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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포악한 종교다. 그 종교인들은 아무도 인류에 사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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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2021-02-13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회의 과거 범죄‘ 사죄를 모르시나 보네요

라온 2021-02-1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몰라요. 그까짓 한번 사죄한 것 가지고 되겠어요? 독일이 나찌 사과를 기념일 때마다 하듯이 기독교도 때마다 새로운 죄악이 밝혀질 때마다 너도나도 해야죠. 아니 매주 예배할 때마다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하며 사죄해야죠.

김민우 2021-02-13 20:22   좋아요 0 | URL
그 말씀이라면 저도 백번 동의합니다. 다만, 마치 모든 기독교인이 죄악을 무시하고 있다는 듯이 말하여 정보가 편향적이라 분명히 과거의 죄악을 의식하고 사죄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다만, 한국 기독교 관련 말하자면 많은 신자들이 과거 저지른 잘못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교단적으로 사죄한 적도 거의 없는 것 같아 화가 나고 가슴 아픕니다

라온 2021-02-1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두명 극소수 예외를 말하는 것은 구차합니다. 모든 기독교인라고 말하는것이 맞습니다.

라온 2021-02-1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 40년 동안 교회다니면서 기독교방송 들으면서 그런 설교 기도 들어본적 없습니다.
 
[eBook] 철학과 상담 2 : 죽음 그리고 자살 철학과 상담 2
장영란 외 지음, 한국철학상담치료학회 엮음 / 학이시습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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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스스로 철학상담을 받고자 했으나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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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고 많이 써보지 않아도 죽을힘을 다해 머리를 짜내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목숨 걸면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글 쓰는데 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느냐고? 그래서 못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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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서 ‘운명’의 용법에 주의한다. 운명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설명되지 않는 것,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수많은 우연의 소산, 기대와 달리 거꾸로 되어 버린 결과를 말할 때 꺼낸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운명이 있어 운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단어가 있어 우리 삶을 가까스로 해설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운명이라는 말만 있으면 우리는 삶을 이해하게 된다. 운명의 존재론은 중요하지 않다. 운명의 효용성이 중요하다. 운명은 이런 점에서 형이상학적이지 않고, 화용론(話用論, pragmatic)적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그것의 존재성을 넘어서 강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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