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상주인 큰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네가 이 집의 가장이다. 엄마하고 동생 잘 보살펴라." 모든 사람이 이제 고작 중학교 2학년인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무심하게 던졌다.
건강하던 큰딸도 죽은 아내와 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사위가 온갖 병수발을 다하며 고쳐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딸도 죽었어요.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사위의 손을 붙잡고 산사람은 살아야지 않겠느냐며, 나는 내색하지 않고 애써 괜찮은 척 힘을 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딸을 많이사랑했는지, 매일 술에 찌들어 지내던 사위는 딸이 죽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결국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아내와 사위를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옵니다.
식물 그림과 식물학적 감수(검토)가 없어 아쉬움을 많이 남긴 책. 식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 책은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 내가 여러해 전에 감수했던 야생식물 요리책도 마찬가지이었다.신화는 소설 같은 허구. 허구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허전하다. 나는 인류 문화사에서 전해져온 이 이야기들 중 많은 것은 말이든 글이든 다시 들려주고 싶지 않다.
어제 자조모임 담당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수기 공모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듣자마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아직도 정신적 고통에서 늘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충격으로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무기력과 불신, 우울증으로 인하여 대인기피증이 생겨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며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감정변화도 혼란스럽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엄마인 나는 두 아들을 열심히 키워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큰아들을 입대시킨 지 8개월 만에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경황없이 보내야만 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나는 죽음을 맛보았다. 산송장과 다름 없었다. 한걸음도 걸을 수 없었고 밥알 한 톨 삼키지 못했다. 24시간 잠도 못 자 링거에 의존해야만 했기에 양쪽 팔목에는 주사바늘로 인한 멍 자국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정신이 나간 상태인 나는 엄마로서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엄마로 인해 점점 더 서글퍼하고, 시무룩해지고, 저항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시에 그 엄마들은 아이와의 관계에서 점점 더 크게 좌절하고,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무기력해졌다.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서로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할 상대로 보지 않고 좌절감을 주고, 분노를 유발하고, 유대감을 못 느끼는 낯선 존재로 느끼기 시작하면 학대가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