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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랜덤 - 마법에 걸린 떠돌이 개 이야기
J.R.R 톨킨 지음,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 엮음, 박주영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연노란색 표지 위에 복잡한 무늬가 그려진 뾰족한 산과 날아다니는 용과 그 앞의 강아지들, 반짝이는 별들이 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그 아래 고풍스러운 문자로, 화이트 드래곤이 달강아지와 로버랜덤을 쫓아간다고 그림 설명이 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J.R.R. Tolkien이 1927년 9월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또다른 삽화 3점과 더불어 대 문장가로만 각인되어 있는 톨킨을 다시 보게 만든다.
<로버랜덤>(2008, J.R.R. 톨킨 지음, 씨앗을뿌리는사람 펴냄)은 1925년 톨킨 가족이 요크셔 해안의 필리로 여름 휴가를 떠났을 때 구상되었다고 한다. 언제 어디나 가지고 다니던 장난감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상심한, 당시 5살 무렵의 아들 마이클을 달래기 위해 톨킨은 이 장난감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진짜 살아 있는 강아지였던 로버가 마법사의 바지를 물어뜯은 바람에 마법에 걸려 장난감이 되었고, 달나라와 바다나라를 모험한 후 다시 살아 있는 강아지로 돌아와 원래의 주인과 만난다는 것, 정말 아이를 달래기에 충분한 이야기 아닐까?
<로버랜덤>은 강아지의 시선에서 쓰여진 모험 이야기이다. 로버(rover)라는 이름은 방랑자를 의미하고, 뒤에 덧붙은 랜덤(random)은 로버라는 이름마저도 뺏기고 마는, 그래서 더욱 정처없이 떠도는 떠돌이라는 이미지를 더해 준다. 로버가 갔던 달나라와 바다 속에 우연히 로버라는 이름의 강아지들이 이미 있었던 것.
마법사의 마법에 걸려 장난감이 된 로버는, 톨킨의 아들 마이클이 그랬던 것처럼 해변에서 주인 아이와 헤어진다. 갈매기 뮤의 등에 실려 달의 길을 따라 달나라로 가고, 거기에서 달강아지 로버와 함께 신나게 날아다니며 자유로운 생활을 누린다. 표지에 나오는 화이트 드래곤을 만난 것도 달나라였으니, 친구는 달강아지 뿐이었지만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달 사나이를 따라 아이들의 꿈나라에 갔다가 자신의 주인인 작은 소년을 만난 로버는, 다시 현실 세계에 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마법을 걸었던 마법사 아르타제르젝스를 찾아 이번에는 고래를 타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많은 모험을 거친 끝에 마법이 풀려 원래의 주인인 작은 소년을 다시 만난다. 아무에게나 반말을 하고 버릇 없던 로버가 커다랗고 점잖은 어른 개가 된 마지막 장면은 그만큼 성장했음을 이야기한다.
책의 초반에는 톨킨 연구자인 엮은이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가, <로버랜덤>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히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톨킨의 일기와 미완성 원고,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는 다른 작품들, 삽화들이 그려진 시점 들을 통해 로버랜덤를 종합한다. 삽화 설명과 본문 설명, 톨킨의 습관 들에서는 톨킨 연구자로서의 관록이 드러나고, <반지의 제왕>에서의 엄격한 이미지를 벗고 아이를 위하는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톨킨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이야기 뒤의 주석에는 이야기 곳곳에 나왔던 단어나 구절들을, 톨킨의 생애와 다른 작품들, 필사본에서 수정된 부분, 톨킨에게 영향을 미쳤던 작가의 작품들로 설명하고 있어서, 좀더 자세하고 깊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로버랜덤> 이야기만 보면 아이들이 읽기에 좋은 동화이다. 어마어마하게 사용된 수식어들 덕분에 풍경과 분위기는 눈에 보일 듯 뚜렷하다. 화이트 드래곤이나 바다뱀은 위협적인 존재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붕괴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커다란 위험 없이도 아기자기한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서문으로 실린 <로버랜덤>의 역사, 뒤에 실린 주석 덕분에 <로버랜덤>은 글이 쓰여지던 당시의 필리의 풍경과 사회상을 담은 앨범이 될 수 있었다. 간간이 눈에 띄는 오탈자가 없었다면 좀더 완성도가 높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며, 색다른 구성의 동화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