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매미 작은 곰자리 4
후쿠다 이와오 지음, 한영 옮김 / 책읽는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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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매미>(2008, 후쿠다 이와오 지음, 책읽는곰 펴냄)는 마음을 준비할 새가 없다. 딱딱한 겉표지를 넘기자마자 이치가 국어 공책을 사러 문구점에 갔다가 지우개를 훔쳤다는 고백을 한다. 전화를 받는 아줌마를 본 순간, 들고 있던 지우개를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는 것이다. 왼손에는 수학공책을 들고 있는데, 지우개는 오른손으로 집었다가 주머니에 넣었는지 오른쪽 바지 주머니가 불룩하다. 국어 숙제를 하려면 국어 공책을 샀어야 하는데, 허둥대다가 수학 공책을 산 것이다. 눈썹은 올라가 있고 땀이 흐른다. 아주머니가 이름을 불러줄 만큼 자주 다니는 문구점인데, 이치는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수영 가자고 하는 동생에게도 짜증을 내고, 숙제 다 했냐는 친구의 말에 문구점 아주머니가 떠올라서 괜히 매미 날개를 떼어 버리고, 저녁 먹고 목욕하는 중에도 아빠와 동생에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침울해 있다. 그렇게 길고 길게 지나간 하루, 꿈에도 문구점 아주머니가 나와서 이치의 주머니에서 날개 떨어진 빨간 매미를 꺼낸다.
이치는 빨간 지우개를 훔친 이후로 자꾸만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자신을 깨닫고 엄마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함께 문구점 아주머니께 사과하러 간다. 거짓말하지 않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을 한 다음, 이치의 얼굴은 참 밝고 행복해진다. 국어 숙제를 하고 동생과 물놀이를 하고. 여름 방학이 끝났을 때는 이치의 마음이 한뼘 더 자라 있을 것이다. 

아이 어린이집 친구의 생일 선물을 준비해야 할 때 문구점에 간다. 어린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알록달록 조그만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른인 나조차 정신을 홀릴 정도이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그다지 쓸데없는 것들에 혹해서 사온 것들도 몇 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지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기가 어려운 아이들, <빨간 매미>의 이치처럼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그냥 손이 나가 버리는 아이들 때문에, 문구점 구석마다 사각지대를 비추는 거울이 달려 있는 것을 보면 좀 씁쓸하다. 문구점이라고 해서,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런 성향이 강한 것이 아니라, 수퍼마켓에도 다른 가게에도 CCTV라든가 반사경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믿음을 잃어버린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다.
어찌 되었든 한때의 실수 때문에 이치는 하루종일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 얼굴이 얼마나 안 좋은지, 보는 내 얼굴마저도 찌푸려진다. 그러나 이런 불안과 죄책감은 건강한 것이고, 이를 통해 아이는 성장할 수 있었다.
아이 엄마로서 내가 지켜본 것은 아이가 마음 편하게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엄마의 넉넉함이었다. 내 아이가 그런 고백을 한다면 아마 나는 화를 벌컥 내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반성한다. 그리고 너그러이 받아준 문구점 아주머니도 고맙다. 이런 어른들의 포용 덕분에 이치는 더이상 나쁜 일을 하지 않을 뿐더러, 만약 나쁜 일을 해도 들킬까 숨기는 대신 고백할 자신감과 안정감을 얻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완곡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동화책의 효용이 있다. 빨간 지우개를 훔친 이치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아이들은 대리 체험을 할 거다. 그리고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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