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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이에스시 -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
<Esc>를 만드는 사람들 엮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Esc, 컴퓨터 키보드의 왼쪽 맨 윗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이 작은 버튼은 escape의 약자이며, 대개의 경우 no, quit, exit, cancel, abort 등의 역할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아주 적당한 아이콘이 될 수 있겠다.
한겨레신문사의 <Esc>(2008, <Esc>를 만드는 사람들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는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이라는 부제로 그 존재 목적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Esc'는 2006년 10월에 '주말판 준비팀'으로 시작되어 2007년 5월 <한겨레>의 목요일자 생활문화매거진 섹션으로 태어났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한가하고 재미난 이야기들,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들어가 보기로 한다.
Part 1은 Esc를 만든 사람들의 7인 7색 재미론을 실었다. 각 사람들의 색깔이 조금씩은 드러난 독특한 글들이 재미있다. 그 다음은 창간호 1면 특집만화로 실렸다가 제국주의 문화의 아이콘들을 캐스팅했다는 이유로 원성을 받았다는, 스파이더맨과 슈퍼맨과 원더우먼, 배트맨의 수다가 나온다. 애 키우는 원더우먼, 부모 잘 만나 호강하는 배트맨, 정의의 사도라는 타이틀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느라 사는 재미가 없는 슈퍼맨, 여자친구랑 데이트하는 시간보다 벽에 붙어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스파이더맨. 맨들 셋이 모여 재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Esc의 주된 내용인 듯하다. 재미있는데도 원성이 나온 것은 국민을 주주로 하여 시작하였고 한글만 사용하는 한겨레신문이라는 매체의 고유한 특성 탓일 게다. 30문 30답의 재미 지수 테스트에서는 삶에 대한 의욕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본격적인 Part 2는 '도시에서 바람 쐬는 법'으로 공항, 동물원, 테마파크, 부암동, 홍대 앞, 레지던스, 파티를 이야기한다. 생전 가야 외국 여행을 가거나 레지던스를 이용하여 파티를 하는 문화를 접해보지 못할 나로서는 별세계의 일이었지만, 적극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그나마 익숙한 동물원 이야기에서는 생태공원으로의 변화를, 부암동은 상업적으로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Part 3은 '즐거운 일상 놀이법'으로 세컨드 라이프, 노트북, 디지털 카메라, 속옷, 문방구, 부엌, 와인을 말한다. 문방구에서는 오래된 추억이 밀려오고,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현실 세계를 벗어나 드디어 가상 세계에서의 삶까지 체험할 수 있다. 요즘은 취미에 남녀 구분이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된 품목들이 많이 실려 있다.
그리고 간간이 실려 있는 Trend들, 책 말미에 실린 '100개의 키워드로 읽는 2008~2009 Esc 트렌드'는 앞으로의 방향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한다.
<Esc>에는 아주 일반적이지도, 아주 전문적이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20대 젊은이들에게 낯익을 듯한 방향으로 서술되어 있다. 각 항목마다 그간의 역사와 사진 자료들이 풍부하고, 추천 리스트가 있어서 약간의 확장도 가능하다.
책을 읽으면서 왜 내가 재미지수 테스트에서 제일 낮은 등급에 속했는지 알 수 있었다. 보기 좋게 예쁘게 꾸며서 읽으라고 해도 내 취향이 아닌 것은 건성으로 넘겨 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제 더 늦기 전에 'Esc'를 누르고 일상을 탈출해 보자. 있지도 않은 체면과 부족할 뿐인 시간과 얄팍한 지갑은 잊고, 쉬운 것부터 하나씩 즐기며 살아 보자. 하늘로 돌아갈 때 이 세상 소풍이 즐거웠다 말할 수 있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