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살라 인디아 - 현직 외교관의 생생한 인도 보고서
김승호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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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이 자유화된지 어언 20년. 인도는 신라의 스님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서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종교의 나라, 구도의 나라로 생각되었고, 이제는 기술의 나라로 탈바꿈하고 있는 인도. 그러나 10억이 넘는 인구와 넓은 땅, 한 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종교 때문에 여행객들이 보고 오는 인도는 천차만별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일부분 일부분을 모아 인도를 종합적으로 보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2006년부터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 문화홍보관으로 근무 중인 현직 외교관이 저술한 <맛살라 인디아> (2008, 김승호 지음, 모시는사람들 펴냄)를 들었을 때, 인도에 대한 그간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저자는 <맛살라 인디아>에서 인도를 움직이는 힘, 인도는 지금, 인도 이모저모, 인도에서 한국을 만나다 라는 네 항목으로 나누어 인도라는 나라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도를 움직이는 힘’에서는 인도에서 뜨고 있는 첨단 산업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자동차와 철강, IT와 BT 등은 외국의 기술투자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인도의 자체 산업이 융기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와 직업의 불안정성이 심각하지만 영어 가능 인구 풀과 수학적인 두뇌 덕분에 이들은 앞으로도 많이 발전할 거라고 한다.
그러나 ‘인도는 지금’을 보면 그 문제점이 만만치 않다.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동산, 종교 분쟁과 카스트의 굴레, 교육의 양극화에 따른 빈부의 세습, 정치의 불안 등은 IT 강국이라는 인도의 이미지와 상충하는 듯하다.
‘인도 이모저모’는 인도의 문학과 역사, 종교와 영화, 요리를 가볍게 다루고 있으며, ‘인도에서 한국을 만나다’는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한국인들, 대장금을 필두로 한 한국 문화를 다루었다.

저자는 외교관이라는 특성상 국제적인 정세에서 인도를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고급 통계 자료들을 풍부하게 실어서 독자들이 인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양한 재료가 배합되어 인도 향신료 특유의 맛을 내는 ‘맛살라’처럼, 인도는 다양한 종교와 인종과 계급이 모여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이 한 권으로 인도의 핵심을 보았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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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 the World : 힐 더 월드 -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지구행복 프로젝트
국제아동돕기연합 UHIC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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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더 월드> (2008, 국제아동돕기연합 지음, 문학동네 펴냄)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지구 행복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부제가 해처럼 맑게 뜬 주변에는 Fair Trade, No Fur, MSF, Ukimwi, Carbon Neutral, Grameen Bank 등의 주제가 빙 둘러싸고 있다. 세상을 치유하는 프로젝트가 책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이 책을 지은 ‘국제아동돕기연합’은 2004년 10월에 설립된 단체로, 세계 곳곳에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밝은 내일을 선물하기 위해 활동한다고 한다. 2008년 3월부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과 열린 마음을 나누고자’ 환경, 기아, 전쟁, 질병 등 지구촌에 산재한 문제들을 다루는 월간 잡지 를 발행하고 있단다. <힐 더 월드>에는 이 잡지에 실렸을 법한 주제들이 HEALing, RECOVERing, JOINing이라는 세 분야로 나누어 설명된다.

우선 HEALing, ‘이해할 수 없지만 치유할 수 있는 일들’을 보자. 전쟁과 질병, 가난과 학대가 주된 소재이다. 우리에게도 이제서야 알려지고 있는 르완다 내전,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두고 펼쳐지는 인권 유린의 현장, 치료비가 없어서 죽어가는 에이즈 환자들, 전세계 아동 노동자 2억 1,800만 명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라민 은행과 국경 없는 의사회 등은 이들을 조용히 치유하고 있었다.
RECOVERing, ‘돌이킬 수 없지만 회복할 수 있는 일들’ 편에서는 주로 자연에 대해 다룬다. 오존층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는 것은 벌써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점점 가속화되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제한한 교토 의정서가 발효되었으나, 최대 배출국인 미국이 탈퇴했다는 뉴스도 들었을 것이다. 이런 화학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들과 더불어 인간의 욕심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동물과 모피 잔혹사를 다시 한번 짚어 준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대체 에너지를 통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JOINing, ‘강요할 수 없지만 함께할 수 있는 일들’에서는 원조, 진흙쿠키 등의 참혹한 현실을 이야기하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 함께할 수 있는 일들, 즉 공정한 거래, CSR, 친환경적인 삶 들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들은 짧고 간결하다. 꼭 EBS의 다큐 프로그램을 엮은 <지식채널 e>와 느낌이 비슷하다. 한 꼭지 안에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자료들이 담겼다. 여러 통계수치들은 그 시급성과 절박함을 냉정하게 드러내고, 두 쪽에 한 컷 이상 실려 있는 시각 자료들은 그 상태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더 깊이까지 들어오는 사진들, 그 순수한 눈망울에 희망을 담아줄 수 있을까.
커다란 것은 실천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맨 마지막 꼭지 ‘내 생애 가장 친환경적인 일주일’에서의 몇 부분 정도는 바로 적용할 수 있겠다. 이런 작은 걸음들이 모이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인세는 국제아동돕기연합의 구호활동으로 쓰인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하는 따뜻한 이 책을 통해 세상이 더 따뜻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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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림고수를 찾아서 - 궁극의 무예로써 몸과 마음을 평정한 한국 최고 고수 16인 이야기
박수균 지음, 박상문 사진, 최복규 해설 / 판미동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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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김용의 <소오강호>, <정무문> 등을 필두로 하여 무협소설에 빠졌던 적이 있다. 막내뻘의 낮은 제자로 시작해서 수련을 하고, 동굴에서 만난 미지인에게서 육십갑자의 내공과 무가의 비전을 얻고, 적의 공격에 의해 오히려 금강불괴지신이 되는 우연이 겹치면서 결국 한 문파의 장문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들은 한 편의 성장소설과도 같았다. 주인공 앞에서는 어떤 강적도 버텨낼 수 없었다. 한 걸음을 떼면 수 미터를 이동하고 한 초식으로 상대의 목숨을 끊는 장면들은 그 안의 수많은 암투와 정치와 사랑을 아우르며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이다. 내게도 한때의 바람으로 끝났지만 무협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관문인 듯하다.
그래서 소림사의 승려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둥실 떠 있는 표지 사진을 보면서 <한국의 무림고수를 찾아서> (2008, 박수균 지음, 판미동 펴냄)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지 모른다 생각했다.

저자인 박수균 씨는 자신이 십팔기 공인 4단으로, 2003년부터 문화일보에 [박수균 기자의 무림고수를 찾아서] 시리즈를 연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술연구소를 운영하며 연구와 저술, 교육에 전념하는 무술 전문가 최복규 씨가 해설을 맡았다. 이들 한 팀은 2003년에 연재된 시리즈물에 보충 자료를 첨부하여 <한국의 무림고수를 찾아서>를 출간했다고 한다.
자신을 버리다, 자신을 이기다의 두 장으로 이루어진 책에는 모두 16인의 고수를 싣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십팔기, 선관무, 팔괘장, 형의권, 아이키도, 대동류 유술, 거합도 등에다, 홍콩 영화에서 이름은 들어본 당랑권, 태극권, 우리에게 익숙한 태껸과 태권도, 합기도, 가라테까지 다양한 무술의 고수들이 망라되어 있었다. 사범, 노사, 선생, 교수, 관장, 또는 호로 지칭되는 고수들의 나이도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저자는 이들 고수를 찾아가 현재의 삶과 함께 그들의 무술의 역사를 청해 들었다. 그들이 하는 무술의 특징을 들었고 시연 사진과 함께 동작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전달했다. 각 무술은 수련 방법이 다른 것처럼 추구하는 바도 모두 달랐다. 각 이야기의 끝에는 이들의 무술에 대한 정보를 박스 안에 넣어 자세하게 설명한다. 

'무엇이건 어느 하나를 평생 하다 보면 만물을 두루 관통하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一達之道)' (50쪽)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한국 최고 고수 16인의 이야기는 그 정직한 몸의 수련 뿐만 아니라 마음의 공력까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점점 더 바쁘고 빨라지는 현대에서, 한두 초식을 완벽하게 연마하는 데 평생을 바친 당랑권의 이덕강 노사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간 들인 시간과 공력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몸을 통해, '무술武術과 무도武道의 경지를 넘어서서, 아름다운 움직임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예술로서의 무예武藝'를 보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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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후 더 뜨겁게 살아라 - 정년 후를 위한 생생 교과서
가토 히토시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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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갑자기 아프고 무력해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퇴직을 맞은 사람들도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사람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쩌면 평생 외부에서 주어지는 일, 남들과 더해야 하나가 되는 부분적인 일을 하다가 온전히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이 버거운, 학습된 무기력감 때문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 이미 평생의 에너지를 소진해 버려서 그 이후의 삶을 시작하기조차 어려울 수도 있다.
직장을 다니는 것은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간다는 책임감이면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 아직은 자기에게 가치가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나 보다. 그래서 노년층을 위한 직업박람회에는 그렇게 많은 분들이 모이고, 어떻게든 직장을 구하고자 하는가 보다. 예전 같으면 정년퇴직 이후에는 손주들을 돌보며 자식들의 부양을 받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가정이 많아지다 보니 당장 생계부터 걱정해야 하는 이들도 많은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일단 직장을 다녀서 정년퇴직을 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봐야 맞겠다.

<정년 후 더 뜨겁게 살아라> (2008, 가토 히토시 지음, 국일미디어 펴냄)는 '정년 후를 위한 생생 교과서'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정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앞으로는 정년 후에도 3~40년의 삶이 펼쳐질 거라고 한다. 그러니 인생 3막 또는 4막으로 정년 후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참 중요하다. 어떻게 직장 생활을 했는가에 따라 정년 후를 바라보는 시각과 준비가 달라질 것이다.
저자는 잡지 편집자를 거쳐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벌써 25년째 3000명이 넘는 정년 퇴직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축적된 많은 경험과 사례들을 통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조직이 아닌 객체, 타인 본위가 아닌 자기 본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 정년퇴직자들을 위해 저자는 여섯 가지 항목을 제시한다. 그것들은 바로 홀로 떠나는 여행, 일을 창출하라, 배움을 즐기자, 가족을 직시하라, 지역사회에서 살자, 마지막 거처이다. 이 여섯 가지 항목은 순차적으로, 또는 병행하며 진행할 수도 있다.

각 항목들 아래에 실린 10여 개의 작은 이야기들은 그간 저자가 인터뷰했던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라서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정년퇴직을 한 이후 또다른 직장을 찾으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면, 자신이 그동안 바라던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가장 바람직한 경우겠다. 목적을 정해서 하나에 집중하는 '일점돌파'의 예로 저자는 메이지시대에 기술자로 일했던 이를 든다.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아내가 세상을 떠나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해외여행을 하기로 65세에 마음을 먹는다. 목적지를 정하면 여행이 가능할 정도의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에 대해 공부하고 모든 준비가 끝나면 여행을 다녀왔으며 그 후기를 책으로 엮어 자비 출간했다. 70세부터 시작해서 그는 총 5권의 책을 냈다. 정년퇴직 후의 인생은 그렇게 즐길 수도 있다. 또는 요리를 좋아해서 주부가 될 수도 있고 그간의 기술을 이용해 창업을 할 수도 있으며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다.

정년 퇴직 후에 자기 책임, 일의 창출, 배움, 가족, 지역 사회, 삶의 마무리라는 커다란 틀에서 생활을 다시 재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은 우리와 문화가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자기계발서도 많이 들어오는데, 정년 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이제 슬슬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퇴직 전에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따라서 퇴직 후의 생활은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니 미리 읽어 두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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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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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추적추적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을 깬 적이 있다. 봄비라면 생명의 활기에 대한 기대라도 있으련만, 비가 오고 나면 한결 더 추워지는 늦가을의 비는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스산하다. 옆에는 등을 돌리고 나지막이 코를 고는 남편이 있고, 머릿속에는 끝없는 빗소리와 더불어 좀전의 꿈이 는적거린다. 그렇게 잠이 깬 날에는 이런 저런 생각들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뒤척거리게 되고, 겨우 잠이 들었다 깨어난 아침은 머리가 묵지근하니 찜찜하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2008, 레이철 커스크 지음, 민음사 펴냄)는 그런 아침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둠의 관객들이 집 앞으로 몰려와 창문을 두드리며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비가 밤새 내리면서, '막아 내기엔 이미 늦어 버린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 이미 일어나버린 어떤 일에 대한 두려움'을 주는 날씨.
런던 교외의 가상 지역인 알링턴파크는 그런 대로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중산층 베드타운으로 설정되었다. 화자는 삼십대의 여자들로서, 자기 자신, 아내, 엄마, 친구 등 다양한 역할의 여러 면들을 보여준다. 아침에는 아이를 데려다 준 엄마들끼리 모여 차를 마시고, 점심에는 함께 쇼핑을 하고서 식사를 함께 하고, 저녁에는 아는 이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함께 하는 것. 알링턴파크의 어느 완벽한 하루는 대략 이와 같이 구성된다. 아주 사교적이고 완벽해 보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은 모두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혼자서 등하교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침에 데려다 주고 하교시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인계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스케줄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 아이들은 엄마들에게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엄마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얽매는 족쇄가 되기도 하며 자신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남편과도 이제는 더이상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다. 꿈에서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남편을 보며 현실을 깨닫는 초반의 장면도 그렇고, 퇴근하고 온 남편과 연극을 하는 듯한 거리감이 있는 메이지의 경우를 보아도, 남편은 이제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정신적 지주가 아님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모든 것이 지겨워진 그 나른함과 무거움을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는 사실적으로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같은 반어법의 묘미가 제목에서부터 살아 있다. 그들의 하루는 겉보기로는 완벽했으나 점점 더 생기를 잃고 바닥에서부터 무너져갈 것이고, 그런 하루는 알링턴파크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 쓸쓸함과 허망함이 남 이야기 같지 않게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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