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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올리버 색스의 전작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1996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어 개정판이 나오는 등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에서 시각인식 불능증, 음색인식 불능증, 역행성 기억상실증, 신경매독, 위치감각 상실, 투렛증후군, 자폐증 등 뇌와 관련된 많은 질병들을 통해 정상인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전작이 질병들에 대한 다양한 소개였다면, <뮤지코필리아>(2008, 올리버 색스 지음, 알마 펴냄)에서는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풀어놓는다.
음악 애호가인 저자는 1966년 심한 파킨슨병 환자에게 음악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음악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음악에 대한 신경학적 연구가 거의 없었으나, 이후 20년간 기술의 발달로 인한 뇌 연구의 발전 덕분에 음악이 뇌에 미치는 영향, 또는 뇌가 음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음악(music)과 사랑(philia)를 합친 단어인 musicophilia에는, 저자 자신의 연구와 함께 동료 과학자들의 연구 자료와 사례가 풍부하게 적용되어 있다. 이를 보면서 음악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저자는 번개를 맞고 갑자기 음악을 사랑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유명한 정형외과였던 토니는 가족모임에 갔다가 공중전화기를 통과한 번개에 맞고 유체이탈을 했다. 그랬다가 살아난 그는 기억장애를 4주간 겪었으나 이것이 말짱해지고 나서 갑자기 피아노 음악을 듣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그런 다음에는 머릿속에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이를 기록하기 위해 작곡도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으나 음악적 영감은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다. 이처럼 음악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하루종일 음악의 한 구절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귀벌레, 특정 음을 들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음악발작, 절대음감과 실음악증 등 다양한 음악의 측면은 주로 부정적인 면에서 다루어지는데, 풍부한 감성 만큼이나 대상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무작정 부정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개선시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 엄마는 어렸을 적에 노래를 두어 번만 들으면 얼추 따라부를 수 있었다고 하신다. 반면 나는 출퇴근 동안에 한 곡을 반복해서 열번 이상 들어도 가사와 음정의 전개를 잘 외우지 못한다. 더구나 귀울림 증상 때문에 조용한 밤이면 귓속이 더 시끄러워서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상대적으로 음악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올리버 색스의 환자의 사례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음악에 압도되거나 지배받는 대신 원할 때 즐길 수 있는 것이 뮤지코필리아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