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혼, 간디 창비아동문고 190
이옥순 글, 김천일 그림 / 창비 / 200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생 비폭력 저항운동을 실천한 간디, 타고르 시인에게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이라는 호칭을 받고 그 이름을 전 세계인의 가슴에 새긴 간디의  삶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의 훌륭한 삶은 물론 배워야겠지만, 아이들이 나는 어린 시절의 간디의 모습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간디는 어렸을 때, 지극히 평범한, 아니 지금이라면 어쩜 왕따를 당하는 아이였을지도 모를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때 간디는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으며 수줍음을 잘 타고 유난히 겁이 많아서 겁쟁이라고 놀림을 받는 아이였다. 그리고 고기를 먹으면 안되는 인도 힌두교 집안의 금기를 어기고 몰래 고기를 먹고 담배를 피우고 집안 물건을 내다 파는 등 잘못을 저지르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또한 자신의 잘못을 아버지께 편지로 써서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정직하고 순수한 소년이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도 처음에는 영국신사처럼 되려고 돈을 낭비하며 옷을 사입고 멋을 부리며 춤과 바이올린까지 배웠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영국신사처럼 되려고 흉내내는 어리석은 짓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을 하고 인도로 돌아와 봄베이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 처음으로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너무 긴장되어서 법정에서 끝내 말 한마디 못 하고 법정을 나온다.

당시 그 모습을 지켜 본 사람들 중  소심하고 얼간이 같은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그렇게 끈질기게 차별받는 인도인들을 위한 권리운동을 하고, 인도로 돌아와서도 독립운동을 이끌 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남아프리카에서 일등 열차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도를 넘는 심각한 인종차별 때문에  열차 밖으로 내쫓겨야 했던 간디가 소심한 성격 그대로라면 그냥 그렇게 순응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소심한 사람이었지만 정의로운 마음과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끈질긴 비폭력 저항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요즘 학부모들은  말로는 '남을 배려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서도 자기 아이를 남과 다른 특별한 1%의 아이로, 사회지도층(리더)으로 키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학교에서 자기 의사 잘 표현하고 발표 잘하면 똑똑하고 리더십이 있는 아이라 평가받고, 말없고 소심한 아이는 뭔가 문제가 있는 듯 바라 보는데 진정한 리더를 제발 지금 정치인처럼 말만 잘하는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정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말만 잘하는 (특히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마음과 이 세상 모든 존재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 그리고 용기일 것이다.

카스트제도의 맨 마지막 수드라에도 속하지 않는 불가촉 천민의 인권을 위해 온갖 헌신을 다한 간디의 사랑의 모습에서, 평생 남루한 옷 한 벌 걸치고 인도 하층민과 같은 모습으로  물레를 돌리는 그 간소한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성자의 모습을 본다. 평생 독립을 위해 헌신했건만 또다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종교분쟁 때문에 인도가 두개의 나라 (인도와 파키스탄)로 독립한다고 할 때 간디는 노구의 몸으로 죽음을 건 단식투쟁을 한다. 그러나 두 개의 나라로 독립한다는 소식에 간디는 울부짖으며 이렇게 말한다.

"나라를 둘로 쪼개지 말고 차라리 내 몸을 두 토막 내시오."

인도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서로 피비린내나는 학살을 자행하자 칠순의 노인인 간디는 고통을 참고 견딘다는 뜻으로 샌들을 벗고 진흙탕 속을 맨발로 다녔다. 그리고 이렇게 울부짖었다.

"다시 미치려거든 나를 먼저 죽이시오!"

결국 간디는1948년 1월 30일 광적인 힌두교도의 총을 맞고 늘 바라던 대로 가장 존경하던 라마신의 이름을 부르며 세상을 떠난다.

진정한 리더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 헌신하고, 독립 후엔 노구의 몸으로  민족의 분단을 막기 위해 온갖 애를 쓰셨던, 그러나 끝내 이승만 세력에게 1949년 6월 24일 암살을 당하고 만 백범 김구 선생님의 모습이 간디와 겹쳐진다.

진정한 리더들은 그렇게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들의 위대한 영혼은 이 세상을 환히 비추는 등불이 되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초등 고학년 및 청소년 권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