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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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님의 강아지똥을 여섯 살인 우리 딸아이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아이가 어려서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내심 의문이었습니다. 더러운 똥이라고 놀림을 받고, 아무 쓸모도 없는 찌꺼기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세상에서 귀하게 쓰이고 싶었던 강아지똥이 기꺼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주고, 그것으로 민들레는 예쁜 노란 꽃을 피운다는 교훈적인 내용을 여섯 살 난 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강아지똥을 아주 재미있어 했고 저는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주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아이랑 밖에 나가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땅바닥을 가리키며 "엄마, 엄마, 강아지똥!"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밑을 보니 보도블록 모퉁이에 노란 민들레꽃이 조그맣게 피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저도 올 봄에 처음으로 보는 민들레였답니다. 저도 조금 들뜬 목소리로 "어머나, 정말 강아지똥에 나온 꽃이네, 그런데 이 꽃 이름이 뭐였지?"하고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음... 음..." 아이는 민들레꽃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한동안 망설이더니, "음, 별 같은 꽃"하고 책에 나온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아이의 말에 저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냥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와 강아지똥을 다시 한번 읽고 또 스케치북에 민들레꽃도 함께 그려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런데 아이가 궁금하다는 듯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근데 아까 그 민들레 꽃은 강아지똥이 껴안아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꽃을 피웠을까?"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가 책내용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하는 우려가 저만의 기우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아이의 방식으로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고 느낀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몇 살(학년) 이상 권장도서라는 말에 얽매이기도 하는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번 계길 통해서 깨닫게 되었죠.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히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200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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