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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쓸쓸한 이야기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만에.]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옮긴이는 이 첫 문장에서 [이방인]을 떠올렸다고 한다.
루이즈는 이방인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방인의 뫼르소는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루이즈에게 그런 생각을 담아둘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간단한지도 모르겠다.
젊고 능력있는 부부는 보모를 들인다.
보모는 출중한 능력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삶을 가꾸어준다.
하지만, 보모는 과도한 빚으로 자신의 삶을 전혀 보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보모는 부부의 신뢰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빚독촉 청구서는 여자를 찾아 들이닥치고
잠만 잘 뿐이였던 숙소에서는 월세를 내지못해 쫓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아기가 죽었다.
그리고, 여자도 죽으려고 했지만 죽지 못했다.
루이즈라는 여자의 과거.
그리고, 현재 보살피는 아이들과의 시간.
젊은 부부들과의 시간.
그 외의 시간들에 대한 묘사는 비교적 상세하다.
하지만, 아이들을 죽이는 순간.
아이들을 죽이게 된 이유와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젊은 부부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자각 시키려면 새로운 아기가 필요했고
부부가 새로운 아기를 가지지 않는 이유는
현재 보살피고 있는 아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작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였을까 하고 짐작만 해볼 뿐이다.
루이즈는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이 문장은 배부른 자의 영혼없는 동정같은 걸까?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했더라면 다른 상황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라는 생각은 절실하지 않은 교과서적인 대응일 뿐일까?
평생을 도움받아본 적이 없어서
도움을 청하면 외면당하거나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던 기억 뿐이였던 루이즈에게는
도움을 청한다는 선택지는 아예 없었던 게 아닐까?
81년생 젊은 작가인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는
2016년 콩쿠르상을 받으며 그 해 최고의 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흠... 최고의 책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평단의 호평 외에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그건 작가의 말대로 공포의 보편성. 모든 엄마의 이야기. 아이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반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있는 부모는 부모대로, 없는 이들은 없는대로 아이라는 존재에 대한 상실을 상상하고
혼란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부부의 상황을 마냥 남의 일로 치부할 수가 없는 현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루이즈의 불행을 마냥 슬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루이즈는 불행한 마녀인 것이다.
정말, 쓸쓸하고 쓸쓸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