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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 ㅣ 의학, 과학을 초대하다 1
다나카 마치 지음, 이동희 옮김, 정해관 감수 / 전나무숲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제약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우리가 질병의 치료에 사용하는 많은 약들은 다른 의미의 독임을 알 수 있다. 신약을 개발할 때는 반드시 그 독성을 측정하는 실험을 해야 한다.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으나 독성이 강해 정상 세포에까지 부작용을 크게 미칠 경우 그 물질은 약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독으로 남게 된다. 반면 독성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에 비해 질병 치료의 효과가 클 때 약으로의 개발 가능성이 높아진다.
항암제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구역질을 하며 식욕을 잃는 부작용이 크지만,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 독성에도 불구하고 약을 쓰는 것처럼, 독과 약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존재한다.
의학을 생활로 끌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전나무숲에서 이번에 펴낸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은 지금껏 생소했던 독에 대해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독의 과학에서는 이후 사용할 반수치사량을 산출하는 방법, 시냅스와 여러 독의 종류에 대해 개론적인 설명을 한다.
그런 다음 동물 독과 식물 독, 광물 독, 인공 독에 대해 각각의 예와 작용 기전, 반수 치사량과 해독에 관해 이야기한다. 신경에 작용하는 독을 많이 다루었으므로 신경 세포의 시냅스와 수용체, 신경 전달 물질에 관한 그림이 많이 나온다. 그 작은 시냅스에 수많은 신경 전달 물질과 수용체가 존재하고, 신경 전달 물질과 비슷하게 생겨서 신경 전달 물질 대신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 나트륨 통로를 막거나 여는 등의 작용으로 신경을 과도하게 흥분시키거나 이후로의 자극 전달을 막아 근육 마비가 오는 등 다양한 형태로 독으로서의 작용을 수행한다.
마약은 참 특이한 형태의 독으로서 중독성을 갖는 다양한 물질들을 말하고, 책에서는 모르핀, 헤로인, 코카, 코카인, LSD, 메스칼린, 대마, 마리화나, 각성제까지 나름대로의 역사 또는 유행에 따라 기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독살사건 수첩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에 일어난 옴진리교 사건을 비롯하여 브랭빌리에 후작부인, 나폴레옹 등 유명한 독살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약으로 개발되었다가 부작용과 중독성 때문에 사용이 규제되는 마약류, 독으로서 발견되었으나 그 효용성을 인정받아 약으로 개발 중인 거미 독소 (부정맥 치료제), 보툴리누스 독소 (근육 이완제), 전갈 독 (신경교종 치료제),독화살개구리의 독 (진통제) 등 독과 약의 전환과 혼용은 흥미로웠다.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배의 독인삼, 클레오파트라가 물린 독사의 종류, 아편 때문에 일어난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 등 역사적 사실들에서 엿보이는 독의 이야기가 풍부했다. 각 챕터의 끝에 등장하는 칼럼에서는 벌에 쏘였을 때 오줌을 바르면 효과가 없다는 것, 뱀에게 물렸을 때 입으로 빨아서는 안 된다는 것 등 상식을 올바르게 교정하는 내용이 많았고, 자연에서 일어나는 생명들의 진화가 아주 정교하고 합리적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독에 대한 지식들을 실생활에 유용하게 쓸 수는 없겠지만, 알고자 하는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는 멋진 책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