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 - 국가자본주의론의 분석
토니 클리프 지음, 정성진 옮김 / 책갈피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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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1일에 페북에 쓴 글.

토니 클리프의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국가자본주의론의 분석>에서 인상깊은 것은 소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의 관점으로 소련 사회를 분석하는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에서 소련에서 생산성을 증가시킨 노동자들에게 주는 스타하노프 운동 포상자들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할 때, 그는 스타하노프운동은 ˝자본가들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관점에서는 철저한 친자본가적 운동˝이라고 규정짓고, 일부 소련노동자들이 스타하노프 수상자들을 살해한다는 사례를 든 것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포로로 잡힌 다른 나라 군대보다 유독 소련군 포로나 장성 중에 소련에 대한 환멸감 때문에 나치독일 군대에 자원하거나, 혹은 전후에 소련으로 귀국하는 것을 거부한 것을 언급한다. 물론 국가주도하에 노동자운동을 철저히 분쇄하고, 생산성을 올렸다는데서, 나치독일과 소련이 공통점이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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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현대사 - 해방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역사유물론으로 보기
김동철.김문성 지음 / 책갈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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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87년 6월항쟁 34주년입니다.
6월 항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지만 6월항쟁은 어느 날 갑자기 분출한 항쟁은 아니었습니다. 6월 항쟁은 그 전의 크고 작은 투쟁들이 누적돼 온 결과였습니다.
1980년 광주항쟁은 물리적으로 패배했지만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은 정치적·조직적으로 단단해졌습니다. 전두환 독재 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노동계급은 끈질기게 저항했고 학생운동도 점차 성장하며 시위 규모가 확대됐습니다.
결국 전두환은 대중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1983년 유화조처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화조처는 도리어 투쟁할 자신감을 높였습니다. 학생들은 전국적 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욱 증가했습니다. 그런 상황은 1985년 2월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다시 노동자와 학생들의 저항 정서를 더 고조시켰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유화조처가 먹히지 않고 오히려 저항이 더 거세지자 다시 탄압을 강화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도 발생한 것입니다.
한편 80년대 경제호황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정권의 핵심부와 연결된 부패문제는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1986년 필리핀에서 대중적 저항으로 독재자 마르코스가 쫓겨난 것도 남한 대중의 자신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중운동이 독재자를 굴복시키다

6월 10일 거리에서는 60년 4월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경찰은 무장해제를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경찰이 아예 진압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6월 18일과 26일에는 6월 10일보다 더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섰습니다. 이 투쟁을 실제 전진시킨 것은 주로 학생과 노동자 등 거리의 대중이었습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6월항쟁 기간 내내 동요하며 일관되게 투쟁을 이끌고 나갈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결국 대중운동의 전진 속에서 전두환 독재 정권은 굴복했습니다.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받아들여졌습니다.
투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6월항쟁은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제기됐고 6월항쟁의 성과도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그 위력은 엄청났습니다. 7~9월 사이에 벌어진 파업은 1987년 이전 20년 동안 발생한 전체 파업건수를 능가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능동성과 자신감은 빛을 발했습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6월항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문재인 정부는 자신이 6월항쟁을 ‘계승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1987년 당시 동요하는 야당과 달리 청년 학생과 노동자들이 거리와 작업장에서 자신들의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6월항쟁의 성과가 반동으로 파괴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6월항쟁과 뒤이은 7~9월 노동자 투쟁은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 쟁취뿐 아니라 자유와 해방을 향한 억압받는 사람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었습니다. 6월 항쟁은 오늘날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자본주의 사회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기억하고 배워야 할 역사인 것입니다. 6월항쟁을 명확하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을 추천합니다.

👉[기사] 항쟁에 참가한 사회주의자에게서 듣는 1987년 6월 항쟁: “6월 항쟁은 우리의 역사로 삼아야 할 위대한 계급의 기억” https://wspaper.org/must-read/19894
👉 [기사] 1987년 6월 항쟁 30주년: 교훈과 오늘날의 의미 https://wspaper.org/article/18782
👉 [책] 《최근 한국 현대사》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됐냐고? 궁금한 청년들 주목! https://stu.workerssolidarity.org/a/8121
👉 [영화] 새 세대도 1987년 저항의 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 〈1987〉 https://wspaper.org/article/1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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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데믹 이후 경제는 살아날까?
https://wspaper.org/m/25703

다음은 5월 9일(현지 시각)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주최한 ‘맑시즘 온라인 2021’에서 열린 같은 제목의 토론회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와 SWP 중앙위원이자 혁명적 좌파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인 조셉 추나라가 한 강연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 ] 안의 내용은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녹취를 해 준 한가은 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마이클 로버츠 — ‘반짝’ 회복인가, 지속적 회복인가, 누구의 회복인가?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고 서비스 산업 등에서 고용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 해도 자본주의가 새로 활기를 얻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에 찾아온 ‘광란의 20년대’ 같은 대호황이 온다고 기대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수익성을 끌어올릴 다른 모든 조건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능성 큰 시나리오는 정체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다. 즉, 낮은 성장률, 낮은 물가상승률, 더딘 고용 증가, 낮은 임금이 계속되고 코로나19 직전 상황과 진정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조셉 추나라 — 삼중 위기와 자본주의의 장기적 변화

그런데 이러면 수익성 낮은 투자가 정리되지 않고, 부채 부담이 체제 전반에 쌓이게 된다.

요컨대, 같은 패턴이 되풀이될 것이다. 경기가 침체하고, 좀비 기업이 양산되고, 자산 거품이 일고, 금융이 불안정해지고, 부채가 늘어나며, 자본이 노동자들을 더한층 쥐어짜 불평등이 심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진정한 대안은 고삐 풀린 이윤 추구가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필요에 기초한 새로운 경제를 쟁취하기 위한 우리 편의 투쟁뿐이다.

출처: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유튜브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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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
https://wspaper.org/m/25702

이 글은 6월 4일 노동자연대가 연 온라인 토론회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에서 필자가 발제한 내용이다.

파시즘의 독특함

본론에 앞서 다른 종류의 극우와 구별되는 파시즘의 독특함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만큼 개념에 혼란이 많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극우의 일종이지만 그것과 구별되는 특수한 종류의 극우로 중하층 중간계급에 기반한 반동적 대중 운동이다.

첫째, 파시즘 운동은 통상의 극우와 사회적 기반 면에서 차이가 있다. 파시즘은 중간계급을, 즉 영세 상공인이나 전문직 등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이다. 이런 사회적 기반 때문에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는 극도로 모순된다.

둘째, 실천과 사회적 효과 면에서 차이가 있다. (군부독재를 제외하면) 여느 극우 정치인들이 의회제 안에서 극우 정책 채택을 목표로 한다면, 파시즘은 의회제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고 노동계급의 운동과 조직을 모조리 분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파시즘은 이를 통해 노동계급을 원자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셋째, 형태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가령 극우 정치인들은 우파 엘리트 정당을 통해 활동하고 우익 군사 쿠데타의 경우에도 군 장성들만이 관여하는(사병을 명령으로 동원하는) 것과는 달리 파시즘은 집권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반동적 대중 운동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도 그런 운동에서 생겨난다.

오늘날 극우와 파시즘이 부상하게 된 배경은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세계경제 위기다.

2008년 금융 공황은 그전 수십 년 동안 득세해 온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보여 줬는데, 각국 지배자들은 막대한 돈을 퍼부어 위기에 책임이 있는 은행과 기업들은 살리고 그 대가를 서민과 노동계급에게 떠넘겼다.

나라마다 구체적 양상은 다르지만, 10년의 궤적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위기의 발생 → 중도 좌우파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긴축 추진 → 저항과 반란의 분출 → 정치적 급진화와 양극화 → 좌파 개혁주의가 성장하거나 우파가 집권하던 곳에서는 중도좌파가 반사이익을 얻음 → 운동의 패배, 좌파 개혁주의나 중도좌파의 실패(또는 배신) → 극우와 파시즘의 성장.

오늘날 극우의 특징: 고전적 파시즘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즉,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그 때문에 생겨난 대중적 울분과 좌절감을 먹고 자라고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또, 그렇게 자라면서 공식정치의 지형을 더욱 오른쪽으로 옮기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1920~1930년대와 달리 지금은 계급투쟁이 강력하지 않고, 그래서 좌파 일반과 혁명적 좌파가 약한 상황에서 극우가 성장한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이 때문인지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은 이데올로기 면에서 노동계급의 저항과 혁명 그리고 좌파에 반대하는 반(反)혁명적 요소를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선전에서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이 둘째 차이점이다.

셋째 차이점은 오늘날 극우와 파시즘 세력들 사이에서는 그 선조들과 비교해 선거에 출마해 지지를 얻는 방식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물론 히틀러도 ‘우리는 선거로 집권한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치당은 수십만 명 규모의 돌격대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숨기지 않았고 그 힘을 거리에서 사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당시는 제1차세계대전과 뒤이은 혁명 물결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고, 여러 나라에서 정치 폭력이 난무했다. 특히 참전 경험 때문에 폭력 사용이 익숙한 인자들이 많았다. 고전적 파시즘 운동은 바로 그런 인자들에서 초기 간부를 구했다.

넷째 차이점은 오늘날의 극우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만에서 수혜를 입고 있지만 뚜렷한 경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 생산이 상당히 국제화돼 있는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물론 유럽의 극우는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론을 주장하고, 미국의 트럼프는 주로는 중국과, 그리고 심지어는 동맹들과도 관세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 외에는 불신받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무솔리니는 집권 후 국가자본주의로 선회했고, 히틀러도 그렇게 했다. 그 과정에서 히틀러는 자신을 오랫동안 후원했던 기업을 몰수해서 국유화해 버리기도 했다.

셋째 차이점과 넷째 차이점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류 우파와 극우, 파시즘 간 차이가 별로 두드러지지 않고 흐려 보인다.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겉으로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거리를 두려 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러나 주류 우파의 우선회가 극우·파시즘에게 성장의 토양을 제공하는 식의 상호작용, 극우·파시즘의 지도자들과 기층 운동의 상호작용은 진정한 파시즘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가 파시스트가 아닌데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극우와 파시스트를 한껏 고무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트럼프의 지지 기반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미국의 백인 하층 노동계급이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라는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트럼프의 계급적 기반은 미국의 “룸펜 자본가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과 달리 주로 미국 국내 시장에서 영업하는 자본가들이다. 지난해 중반에 미국 코로나19 사망자의 25퍼센트가 요양병원에서 나왔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미국 요양병원 체인 기업이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 세력이었다.

1월 6일 의사당을 습격했던 무리들도 대체로는 유복한 전문직들이었다. 그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들의 40퍼센트는 기업 경영주이거나 화이트칼라 노동자였고, 60퍼센트는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을 탈세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것은 수동적 지지이고 상대 후보가 너무 별볼일없는 등의 매개 요소들이 많이 작용한다. 트럼프가 많은 표를 얻은 것은 경계할 일이지만, 수동적 투표 행위와 능동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회세력에 기반을 두고 반트럼프주의 운동(그리고 반파시즘 운동)을 구축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맞설 것인가?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주장한 공동전선이다.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 광범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서구의 극우가 인종차별과 이슬람혐오를 주력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서구에서는 그에 맞서는 게 중요할 것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며 대중의 삶을 파괴해 극우와 파시즘이 성장할 토양을 마련해 온 중도파와는 단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도파와 연계하는 것이 선거에서는 단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어도(심지어 입각을 할 수도 있지만), 계급투쟁을 활성화하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둘째는 혁명적 좌파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좌파 개혁주의의 성장과 실패 경험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선거와 투쟁의 관계 문제다. 모든 선거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선거적 노력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는 것에 종속돼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른바 ‘정치’로 대체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하면서 노동계급 운동이 자신의 힘으로 정치적 목표들을 달성하게 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좌파가 있어야 공동전선도 효과적일 수 있다. 갈수록 혁명적 좌파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 등의 집권은 그 나라 국민의 우경화를 보여 주는가?

올해 4월 한국의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했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들이 우경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정부와 민주당의 개혁 배신이 불러 온 환멸과 분노가 굴절되게 표현된 결과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트럼프가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가 집권한 것도 그 사회가 우경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트럼프 집권 직후에 성차별에 반대하는 대중적 시위가 벌어졌고, 2020년에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는 전임 정권에 대한 심판 여론에 반사이익을 얻어 집권했다.

프랑스는 좌파가 꽤 강력한데도 파시즘이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황의 불가피성보다는 좌파의 주관적 약점이 더 두드러진다. 첫째는 프랑스 좌파들의 종파적 태도와 공동전선 전통의 부재다. 예를 들어, 2009년 반자본주의신당(NPA)의 창당은 큰 성공을 거뒀다. NPA는 혁명적 좌파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이 중심이 돼, 활동적인 반자본주의자들을 끌어들이며 탄생했다. 기존에 LCR의 당원이 2000명이었는데, 반자본주의신당의 창당대회 때 당원은 9000명이었다.

한편, 사회당에서 좌파적으로 이탈한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 장뤽 멜랑숑과 공산당이 중심이 된 좌파전선도 비슷한 시기에 성장하고 있었다. 좌파전선의 정치는 전체로 보아 좌파적 개혁주의였다. NPA는 좌파전선과의 협력이나 공동 활동을 거부했다. 사회당 정부의 긴축과 마린 르펜의 성장에 맞서 공동으로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밖에도 프랑스 좌파와 노동조합들은 노동절 집회도 따로 개최하는 등 협력을 잘 안 하기로 유명하다.

둘째는 이슬람혐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가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법률로 금지하는 인종차별적 공격을 할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슬람혐오가 인종차별의 일종이고 이에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결과인데, 이는 세속주의(라이시테)와 이슬람에 대한 오해가 작용한 결과였다. 그래도 소수이지만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는 혁명적 좌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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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로사 해결 외면하는 정부와 사용자: 택배 노동자 투쟁 정당하다
https://wspaper.org/m/25713

지난 1월의 1차 사회적 합의 이후에도 택배사들은 분류 인력 충원을 미적거렸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파업 돌입 직전까지 가 일부나마 이행하게 한 바 있다. 일부 터미널에서는 1차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현장 투쟁을 벌여 분류 인력을 받아 내기도 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보여 준 이런 투쟁 잠재력을 이번 투쟁에서 적극 발휘해야 실질적인 조건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지지 여론도 나쁘지 않다.

다시 시작되는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에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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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과 여러 상품을 택배로 배송받은 처지에서 파업에 따른 불편을 감수할 것입니다. 택배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긴다면, 택배노동자들의 일할 맛이 더 나서 안전하게 상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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