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53. 화요일)

 

 

 

 

 

<계산이 맞지 않으면 개조를 하라>

 

창밖이 훤하다.

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 맞다. 여기는 러시아?

잠 잘 동안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몸은 분명히 이 곳에 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어딜 갔다 왔기에 새삼 놀라는가. 눈을 뜨는 순간 러시아에 와 있음을 알아채는 마음의 소리. 그건 바로 정신은 밤새 다른 곳에 있었다는 증거? 그래도 찰나에 알아채는 걸 보니 멀리 가 있진 않았던 모양이다.

또 쓸데없는 상상이다. 그만 일어나자.

우와. 이게 뭐야. 겨우 네 시하고도 반?

이렇게 밝은데? 우리나라보다 엄청 부지런하네! 러시아 해님은!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는 도로 누워버린다. 아니, 일어나려고 목에 약간의 힘을 주었을 뿐이니까 도로 누운 건 아니다. 그냥 목에서 힘을 빼고는 옆으로 돌아눕는다. 그러다 굴러 떨어질 뻔 한다. 그렇다. 난 지금 기역자로 생긴 소파의 돌출부분에 누워있다. 돌출부분이라 함은 마치 반도같이 생긴 형태를 말한다. 소파의 끝부분에 직각을 이루는 스툴이 이어져있는 것이다. 그러니 양쪽이 낭떠러지.

등받이가 있는 쪽 소파엔 갈마가 자고 있다. 갈마와 난 머리를 같은 동네에 모은 채로 몸은 기역자로 두고 잤던 것이다. 잠들 때는 발이 공중에 뜨는지라 옆으로 누웠다. 아무리 키가 작다 해도 의자 두 개 길이는 너무 했다. 똑바로 누우니 발이 의자 밖으로 덜렁 들렸다. 그래서, 높은 데서 떨어지는 악몽에 시달릴지도 몰라, 하면서 모로 누워 잠이 들었다. 하지만 밤새 같은 자세로 자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난 아침에 눈을 뜨면 주로 천장을 향한 자세로 똑바로 누운 채다. 러시아에서도 그 자세로 눈을 뜬 것이다. 물론 발이 공중으로 삐죽 나간 채로. 그래도 다행히 높은 데서 떨어지는 악몽은 없었다.

숙소에 침대가 부족했냐고?

부족하진 않았지만 불편한 침대 하나를 외면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두 개의 방에 각각 더블베드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현관에 가까운 방을 문간방, 주방에 가까운 방을 안방이라 부르겠다.

문간방 침대는 급조한 게 분명했다. 매트리스 아래 철제 받침대가 너무 허술해서 한 사람이 누워도 침대가 벌벌 떨었다. 그런데 그게 명색은 더블베드라 둘이 누워야한다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가냘픈 스프링이 들었는지 몰라도 둘이 누우면 침대는 계속 물결처럼 가늘게 흔들렸다. 한 사람이 숨만 크게 쉬어도 밤새 같이 파도를 타야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일인용. 그것도 지원자가 있을 때 해당되는 자격이겠지만. 하여간 그 침대는 일단 더블베드의 자격을 잃어버렸다. 한 침대의 기존 자격을 박탈하고 나니 다른 문제가 꼬리를 이었다. 한 사람이 그 침대를 쓴다 해도 남은 사람은 셋. 그리고 남은 침대는 하나. 모두가 침대에서 자는 건 불가능해져버렸다.

한시바삐 몸을 눕혀 쉬고 싶었던 지난 밤.

불편해진 잠자리에 절망한 나머지 급기야 각자 독립된 잠자리를 꿈꾸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하늬는 제일 먼저 문간방 침대를 버렸다. 아예 사람이 잘 수 없는 침대로 규정짓고 안방으로 갔다. 갈마와 나도 하늬를 따라갔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몸만 그냥 이동한 것이다. 사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던 높새는 움직이기도 싫었던지 문간방 침대에서 자겠다고 남았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안방엔 침대와 소파가 있었다. 소파는 네 사람이 충분히 앉을 크기였다. 오해하지 마시라. 어디까지나 앉았을 때 충분한 소파란 뜻이니까. 갈마가 소파에 쓰러지며 자기 잠자리라고 선포했다. 바로 등받이가 있는 쪽에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하늬는 침대로 갔다. 침대 한쪽이 이제 하늬의 차지가 되면서 내 자리는 자동으로 정해졌다. 더블베드의 동숙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나도 독립을 하고 싶었다. 어찌하였건 모두 독립된 침대를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침대를 같이 쓴다는 건 참 불편하다. 부부라도 나이가 들면 트윈을 쓴다는데. 방법이 전혀 없다면 몰라도 나도 독립을 하고 싶었다. 독립을 결정하고 나자 침대 옆자리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내 꿈은 가장 가난한 곳에서 실현되었으니, 소파의 돌출부분이 바로 그곳이었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찾았다.

사진과 정보를 아무리 자세히 실어놓았다 해도 직접 보지 않는 한 한계는 있다. 홈페이지에 제공된 아파트 내부 사진을 수십 번도 더 보았지만 매트리스의 안락함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침대가 여행자 수만큼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 정도 갖춘 집은 값이 엄청 비싸졌다.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으면서 적당한 가격의 집. 물론 필수로 충족되어야 할 다른 조건도 많았다. 와이파이, 세탁기, 난방 등등. 그야말로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집을 구하자는 수작이었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너무 많은 집을 검색하다보니 나중엔 어떤 집을 왜 찜해 놓았는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겨우 결정해 놓으면 그 사이에 예약완료가 뜨는가 하면 무슨 일인지 집주인의 수락을 못 받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는 사이에도 찜해놓은 많은 집들이 속속 예약완료 되었고 조금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정해진 곳이 스몰렌스카야 구역에 위치한 아파트.

높새 말로는 조금 멀긴 하지만 붉은 광장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을 위치에 있다고.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시간? 이란 의문을 표했지만 굳이 의문으로 듣지 않았다.

어차피 여행이란 길 위에 있는 것. 보이는 모든 것이 처음일 테니 아무렴 어때?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거야.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나는 결정을 종용했다. 어쩌면 자기최면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많이 걸어야 한다는 문제에 가장 예민해야 할 사람은 체력적으로 제일 불리한 나였으니까.

 

그렇게 결정된 아파트는 씨스뜨라가 말하는 다른 필수조건을 모두 갖추었지만 사실 침대는 아니었다. 다소 불편하리란 예감은 있었다. 더블침대를 써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다 좋을 수는 없지. 집과 같은 수는 없잖아. 어떻게 되겠지. 또 모르지. 침대가 너무 커서 거기 누구 없소? 할 정도인지도. 그리고 안 되면 소파도 있으니까.

다들 그런 심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런 심정이었다. 사실 사진으로 보는 침대는 굉장히 넓었고 소파는 매우 안락해 보였다. 사진을 보이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믿고 싶었다. 그것 때문에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 위치 검색을 하고 숙소를 고르고 사진을 보고 설명을 읽고 리뷰 속에서 정말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는 과정을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혹시? 하는 희망의 묘약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닌다. 혹시 알아? 보는 것 하곤 다를지? 하며 숙소에 대한 갈등을 끝냈다. 혹시?’역시!’란 형태로 현실 앞에 실체를 드러냈을 때는 이미 실망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동안의 염려는 사치였던 것이다. 그나마 한 침대는 사용이 불가능한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모로 돌아누워 다시 잠을 청하려다 포기한다.

온 집안이 깨어나는 분위기에 술렁인다.

하늬가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그리고 바로 머리맡에 느껴지는 갈마의 기척. 갈마와 난 샴쌍둥이도 아닌데 머리를 맞댄 것처럼 너무 가까워 자는 척하는 것조차 불가능이다. 사람에겐 잠의 기운과 깨어남의 기운을 알아채는 감각이 있는 것 같다. 모두가 깨어났다는 걸 서로가 알고들 있다. 심지어 문간방에 혼자 잤던 높새까지도.

높새가 투덜거리며 안방으로 건너온다.

밤새 침대와 씨름했단다. 등이 얼마나 배기는지 공룡의 뼈 위에 자는 것 같았다나.

드디어 갈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잠 못 잤겠네요? 하면서.

그 와중에 난 계속 누워있다. 최후로 일어나는 자가 되리라. 이것이 내 목표다. 어떻게든 누워있는 시간을 늘려보려는 안간힘이다. 아침 시간을 벌어놓아야 하루가 덜 힘들다. 어차피 아침 먹고 나가면 저녁 시간이 되어야 들어올 테니까. 될 수 있으면 천천히 일어나 천천히 준비하고 천천히 나가야 한다. 그 방법만이 내가 살 길이다. 이들과 여행을 자주 다녀본 경험이 만든 생활의 지혜인 셈이다. 그래봤자 비밀도 아닌 것이 모두들 알고 있다. 아니 씨스뜨라의 법칙이 되고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법은 지켜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칙이 되니까. 그래서 난 항상 가장 먼저 잠자리에 눕고 가장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세상이 조용하다. 혹여 내가 늦게까지 앉아있거나 아님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다간 물의가 일어난다. 오늘은 오래 버티네? 라든가 왜 벌써 일어났어? 하며 놀란다.

하여간 지금 난 법 수행 중이다.

눈은 감은 채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보이는 듯하다. 하늬는 목욕 중이고 높새는 침대에 벌렁 누워 공룡 뼈 위에서 고생한 허리를 펴고 있다. 그리고 갈마는? 머리맡에 사람의 기척이 없다. 갈마는 뭘 하고 있을까, 하는데 발밑에 무엇이 닿는다.

발 좀 들어봐요.

눈을 뜨고 발치를 본다. 갈마가 작은 의자를 소파 끝에 붙여놓는다. 책상 아래 있던 등받이 없는 의자다. 소파 높이와 똑 같다. 우와! 나는 똑바로 누워 발을 쭉 뻗는다. 감탄이 절로 난다. 발이 들려있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것이었나? 싶게 편하다.

이제 괜찮죠?

. 완전 편해요. 이러면 될 걸 왜 그러고 잤지?

글쎄 말이야. 어젠 너무 피곤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가만히 살펴보니까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대?

고마워요.

안락한 잠자리에 집착하는 나는 깊이 만족한다.

그리하여 발이 들리는 나의 독립 침대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남은 문제는 하나. 하루 만에 용도 폐기된 높새의 침대다. 별 수 없이 더블침대를 같이 쓰려나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첫날밤 이후 높새도 안방으로 합류하지만 잠자리 독립이 유지되었으니, 문간방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 와 안방 빈 공간에 깐 것이다. 문간방엔 씨스뜨라의 가방을 늘어놓아 매트리스를 깔 공간이 없기도 했지만 사실 방이 주는 아늑한 느낌이 없었다. 잘 사용하지 않는 방이었는지 쓰지 않는 물건을 죄다 모아놓은 것 같이 가구와 물건들로 빼곡했다. 더구나 수건과 자잘한 빨래를 너느라고 빨래줄까지 가로 쳐놓았으니 아마 난민촌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침대까지 그렇게 밤새 괴롭혔으니 남은 정이 있을 리가 없다. 높새는 시원하게 문간방과 함께 침대를 버리고 즐거이 안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너무 얇아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매트리스는 무겁지 않아 옮기기에 편했고 흔들리지 않는 방바닥에선 훌륭한 요가 되어주었다. 세상에 완전히 나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어 준 셈이다.

그래서 모스크바에서 남은 이틀 밤을 씨스뜨라는 한 방에서 자게 된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나 적응을 한다. 적응의 방법이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어떤 사람은 익숙한 환경으로 바꾸고 어떤 사람은 다른 환경에 익숙해진다. 불편한 점이 있지만 드디어 모든 것이 안정되었다. 하루 만에 낯선 곳이 고향처럼 된 것이다. 마침내 숙소는 씨스뜨라의 집이 되었고 관광은 외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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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에. 1

이 여행은 아주 단순한 욕망에서 출발했어.

세계 곳곳에서 모아들인 진귀한 그림과 예술품이 엄청나게 전시되어 있는 곳을 보았던 거야. 아니 그런 박물관을 소개하는 걸 보았지. 박물관이 문제가 아니야. 박물관을 품고 있는 도시 자체가 예술품이라나 뭐라나. 하여간 귀가 솔깃했지. 난 미술 전공자도 아니고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자는 주의도 아니야. 차라리 보이는 것에 속지 말라고 떠드는 편이지. 말하자면 많은 경험보다 어떤 느낌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에 속해. 그런데 그 도시를 소개하는 텔레비전 화면에 마음과 눈을 몽땅 빼앗겨버린 거야.

도시의 이름은 쌍뜨뻬쩨르부르그.

정말 들어보기만 했던 이름이야. 교과서에서 보았는지, 어느 책에서 보았는지, 누구한테 들었는지도 모르지. 지명 외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뜻이야. 하지만 그 이름을 한두 번 접했던 건 분명 아닐 거야. 이름을 들으면서 도시의 역사를 듣지 못했을 리도 없어. 도시 형성 과정이 그처럼 독특한 경우도 흔치 않고 과정만큼 경관도 특별한데 말이야. 그런 곳을 역사학자들이, 눈과 귀가 앞선 사람들이 그냥 묻어두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사람들 덕분에 지구촌 사람들은 앉아서도 지구 곳곳을 모르고 있을 수가 없는 세상이고. 그러니 내 귀와 눈에도 그런 정보가 지나갔음에 틀림없어. 하지만 당시엔 관심을 끌지 못했거나 아님 잊어버린 건지도 모르지. 인연은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사물이나 장소도 인연이 닿아야 만나게 되는 거더라고.

 

제정 러시아 시대 궁전이기도 했던 박물관 이름은 에르미타쥐.

황제가 절대 권력을 가진 시대에 지어진 궁전이라니 얼마나 대단하겠어. 더구나 지금은 천 개나 되는 방에 명화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는 거야.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볼 수 없는 고흐와 고갱의 그림도 많다고 했어. 고흐나 고갱 때문이 아니라 루브르란 이름 때문에 내가 더 혹했는지도 모르겠어. 사람은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닌, 본 적 있고 들은 적 있는 것에 더 호기심을 가지게 돼. 그건 뉴스에 관심이 가는 것과 같은 거야. 새로운 소식. 그건 나에겐 새로운 소식이지만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이지. 그러니까 전할 수 있었던 거고. 말하자면 누군가 보고 들었다는 전제 아래의 새 소식인 셈이지. 뉴스에 대한 호기심은 아무도 모르는 소식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냥 주변 사람보다 먼저 알고 싶은 욕망일지도 몰라.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는, 그렇지만 주변에 널리 퍼져있지 않은 것에 호기심이 더 발동한다는 거지.

사실, 명왕성 천왕성에 가보고 싶은 욕망에 밤잠을 설치는 자가 얼마나 되겠어. 단순한 호기심이야 있을 수 있겠지. 막연하게, , 저 별에도 어떤 생명체가 존재할까, 자연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정도로 말이야. 그렇다고 정말 명왕성에 가기 위해 연구하고 탐사 계획을 세울 정도의 호기심은 아니란 거지. 그 곳은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곳이니까. 그러니까 아무런 소식이 없는 곳이지. 아무런 소식이 없으면 호기심도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 먼저 본 사람이 없거든. 호기심이란 것도 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털끝만한 실마리라도 있어야 발동되는 것 같아.

그런 차원에서 내 호기심이 발동했는지도 몰라.

해설자의 설명 속에 루브르란 말이 나왔고 난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년 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갔거든. 하지만 그 유명한 루브르에 대한 이미지는 명성만큼 내 감정에 찬란하게 남아있진 않았지. 한여름의 박물관은 한 마디로 장터였어. 그림이든 자연이든 너무 많은 사람 속에선 제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인파에 묻힌 그림은 보고 있는 사람들만큼 지쳐보였어. 그림과 마주하고 서로 교감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앞으로 다가갈 수도 없는 지경이었지. 특히 모나리자 앞은 유명 가수의 콘서트 장 같았어. 저 멀리 그림이 보이고 내 앞엔 빽빽한 사람의 숲이었지. 그래도 그림을 보겠다고 숲의 끝에 서 있었어. 사람의 물결은 시속 열 발자국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지. 파김치가 되어 드디어 그녀의 미소 앞에 섰어. 그냥, 익숙한 여자가 웃고 있더군. 아니 웃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지도 몰라. ‘모나리자의 미소라고 하니까 말이야. 사실은 와글거리는 소리며 사방에서 부딪치고 밀려드는 체온에 모나리자도 미소를 잃은 듯 보였어.

한 시간을 기다려 머문 시간은 10.

그 잠깐의 시간에도 감상은 무리였지.

그래서 아직도 나에게 모나리자의 미소는 일그러져 있어.

 

그런 기억 속의 루브르가 그 날 다시 수면 위로 덩실 떠오르는데,

저 곳에 가야겠다

그렇게 외치고 있는 거야. 내가 말이야.

루브르에도 없는 작품이 많다고 해서, 도시 전체를 제정러시아 시대 황제가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니 얼마나 볼만하겠느냐 싶어서, 러시아와 유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서, 핀란드만을 건너면 바로 북유럽도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이런 모든 것들이 날 유혹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것에 꽂힌 건 아니야. 직접적인 이유는 엉뚱하다고 할 수도 있어. 루브르보다 조용할 것 같아서야. 더 자세히 밝히자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천천히 서성이고 싶었어. 저 곳에 가서 매일 에르미타쥐에 가야겠다. 하루에 방 몇 개씩만 보며 즐길 것이다. 그런 시간을 나에게 주자. 그리고 저녁에는 도시를 거닐자. 해도 길다 하니 어스름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겠지. 그런 상상에 황홀해졌지.

그렇게 돈을 들여가서 박물관만 본다고? 나무라는 독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어. 그것도 이해할 수 있어. 아니 당연하게 받아들여.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겠어.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똑같은 생각도 없을 테니까 말이야. 난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거든. 그리고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다면 책이니 글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나지 않았을 지도 몰라. 그런 것들이 왜 필요하며 읽을 이유도 없겠지. 어차피 같은 텐데 말이야. 하지만 다행히도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달라 이렇게 지구엔 수많은 글들이 탄생하고 읽을거리들이 넘쳐나고 있어. 나무라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책이라는 생각도 들어.

하여튼 이런 이유로 러시아행이 이루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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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청년 샤샤>

 

 

샤샤는 몹시 흥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흥분한 모습이라고 했지만 그의 진짜 기분 상태는 모른다.

원래 태도가 그렇게 통통 튀는 타입인지. 동양인을 보는 순간 정말 흥분이 된 건지. 아님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긴장을 한 건지. 또는 그 날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너무 오래 기다려 반가웠던 건지. 그래서 드디어 임무를 완수했다는 기쁨에 그랬던 건지도.

샤샤는 집주인이 아니다. 집주인 안톤의 친구다. 어떻게 아느냐고? 숙소 계약은 안톤이란 남자와 이메일로 처리했다. 우리가 도착하는 날 안톤은 다른 지역에 있어 그의 친구가 맞이할 거라고 했다. 안톤이 우릴 속일 이유나 의도가 없었다면 샤샤는 안톤의 친구가 분명하다. 그리고 어쩌면 숙소 손님맞이가 처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긴장하고 흥분했나보다. 아니 뭐, 자주 했을 수도 있지만 성격이 소심해서 그럴 지도 모르지. 아님 우리의 도착이 생각보다 늦어서? 빨리 끝내고 가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갈마가 선두에서 분투하고 있으니 난 뒷전에서 요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처음 본 남자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하여간 샤샤의 흥분한 듯 발랄한 태도는 긴 하루에 지쳐있던 씨스뜨라의 기분까지 들뜨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나이는 많아야 25살 정도로 보이는 귀엽게 생긴 남자. 마치 발레리노처럼 몸매는 호리호리하고 동작은 춤을 추듯 가벼웠다. 샤샤는 이 방 저 방으로 다니며 집 구조를 보여주고 구비되어 있는 가전제품 사용법을 설명했다. 한 가지를 설명하고 나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반듯하게 서서 질문이 없느냐고 물었다. 착한 학생이 좋아하는 선생 앞에서 최고의 예의를 갖춘 듯한 모습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상냥하고 친절했다. 밝고 귀여운 청년의 친절. 기분은 쉽게 전염된다. 호객 택시 때문에 조금은 의기소침해져있던 씨스뜨라의 기분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옮겨가는 중요한 역할을 그도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었다. 아니 러시아의 이미지를 바꾸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샤샤가 책임을 완수했나 보다.

설명을 끝낸 그가 현관 문 앞에 섰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다.

이제 볼일을 끝냈으니 저는 물러납니다. 하는 태도다.

현관 앞에서 그가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하던 질문이다. 궁금한 것이 있느냐고.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질문을 하라는데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는다. 우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기만 한다. 너도 없냐? 나도 없다. 눈빛으로 그런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그 눈빛 속엔 누가 제발 질문 좀 하시오. 하는 소망도 숨어 있다. 그렇지만 누구의 입에서도 질문은 나오지 않는다. 말 없는 시간이 흘러간다.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선 3초만 말이 없어도 시간이 어색해진다.

샤샤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가 아무리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친숙한 관계는 아니다. 그러니 편할 수는 없다. 일이 끝나면 가야 할 사람. 일이 끝났고 이미 불편이 시작되었고 그가 가는 일만 남았다. 현관에 서 있던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지 모른다. 3초 후 샤샤는 작별 인사를 했고 우린 반갑게 인사를 받았으니까.

나가면서 현관문 여닫는 방법을 알려주는 걸 끝으로 샤샤가 떠났다.

 

무장해제.

샤샤가 나가자마자 씨스뜨라의 직립은 무너진다.

높새와 갈마는 소파를 차지하고 하늬와 난 침대에 퍼진다.

일단 숨 좀 돌리자.

말하지 않아도 그런 뚯이다.

한참 동안 말이 없다.

그래도 어색하진 않다. 조금 전 현관 앞에서완 아주 다르다. 이것이 바로 친숙하다는 증거다.

그새 하늬는 잠이 든다. 깊은 숨소리로 알 수 있다.

잠이 든 건 아니지만 셋은 조용히 누워있다. 하늬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30분이 지난다. 하늬의 호흡이 달라진다. 곧이어 몸을 뒤척이는 소리. 그걸 신호로 우리도 존재를 알리듯 몸을 움직인다. 7시가 지나고 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저녁을 먹어야 하고 내일 아침거리를 마련해야 한다. 어둡기 전에 상점에 다녀와야 한다. 샤샤가 말한 대로라면 상점은 5분 거리에 있다.

우리 정말 웃긴다.

그 말을 하며 내가 웃음을 터뜨린다.

분명 저녁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하다. 그리고 말대로 정말 웃음이 터진다. 물론 생각의 흐름을 찬찬히 되짚어 가보면 웃음의 이유가 밝혀진다. 그러니 결과는 엉뚱해도 과정은 논리적인 것이다.

어둡기 전에 상점을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선 어둡기 전에 숙소로 돌아온다는 원칙을 지키는 편이었으니까. 어둠은 위험을 포함하고 있었고, 위험? 이란 생각 뒤에 호객 택시가 떠올랐다. 우리가 구호처럼 위험하니 타지 말자던 호객택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여행 첫날 바로 실천에 옮겨버렸으니 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왜 그래?

하는 표정이지만 모두 웃을 준비가 된 얼굴이다.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니까.

호객 택시 말이야.

더 이상 내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모두가, 왜 그걸 잊어버렸지? 하며 박장대소한다. 갈마는 웃다가 기침을 하고 따뜻한 물을 마셔야겠다며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주방으로 갔던 갈마가 곧 다시 돌아온다.

우리가 실수한 게 많네.

또 뭐? 하는 표정으로 모두 갈마를 바라본다.

샤샤가 그렇게 질문할 게 없냐고 했는데도 그 때는 생각도 안 나더니.

맞다. 그 때는 사실 질문할 게 없었던 게 아니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하다. 어느 새 그런 나이가 되어 있었다. 반응 속도가 상당히 느려진 것이다. 우리끼리 있을 땐 잘 느끼지 못하지만 나이대가 다른 사람들 속에선 확연히 표가 난다.

이런 말이 공감이 되지 않는 독자가 있다면 나이대가 다른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와 다른 신체를 체감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해를 하자면 할 수는 있다. 서너 살짜리 아이와 여든이 넘은 노인이 사탕껍질 까는 걸 유심히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보고 있으면 몹시 닯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근육이 덜 발달한 아이와 근육이 퇴화한 노인의 동작은 무척 닮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걸 이해할 수 있으면 다른 것도 미루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든 기능이 퇴화되는 것이니까. 보는 것도, 듣는 것도, 그리고 행동도. 유치원 아이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빠른 말투는 적합하지 않다. 노인에게도 그건 마찬가지다. 물론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적어도 20년 전과 같지는 않다. 나의 몸이 겪는 일이니 나는 잘 알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실수 없이. 그러다 동시에 처리는 할 수 있지만 실수가 생기기 시작하고, 천천히 하나씩 하면 실수는 하지 않던 것이, 천천히 해도 실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해야 할 일들이 깜박이는 별처럼 보였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보이는 것이다. 우스개로, 무얼 하다가 고개를 돌리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하던 일도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우스개지만 정말 웃을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물론 천천히 시간을 두고 하면 많은 실수를 줄일 수가 있지만 모든 일을 혼자서 하는 건 아니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직장에서의 일은 보조를 맞추고 시간에 쫓기어 해야 하는 일투성이니까. 그리고 직장을 벗어난 사회도 마냥 느린 속도로 흘러가진 않는다. 오늘처럼 여행 중에도 말이다.

우리 모두는 문제 발견을 제 시간에 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샤샤를 하룻밤 재울 걸 그랬나?

조카라도 한 명 영입해야겠어.

우리 조카는 쉰이 넘었는데?

농담을 하며 모두 주방으로 간다. 가스불이 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돌아가며 점화 스위치를 돌린다. 점화가 되지 않는다. 10분을 술렁거리자 문제가 해결된다.

그렇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라니까!

본래 자동점화가 되지 않고 나오는 가스에 불을 붙여주어야 하는 레인지였다. 갈마가 서랍에서 라이터와 성냥을 발견하면서 알아챘다. 사실 자동점화 되지 않는 가스레인지를 쓰는 나라가 많았다. 여행 중에 종종 겪었던 일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빨리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반응 속도가 빠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몹시 답답했을 것이다. 하긴 나도 여든이 넘은 어머니의 설거지는 답답하니까. 후후,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닭장 속에는 닭들이. 경로당엔 노인들이. 그리고 이 곳엔? 씨스뜨라만 있으니까.

휴식으로 약간의 힘을 얻은 뒤, 하늬만 남고 장보기에 나섰다. 집을 비우긴 조금 불안하고 그렇다고 짐을 지고 나가긴 싫은 상태. 몽땅 나가려면 그래도 중요한 기본 짐들은 몸에 지니고 나가야한다는 생각은 같았다. 짐 벗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짐을? 적어도 오늘은 더 이상 짐 지지 말자. 말하지 않아도 그랬던 모양이다. 다 나갈 필요는 없겠지. 두 팀으로 나누자. 그럼 당연히 갈마와 내가 당첨. 난 돈을 맡은 총무니 물을 것도 없고 갈마는 나 다음으로 젊다.

갈마와 내가 겉옷을 걸친다. 높새가 일어난다.

적어도 셋은 나가야지. 곧 해가 질 텐데. 8시가 다 되었어. 너희 둘은 러시아에선 어린이 취급 받을 지도 몰라. 그런 키도 키라고.

키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러시아에서 10년만 자라도 나보다 클 것이다. 물론 갈마보다도.

셋이나 나갔지만 상점을 찾지 못했다.

동네엔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곧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샤샤가 말하는 슈퍼마켓이 있어야 할 곳으로 예상되는 곳을 세 번이나 돌고도 찾지 못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러시아에서 슈퍼마켓은 주로 반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장소를 확실히 모르면 지나가더라도 발견하지 못할 확률이 높았던 것이다.

잘못하다간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더라고.

그건 숙소에 돌아와서 높새가 했던 말이다. 난 걱정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길에 대해선 무지하니까. 그리고 인간 네비게이터와 같이 있었으니까. 무지하니까 한없이 평온했다. 그런데 높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길을 찾아 돌아올 책임의 짐이 그녀의 어깨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멋모르는 말을 했고 높새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난 걱정도 안했는데?

너도 참 어지간하다. 여긴 러시아라고. 그것도 방금 도착한. 더구나 해도 지는데. 밤엔 나도 길 찾기 힘들어.

 

저녁으로 누룽지를 끓여먹고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늬가 비상용으로 가지고 온 것을 반이나 없앴다.

현미 누룽지를 만드는 공장까지 가서 사온 거라 했다.

빵 먹기 싫은 날의 대체 식품이라고. 가져오기도 좋고. 그냥 먹어도 되고. 끓여서 누룽지죽으로 먹어도 된다고. 햇반을 사오려다 그것보다 간편하고 가벼워서 선택한 거라고. 맞는 말이다. 밥이 주식인 민족에게 누룽지는 무척 편리한 휴대 식품이란 생각이 든다. 다음 여행을 떠날 땐 나도 누룽지 생각을 해볼 것 같다. 아님 누군가에게 요긴한 정보로 제공될지도.

 

아파트 난방이 너무 잘 되어 있다.

추울까봐 걱정하고 왔으나 더워서 답답할 지경이다.

숙소를 정할 때 고려 항목 1순위는 난방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실내 겨울 난방이 잘되어 있는 나라가 드물다. 겨울에 유럽 여행을 하면 실감할 수 있다. 체질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잠자리가 추우면 정말 힘들다. 러시아는 겨울이 긴 나라이고 혹한에 대한 대비가 잘되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4월이나 5월이 여름이면 어떡하나. 그래서 이미 난방을 끊었다면? 뭐 이런 걱정까지 하면서 난방의 유무부터 살폈다. 그랬는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안톤의 집은 한여름이다.

덕분에 난 집에 있을 때보다 더 가벼운 차림이다. 그렇다고 더 쾌적하단 뜻은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좀 답답하다. 사람에게 딱 알맞은 환경의 조건, 참 까다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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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객 택시>

 

 

러시아 남자를 따라 공항 밖으로 걸음을 옮길 때까지도 제법 희희낙락할 수 있었다.

예상도 못한 상황이 곧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걸 아무도 몰랐으니까. 몰랐던 게 죄라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지만 속이는 자가 정말 죄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지. 그런데 세상은 속이는 자보다 속은 자에 대한 이야기로 더 시끄럽다. 속인 자는 입을 다물고 속은 자들의 한탄이 때론 무용담처럼 인터넷이란 공간을 통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피해자 이야기에 가해자의 행각은 묻혀버리는 꼴이 되어 죄를 묻는 일조차 흐지부지되는 느낌이다. 결국은 속은 자만 바보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인가.

그렇다고 씨스뜨라가 단체로 대단한 사기를 당했다는 건 아니다. 상황 파악을 미리 못했다는 것뿐이다. 물론 호객을 한 러시아 남자의 고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걸려든 것이다. 씨스뜨라의 눈치가 형편없었는지 그의 연기가 훌륭했는지는 모르겠다.

입국 수속이 끝나고, 이제 오늘의 마지막 관문인 숙소를 찾아갈 일만 남겨두었다.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던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씨스뜨라가 구호처럼 이구동성 외친 말이 있다.

러시아에서 아무 택시나 타지 마라.’

막상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여행준비에 들어가자니 러시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아는 것이 없다. 즉 정보가 없다. 그럴 때 현대인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예상대로다. 인터넷 검색. 씨스뜨라가 한 일도 검색이었고 인터넷으로 러시아 여행 가이드북도 구입했다. 그것도 같은 책을 네 명 모두. 의논? 그런 적은 없다. 각자 알아서 필요한 일을 하다가 필요한 것을 구입한 것뿐인데 결과가 같았을 뿐이다. 여행 준비 때문에 정보를 주고받는답시고 채팅방에서 문자를 주고받다 알았다. 그 책이 엄청 유명한 책이냐고? 그건 잘 모르겠다. 여행 준비를 하기 전엔 전혀 몰랐던 책이니까.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있다. 러시아 여행 관련 책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그래서 선택의 폭이 아주 좁다는 것. 그건 씨스뜨라가 같은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선택한 책이 형편없다는 뜻은 더구나 아니다. 구매 환경이 그랬다는 정보일 뿐이다.

하여간 씨스뜨라는 같은 책을 보며 정보를 모으고 있었고, 우리에게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일은 공항에 내려 숙소를 찾아가는 일이었고, 그래서 교통편을 찾아보았을 것이고, 택시를 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택시를 타야 한다면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에 먼저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인간은 종종 99가지 장점보다 단 1가지 단점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하는 특이한 종이니까. 그리고 씨스뜨라는 지극히 인간적이었던 모양이다. 어떤 택시를 타야하지? 보다 아무 택시나 타지 말래! 란 말을 더 자주 했으니까. 아니 마치 서로를 세뇌시키려는 듯 주문처럼 그 말을 외고 다녔다. 아마도 말도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일어날 가장 두려운 일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도 여행 첫 날, 무거운 짐을 든 채로.

 

그런데 그 구호는 왜 갑자기 빛을 잃고 우리 머리에서 사라졌을까.

세뇌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일까.

씨스뜨라의 나이 탓이었을까.

그래서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일까.

아님 정말 경계심이 풀려버렸던 것일까.

출국장을 빠져나올 때 택시 호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택시? 하면서 출국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물론 우리에게도. 그 때까지도 세뇌는 잘 되어 있는 상태였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고개를 흔들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그 곳을 빠져나왔다. 우린 호출 택시를 탈 예정이었다. 스마트폰 심 카드를 바꾸고 나서 현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그건 물론 책에서 얻은 정보다. 하지만 그걸 백 퍼센트 믿고 있었던 건 물론 아니다. 그게 잘 되지 않으면 공항에서 불러주는 택시를 탄다. 그게 두 번째였다. 하여튼 호객하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 만 확고했다. 그것만 안하면 되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만 마음에 꼭꼭 새겨두었다. 아니 그랬다고 믿었다.

높새와 갈마가 스마트폰 심 카드를 바꿔 넣기 위해 가게로 가 있는 동안 하늬와 난 의자에 앉아 짐을 지키고 있었다. 한 남자가 다가왔다. 택시를 타겠느냐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둘 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 남자가 물러났다. 높새와 갈마가 돌아왔다. 높새는 심카드를 바꿔 넣은 스마트폰을 살폈다. 이제부터 택시를 불러야 했으니까. 사실 앱이 잘 설치된다 해도 그 다음이 문제였다. 우린 러시아말을 전혀 몰랐다. 연결이 되면 행선지를 말하고 계약을 해야 하지만 어떻게? 무슨 수로?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호출 택시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물론 갑자기 언어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다면 러시아 발음을 한글로 적어서라도 소통의 방법을 찾았을 것이 아닌가. 그런 방법을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단 말은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증거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말하자면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더 신경을 썼다는 증거. 호객 택시를 타지 말라고 하는 정보를 머리에 새기는 대신 그런 일을 했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앱 설치가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선택할 방법은 공항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방법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어디에서 알아보면 될까? 높새와 갈마가 공항 서비스를 알아보러 일어났다. 시간이 흐른다. 하늬와 난 우리를 보고 있는 눈길에 둘러싸여 있다. 여행가방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 공항을 빠져나가지 않고 서성대며 무언인가를 시도하려 한다. 분명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러니 호객 택시 기사들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높새와 갈마가 돌아온다. 문제를 해결한 모습이 아니다. 서비스 데스크를 찾지 못했는지 의사소통에 실패했는지는 모르겠다. 묻지 않는다. 실패에 대한 대안이 내겐 없으니까. 대안 없는 질문은 잔소리다. 내가 그들에게 잔소리할 자격은 없다. 같이 풀어야 할 문제일 뿐이다. 그들은 여행 가이드가 아니라 친구 자격이니까.

그런데 그들 뒤를 따라붙는 남자가 있다.

남자의 선한 눈빛을 믿었다. 아니 내 판단의 눈을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웃으면서 얘기했더니 모두가 같았다. 눈빛이 그랬다고. 그렇다면 그 남자는 나쁜 뜻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우리가 잘못 판단했는지도.

남자는 영어가 능숙했다.

소통의 기쁨에 취했는지도 모르겠다. 2000루불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처음엔 4000루불이라 했다. 사실 2000루불도 책에서 바가지요금이라 했던 그런 요금이다. 한국 돈으로 사만 원 정도다. 그런데 씨스뜨라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다. 사실 요금 때문에 그렇게 우리를 세뇌시켰던 것은 아니다. 잘못 데려다주면 어떡하나?에 대한 불안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씨스뜨라는 그걸 잊고 있다. 그들은 서로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만 원정도면 괜찮지 않아? 한 사람당 만원밖에 안 되잖아?

이 요금이 엄청 바가지였다는 건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호출 택시를 탔을 때 비로소 확실히 알았다. 숙소에서 공항까지 장장 1시간이나 걸렸지만 800루불이었으니까. 그리고 첫날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하여간 세뇌의 빗장은 이미 열렸다.

숙소로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욕망이 갑자기 활활 불타오른다. ‘그만 타고 갈까?’ 내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럴까? 아저씨 인상도 괜찮아 보이고.’ 하늬가 동조했다. ‘우리 이래도 되나?’ 갈마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긍정의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됐다. 타는 걸로.’ 높새가 결심의 쐐기를 박는다.

오케이!

씨스뜨라가 짐을 챙기며 일어난다.

인상 좋은 러시아 남자의 뒤를 따르는 여행객들.

그들은 지금 호객 택시를 타려고 하고 있다.

시시때때로 외쳤던 구호는 그렇게 힘이 없었던가?

도원의 결의처럼 굳었던 맹세는 어디로 갔는가?

러시아 남자가 공항 문을 나서고 씨스뜨라도 곧이어 공항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밖에는 택시가 줄을 이어 서 있다. 우리나라 공항 밖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나라도 손님보다 택시가 많은가 보다. 손님을 잡으려는 경쟁이 심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남자는 자꾸 걸어간다. 공항 바로 밖에 택시가 줄이어 있는 곳을 지나쳐 길을 건넌다. 조금 불안해진다.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물론 1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낯선 곳이니 쉽게 불안해진다. 드디어 남자가 걸음을 멈춘다. 그런데 그가 가리킨 택시는 몹시 낡아 보인다. 실망한다. 지금까지 지나쳐왔던 크고 깨끗한 택시를 돌아보지만 이미 늦었다. 하지만 그 실망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고 만다. 낡은 택시 앞에서 남자가 누군가를 소리쳐 부른다. 곧 한 남자가 달려온다. 몹시 추레한 차림의 몸집이 작은 동양 남자다. 낡은 고동색 반팔 티셔츠에 땀이 배어있다.

그 때 이미 상황을 깨달았다.

러시아 남자는 그냥 삐끼였던 것이다. 인상이 좋아보인다며 만장일치로 선택한 남자가 삐끼라니. 인상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뛰어온 동양 남자가 러시아 남자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택시 문을 연다. 조금 남아있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우린 몹시 당황한다. 이것은 예상도 하지 못한 일. 그제야 우리의 결의가 살아 돌아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여기까지 와서 안 탄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몹시 거칠게 나오지 않을까. 여기는 낯선 곳. 우리 편이 하나도 없는 곳. 별별 생각이 빠르게 스친다.

이대로 조용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갈마가 러시아 남자에게 묻는다.

네가 운전하는 것 아니냐?

아니다.

우리가 가는 숙소를 동양인 남자가 알고 있느냐?

걱정하지 마라. 잘 알려주었다.

공항에서 흥정을 할 때 우리가 묵을 숙소 주소를 러시아 남자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요금 흥정을 했다. 그런데 동양인 남자는 영어를 한 마디로 하지 못한다. 잘못 가더라도 물어볼 수도 없다. 적어도 의사소통이 되는 운전자의 택시를 탄다고 안심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운전자도 바뀐 마당에 말까지 통하지 않다니. 택시를 타지 않겠다고 할 용기도 없는 마당에 씨스뜨라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그런데 그게 또 끝이 아니다. 러시아 남자가 요금을 자기에게 먼저 지불하란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상황? 우리의 표정이 어떤 웅변보다 강렬하게 그 뜻을 전달했나 보다. 러시아 남자가 영수증을 써 주겠다며 종이를 꺼낸다. 너무 황당하면 반박할 의욕까지 잃게 된다. 아니 포기하고 싶어진다. 씨스뜨라의 상식과 판단력이 얼토당토아니한 공격에 오류가 일어나고 있다. 누구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남자가 영수증을 내민다. 2000루불이란 글자가 적힌 종이쪽지를 받아든 사람은 나. 종이를 받아들면서 씨스뜨라를 둘러보지만 의지가 사라진 얼굴이다. , 될 대로 되라지. 넷이나 되는데 어떻게 되겠지. 팔아먹긴 힘들 거 아냐? 그리고, 늙은이 데려다 어디 쓸라고? 숙소에만 가면 되는 거잖아.

총무를 맡은 내가 결정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난 1000루불짜리 지폐 2장을 그 놈에게 넘겨준다.

짐을 트렁크에 싣고 택시에 타자 마음이 조금은 정리된다.

러시아 남자는 삐끼다. 하루 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오래 그 일을 했다면 황당한 짓을 했을 리는 없다. 적어도 여행객들을 숙소에 무사히 데려다주긴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남자가 저 일을 계속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안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가는 내내 계속된 높새 중계방송에 불안은 믿음으로 굳어진다. 적어도 숙소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믿음이.

높새는 모스크바와 쌍뜨 뻬쩨르부르그 중심 거리를 외다시피 하고 있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을 검색해야 했고, 그러자니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다니는 길을 검색하게 되고, 비록 마우스로 찾아가는 길이지만 수없이 지도 위의 거리를 거닐었고, 중요한 건물은 사진도 볼 수 있었으니, 마치 갔다 온 것처럼 거리가 그려진단다. 그녀는 달리고 있는 길을 살피면서 줄곧 방송을 한다. 조금 있으면 우회전을 할 것이다. 곧 강이 나올 것이다. 다리를 지날 것이다. 오른쪽에 붉은 건물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우회전을 하고 강이 나오고 다리를 지나고 붉은 건물이 눈앞에서 지나갔다. 마치 운전자가 높새의 말대로 운전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윽고 색 바랜 주황빛의 고층 건물을 가리키며, 바로 저 건물이다, 라고 했을 땐 도리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운전자가 그 건물 앞에 멈춰서며 다 왔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믿어야 할 상황에서 도리어 믿을 수가 없는 것은 도대체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대단한 인간 네비게이션이 우리 편인 것은 확실하다.

 

숙소에 들어와 우리끼리가 되자 데굴데굴 굴렀다.

가장 하지 말라는 짓을 제일 먼저 했던 것이니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게 어디냐고 하며 웃었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며.

눈빛이 선한데 속았다고 하다가, 나중엔 무사히 데려다 주었으니 사기꾼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어떻게 보면 사업의 방식을 우리가 몰랐을 뿐이라고, 급기야 그런 분업이 참 괜찮다고, 일종의 미인계가 아니냐며, 남자의 사업 수완을 칭찬하기까지 하며 웃었다.

인간은 불안감이 사라지면,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남에게도 한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는 종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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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레메티예보 공항>

 

 

모스크바다.

모스크바 시간 오후 430.

새벽에 일어나 인천공항행 기차를 탔고, 다시 장장 10시간 가까이 비행기 속에 있었다. 고국은 지금 어둠에 덮여있을 시간. 내가 다리를 쭉 펴고 누워있을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 모스크바엔 밝은 태양이 빛나고 있다.

그렇다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고국을 그리워했다는 건 아니다. 당시엔 시간을 계산하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아마 짐을 챙기고 입국수속을 하고 참으로 생소한 러시아어 안내 글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었을 것이다. 이미 달리기는 시작되었으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추억을 되짚어 쓰고 있는 글이니 지금의 감상이 끼어든 것뿐이다. 한적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여유가 그 날의 길었던 하루를 계산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언제 숙소에 가서 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해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하루가 30시간이었던 긴 날이었으니까.

 

셰레메티예보 공항 안은 몹시 덥다.

난 초겨울 옷차림이었고 공항 안은 초여름 기온이었다.

‘5월의 모스크바는 우리나라의 4월과 같다. 비가 자주 오고 기온 변화가 심하다. 하루에 사계절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니 사계절 옷을 준비하고 비옷은 필수다. 한 마디로 비가 오고 춥다.’

이것이 모스크바 날씨에 대해 내가 수집한 정보였다. 그래서 난 짐을 줄인답시고 일부러 두꺼운 옷들은 입은 채 출발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야했기 때문에 그건 아주 현명한 선택인 것처럼 보였다. 새벽엔 제법 쌀쌀하기까지 했으니까. 비행기 안에서도 전혀 선택의 후회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속에 껴입고 온 스웨터가 마냥 포근하기만 했다. 적당한 그 체감이 여행지까지 이어진다는 맹목의 믿음 속에 의심의 그림자는 없었다.

사람은 예측을 기정사실로 믿어버리는 우매한 짓을 종종 저지른다. 그 예측이 한 번이라도 맞아떨어지면 절대적 믿음으로 굳어지는 괴현상도 일어난다. 그래서 예측이 어긋났을 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난 것처럼 놀란다. 예측을 사실로 굳혀버린 그 믿음이 더 놀라운 일인데도 말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 이란 말은 글자로만 익혔던 모양이다. 아니, 그런 일을 당할 때만 진리의 말씀으로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은 사라지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도무지 학습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공항으로 들어서는 순간 훅, 하고 끼치는 여름 기운.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오르며 이마에 땀이 배어나온다. 하지만 어떻게 해볼 여유가 없다. 사람들의 바쁜 걸음을 따라 걸음을 옮길 뿐이다. 낯선 동네에 왔으니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헤매는 걸 방지해 줄 좋은 방법이다. 입고 있는 옷이 점점 무거워진다. 체온을 유지하고도 남는 두께의 옷은 짐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상쾌한 온도 조절을 포기하고 부지런히 걷는다. 바쁜 걸음이 끝나는 곳에 사람의 줄이 있다. 입국심사대 앞에는 이미 줄이 길다. 그 중 가장 짧아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

줄은 길고 심사는 느리다.

덕분에 여유는 생겼다.

스웨터 위에 걸친 트렌치코트를 벗었다. 스웨터도 벗고 싶었지만 달려있는 짐을 생각하고 참는다. 스웨터 위에는 여행용 크로스백이 목에서 가슴을 가로질러 걸쳐져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도 등에는 백팩이, 한 손에는 바퀴달린 여행 가방이 자리 잡고 있어 손이 모자란다.

그렇게라도 재정비를 하고 나니 몸이 좀 가볍다.

할 일은 없는데 줄은 그대로다.

목을 빼서 심사받는 사람을 바라본다.

한 사람을 심사하는 데 족히 5분은 걸리는 것 같다.

얼마나 까다롭게 보는 걸까.

왜 저렇게 오래 보는 걸까.

, 그래도 입국신고서는 없었지.

러시아는 입국 신고서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게 은근히 귀찮은데. 그래서 심사가 까다로운가.

입고 있는 옷이 다시 무거워진다.

불쾌함을 잊으려고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햇살이 비쳐드는 천장 구조물이 보인다. 더울 때는 햇살이 반가울 리가 없다. 분명 아름다운 천장이지만 그곳으로 들이치는 햇살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온실처럼 더운 이유가 바로 천장의 구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여긴 러시아다. 겨울이 긴 나라. 추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막느냐가 가장 큰 숙제일 게 틀림없다. 그리고 태양열은 가장 싼 열에너지. 한줄기의 햇빛이라도 소홀히 흘려버릴 수 없을 테지.

그래도 지금은 냉방이 잘 되어있는 인천공항이 그립다.

러시아 공항은 언제부터 냉방을 하는 걸까. 짧은 여름이지만 냉방을 할 텐데.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다. 하긴 내가 지금 스웨터만 벗어도 덥지는 않겠다. 분명 한여름의 더위는 아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옷은 대개 가볍다. 그리고 물론 나처럼 더위에 찌든 표정도 아니다.

, 무겁다. 옷도 무겁고 등에 달린 가방도 무겁다. 지친 몸에 무겁지 않은 것이 없다. 더위조차 무겁다. 시원하기만 해도 좀 살 것 같은데 공항의 온도는 갈수록 올라가는 것 같다.

빨리 수속이 끝나서 공항 밖으로 나가고 싶다.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다.

밖은 시원하겠지.

상상의 바람을 그려본다.

상상조차 지쳤는가. 바람의 느낌은커녕 서있다는 감각조차 사라진다. 차라리 감각을 지워버리는 걸 선택한 모양이다. 더위에 지친 시간이 무감각하게 흘러갔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들도 나와 같은 고통 속에 있는 게 확실하다. 씨스뜨라의 평균 나이는 60. 그 중 내가 가장 젊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힘을 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기껏 힘을 내어 한 짓이라곤 어깨를 두어 번 돌려본 것뿐이다. 괜히 땀에 젖은 옷의 불쾌감만 불러왔다. 조금 전의 무감각이 차라리 나았다.

 

인천 공항에서 해물순두부를 먹었던 일이 벌써 까마득하다.

공항행 기차를 타느라 새벽잠을 설쳤지만 덕분에 공항에선 여유가 넘쳤다. 공항 내 식당에서 아침을 천천히 먹고 출국 수속을 마친 시간이 11시였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두 시간도 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탑승구 앞 대기의자에서 느긋하게 앉아 기록도 하고 러시아어 회화 책을 보며 머리에 남지도 않는 회화를 입으로 읽었다. 그러면서 줄곧 의자를 뜨지 않았다. 머물기에 편한 의자와 쾌적한 온도. 그 곳은 이미 나의 여행지였다. 머물러있을 때 무언가를 생산하는 타입인 내가 즐기는 장소이기도 했으니까.

그렇지만 행동 면에서 나와 유형이 많이 다른 씨스뜨라는 어디에 있는가? 물론 자리에 없다. 그들은 내내 어딘가를 어슬렁거린다. 특별한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볼일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들에겐 일을 보러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커피집을 기웃거리기도 하지만 어디든 직선으로 갔다가 직선으로 돌아오진 않는다. 물론 직선으로 갔다 오는 씨스뜨라가 있긴 하지만 그녀도 자리에 앉아 있진 못한다. 대신 분명한 목적을 가진 곳이 여러 곳이라는 게 다르다. 재빨리 갔다 와서 다시 일어나 목적지로 향한다.

길 위에 있는 자들은, 움직일 때 비로소 더듬이가 돌아가는 타입인지도 모르겠다. 유목민의 피가 강하게 흐르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난 그들의 유전자 덕을 보고 있다. 어차피 낯선 곳에서 길 찾기는 오로지 그들의 몫이니까. 무거운 등짐을 내게 맡겨놓고 홀가분하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 그들에게도 나 같은 존재는 나쁘지 않다. 여행을 할 때마다 자주 벌어지는 이 같은 상황. 난 익숙한 이 상황에 편하게 젖어있다.

그들은 탑승구 문이 열릴 때가 되어서야 의자로 돌아왔다.

그리곤 백팩을 가볍게 메고 탑승구로 들어갔다.

그 백팩이 그들보다 더 지친 모습으로 등에 달려있다.

짐도 주인의 상태를 따라가는 모양이다.

다행인 것은 그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아무리 지쳐있어도 그 상태로 멈추어있진 않는다는 것. 물론 시간도.

그리하여,

드디어 입국 심사대 앞에 서게 되었다.

안경을 낀, 금발의 단발머리 러시아 미인이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아무 말도 없이 요모조모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얼굴이 참 작기도 하다.

너만 내 얼굴 구경하는 것 아니다? 나도 네 얼굴 구경 한다? 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눈길을 마주한다.

그래도 조금은 긴장된다.

여긴 러시아니까.

학교 다닐 때 반공 교육을 너무 받았나보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내 앞에 여권 크기만한 종이쪽지가 올려졌다.

여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빽빽하게 적혀있는 종이를 올려놓고 한 곳을 가리키며 볼펜을 넘겨주었다. 눈치로 알았다. 자필 서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모르는 글자들 속에 내가 아는 유일한 글자가 될 나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녀는 그 종이를 여권 사이에 끼워 여권을 돌려주었다.

드디어 통과!

유난히 감격적이다. 다른 나라에서 느끼던 것과 또 다르다.

정말, 반공 교육을 너무 받았나보다.

그 종이는 러시아를 떠날 때까지 잘 보관해야 한다. 출국할 때 반드시 있어야 한단다. 그러니까 출입국신고서와 같은 것인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서류가 참 간편하다. 여행자가 일일이 작성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한 장으로 끝! 갑자기 이 나라가 정답게 다가온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런 기분 또한 변한다는 것. 변하지 않으면 그게 어디 기분인가. 어떤 사소한 것이 이 기분을 또 정반대의 감정으로 바꿔놓을지 알 수 없다. 그것조차 흘러갈 것이니 너무 멀리 가지 말자.

출입국 심사대의 문을 밀고 나간다.

, 이제부터 자유로이 이 나라를 돌아다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먼저 수속을 끝낸 자의 여유로운 웃음이 만면한 두 여자가 나를 보고 손짓을 한다.

한 여자는 아직이다. 옆줄로 옮겨간 게 실수다. 말하자면 줄을 잘못 선 것. 짧은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심사관이 더 깐깐한 모양이다. 그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둘. 길어야 10분이면 되겠지. 처음 줄을 섰을 때의 긴 줄을 생각한다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이 시간을 달리게 만들었는가. 어느새 그녀가 심사대 문을 열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온다. 앞으로 내가 자주 언급하게 될 바로 그 걸음이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빠른 걸음의 소유자. 그녀를 마지막으로 씨스뜨라가 한 자리에 모였다. 오늘 아침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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