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세계 - 사회적 기업가들과 새로운 사상의 힘
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나경수 외 옮김 / 지식공작소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뉴스를 보면 세상의 발전 방향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이익이 된다고 하면 아이들이 먹는 것에까지 유독물을 넣는 말종들이 있는가 하면, 온갖 범죄와 사건, 도발과 위기 등으로 점철된 뉴스는 그 파급 효과만큼이나 찜찜한 뒷맛을 남길 뿐이다. 많은 범죄는 돈이 가장 큰 힘으로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앞으로도 더한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다. 바로 <달라지는 세계> (2008, 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지식공작소 펴냄)에서 소개하는 사회적 기업가들이 바로 그 희망이다. 저자인 데이비드 본스타인은 1996년, 무하마드 유누스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그라민 은행을 처음으로 다룬 <꿈의 대가 : 그라민은행 이야기>를 쓴 이후로 사회적 기업가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번 책에서는 빌 드레이튼의 아쇼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달라지는 세계 사회적 기업가들과 새로운 사상의 힘'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정부가 제1섹터, 민간 기업이 제2섹터, 비정부기구와 비영리기구를 제3섹터로 부르던 것에 비해 제4섹터, 시민 섹터로 불리는 사회적 기업가들의 세계를 알아보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희망을 듣는 참 좋은 기회가 이 책에서 펼쳐진다.
일반적인 기업가企業家가 아닌 사회적 기업가起業家는 '낮은 영역에서 나온 경제 자원을 보다 높은 영역의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사업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정의되며, '중요한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하는 창조적 파괴자'로 규명된다. 책의 앞머리에 실린 '진정한 자선이란 거지에게 동전 한 푼 던져주는 일이 아니다. 거지를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의 체제 자체를 개혁하는 것이다'라는 마틴 루터 킹 2세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이런 사회적 기업가들의 활동이 눈에 띈 것은 30년도 채 되지 않지만, 그들의 영향력과 활동 분야, 활동 성과는 많은 후원자들과 더불어 괄목상대하고 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이들의 열정과 실용성을 알아보는 눈, 그것이야말로 정부 또는 민간 기업의 일시적인 자금 지원보다도 더 큰 힘이 됨을 아쇼카의 글로벌 펠로십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책 초반에 나오는 세계지도에는 저명한 사회적 기업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책에서 설명하는 사회적 기업가의 예를 들어 보자. 브라질의 농촌에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물을 끌어들이고 농가의 소득을 몇 배로 늘린 파비오 호사의 성취에는 남다른 열정과 끈기가 필요했다. 비싼 정부식 서비스를 감당할 수 없는 농민들의 관점에서 싸고 효율적인 전기를 보급하고자 했던 그의 관심과 열정은 저렴한 지방전력체제계를 개발한 아마라우 교수, BNDES의 아루이시 아스치, 리오그란데두술 주지사인 페드로 시몬 등 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사람들과 인연이 닿게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그의 노력들은 허사로 돌아갔으나 그는 여전히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한 전기울타리 보급, 대출을 통한 태양열 전지판 판매 등 저소득층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열정과 노력을 쏟고 있었다.
사회적 기업가의 이론과 사례를 번갈아 실은 이 책은, 사회적 기업가에 대해 아주 많은 것들을 알려 준다.

열정적인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힘, 그 희망의 에너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공부방이나 야학도 사회적 기업의 일종으로 등재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좀더 세상을 바꾸는 긍정적 에너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작은 도토리 한 알이 자라서 큰 상수리 나무가 되듯, 사회적 기업가들의 활동을 씨앗으로 삼아 아주 커다란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버랜덤 - 마법에 걸린 떠돌이 개 이야기
J.R.R 톨킨 지음,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 엮음, 박주영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연노란색 표지 위에 복잡한 무늬가 그려진 뾰족한 산과 날아다니는 용과 그 앞의 강아지들, 반짝이는 별들이 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그 아래 고풍스러운 문자로, 화이트 드래곤이 달강아지와 로버랜덤을 쫓아간다고 그림 설명이 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J.R.R. Tolkien이 1927년 9월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또다른 삽화 3점과 더불어 대 문장가로만 각인되어 있는 톨킨을 다시 보게 만든다.
<로버랜덤>(2008, J.R.R. 톨킨 지음,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은 1925년 톨킨 가족이 요크셔 해안의 필리로 여름 휴가를 떠났을 때 구상되었다고 한다. 언제 어디나 가지고 다니던 장난감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상심한, 당시 5살 무렵의 아들 마이클을 달래기 위해 톨킨은 이 장난감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진짜 살아 있는 강아지였던 로버가 마법사의 바지를 물어뜯은 바람에 마법에 걸려 장난감이 되었고, 달나라와 바다나라를 모험한 후 다시 살아 있는 강아지로 돌아와 원래의 주인과 만난다는 것, 정말 아이를 달래기에 충분한 이야기 아닐까?

<로버랜덤>은 강아지의 시선에서 쓰여진 모험 이야기이다. 로버(rover)라는 이름은 방랑자를 의미하고, 뒤에 덧붙은 랜덤(random)은 로버라는 이름마저도 뺏기고 마는, 그래서 더욱 정처없이 떠도는 떠돌이라는 이미지를 더해 준다. 로버가 갔던 달나라와 바다 속에 우연히 로버라는 이름의 강아지들이 이미 있었던 것.
마법사의 마법에 걸려 장난감이 된 로버는, 톨킨의 아들 마이클이 그랬던 것처럼 해변에서 주인 아이와 헤어진다. 갈매기 뮤의 등에 실려 달의 길을 따라 달나라로 가고, 거기에서 달강아지 로버와 함께 신나게 날아다니며 자유로운 생활을 누린다. 표지에 나오는 화이트 드래곤을 만난 것도 달나라였으니, 친구는 달강아지 뿐이었지만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달 사나이를 따라 아이들의 꿈나라에 갔다가 자신의 주인인 작은 소년을 만난 로버는, 다시 현실 세계에 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마법을 걸었던 마법사 아르타제르젝스를 찾아 이번에는 고래를 타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많은 모험을 거친 끝에 마법이 풀려 원래의 주인인 작은 소년을 다시 만난다. 아무에게나 반말을 하고 버릇 없던 로버가 커다랗고 점잖은 어른 개가 된 마지막 장면은 그만큼 성장했음을 이야기한다.

책의 초반에는 톨킨 연구자인 엮은이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가, <로버랜덤>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히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톨킨의 일기와 미완성 원고,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는 다른 작품들, 삽화들이 그려진 시점 들을 통해 로버랜덤를 종합한다. 삽화 설명과 본문 설명, 톨킨의 습관 들에서는 톨킨 연구자로서의 관록이 드러나고, <반지의 제왕>에서의 엄격한 이미지를 벗고 아이를 위하는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톨킨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이야기 뒤의 주석에는 이야기 곳곳에 나왔던 단어나 구절들을, 톨킨의 생애와 다른 작품들, 필사본에서 수정된 부분, 톨킨에게 영향을 미쳤던 작가의 작품들로 설명하고 있어서, 좀더 자세하고 깊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로버랜덤> 이야기만 보면 아이들이 읽기에 좋은 동화이다. 어마어마하게 사용된 수식어들 덕분에 풍경과 분위기는 눈에 보일 듯 뚜렷하다. 화이트 드래곤이나 바다뱀은 위협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붕괴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커다란 위험 없이도 아기자기한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서문으로 실린 <로버랜덤>의 역사, 뒤에 실린 주석 덕분에 <로버랜덤>은 글이 쓰여지던 당시의 필리의 풍경과 사회상을 담은 앨범이 될 수 있었다. 간간이 눈에 띄는 오탈자가 없었다면 좀더 완성도가 높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며, 색다른 구성의 동화책을 덮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서평단 알림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관한 에피소드 172
기류 미사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알라딘 서평단] 나는 작년에 기류 마사오의 <알고 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를 읽은 적이 있다. 비정상적인 죽음을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죽음을 맞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에서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매혹적인 죽음'의 굿판은 북적거렸다.

황제에 대한 반역을 꾀하다 체포되어 아주 많은 단계의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을 당한 데미안, 산 채로 화형당하는 도중 불을 허물어 음부를 보이는 능욕을 당한 잔 다르크, 아내의 외도 상대를 죽이고 해부한 사람의 이야기 등 죽음의 형태는 다양하고 잔혹했다. 이 책에서 죽음은 하나의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매혹적이라기보다는 '관음증' 수준이었다고 평가했었다.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사람들, 역사를 화려하게 뒤흔든 사람들, 성과 사랑의 비밀을 추구한 사람들, 불가사의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네 부분으로 나뉘고, 그 아래에는 세부 항목들이 총 172가지 실려 있다. 제목의 '사랑'은 음탕 또는 성적 쾌락이니,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는 이라면 마음을 돌리기를 권한다. 음란하고 잔혹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엽기적인 사람들의 일화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으니,

기류 미사오의 다른 책들도 <악녀대전>, <무시무시한 처형대 세계사> 등 엽기적이고 잔혹한 것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서문의 말처럼 '오직 사디즘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많은 고문 방법을 생각해 내고, 고문 기술을 연구한' 동서고금의 권력자들의 심리 상태를 저자에게 고스란히 투영할 수 있을 듯도 하다. 그가 열심히 모아놓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우리도 함께 '갑작스레 나타나는 난기류처럼, 주변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떠다니는 그곳만의 기묘한 잔혹함'을 느낌으로써 마음속 깊숙한 사디즘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공포만 한 즐거움도 없다. 그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이라면. - 클라이브 바커, <피의 책>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문고에서 끊어져 나와 피를 묻힌 거문고 줄, 피 묻은 국화 꽃봉오리, 도끼, 검은 바탕 위에 크게 부각되어 있는 하얀 가면까지, 뭔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표지는 섬뜩하다. 제목인 '이누가미 일족'조차도 뭔가 끈적한 것이 흐르고 오염되어 있다.
1950년부터 51년까지 일본의 잡지에 연재되었다는 <이누가미 일족> (2008,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시공사 펴냄)은, 요코미조 세이시가 만들어낸 일본의 국민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본격 추리 소설이다.

<이누가미 일족>은 말 그대로 이누가미 사헤 옹으로부터 시작된 일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떠돌아 다니다가 쓰러져서 노노미야 다이니에게 구조된 이누가미 사헤는 한 변두리였던 나스 시를 중소 도시로 키워낼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없이 세 명의 소실에게서 딸 셋을 두고 있고, 그 딸들에게서 손자 셋과 손녀 하나를 얻었다.
향년 81세로 이누가미 사헤가 사망한 후 발표된 유언장에는, 유산 상속에 관련하여 수수께끼 같은 복잡한 내용이 들어 있었으니, 손자 셋 외에도 은인인 노노미야 다이니의 손녀인 다마요, 또다른 아들인 아오누마 시즈마가 관여되어 있다. 이 다섯 명이 만들어내는 경우의 수에 따라 유산의 양과 상속자가 결정되는데, 다마요와 결혼하는 손자가 있을 경우 이들이 사헤 옹의 모든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다. 이를 둘러 싸고 세 딸들 사이에서는 암투가 벌어지는데, 손자들이 하나씩 살해되면서 긴장은 더해간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이누가미 일족 변호사의 조수에게서 불행한 사건을 방지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나스 시에 왔으나 의뢰자가 코스케의 면전에서 죽어 버리는 바람에, 아무런 단서 없이 이누가미 일족의 사건들에 참여한다. 그리고 맹점을 해결한 다음 사건의 재구성을 도움으로써 이누가미 일족의 불행을 정리한다.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는 만화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는데, 나는 웬일인지 김전일이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보니 긴다이치(金田一)이라는 일본 성을 한자어 그대로 읽은 것이었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가 긴다이치 코스케라고 하니, 긴다이치 코스케에 대한 일본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쓰여진지 벌써 60년이 다 되어가는 터라 말투 곳곳에서 오래된 느낌이 났다. 예전 무성영화 시절 변사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듯한 신파극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건의 전개와 결말을 이미 다 아는 상태에서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듯한 어투가 예스럽고, 요즘 같으면 복선으로 조용히 깔고 갈 것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도 독특하다.
더구나 긴다이치 코스케는 머리 위의 참새 둥지를 벅벅 긁어대고 흥분하면 말을 더듬거리는 것 외에는 사건 종반까지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않는다. 수사도 주가 아니라 종으로, 다치바나 서장의 파트너 정도이다.
그렇지만 마지막의 결말 구조는, 이 글이 쓰여진 1950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상당히 정교하고 위악적이다. 인간의 욕심은 얼마나 거대한지를, 겉으로 보이는 것은 결코 전부가 아님을 누누이 이야기한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또다른 책을 읽어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크로폴리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6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란 그리스 어로 '사자死者들의 도시'라는 뜻으로, 고대 도시 가까이에 있는 묘지를 말하는 고고학 용어라고 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온다 리쿠는 <네크로폴리스 1, 2> (2008, 온다 리쿠 지음, 문학동네 펴냄)에서 네크로폴리스의 사전적인 정의에 걸맞는 곳으로 어나더 힐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나더 힐은 라인맨으로 대표되는 선주민들의 영적인 성지이자 영국과 일본이라는 두 섬나라 출신들이 어울리는 곳으로, 양국의 전통이 혼합되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본本에 나란히 서신 폐하께 영광 있으라!'라는 구호는 그래서 어나더 힐에서 행해지는 히간 내내 울려 퍼진다. 정부에 의해 허가를 받은 이들만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자, '밤의 어둠과 유모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 기억의 저편에 밀어넣은 것이 어디까지나 실존하는 것으로 다루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어나더 힐, 네크로폴리스인 것이다. 
대도리이를 거쳐서 어나더 힐에 짐을 풀고 나면 한 달에 걸쳐 죽은 이들이 '손님'처럼 찾아온다. 죽은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육체적인 접촉까지 가능하게 되는 이 행사를 '히간'이라고 한다. 원래 '히간'은 춘분과 추분 전후로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일본의 불교 행사인데, 피안彼岸은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경지를 나타내며, 일상적인 속세(차안此岸)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친척들의 초대로 처음 오게 된 도쿄대학 대학원생 준이치로 이토의 시선에서 끌어나가는 이야기들은, 초심자의 어리둥절함과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여러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설명 덕분에 히간과 어나더 힐에 대한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히간으로 고립된 밀실과도 같은 어나더 힐 안에서 살인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나면서, 이를 큰 축으로 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애거서 크리스티 류의 밀실 살인 사건을 읽어나가는 듯한 두근거림은 종교와 초자연, 삶과 죽음의 혼재라는 어나더 힐의 특성 덕분에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어슴푸레한 1권의 표지에서 헐벗은 나무에 앉아 있던 검은 새가, 어둠이 깔린 2권의 표지에서는 스산하게 날아다니는 것처럼 분위기는 계속 위험하고 음산하게 변해가지만, 그 안에서는 언제나 반가운 손님처럼 죽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조그만 잔치가 계속되고 있으니 공포 소설일까 겁먹지 말고 읽어도 충분하겠다. 

죽은 이들 중에서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이가 있는가?
그럼 어나더 힐로 떠나는 배에 올라 타서 히간을 함께 즐겨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