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7일 국제도서주간

국제도서주간입니다.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과 가장 가까운 곳의 책을 집어 들고, 52페이지를 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문장을 ‘상태 Update Status‘에 포스팅합니다. 책 제목은 알리지 마시고 이 규칙도 당신의 상태 status의 일부로 옮겨 주십시오.

It‘s international book week. The rules: grab the closest book to you, turn to page 52, post the 5th sentence as your status. Don‘t mention the title. Copy the rules as part of your status.

→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이 거래야말로 모든 잉여가치를 낳게 한다.

→ 또한 ‘테오필락트 시모카데스‘의 역사서에 아바르족이 투르크에 의해 멸망한 후 그중 일부가 ‘타우가스(중국)‘로 도주했다고 전하는데 상기한 중국사서에도 유연이 돌궐에 의해 패망된 후 그 중 일부가 서위로 도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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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가 어울리지 않는 시대

-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산다 그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지 않고 그의 얼굴은 깨끗하다
정원의 나무가 기형적인 것은
토양이 나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무를 비난한다 불구자라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푸른 조각배나 해협의 한가로운 돛을
나는 보지 않는다 내가 보는 것은
어부들의 닳아질 대로 닳아진 어망뿐이다
왜 나는 사십대에 허리가 구부러진
토지 없는 농부에 대해서만 노래하는가
처녀들의 유방은 옛날처럼 따뜻한데
나의 시에 운율을 맞추면 나에게는 그것이
겉멋을 부리는 것처럼 생각되기까지 한다
나의 내부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꽃으로 만발한 사과나무에 대한 도취와
저 칠쟁이의 연설에 대한 분노이다
그러나 후자만이 나로 하여금
당장에 펜을 잡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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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Theory (Paperback)
Eagleton, Terry / Basic Books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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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4일

The early 1970s - the very highpoint of radical dissent - also saw the first glimmerings of the postmodern culture which was eventually to take over from it. The halcyon days of cultural theory lasted until about 1980 - several years after the oil crisis which heralded a global recession, the victory of the radical right and the ebbing of revolutionary hopes. Cultural theory was cut loose from its moment of origin, yet tried in its way to keep that moment warm. Like war, it became the continuation of politics by other means. The emancipation which had failed in the streets and factories could be acted out instead in erotic intensities or the floating signifier.(29) Discourse and desire came to stand in for the Godard and Guevara that had failed. At the same time, some of the new ideas were the first straws in the wind of post-political pessimism which was about to blow through the West.(29-30)
- Terry Eagleton, 2003, 『After theory』

급진적 반체제 인사들이 인기를 누리던 1970년대 초는 곧 그 인기를 이어받게 될 포스트모던한 문화가 희미하게나마 처음 빛을 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문화이론의 태평성세는 1980년경까지, 그러니까 전지구적 경기 침체, 극우파의 득세, 혁명을 향한 꿈의 퇴조 등을 예고했던 석유 파동 이후의 몇 년까지 쭉 이어졌다. 문화이론은 자신이 태어났던 시기와 단절했지만 그 시기를 자기 식대로 계속 간직하려고 애썼다. 마치 전쟁처럼, 문화이론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 되어갔다.(49) 해방[또는 해방을 향한 열정]은 거리와 공장에서 실패했지만, 그 대신에 에로틱한 강렬함이나 부유하는 시니피앙 안에서 재연될 수 있었다.(49-50) 담론과 욕망이 좌절한 고다르와 게바라의 대역이 되어준 것이다. 이와 동시에 몇몇 새로운 사상은 머지않아 서구를 휩쓸게 될 탈정치적 염세주의의 등장을 알려주는 최초의 조짐이 되어갔다.(50)
-테리 이글턴, 『이론 이후』, 2010

Discourse and desire came to stand in for the Godard and Guevara that had failed. At the same time, some of the new ideas were the first straws in the wind of post-political pessimism which was about to blow through the West.
- Terry Eagleton, 2003, 『After theory』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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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arly 1970s - the very highpoint of radical dissent - also saw the first glimmerings of the postmodern culture which was eventually to take over from it. The halcyon days of cultural theory lasted until about 1980 - several years after the oil crisis which heralded a global recession, the victory of the radical right and the ebbing of revolutionary hopes. Cultural theory was cut loose from its moment of origin, yet tried in its way to keep that moment warm. Like war, it became the continuation of politics by other means. The emancipation which had failed in the streets and factories could be acted out instead in erotic intensities or the floating signifier. Discourse and desire came to stand in for the Godard and Guevara that had failed. At the same time, some of the new ideas were the first straws in the wind of post-political pessimism which was about to blow through the West.
- Terry Eagleton, 2003, 『After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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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4일

The early 1970s - the very highpoint of radical dissent - also saw the first glimmerings of the postmodern culture which was eventually to take over from it. The halcyon days of cultural theory lasted until about 1980 - several years after the oil crisis which heralded a global recession, the victory of the radical right and the ebbing of revolutionary hopes. Cultural theory was cut loose from its moment of origin, yet tried in its way to keep that moment warm. Like war, it became the continuation of politics by other means. The emancipation which had failed in the streets and factories could be acted out instead in erotic intensities or the floating signifier.(29) Discourse and desire came to stand in for the Godard and Guevara that had failed. At the same time, some of the new ideas were the first straws in the wind of post-political pessimism which was about to blow through the West.(29-30)
- Terry Eagleton, 2003, 『After theory』

급진적 반체제 인사들이 인기를 누리던 1970년대 초는 곧 그 인기를 이어받게 될 포스트모던한 문화가 희미하게나마 처음 빛을 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문화이론의 태평성세는 1980년경까지, 그러니까 전지구적 경기 침체, 극우파의 득세, 혁명을 향한 꿈의 퇴조 등을 예고했던 석유 파동 이후의 몇 년까지 쭉 이어졌다. 문화이론은 자신이 태어났던 시기와 단절했지만 그 시기를 자기 식대로 계속 간직하려고 애썼다. 마치 전쟁처럼, 문화이론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 되어갔다.(49) 해방[또는 해방을 향한 열정]은 거리와 공장에서 실패했지만, 그 대신에 에로틱한 강렬함이나 부유하는 시니피앙 안에서 재연될 수 있었다.(49-50) 담론과 욕망이 좌절한 고다르와 게바라의 대역이 되어준 것이다. 이와 동시에 몇몇 새로운 사상은 머지않아 서구를 휩쓸게 될 탈정치적 염세주의의 등장을 알려주는 최초의 조짐이 되어갔다.(50)
-테리 이글턴, 『이론 이후』, 2010


급진적 반체제 인사들이 인기를 누리던 1970년대 초는 곧 그 인기를 이어받게 될 포스트모던한 문화가 희미하게나마 처음 빛을 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문화이론의 태평성세는 1980년경까지, 그러니까 전지구적 경기 침체, 극우파의 득세, 혁명을 향한 꿈의 퇴조 등을 예고했던 석유 파동 이후의 몇 년까지 쭉 이어졌다. 문화이론은 자신이 태어났던 시기와 단절했지만 그 시기를 자기 식대로 계속 간직하려고 애썼다. 마치 전쟁처럼, 문화이론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 되어갔다.(49)
-테리 이글턴, 『이론 이후』, 2010 - P49

해방[또는 해방을 향한 열정]은 거리와 공장에서 실패했지만, 그 대신에 에로틱한 강렬함이나 부유하는 시니피앙 안에서 재연될 수 있었다.(49-50) 담론과 욕망이 좌절한 고다르와 게바라의 대역이 되어준 것이다. 이와 동시에 몇몇 새로운 사상은 머지않아 서구를 휩쓸게 될 탈정치적 염세주의의 등장을 알려주는 최초의 조짐이 되어갔다.(50)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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