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폴리스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6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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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폴리스(necropolis)란 그리스 어로 '사자死者들의 도시'라는 뜻으로, 고대 도시 가까이에 있는 묘지를 말하는 고고학 용어라고 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온다 리쿠는 <네크로폴리스 1, 2> (2008, 온다 리쿠 지음, 문학동네 펴냄)에서 네크로폴리스의 사전적인 정의에 걸맞는 곳으로 어나더 힐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나더 힐은 라인맨으로 대표되는 선주민들의 영적인 성지이자 영국과 일본이라는 두 섬나라 출신들이 어울리는 곳으로, 양국의 전통이 혼합되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본本에 나란히 서신 폐하께 영광 있으라!'라는 구호는 그래서 어나더 힐에서 행해지는 히간 내내 울려 퍼진다. 정부에 의해 허가를 받은 이들만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자, '밤의 어둠과 유모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 기억의 저편에 밀어넣은 것이 어디까지나 실존하는 것으로 다루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어나더 힐, 네크로폴리스인 것이다. 
대도리이를 거쳐서 어나더 힐에 짐을 풀고 나면 한 달에 걸쳐 죽은 이들이 '손님'처럼 찾아온다. 죽은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육체적인 접촉까지 가능하게 되는 이 행사를 '히간'이라고 한다. 원래 '히간'은 춘분과 추분 전후로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일본의 불교 행사인데, 피안彼岸은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경지를 나타내며, 일상적인 속세(차안此岸)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친척들의 초대로 처음 오게 된 도쿄대학 대학원생 준이치로 이토의 시선에서 끌어나가는 이야기들은, 초심자의 어리둥절함과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여러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설명 덕분에 히간과 어나더 힐에 대한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히간으로 고립된 밀실과도 같은 어나더 힐 안에서 살인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나면서, 이를 큰 축으로 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애거서 크리스티 류의 밀실 살인 사건을 읽어나가는 듯한 두근거림은 종교와 초자연, 삶과 죽음의 혼재라는 어나더 힐의 특성 덕분에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어슴푸레한 1권의 표지에서 헐벗은 나무에 앉아 있던 검은 새가, 어둠이 깔린 2권의 표지에서는 스산하게 날아다니는 것처럼 분위기는 계속 위험하고 음산하게 변해가지만, 그 안에서는 언제나 반가운 손님처럼 죽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조그만 잔치가 계속되고 있으니 공포 소설일까 겁먹지 말고 읽어도 충분하겠다. 

죽은 이들 중에서 꼭 한번 만나고 싶은 이가 있는가?
그럼 어나더 힐로 떠나는 배에 올라 타서 히간을 함께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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