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 시즌 1 ㅣ 엘링(Elling) 1
잉바르 암비에른센 지음, 한희진 옮김 / 푸른숲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혼자 놀기의 진수, 엘링의 이야기는 '엄마가 죽었다'라는 극적인 상황으로 시작되지만, '엄마가 죽었다. 모든 일은 전혀 극적이지 않게 진행되었다'라는 시작 문구처럼 전혀 극적이지 않게 서술된다.
32년간 엄마와 둘이서 살아 왔으나, 간암으로 어머니를 잃고 혼자 남게 된 엘링. 그는 슬픔보다는 공허감으로 어머니의 빈 자리를 기억하는데, 그 공허감을 채워주는 것은 노르웨이의 총리인 그로 할렘 브룬트란에 대한 동경이다. 어려서부터 우표와 동전, 코르크 마개와 새알을 모아온 수집가인 엘링은 그로 할렘 브룬트란을 아주 좋아해서 신문 기사 스크랩으로 앨범 9개를 꽉 채울 정도이다.
그로가 이웃에 함께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엘링은 그때부터 맞은편 건물에 사는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어머니의 방에 있던 가구들과 물품을 모두 구세군에 기증하고 난 텅 빈 방에서 망원경으로 이웃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레블링스틴가 17-B 동에 사는 여덟 가구에는 엄마와 아빠, 아이의 세 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없는 듯, 부부 또는 모자, 또는 독신 가구로 이루어진 모습이 참 조용하고 쓸쓸하게 보이기도 한다.
남의 집을 허락없이 엿보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나쁜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커튼 사이로 보이는 아주 작은 한 장면을 재료로 하여 끝도 없이 퍼져나가는 엘링의 상상력 때문에, 스토커라는 느낌보다는 웃음이 새어나온다. 자신의 상상에 반하는 사실이 나오면 그 사실을 상상에 꿰어맞추기 위해 왜곡하는 모습마저도 재미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구타당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연민과 불의에 대응하고자 하는 정의감, 리게모르 욜센에 대한 맹목적인 동경과 설레임, 그 동경이 깨졌을 때의 아픔을 보면 엘링의 순수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엘링은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음을 이야기할 수 없으므로 그 현실에 직접 개입할 수 없고, 지극히 한정적인 정보로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화를 걸어서 말없이 끊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소심한 응징을 가한다. 미움보다 더 잔인하다는 현대의 무관심은 엘링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항목이었으니, 과다한 관심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하게 되지만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로 조금씩 다가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엘링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장 인물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꽤 장편 소설을 읽어낸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엘링의 끝없는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갖가지 단편들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엘링이 받는 연금으로는 집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요양원으로 가게 되는 이야기로 1권은 끝난다. 옮겨 심기를 하는 식물들이 한동안 몸살을 앓는 것처럼, 대인 관계를 어려워하는 엘링이 그간의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끝없는 혼자 놀기의 진수인 엘링, 그는 그 자유로운 상상력 만큼이나 약하고 복잡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