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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독일이 주력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러시아가 더한층 강력한 무기로 대응할 가능성과 핵무기가 동원될 위험을 키울 결정입니다.
서방의 무기 지원, 나토의 확전 행위, 러시아의 침공 모두에 반대하는 운동이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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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비정하게 논평한다. “비용은 섬뜩한 사망자 수와 유가족의 수로도 수량화될 것이다. 하지만 사상자 수와 더불어 풍부한 자금과 우월한 기술이 재래식 전투를 결정짓는다.

“유럽 군대의 120mm 포탄 재고를 보충하는 비용은 이미 63억 유로[약 8조 원]에 달할지도 모른다. 라인메탈은 우크라이나와 대다수 유럽 국가의 지도자들과 함께, 독일이 기존 입장을 바꿔 레오파르트를 방출하기로 결정한 것에 환호할 것이다.”

더 최근에 우크라이나군은 나토의 최첨단 무기를 이용해 러시아군을 상대로 한 이후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우크라이나는 대리전의 장기짝이 돼 서방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서방의 전쟁 목표를 위한 총알받이가 됐다.

이 충돌은 금방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미국은 러시아에 손실을 입히고 러시아의 무기 재고를 바닥내는 데에 기뻐하고 있다. 푸틴은 이 전쟁에서 물러났다가는 권좌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희망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나토 회원국 모두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것에 있다.

출처: “West supplying tanks to Ukraine threatens major escalation”,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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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반정부 운동이 4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위 참가자 사형 집행 소식도 들려옵니다. 이런 엄혹한 탄압 속에서 왜 이란인들이 시위에 나섰고 저항을 확대해 왔는지 이란인 학생 활동가가 생생한 소식을 전합니다. 또, 중동 문제 전문가와 함께 이 운동의 전망에 관해서도 깊이 다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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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같은 제목으로 열린 1월 18일 노동자연대TV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와 연사의 정리 발언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편집팀이 첨가한 것이다.

앤 알렉산더의 발제: 항쟁의 배경과 전개
이번 시위는 22세의 쿠르드계 학생 마흐사 지나 아미니가 경찰 구금 중이던 9월 17일에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벌어졌습니다.

아미니의 이름과 정체성에 관해 잠깐 얘기하자면, 영어권에서는 흔히 그녀를 “마흐사 아미니”로 부릅니다. 이 이름은 이란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들과 그 자신이 선호했던 이름은 쿠르드식 이름인 “지나”였습니다. 이란에서 쿠르드족의 언어에 대한 억압이 심해서 이름이 두 개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지나”라는 이름은 이란 항쟁의 구호인 “진, 지얀, 아자디”(쿠르드어), “잔, 자데기, 아자디”(페르시아어)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둘 모두 “여성, 삶, 자유”라는 뜻입니다.

그녀의 죽음 이후 시위가 이란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습니다. ‘이란 인권·활동가 통신’의 분석에 따르면, 9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최소 160개 도시, 143개 대학에서 시위가 1115건 벌어졌습니다.

시위는 이란의 31개 주 모두에서 벌어졌지만, 시스탄-발루체스탄과 쿠르디스탄에서 시위가 특히 더 격렬하고 사망자가 많았습니다.

지역별 사망자 수를 살펴보면 이 항쟁의 중요한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시위 사망자가 가장 많은 곳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과 접경한 이란 가장 동쪽의 시스탄-발루체스탄과, 가장 서쪽의 쿠르디스탄이었습니다. 사망자가 세 번째로 많은 곳은 수도 테헤란이었습니다.

지나의 고향인 쿠르디스탄에서 가장 시위가 격렬하고 그에 대한 탄압도 극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쿠르디스탄에서의 저항은 지나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 반응일 뿐 아니라, 쿠르디스탄 지역과 쿠르드 사람들에 대한 오랜 종교적·문화적 억압, 국가 탄압, 경제적 배제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란 반대편의 시스탄-발루체스탄에서도 비슷한 동역학이 작용했습니다. 이란 국가가 그곳의 수니파를 극심하게 탄압해 왔기 때문에 항쟁이 격렬했습니다.

테헤란의 사망자 수도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2019년 11월 이란에서 유가 보조금 폐지를 계기로 시위 물결이 일었을 때 테헤란은 비교적 잠잠했기 때문입니다. 이란 정권은 이번 항쟁을 마치 지역적 요구를 내세운 운동처럼 묘사하려 애쓰지만, 테헤란의 사망자 수가 많다는 것은 이번 항쟁이 이란의 중심지, 특히 수도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미드레자 바셰가니파라하니의 발제: 이란 현지의 학생 항쟁 살펴보기
저는 청소년들의 항쟁 참가에 대해 발제하겠습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지금의 항쟁을 세대 차이나 문화적 변화의 결과로 설명하는 분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항쟁이 단지 문화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제가 말씀드릴 내용은 이란 각지의 교사들·청소년들과 한 대화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저와 대화한 많은 분들은 무엇보다도 차별과 공교육의 낮은 질이 항쟁 참가를 이끌어 낸 중요한 불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예컨대 소외된 지역 출신의 가난한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낮습니다.

이란의 교육 시스템 전반에 여성, 소수자, 소외 지역 출신자들에 대한 체계적 차별이 만연합니다.

바하이교도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혀 있습니다. 발루체스탄이나 쿠르디스탄에 사는 청소년들은 모국어가 페르시아어(이란의 공식 언어)가 아닌데, 자신들의 모국어로 문학과 역사를 교육받을 권리가 없습니다.

몇몇 지역, 특히 발루체스탄에는 학교 자체가 모자랍니다. 그뿐 아니라, 신분을 증명할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입학조차 할 수 없는 아이들도 있고, 학교와 사는 곳이 너무 멀어서 공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지속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교육 관료들이 암송하라고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구호들을 따라하지 않는 식으로 저항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학생들의 요구가 담긴 구호나 노래를 제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이란 공화국 지도자들인 하메네이와 호메이니의 사진을 교과서에서 찢어내거나 벽에서 떼어냈습니다.

항쟁 중에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파업을 벌이자, 학생들이 그 교사들을 지지하며 수업을 거부하기도 했죠. 학생들은 항쟁 중에 사망한 청소년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아동·청소년의 항쟁 참가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문제는, 많은 문화권에서 청소년들을 수동적이고 미성숙한 존재로 본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은 대개 미성숙하고 취약하고 의존적이며, 어른들이 정태적으로 예단해 놓은 욕구를 갖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항쟁에 참가하고 있는 아동·청소년들을 보면, 이들이 교육 상품화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그런 용어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제를 우려하며 ‘왜 교육을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하는가’ 등의 물음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아동·청소년기에 대한 동태적 이해는 학생들과 아이들의 능력이 변화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배우고, 세계를 경험하고, 권리 의식을 갖게 되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탐색하는지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해 줍니다.

아동·청소년은 취약하기도 하지만 능동적이기도 한 존재인 것입니다.

앤 알렉산더의 발제: 노동계급의 구실
이제부터는 이번 항쟁이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다른 항쟁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 안에서 노동자들이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란 노동자들은 ‘시위하는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을 형성해, 임금 인상, 고용 안정,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같은 사회·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를 걸고 싸워 왔습니다.

파업을 부추긴 커다란 요인 하나는 계속 악화되는 보통 사람들의 경제 상황입니다. 경제 위기로 인해 생활 수준이 악화됐는데, 미국이 부과한 혹독한 대(對)이란 제재가 이를 더한층 악화시켰습니다.

이란 정권은 이것을 전적으로 서방 제국주의 탓으로 돌리려 하지만, 많은 이란 노동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동안에도 이란 지배자들이 갈수록 부유해지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

이란 정권은 ─ 그들의 반(反)서방 언사가 무색하게도 ─ 세계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시행한 것과 비슷한 조처들을 도입했습니다. 고용 안정을 공격하고, 계약직을 크게 늘리고, 긴축을 시행하고, 공공 서비스를 삭감하고 민영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항쟁에서 노동자들의 구실이 왜 중요할까요?

중동·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다른 대중 항쟁들, 예컨대 2011년 튀니지·이집트·시리아의 혁명과 2018년 12월에 시작된 수단 혁명의 경험을 보면, 조직 노동자들의 개입이 국가 기구의 지배력에 균열을 내는 데에서 핵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의 역사도 같은 패턴을 확인시켜 줍니다. 수개월의 대중 시위에도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정권에 결정타를 날리고 군대를 위아래로 분열시켜 결국 왕정이 무너질 조건을 조성한 것은 대중 파업, 특히 석유 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이었습니다.

교훈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경험에서 이끌어낼 교훈이 무엇인지 일반화된 결론을 내려 보겠습니다.

현재 이란의 항쟁과 노동자 투쟁의 관계가 아직 꽤 초보적 수준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일부 노동자들이 항쟁의 요구에 연대를 표하면서 파업을 통해 항쟁에 나서고 있다는 징후가 있습니다. 교사 노동자들이 그런 사례입니다.

이란 정권은 이들이 제기하는 사회·경제적 당면 요구에 일정한 양보 조처를 내놓으면서 노동자 투쟁이 항쟁과 연결되지 않게 하려고 애씁니다. 예컨대 일부 공공 부문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안을 제시하고 사용자들에게 체불 임금을 지불하라고 지시했죠.

노동자들에게 정권을 타도할 잠재력이 있다는 점은 많은 이란 활동가들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을 그저 무기나 도구로 이용한다는 관점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전략이 단기적으로 정권을 약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연속혁명론을 통해 주장한 것에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바로 평범한 이란인들의 요구를 성취하려면 정권에 맞선 정치 혁명만이 아니라 이란 지배 계급에 맞선 사회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정권에 맞선 투쟁의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 사이에 놓인 장벽들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는 작업을 하는 조직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조직은 우리의 적이 자본주의 지배계급과 그들의 체제임을 분명하게 이해할 것입니다. 그 지배계급이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둘렀든,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맸든 말입니다.

또, 그런 조직은 서방 지배계급이 아무리 이란 정권을 증오한다고 말한들 그들도 이란 정권과 마찬가지로 같은 체제의 일부임을 이해할 것입니다.

이란에서의 해방은 아래로부터로만 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란 밖에 있는 사회주의자들로서 우리는, 무자비하고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하는 평범한 이란인들에게 반드시 연대를 표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을 계속 건설해야 합니다. 체제 변화는 언제나 국내에서 시작됩니다.

앤 알렉산더의 정리
질문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국 동지들이 이란 상황을 꽤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부터 답해 보겠습니다. 이란의 정치 체제와 그것을 낳은 1979년 이란 혁명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죠.

이에 관해 발언하신 동지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진정한 대중 항쟁이었습니다. 사회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가 모두 제기됐고,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대중 행동이 벌어졌습니다. 이란 혁명은 어떤 반동적 세력이나 호메이니 같은 지도자들이 획책하거나 처음부터 그들이 지배했던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이란에서 일어난 대중 항쟁과 혁명은 중동에서 미국 제국주의가 행사하던 패권에 큰 타격을 줬습니다. 당시 [혁명으로 무너진] 이란 왕정이 미국의 주요 동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호메이니와 그의 동맹자들은 반제국주의적 언사를 이용해 국가 기구에 진입하고 새로운 지배계급을 형성했습니다. 그 지배계급은 국가자본주의적 경제 발전 모델을 바탕으로 국가를 이용해 경제 발전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 호메이니와 그의 동맹자들이 혁명 운동을 공격하고 기층의 단결을 깨뜨린 방법의 하나가 바로 여성 차별 문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실제로 당시 일부 이란 좌파들이 여성들이 독자적 요구를 제기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이 히잡 강제 착용에 반대해선 안 된다거나, 여성들을 일터에서 쫓아내 양육자 구실만 하도록 강요하는 것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죠. 그런 요구보다 서방 제국주의, 즉 미국에 맞서 새 국가와 새 지배계급을 지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말입니다.

이것은 재앙적인 실책이었습니다. 호메이니가 추진한 히잡 강제 착용의 반혁명적 구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란 혁명 이후 여성의 삶
그러나 또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다른 질문과도 관련이 있는 얘기입니다. 이란 혁명 이후에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느냐는 질문이었죠.

여성은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호메이니의 이데올로기는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 정권은 남성들을 전선으로 보내야 했고, 여성들을 ─ 예컨대 공공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 일터로 불러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두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란 여성들은 노동계급의 일부가 됐고, 혁명 이전보다도 더 큰 일부가 된 겁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의복 규정이 갖는 중요성이 있습니다. 의복 규정은 정권이 공적 영역과 일터에서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인 것입니다.

한 동지는 이란 여성들이 일상에서 반동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경험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거기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이란 여성들이 지난 40년 동안 집에만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란 여성들이 공적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시위에서도 능동적이고 일터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지난 10~20년 동안 벌어진 다른 시위에서도 여성들은 최전선에 있었고 그러다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이란의 항쟁이 이란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변화는 여성의 오랜 저항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서방 개입은 재앙 낳을 것
마지막으로, 서방 정부들이 하는 구실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동지가 지적했듯이 서방 정부들은 이번 항쟁에서 어떠한 긍정적인 구실도 할 수 없습니다.

서방 정부들의 위선을 잘 보여 주는 많은 사례들이 제시됐는데,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미국·영국 등 서방 정부들은 여성의 권리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이들은 반동적인 사우디아라비아 정권과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서방 정부들이 여러 방법으로 이란 상황에 개입하려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꼭 군사 개입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예컨대 왕정복고를 추구하는 자들처럼 반동적이고 우파적인 목소리를 내는 망명자들을 지원하는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란인 활동가들이나 페이먼 자파리 같은 이란인 학자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란 내에서 왕정에 대한 지지가 별로 강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2019년 11월 이란에서 유가 보조금 삭감에 따른 연료비 폭등에 반발해 자생적으로 시위가 일어났을 때, 페이먼 자파리는 당시 시위에서 제기된 요구와 슬로건을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 일부가 왕정 지지 슬로건을 외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매우 소수였다고 합니다.

또 자파리는, 평범한 사람들 중 일부가 정권이 악마화하고 적으로 삼는 정치 세력의 언어를 차용해 정권을 공격하려 했기 때문에 그런 구호가 나왔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왕정에 대한 지지가 광범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죠.

노동계급 저항과 국제 연대
여기서 다시 조직된 노동계급의 중요성이라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노동계급이 독립적으로 조직돼 있을수록, 또 그들이 이란 지배계급과 국가 기구의 지배력을 마비시키고 분쇄할 조직적 저항에서 주도적인 구실을 할수록, 왕정복고주의자들 같은 우익 세력이나 항쟁의 편을 자처하며 위선을 떠는 서방 정부들 같은 엉뚱한 세력이 항쟁을 자기들 뜻대로 끌고 가는 일을 더 잘 막을 수 있습니다.

자국 정부에 맞서는 독립적인 노동자 조직과 좌파 단체들의 국제적 연대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란 정부도, 이란 정부와 대결하는 다른 정부도 아닌, 다른 대안이 있음을 이란인들이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연대와 국제주의를 고취하는 것이 이란인들을 돕는 길입니다.

예컨대 한국의 교사들과 학생들이 정권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이란의 교사 노동조합이 학생들에게 간략한 연대 메시지를 보낸다면, 이란인들에게 매우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하미드 동지와 같은 이란인 활동가들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이란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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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학회 발표 마쳤다. 동북아역사재단 발표와 달리 사회자 질문만 두 개 나왔지만, 청중의 집중도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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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은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의 표지 디자인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

오늘은 책갈피의 신간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표지 디자이너가 직접 이야기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 드리려 합니다~

이번 신간의 표지 디자인은 “평범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믿는 디자이너” 김민정 님이 맡아 주셨습니다~👏👏👏

게시물 사진은 김민정 님이 표지 디자인을 해 나가는 과정을 직접 찍어 보내 주신 것이에요!

그리고 아래 공유 드리는 김민정 님의 코멘트를 읽어 보시면,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표지 디자인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와 참신한 아이디어를 새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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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치와 남녀대립적 페미니즘> 표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짧은 후기✌️)

알록달록 무지개색 도형들은 다양한 정체성 정치로 뭉친 사람들을 의미해요. 그런데 그 속에는 곰팡이처럼 눈치없이 껴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자의 눈으로 정체성 정치를 보았을 때 드러나는 곰팡이, 지배계급입니다.

정체성 정치는 교차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서로 연결되려고 하지만 연결은 튕기기도 하고, 온전히 연결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는 애초에 분열하려고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차별을 없애려고 뭉쳐서 싸우려고 한 사람들의 정치였다는 걸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곰팡이같은 우파와 지배계급의 정체성 정치와 페미니즘 비난에 맞서서요.

그래서 뒷면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바람을 담아봤습니다. 우리 다 같이 노동계급으로 뭉쳐서 함께 싸우자고. 한 줌도 안되는 지배계급에 맞서서 다 같이 싸우자고.

만들면서 너무너무 어려웠지만, 출판사 동지들, 디자인 조언해준 동지들 덕분에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표지에 담긴 아이디어들은 모두 동지들과 토론하면서 나온 것들이에요. 저 혼자했다면 분명 산으로 가고 말았을 것..^^ 도와주신 동지들 모두모두 감사해요~!!

그리구 요번 책에는 정체성 정치 뿐만 아니라 한국 내 페미니즘 쟁점도 다룬 책이니 많이들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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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정치 #래디컬페미니즘 #급진적페미니즘 #급진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젠더갈등 #이대남 #불법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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