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이 필 때는,

내가 죽은 날 바로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새 한 마리

 

 

우리는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이 넓은 우주의 지구라는 곳에 나라는 존재는 생겨났다.

수없는 관계와 관계 속에서 인연을 맺고 집착하며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며 살다 언젠가는 한 생을 마감할 것이다. 

태어난다는 것, 존재는 기쁨이지만 또한 슬픔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엔 이 시에 나온 새처럼 되지 않을까?

모든 세속의 고통과 번민과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새 한 마리.

기쁨, 슬픔, 노여움, 안타까움, 그리움 등 그 모든 감정들의 찌꺼기마저 훌훌 털어내버린 새 한마리.

이제는 이 세상과 무관한 한 마리 새가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 보며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초연하게 우는 새 한 마리, 영혼의 모습이 떠오른다.

 

   
인물사진 

 

천상병 시인

1930년 1월 29일 (일본) - 1993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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