 펴냄)에서 미국산 고기들이 준비되는 적나라한 모습을 본다면, 그런 싼 가격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미국산 고기를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온몸으로 버팅기는 소의 실루엣 뒤로 핏빛 배경이 펼쳐지는 책 표지는 도살장의 이미지를 강하게 대표한다. 도살장의 취재를 하는 계기가 된 내부고발자 티모시 워커의 카플란 도살장 고백은 충격적이다. 소들이 산 채로 껍질을 벗기운다는 그의 이야기는, 도살장의 감독 기관인 미국 농무부로부터 부인되었으나, 저자가 잠입하여 사진을 찍고 도살장 종사자들과 인터뷰한 결과 정말 끔찍한 사실로 드러났다.
소나 돼지 같은 큰 동물들을 도살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강철못 발사장치(소)나 전기충격기(돼지)로 목숨을 끊은 후, 사슬에 묶어 들어올려서 목을 딴다. 피가 완전히 빠져나온 다음 껍질을 벗기고 머리와 자리를 자르고 몸통을 절반으로 자른다. 각 단계마다 검사관들이 있어서 질병이나 오염 등을 확인한다. 그러나 동물이 죽으면 피가 완전히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거짓으로 밝혀진 속설 때문에 도살장 주인들은 동물을 완전히 죽이지 않고 목을 따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목을 딸 때에도, 껍질을 벗길 때에도, 머리와 다리를 자를 때에도 여전히 동물들은 살아 있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런 동물들을 대해야 하는 도살장 인부들도 마찬가지이다. 고통에 발버둥치는 동물들에게 맞거나 사슬에서 떨어지는 동물에 깔리거나 하는 육체적 어려움 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되는 정신적 황폐함도 겪는다.
거기에다 도살장의 비위생적 환경과 그에 따른 고기의 오염 실태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도살장의 문제는, 도살장에 도착하기 이전에 비인간적으로 동물들을 키우는 공장식 목장에서부터 시작되는 뿌리깊은 문제이다. 생명이 아니라 고기를 생산하는 기계처럼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그 무엇보다 생산성을 중시하고 품질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설파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인지도 모른다.
시의 행사에서 어린 돼지를 능지처참하는 바람에 질타를 받은 사건, 모피를 쉽게 얻기 위해 동물을 산 채로 처리하는 모피 동영상 파동 등 우리 정서에는 산 채로 동물을 죽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공장식 목장과 양계장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도살장의 모습도 이렇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어지는 것이 섬뜩하다. 우리의 식도락을 위해 뭇 생명들을 필요없이 고통스럽게 하지 말자는 인간적인 면에 호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