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객 택시>

 

 

러시아 남자를 따라 공항 밖으로 걸음을 옮길 때까지도 제법 희희낙락할 수 있었다.

예상도 못한 상황이 곧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걸 아무도 몰랐으니까. 몰랐던 게 죄라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지만 속이는 자가 정말 죄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지. 그런데 세상은 속이는 자보다 속은 자에 대한 이야기로 더 시끄럽다. 속인 자는 입을 다물고 속은 자들의 한탄이 때론 무용담처럼 인터넷이란 공간을 통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피해자 이야기에 가해자의 행각은 묻혀버리는 꼴이 되어 죄를 묻는 일조차 흐지부지되는 느낌이다. 결국은 속은 자만 바보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인가.

그렇다고 씨스뜨라가 단체로 대단한 사기를 당했다는 건 아니다. 상황 파악을 미리 못했다는 것뿐이다. 물론 호객을 한 러시아 남자의 고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걸려든 것이다. 씨스뜨라의 눈치가 형편없었는지 그의 연기가 훌륭했는지는 모르겠다.

입국 수속이 끝나고, 이제 오늘의 마지막 관문인 숙소를 찾아갈 일만 남겨두었다.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던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씨스뜨라가 구호처럼 이구동성 외친 말이 있다.

러시아에서 아무 택시나 타지 마라.’

막상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여행준비에 들어가자니 러시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아는 것이 없다. 즉 정보가 없다. 그럴 때 현대인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예상대로다. 인터넷 검색. 씨스뜨라가 한 일도 검색이었고 인터넷으로 러시아 여행 가이드북도 구입했다. 그것도 같은 책을 네 명 모두. 의논? 그런 적은 없다. 각자 알아서 필요한 일을 하다가 필요한 것을 구입한 것뿐인데 결과가 같았을 뿐이다. 여행 준비 때문에 정보를 주고받는답시고 채팅방에서 문자를 주고받다 알았다. 그 책이 엄청 유명한 책이냐고? 그건 잘 모르겠다. 여행 준비를 하기 전엔 전혀 몰랐던 책이니까.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있다. 러시아 여행 관련 책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 그래서 선택의 폭이 아주 좁다는 것. 그건 씨스뜨라가 같은 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선택한 책이 형편없다는 뜻은 더구나 아니다. 구매 환경이 그랬다는 정보일 뿐이다.

하여간 씨스뜨라는 같은 책을 보며 정보를 모으고 있었고, 우리에게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일은 공항에 내려 숙소를 찾아가는 일이었고, 그래서 교통편을 찾아보았을 것이고, 택시를 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고, 택시를 타야 한다면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에 먼저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인간은 종종 99가지 장점보다 단 1가지 단점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하는 특이한 종이니까. 그리고 씨스뜨라는 지극히 인간적이었던 모양이다. 어떤 택시를 타야하지? 보다 아무 택시나 타지 말래! 란 말을 더 자주 했으니까. 아니 마치 서로를 세뇌시키려는 듯 주문처럼 그 말을 외고 다녔다. 아마도 말도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일어날 가장 두려운 일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도 여행 첫 날, 무거운 짐을 든 채로.

 

그런데 그 구호는 왜 갑자기 빛을 잃고 우리 머리에서 사라졌을까.

세뇌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일까.

씨스뜨라의 나이 탓이었을까.

그래서 판단력이 흐려졌던 것일까.

아님 정말 경계심이 풀려버렸던 것일까.

출국장을 빠져나올 때 택시 호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택시? 하면서 출국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물론 우리에게도. 그 때까지도 세뇌는 잘 되어 있는 상태였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고개를 흔들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그 곳을 빠져나왔다. 우린 호출 택시를 탈 예정이었다. 스마트폰 심 카드를 바꾸고 나서 현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그건 물론 책에서 얻은 정보다. 하지만 그걸 백 퍼센트 믿고 있었던 건 물론 아니다. 그게 잘 되지 않으면 공항에서 불러주는 택시를 탄다. 그게 두 번째였다. 하여튼 호객하는 택시를 타지 않는다, 만 확고했다. 그것만 안하면 되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만 마음에 꼭꼭 새겨두었다. 아니 그랬다고 믿었다.

높새와 갈마가 스마트폰 심 카드를 바꿔 넣기 위해 가게로 가 있는 동안 하늬와 난 의자에 앉아 짐을 지키고 있었다. 한 남자가 다가왔다. 택시를 타겠느냐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둘 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 남자가 물러났다. 높새와 갈마가 돌아왔다. 높새는 심카드를 바꿔 넣은 스마트폰을 살폈다. 이제부터 택시를 불러야 했으니까. 사실 앱이 잘 설치된다 해도 그 다음이 문제였다. 우린 러시아말을 전혀 몰랐다. 연결이 되면 행선지를 말하고 계약을 해야 하지만 어떻게? 무슨 수로?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호출 택시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물론 갑자기 언어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다면 러시아 발음을 한글로 적어서라도 소통의 방법을 찾았을 것이 아닌가. 그런 방법을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단 말은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증거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말하자면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더 신경을 썼다는 증거. 호객 택시를 타지 말라고 하는 정보를 머리에 새기는 대신 그런 일을 했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앱 설치가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선택할 방법은 공항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방법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어디에서 알아보면 될까? 높새와 갈마가 공항 서비스를 알아보러 일어났다. 시간이 흐른다. 하늬와 난 우리를 보고 있는 눈길에 둘러싸여 있다. 여행가방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 공항을 빠져나가지 않고 서성대며 무언인가를 시도하려 한다. 분명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러니 호객 택시 기사들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다.

높새와 갈마가 돌아온다. 문제를 해결한 모습이 아니다. 서비스 데스크를 찾지 못했는지 의사소통에 실패했는지는 모르겠다. 묻지 않는다. 실패에 대한 대안이 내겐 없으니까. 대안 없는 질문은 잔소리다. 내가 그들에게 잔소리할 자격은 없다. 같이 풀어야 할 문제일 뿐이다. 그들은 여행 가이드가 아니라 친구 자격이니까.

그런데 그들 뒤를 따라붙는 남자가 있다.

남자의 선한 눈빛을 믿었다. 아니 내 판단의 눈을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웃으면서 얘기했더니 모두가 같았다. 눈빛이 그랬다고. 그렇다면 그 남자는 나쁜 뜻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우리가 잘못 판단했는지도.

남자는 영어가 능숙했다.

소통의 기쁨에 취했는지도 모르겠다. 2000루불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처음엔 4000루불이라 했다. 사실 2000루불도 책에서 바가지요금이라 했던 그런 요금이다. 한국 돈으로 사만 원 정도다. 그런데 씨스뜨라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다. 사실 요금 때문에 그렇게 우리를 세뇌시켰던 것은 아니다. 잘못 데려다주면 어떡하나?에 대한 불안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씨스뜨라는 그걸 잊고 있다. 그들은 서로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만 원정도면 괜찮지 않아? 한 사람당 만원밖에 안 되잖아?

이 요금이 엄청 바가지였다는 건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호출 택시를 탔을 때 비로소 확실히 알았다. 숙소에서 공항까지 장장 1시간이나 걸렸지만 800루불이었으니까. 그리고 첫날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하여간 세뇌의 빗장은 이미 열렸다.

숙소로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욕망이 갑자기 활활 불타오른다. ‘그만 타고 갈까?’ 내가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럴까? 아저씨 인상도 괜찮아 보이고.’ 하늬가 동조했다. ‘우리 이래도 되나?’ 갈마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긍정의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됐다. 타는 걸로.’ 높새가 결심의 쐐기를 박는다.

오케이!

씨스뜨라가 짐을 챙기며 일어난다.

인상 좋은 러시아 남자의 뒤를 따르는 여행객들.

그들은 지금 호객 택시를 타려고 하고 있다.

시시때때로 외쳤던 구호는 그렇게 힘이 없었던가?

도원의 결의처럼 굳었던 맹세는 어디로 갔는가?

러시아 남자가 공항 문을 나서고 씨스뜨라도 곧이어 공항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밖에는 택시가 줄을 이어 서 있다. 우리나라 공항 밖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 나라도 손님보다 택시가 많은가 보다. 손님을 잡으려는 경쟁이 심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남자는 자꾸 걸어간다. 공항 바로 밖에 택시가 줄이어 있는 곳을 지나쳐 길을 건넌다. 조금 불안해진다.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물론 1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낯선 곳이니 쉽게 불안해진다. 드디어 남자가 걸음을 멈춘다. 그런데 그가 가리킨 택시는 몹시 낡아 보인다. 실망한다. 지금까지 지나쳐왔던 크고 깨끗한 택시를 돌아보지만 이미 늦었다. 하지만 그 실망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되고 만다. 낡은 택시 앞에서 남자가 누군가를 소리쳐 부른다. 곧 한 남자가 달려온다. 몹시 추레한 차림의 몸집이 작은 동양 남자다. 낡은 고동색 반팔 티셔츠에 땀이 배어있다.

그 때 이미 상황을 깨달았다.

러시아 남자는 그냥 삐끼였던 것이다. 인상이 좋아보인다며 만장일치로 선택한 남자가 삐끼라니. 인상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뛰어온 동양 남자가 러시아 남자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택시 문을 연다. 조금 남아있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우린 몹시 당황한다. 이것은 예상도 하지 못한 일. 그제야 우리의 결의가 살아 돌아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여기까지 와서 안 탄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몹시 거칠게 나오지 않을까. 여기는 낯선 곳. 우리 편이 하나도 없는 곳. 별별 생각이 빠르게 스친다.

이대로 조용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갈마가 러시아 남자에게 묻는다.

네가 운전하는 것 아니냐?

아니다.

우리가 가는 숙소를 동양인 남자가 알고 있느냐?

걱정하지 마라. 잘 알려주었다.

공항에서 흥정을 할 때 우리가 묵을 숙소 주소를 러시아 남자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요금 흥정을 했다. 그런데 동양인 남자는 영어를 한 마디로 하지 못한다. 잘못 가더라도 물어볼 수도 없다. 적어도 의사소통이 되는 운전자의 택시를 탄다고 안심했던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운전자도 바뀐 마당에 말까지 통하지 않다니. 택시를 타지 않겠다고 할 용기도 없는 마당에 씨스뜨라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그런데 그게 또 끝이 아니다. 러시아 남자가 요금을 자기에게 먼저 지불하란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상황? 우리의 표정이 어떤 웅변보다 강렬하게 그 뜻을 전달했나 보다. 러시아 남자가 영수증을 써 주겠다며 종이를 꺼낸다. 너무 황당하면 반박할 의욕까지 잃게 된다. 아니 포기하고 싶어진다. 씨스뜨라의 상식과 판단력이 얼토당토아니한 공격에 오류가 일어나고 있다. 누구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남자가 영수증을 내민다. 2000루불이란 글자가 적힌 종이쪽지를 받아든 사람은 나. 종이를 받아들면서 씨스뜨라를 둘러보지만 의지가 사라진 얼굴이다. , 될 대로 되라지. 넷이나 되는데 어떻게 되겠지. 팔아먹긴 힘들 거 아냐? 그리고, 늙은이 데려다 어디 쓸라고? 숙소에만 가면 되는 거잖아.

총무를 맡은 내가 결정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난 1000루불짜리 지폐 2장을 그 놈에게 넘겨준다.

짐을 트렁크에 싣고 택시에 타자 마음이 조금은 정리된다.

러시아 남자는 삐끼다. 하루 이틀 해 본 솜씨가 아니다. 오래 그 일을 했다면 황당한 짓을 했을 리는 없다. 적어도 여행객들을 숙소에 무사히 데려다주긴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남자가 저 일을 계속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안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가는 내내 계속된 높새 중계방송에 불안은 믿음으로 굳어진다. 적어도 숙소로 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믿음이.

높새는 모스크바와 쌍뜨 뻬쩨르부르그 중심 거리를 외다시피 하고 있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을 검색해야 했고, 그러자니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다니는 길을 검색하게 되고, 비록 마우스로 찾아가는 길이지만 수없이 지도 위의 거리를 거닐었고, 중요한 건물은 사진도 볼 수 있었으니, 마치 갔다 온 것처럼 거리가 그려진단다. 그녀는 달리고 있는 길을 살피면서 줄곧 방송을 한다. 조금 있으면 우회전을 할 것이다. 곧 강이 나올 것이다. 다리를 지날 것이다. 오른쪽에 붉은 건물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우회전을 하고 강이 나오고 다리를 지나고 붉은 건물이 눈앞에서 지나갔다. 마치 운전자가 높새의 말대로 운전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윽고 색 바랜 주황빛의 고층 건물을 가리키며, 바로 저 건물이다, 라고 했을 땐 도리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운전자가 그 건물 앞에 멈춰서며 다 왔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믿어야 할 상황에서 도리어 믿을 수가 없는 것은 도대체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대단한 인간 네비게이션이 우리 편인 것은 확실하다.

 

숙소에 들어와 우리끼리가 되자 데굴데굴 굴렀다.

가장 하지 말라는 짓을 제일 먼저 했던 것이니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게 어디냐고 하며 웃었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라며.

눈빛이 선한데 속았다고 하다가, 나중엔 무사히 데려다 주었으니 사기꾼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어떻게 보면 사업의 방식을 우리가 몰랐을 뿐이라고, 급기야 그런 분업이 참 괜찮다고, 일종의 미인계가 아니냐며, 남자의 사업 수완을 칭찬하기까지 하며 웃었다.

인간은 불안감이 사라지면,

그래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남에게도 한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는 종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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