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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능소화: 한반도 중부 이남에 심어 기르는 잎 지는 덩굴나무. 줄기가 길게 뻗는 데다가 곳곳에 뿌리를 내리며 담이나 나무에 붙어 자란다. 칠월과 팔월에 깔때기처럼 생긴 진한 귤빛 꽃이 핀다. 시들지 않고 송이째 떨어져 처연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원색식물도감>
책을 읽는 내내 능소화가 어떤 꽃이기에 이렇게 두 사람을 엮어주고 두 사람을 갈라 놓았는지 궁금해서, 책을 덮자마자 인터넷에서 능소화의 사진을 찾아 보았다. 양반만 키울 수 있었다던, 짙은 녹색 잎에서 고개를 내민 나팔꽃 모양의 귤빛 꽃이 담장 너머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꼭 응태를 처음 만나던 날의 여늬처럼..
1998년 안동 택지개발시 고성 이씨 이응태공의 묘소에서 발견된 그의 아내의 편지와 머리칼을 엮어 짠 미투리가 세상을 감동시켰다. 1586년에 쓰여진 이 편지는 우리말을 사용하여 죽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절실하고 솔직하며 아름답게 표현했다.
저자는 이 편지글에 살을 입혀 원이 아버지와 원이 엄마, 이응태와 홍여늬의 사랑 이야기를 절절하게 그려내었다.
소화는 하늘의 꽃, 선계에서 소화를 훔치고 인간 세상에 태어난 여늬와 엮어졌기 때문에, 응태는 여늬의 벌을 대신 받고 목숨을 잃는다. 짧았으나 서로에게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말하도록 사랑하는 삶을 산다. 응태를 잃고 아이를 잃었지만 여늬는 굴하지 않고 하늘의 뜻을 어기는 능소화의 길을 가기로 한다.
응태가 태어났을 때 하응 스님이 말한 것처럼 응태와 여늬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끝내는 만날 운명이었던 것을. 평생을 무미건조하게 살기보다는 짧더라도 사랑하며 사는 것이 더 불꽃 같은 삶이 아닐까.. 어쩌면 빨리 끝났기에 더 처연한 아름다움이 더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장례를 치른 후에 조용히 살면서 고인에 대한 사랑을 유지한 여늬의 외로운 삶에 눈물을 떨구었다. 요즘에도 무뚝뚝함의 고장으로 알려진 경상북도 안동에서 그 옛날에 있었던, 이 소설의 내용처럼 꼭 선남선녀가 아니더라도 좋은, 불륜과 삼각관계에 점철된 요즘의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 같은, 이 가을의 감성을 자극하는 조선 시대의 아련한 러브 스토리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