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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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6월 4일 노동자연대가 연 온라인 토론회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에서 필자가 발제한 내용이다.

파시즘의 독특함

본론에 앞서 다른 종류의 극우와 구별되는 파시즘의 독특함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만큼 개념에 혼란이 많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극우의 일종이지만 그것과 구별되는 특수한 종류의 극우로 중하층 중간계급에 기반한 반동적 대중 운동이다.

첫째, 파시즘 운동은 통상의 극우와 사회적 기반 면에서 차이가 있다. 파시즘은 중간계급을, 즉 영세 상공인이나 전문직 등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이다. 이런 사회적 기반 때문에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는 극도로 모순된다.

둘째, 실천과 사회적 효과 면에서 차이가 있다. (군부독재를 제외하면) 여느 극우 정치인들이 의회제 안에서 극우 정책 채택을 목표로 한다면, 파시즘은 의회제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고 노동계급의 운동과 조직을 모조리 분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파시즘은 이를 통해 노동계급을 원자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셋째, 형태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가령 극우 정치인들은 우파 엘리트 정당을 통해 활동하고 우익 군사 쿠데타의 경우에도 군 장성들만이 관여하는(사병을 명령으로 동원하는) 것과는 달리 파시즘은 집권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반동적 대중 운동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도 그런 운동에서 생겨난다.

오늘날 극우와 파시즘이 부상하게 된 배경은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세계경제 위기다.

2008년 금융 공황은 그전 수십 년 동안 득세해 온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보여 줬는데, 각국 지배자들은 막대한 돈을 퍼부어 위기에 책임이 있는 은행과 기업들은 살리고 그 대가를 서민과 노동계급에게 떠넘겼다.

나라마다 구체적 양상은 다르지만, 10년의 궤적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위기의 발생 → 중도 좌우파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긴축 추진 → 저항과 반란의 분출 → 정치적 급진화와 양극화 → 좌파 개혁주의가 성장하거나 우파가 집권하던 곳에서는 중도좌파가 반사이익을 얻음 → 운동의 패배, 좌파 개혁주의나 중도좌파의 실패(또는 배신) → 극우와 파시즘의 성장.

오늘날 극우의 특징: 고전적 파시즘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즉,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그 때문에 생겨난 대중적 울분과 좌절감을 먹고 자라고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또, 그렇게 자라면서 공식정치의 지형을 더욱 오른쪽으로 옮기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1920~1930년대와 달리 지금은 계급투쟁이 강력하지 않고, 그래서 좌파 일반과 혁명적 좌파가 약한 상황에서 극우가 성장한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이 때문인지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은 이데올로기 면에서 노동계급의 저항과 혁명 그리고 좌파에 반대하는 반(反)혁명적 요소를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선전에서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이 둘째 차이점이다.

셋째 차이점은 오늘날 극우와 파시즘 세력들 사이에서는 그 선조들과 비교해 선거에 출마해 지지를 얻는 방식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물론 히틀러도 ‘우리는 선거로 집권한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치당은 수십만 명 규모의 돌격대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숨기지 않았고 그 힘을 거리에서 사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당시는 제1차세계대전과 뒤이은 혁명 물결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고, 여러 나라에서 정치 폭력이 난무했다. 특히 참전 경험 때문에 폭력 사용이 익숙한 인자들이 많았다. 고전적 파시즘 운동은 바로 그런 인자들에서 초기 간부를 구했다.

넷째 차이점은 오늘날의 극우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만에서 수혜를 입고 있지만 뚜렷한 경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 생산이 상당히 국제화돼 있는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물론 유럽의 극우는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론을 주장하고, 미국의 트럼프는 주로는 중국과, 그리고 심지어는 동맹들과도 관세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 외에는 불신받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무솔리니는 집권 후 국가자본주의로 선회했고, 히틀러도 그렇게 했다. 그 과정에서 히틀러는 자신을 오랫동안 후원했던 기업을 몰수해서 국유화해 버리기도 했다.

셋째 차이점과 넷째 차이점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류 우파와 극우, 파시즘 간 차이가 별로 두드러지지 않고 흐려 보인다.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겉으로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거리를 두려 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러나 주류 우파의 우선회가 극우·파시즘에게 성장의 토양을 제공하는 식의 상호작용, 극우·파시즘의 지도자들과 기층 운동의 상호작용은 진정한 파시즘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가 파시스트가 아닌데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극우와 파시스트를 한껏 고무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트럼프의 지지 기반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미국의 백인 하층 노동계급이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라는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트럼프의 계급적 기반은 미국의 “룸펜 자본가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과 달리 주로 미국 국내 시장에서 영업하는 자본가들이다. 지난해 중반에 미국 코로나19 사망자의 25퍼센트가 요양병원에서 나왔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미국 요양병원 체인 기업이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 세력이었다.

1월 6일 의사당을 습격했던 무리들도 대체로는 유복한 전문직들이었다. 그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들의 40퍼센트는 기업 경영주이거나 화이트칼라 노동자였고, 60퍼센트는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을 탈세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것은 수동적 지지이고 상대 후보가 너무 별볼일없는 등의 매개 요소들이 많이 작용한다. 트럼프가 많은 표를 얻은 것은 경계할 일이지만, 수동적 투표 행위와 능동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회세력에 기반을 두고 반트럼프주의 운동(그리고 반파시즘 운동)을 구축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맞설 것인가?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주장한 공동전선이다.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 광범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서구의 극우가 인종차별과 이슬람혐오를 주력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서구에서는 그에 맞서는 게 중요할 것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며 대중의 삶을 파괴해 극우와 파시즘이 성장할 토양을 마련해 온 중도파와는 단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도파와 연계하는 것이 선거에서는 단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어도(심지어 입각을 할 수도 있지만), 계급투쟁을 활성화하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둘째는 혁명적 좌파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좌파 개혁주의의 성장과 실패 경험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선거와 투쟁의 관계 문제다. 모든 선거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선거적 노력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는 것에 종속돼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른바 ‘정치’로 대체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하면서 노동계급 운동이 자신의 힘으로 정치적 목표들을 달성하게 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좌파가 있어야 공동전선도 효과적일 수 있다. 갈수록 혁명적 좌파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 등의 집권은 그 나라 국민의 우경화를 보여 주는가?

올해 4월 한국의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했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들이 우경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정부와 민주당의 개혁 배신이 불러 온 환멸과 분노가 굴절되게 표현된 결과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트럼프가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가 집권한 것도 그 사회가 우경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트럼프 집권 직후에 성차별에 반대하는 대중적 시위가 벌어졌고, 2020년에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는 전임 정권에 대한 심판 여론에 반사이익을 얻어 집권했다.

프랑스는 좌파가 꽤 강력한데도 파시즘이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황의 불가피성보다는 좌파의 주관적 약점이 더 두드러진다. 첫째는 프랑스 좌파들의 종파적 태도와 공동전선 전통의 부재다. 예를 들어, 2009년 반자본주의신당(NPA)의 창당은 큰 성공을 거뒀다. NPA는 혁명적 좌파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이 중심이 돼, 활동적인 반자본주의자들을 끌어들이며 탄생했다. 기존에 LCR의 당원이 2000명이었는데, 반자본주의신당의 창당대회 때 당원은 9000명이었다.

한편, 사회당에서 좌파적으로 이탈한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 장뤽 멜랑숑과 공산당이 중심이 된 좌파전선도 비슷한 시기에 성장하고 있었다. 좌파전선의 정치는 전체로 보아 좌파적 개혁주의였다. NPA는 좌파전선과의 협력이나 공동 활동을 거부했다. 사회당 정부의 긴축과 마린 르펜의 성장에 맞서 공동으로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밖에도 프랑스 좌파와 노동조합들은 노동절 집회도 따로 개최하는 등 협력을 잘 안 하기로 유명하다.

둘째는 이슬람혐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가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법률로 금지하는 인종차별적 공격을 할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슬람혐오가 인종차별의 일종이고 이에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결과인데, 이는 세속주의(라이시테)와 이슬람에 대한 오해가 작용한 결과였다. 그래도 소수이지만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는 혁명적 좌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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