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그댑니다

 

암에 걸린 쥐 앞에 열두 씨앗 놓아둡니다

성한 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씨알 쪽으로

병든 쥐가 시름시름 다가가 그러모읍니다

오물오물 독경하듯 앞발로 받듭니다

 

병든 어미 소를 방목합니다

건강한 소들은 혀도 디밀지 않는 독풀

젖통 출렁이며 허연 혀로 감아챕니다

젖는 눈망울로 뿌리째 뽑아먹습니다

 

그대 향한 내 병은 얼마나 깊은지요

그대 먼 눈빛에서 낟알을 거둡니다

그대 마음의 북쪽에 고삐를 매고

살얼음 잡힌 독풀을 새김질합니다

 

내가 아프니까 비로서 그댑니다

 

 

 

나뭇가지 얻어 쓰려거든 

 

먼저 미안하단 말 건네고

햇살 좋은 남쪽 가지 얻어 오너라

원추리꽃이 피기 전에 몸 추스를 수 있도록

마침 이별주를 마친 밑가지라면 좋으련만

진물 위에 흙 한 줌 문지르고 이끼옷도 입혀주고

도려낸 나무 그늘, 네 그림자로 둥글게 기워보아라

남은 나무 밑동이 몽둥이가 되지 않도록

끌고 온 나뭇가지 채찍이 되지 않도록

 

 

홍 어

 

욕쟁이 목포홍어집

마흔 넘은 큰아들

골수암 나이만도 십사년이다

양쪽다리 세 번 톱질했다

새우눈으로 웃는다

 

개업한 지 십팔년하고 십년

막걸리는 끓어오르고 홍어는 삭는다

부글부글,을 벌써 배웅한

저 늙은네는 곰삭은 젓갈이다

 

겨우 세 번 갔을 뿐인데

단골 내 남자 왔다고 홍어좆 내온다

남세스럽게 잠자리에 이만한 게 없다며

꽃잎 한 점 넣어준다

 

서른여섯 뜨건 젖가슴에

동사한 신랑 묻은 뒤로는

밤늦도록 홍어좆만 주물럭거렸다고

만만한 게 홍어좆밖에 없었다고

얼음 막걸리 젓는다

 

얼어죽은 남편과 아픈 큰 애와

박복한 이년을 합치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삼합이라고

 

우리집 큰놈은 이제

쓸모도 없는 거시기만 남았다고

두 다리보다도 그게 더 길다고

막걸리 거품처럼 웃는다

 

이정록 시집 <정말>에서 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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