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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하야시 마리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하야시 마리코의 이력을 보면 카피라이터에서 시작하여 수필가, 소설가가 되었고, 1986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이후로 일본 대중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의 작품으로는 이 ‘첫날밤’을 유일하게 읽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많은 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쇼킹함과 거부감, 감탄을 동시에 느꼈다.
이 책에는 애완동물 가게의 스캔들, 귀향, 의식, 눈 소리, 젊은 여자에게는 없는 것, 첫날밤, 단 한 번의 메시지, 잘 다녀오셨어요?, 누이동생, 봄 바다로, 비밀의 11개 단편이 묶여 있고, 모든 작품을 통해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다양한 여자들의 모습이 묘사된다. 혼자 사는 나이 든 여자 (젊은 여자에게는 없는 것, 첫날밤, 누이동생), 유부남과 불륜의 관계를 맺었던 처녀 (애완동물 가게의 스캔들, 귀향), 유부남과 불륜의 관계를 맺는 유부녀 (단 한 번의 메시지, 잘 다녀오셨어요?, 봄 바다로, 비밀), 아이 딸린 이혼남과 결혼한 처녀 (의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홀로 된 새언니에게 남편을 빌려주어야 했던 여자 (눈 소리) 등이다.
우리 나라보다 성문화가 개방된 일본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소설이니까 극단적인 소재를 고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상당히 자극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입장을 수긍할 수는 없었으나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추잡하다거나 경박하다는 느낌을 최소한으로 받을 수 있었다. 주인공과 얽혀있는 주변 사람들의 묘사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책장을 넘길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책을 덮으면서 ‘아름답고도 두려운 극한의 사랑 방식’이라는 책 표지의 설명과 같은 뒷맛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사랑이라는 것이 아주 가벼운 한 때의 감정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 끝난다. 에필로그가 있다면 절반 이상의 가정은 파탄이 날 것이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그대로 쓸쓸히 노년을 맞을 것이다. 틀을 벗어난 사랑의 종말은 이런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은 역자 후기까지 꼼꼼히 읽어보기 바란다. 하야시 마리코의 이력과 함께 그의 작품 세계를 둘러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와 작가에 대해 알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