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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 지음, 유정화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주변에서 빠른 죽음과 느린 죽음을 겪는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5일만에 유언 한 마디 없이 돌아가셨다. 할머니도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뇌수술을 받으시고 지금 1년 반째 누워계신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를 주지 않는 당황스러움과 아쉬움을 남기지만, 우리 할머니처럼, <원더풀>의 주인공 울라 카린 린크드비스트처럼 천천히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삶도 그리 쉽지 않고,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살아남는 사람이나 항상 죽음을 마주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게릭 병은 책에도 나오는 내용처럼 유전적인 것도, 나쁜 습관에 의한 것도 아닌 병이 갑자기 발생하니 자기 자신이나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의식은 멀쩡한 채 육신이 점점 약해지기 때문에, 유리 감옥에 수감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처럼 가장 잔인한 병이란다. 몸은 멀쩡한 반면 정신이 약해지는 치매 환자와는 반대이다. 더구나 정신적으로 영민한 사람들이 많이 걸린다고 하니 그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인 셈이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불치병 선고를 받으면 처음에는 화를 내고 부정하고 타협하고 우울해 하다가 수용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주인공은 앞의 네 단계를 모두 건너뛰어 죽음을 수용한다.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남는 가족들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물론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고, 그런 와중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로움을 간직한다.
소설이었다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온몸이 마비된 채 눈만 겨우운용할 수 있어서, 딸아이가 알파벳 철자를 가리키면 쓰고자 하는 곳에서 눈을 깜빡이는 방법으로 글을 썼다니 참으로 눈물겨운 책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는 ‘긴 병에는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환자와 가족이 모두 지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울라 카린은 죽으면서까지 삶은 위대하다고 말하고 떠났고, 그 덕분에 가족들도 모두 구원받았다고 느낀다. 천년 만년 살아갈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 내게는, 자신의 죽음을 마주 대하고서 당당할 자신도, 주변을 포용할 자신도 사실 없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좀더 현실에 충실해질 것을 다짐한다.
또 한 가지, ‘앨리슨 래퍼’의 책에서도 느낀 점인데, 불치병 환자를 대하는 선진 의료 시스템에 많은 부러움과 감명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