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크어 소개
우즈베크어는 투르크어의 일종이다. 투르크어 계통에는 터키어, 아제리어, 투르크멘어,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타타르어, 위구르어 등이 있는데, 전 세계 약 1억 5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사용한다. 이 중 우즈베크어와는 위구르어(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위구르인의 모국어)가 가장 비슷하다. 이들 투르크어 계통 언어들은 서로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문장 구조‘이다. 이들 언어를 소위 "교착어(膠着語)"라고 부르는데, 명사와 동사 원형에 접미사를 붙여 문법적 기능이 표현된다. - P18
우즈베크어 사용 인구는 약 3,300만 명으로 주로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며, 그 밖에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아프가니스탄(제3위 공식어)에도 우즈베크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있다. 우즈베크어 어휘에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가 많이 발견되며, 또한 소련의 통치를 받을 당시 러시아어에서 가져온 단어(행정 및 과학 관련 용어)들도 많이 찾을 수 있다. 1991년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은 이러한 러시아어 단어들을 우즈베크어로 바꾸는 작업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 P19
우즈베크어 표기 변천사우즈베크어는 20세기에만 여러 차례 표기 문자가 바뀌는 경험을 했다. 1923년까지 우즈베크어는 수 세기 동안 중앙아시아 언어들의 표기 문자였던 아랍어 문자에 수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1929년 라틴 문자로 대체되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1940년 키릴 문자가 우즈베크어 표기 문자로 채택되었다. 이후 약 50여 년이 지난 후인 1993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라틴 문자를 우즈베크어 공식 표기 문자로 선언했다. 이 교재에서는 1996년 최종 수정을 거친 새 라틴 문자를 사용하여 우즈베크어를 설명하고 있다. 이미 영어나 그 밖의 라틴 문자를 익힌 이들에게는 우즈베크어를 라틴 문자로 배우는 것이 키릴 문자로 배우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도 많은 전문 서적과 - P20
문학작품 및 사전들은 키릴 문자로 출판되기 때문에 고급 수준으로 갈수록 키릴 문자에 익숙해지는 것 역시 우즈베크어를 배우는 데 필요하다. 라틴 문자로 표기된 우즈베크어 문자 순서와 키릴 문자로 표기된 우즈베크어 문자 순서가 서로 다르니 각각 어떤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디 확인할 필요가 있다. - P21
인도와 네루에 대한 내용
1920년 레닌은 동쪽을 바라보며 ‘거기에서 소비에트가 가능하다. 그것은 노동자 소비에트가 아니라, 농민 소비에트 또는 - P65
노력자 소비에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략) 소비에트 연방 내의 망명자들이 참여한 인도혁명협회Indian Revolutionary Association는 레닌에게 노트를 보냈다. ‘인도 혁명가들이 모든 피억압 계급과 민족의 해방, 특히 인도의 해방을 위해 소비에트 러시아가 수행한 위대한 투쟁에 대한 깊은 감사와 찬양을 표현한다.‘고 협의는 결의했다. 레닌은 이 결의안에 대한 답변을 썼고, 그것은 5월 10일 방송되었다.노동자, 농민 공화국이 선포한, 외국, 토착 자본가의 착취로부터 피억압 민족의 자결과 해방 원칙이 자유를 위해 영웅적인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 진보적 인도인 사이에서 그렇게 열렬한 반응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다. 노동 민중의 조직과 규율, 그들의 인내와 세계 노동 민중과의 연대는 궁극적으로 승리를 담보한다. 우리는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의 긴밀한 동맹을 환영한다. 우리는 이 동맹이 동방의 모든 노력자들에게 확대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인도, 중국, 조선, 일본, 페르시아, 터키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서로 손을 잡고 해방이란 공동의 대의를 향해 함께 행진할 때에야 비로소, 오직 그럴 때에만 착취자에 대한 결정적 승리가 확보될 것이다. 자유 아시아 만세! - P66
인도 국민회의의 지도자인 자와할랄 네루가 소비에트 연방 건국 10주년 행사를 위해 그곳에 도착했다. (중략) 러시아가 네루의 관심을 끈 것은 인도와 소비에트 연방 둘 다 민중의 자유에 장애물인 빈곤과 문맹에 갇힌 농민 국가였기 때문이다. 1927년 네루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러시아에 빈곤이 더 적었을 뿐 아니라 그 지도부가 노동자, 농민 츨신었다는 사실이었다. 네루가 만났던 미하일 칼리닌Mikhail Kalinin은 농민 가족 출신으로 나중에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원수가 됐다. 정부 수반인 이오시프 스탈린은 구두공과 하녀 가정 출신이다. - P67
네루는 소비에트 러시아가 소비에트연방이 배고픔과 빈곤에 맞서 커다란 성과를 거뒀고, 농민의 권력과 존엄을 증대시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략) 건국 10년 내에 소비에트 연방은 극단적 후진성에서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된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중략) 네루의 관심을 끈 것은 농민에게 훨씬 풍요로운 사회 생활의 모습이었다. - P68
소비에트 연방에서 토착화Korenizatsiya 정책을 추진해 사람들이 러시아어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어의 지식과 지혜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장려했다는 사실도 언급힌 필요가 있다. 그런 진보가 ‘농민 사회‘에서 일어났다. 이에 비해 인도의 문자해독률은 영국에게 식민 지배를 받은 2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12퍼센트에 머물렀다. - P70
젊은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를 포함한 국민회의의 급진파는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들에게 토지소유권을 주고 농민들에게 토지소유권을 주고 농민들이 지대가 아니라 세금을 납부할 것을 주장했다. 네루는 《소비에트 러시아》Soviet Russia(1927)에서 당시를 회고하면서, "비록 간디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우리는 다른 경로를 추구했고, 우리는 레닌의 모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썼다. - P47
저자 뤼투가 석사논문과 중국에서 학술활동하다가 중국 윈난성과 닝샤회족 등 소수민족 관련 연구도 한 것이 나와서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티베트 여행을 한 중국인 여성 노학연대 활동가 이야기가 나와서 역시 중국은 큰 나라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에서도 쟁점이 된 노정 교섭 등 노동운동의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