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5월 3일. 화요일)
<계산이 맞지 않으면 개조를 하라>
창밖이 훤하다.
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아, 맞다. 여기는 러시아?
잠 잘 동안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몸은 분명히 이 곳에 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어딜 갔다 왔기에 새삼 놀라는가. 눈을 뜨는 순간 러시아에 와 있음을 알아채는 마음의 소리. 그건 바로 정신은 밤새 다른 곳에 있었다는 증거? 그래도 찰나에 알아채는 걸 보니 멀리 가 있진 않았던 모양이다.
또 쓸데없는 상상이다. 그만 일어나자.
우와. 이게 뭐야. 겨우 네 시하고도 반?
이렇게 밝은데? 우리나라보다 엄청 부지런하네! 러시아 해님은!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는 도로 누워버린다. 아니, 일어나려고 목에 약간의 힘을 주었을 뿐이니까 도로 누운 건 아니다. 그냥 목에서 힘을 빼고는 옆으로 돌아눕는다. 그러다 굴러 떨어질 뻔 한다. 그렇다. 난 지금 기역자로 생긴 소파의 돌출부분에 누워있다. 돌출부분이라 함은 마치 반도같이 생긴 형태를 말한다. 소파의 끝부분에 직각을 이루는 스툴이 이어져있는 것이다. 그러니 양쪽이 낭떠러지.
등받이가 있는 쪽 소파엔 갈마가 자고 있다. 갈마와 난 머리를 같은 동네에 모은 채로 몸은 기역자로 두고 잤던 것이다. 잠들 때는 발이 공중에 뜨는지라 옆으로 누웠다. 아무리 키가 작다 해도 의자 두 개 길이는 너무 했다. 똑바로 누우니 발이 의자 밖으로 덜렁 들렸다. 그래서, 높은 데서 떨어지는 악몽에 시달릴지도 몰라, 하면서 모로 누워 잠이 들었다. 하지만 밤새 같은 자세로 자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난 아침에 눈을 뜨면 주로 천장을 향한 자세로 똑바로 누운 채다. 러시아에서도 그 자세로 눈을 뜬 것이다. 물론 발이 공중으로 삐죽 나간 채로. 그래도 다행히 높은 데서 떨어지는 악몽은 없었다.
숙소에 침대가 부족했냐고?
부족하진 않았지만 불편한 침대 하나를 외면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두 개의 방에 각각 더블베드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현관에 가까운 방을 문간방, 주방에 가까운 방을 안방이라 부르겠다.
문간방 침대는 급조한 게 분명했다. 매트리스 아래 철제 받침대가 너무 허술해서 한 사람이 누워도 침대가 벌벌 떨었다. 그런데 그게 명색은 더블베드라 둘이 누워야한다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가냘픈 스프링이 들었는지 몰라도 둘이 누우면 침대는 계속 물결처럼 가늘게 흔들렸다. 한 사람이 숨만 크게 쉬어도 밤새 같이 파도를 타야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일인용. 그것도 지원자가 있을 때 해당되는 자격이겠지만. 하여간 그 침대는 일단 더블베드의 자격을 잃어버렸다. 한 침대의 기존 자격을 박탈하고 나니 다른 문제가 꼬리를 이었다. 한 사람이 그 침대를 쓴다 해도 남은 사람은 셋. 그리고 남은 침대는 하나. 모두가 침대에서 자는 건 불가능해져버렸다.
한시바삐 몸을 눕혀 쉬고 싶었던 지난 밤.
불편해진 잠자리에 절망한 나머지 급기야 각자 독립된 잠자리를 꿈꾸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하늬는 제일 먼저 문간방 침대를 버렸다. 아예 사람이 잘 수 없는 침대로 규정짓고 안방으로 갔다. 갈마와 나도 하늬를 따라갔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몸만 그냥 이동한 것이다. 사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던 높새는 움직이기도 싫었던지 문간방 침대에서 자겠다고 남았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안방엔 침대와 소파가 있었다. 소파는 네 사람이 충분히 앉을 크기였다. 오해하지 마시라. 어디까지나 앉았을 때 충분한 소파란 뜻이니까. 갈마가 소파에 쓰러지며 자기 잠자리라고 선포했다. 바로 등받이가 있는 쪽에 쓰러진 것이다. 그리고 하늬는 침대로 갔다. 침대 한쪽이 이제 하늬의 차지가 되면서 내 자리는 자동으로 정해졌다. 더블베드의 동숙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나도 독립을 하고 싶었다. 어찌하였건 모두 독립된 침대를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침대를 같이 쓴다는 건 참 불편하다. 부부라도 나이가 들면 트윈을 쓴다는데. 방법이 전혀 없다면 몰라도 나도 독립을 하고 싶었다. 독립을 결정하고 나자 침대 옆자리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내 꿈은 가장 가난한 곳에서 실현되었으니, 소파의 돌출부분이 바로 그곳이었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찾았다.
사진과 정보를 아무리 자세히 실어놓았다 해도 직접 보지 않는 한 한계는 있다. 홈페이지에 제공된 아파트 내부 사진을 수십 번도 더 보았지만 매트리스의 안락함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침대가 여행자 수만큼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 정도 갖춘 집은 값이 엄청 비싸졌다.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으면서 적당한 가격의 집. 물론 필수로 충족되어야 할 다른 조건도 많았다. 와이파이, 세탁기, 난방 등등. 그야말로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집을 구하자는 수작이었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너무 많은 집을 검색하다보니 나중엔 어떤 집을 왜 찜해 놓았는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겨우 결정해 놓으면 그 사이에 예약완료가 뜨는가 하면 무슨 일인지 집주인의 수락을 못 받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는 사이에도 찜해놓은 많은 집들이 속속 예약완료 되었고 조금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정해진 곳이 스몰렌스카야 구역에 위치한 아파트.
높새 말로는 조금 멀긴 하지만 붉은 광장까지 걸어서도 갈 수 있을 위치에 있다고.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시간? 이란 의문을 표했지만 굳이 의문으로 듣지 않았다.
어차피 여행이란 길 위에 있는 것. 보이는 모든 것이 처음일 테니 아무렴 어때?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거야.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하며 나는 결정을 종용했다. 어쩌면 자기최면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많이 걸어야 한다는 문제에 가장 예민해야 할 사람은 체력적으로 제일 불리한 나였으니까.
그렇게 결정된 아파트는 씨스뜨라가 말하는 다른 필수조건을 모두 갖추었지만 사실 침대는 아니었다. 다소 불편하리란 예감은 있었다. 더블침대를 써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다 좋을 수는 없지. 집과 같은 수는 없잖아. 어떻게 되겠지. 또 모르지. 침대가 너무 커서 거기 누구 없소? 할 정도인지도. 그리고 안 되면 소파도 있으니까.
다들 그런 심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런 심정이었다. 사실 사진으로 보는 침대는 굉장히 넓었고 소파는 매우 안락해 보였다. 사진을 보이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믿고 싶었다. 그것 때문에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새로 위치 검색을 하고 숙소를 고르고 사진을 보고 설명을 읽고 리뷰 속에서 정말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는 과정을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혹시? 하는 희망의 묘약을 늘 가슴에 품고 다닌다. 혹시 알아? 보는 것 하곤 다를지? 하며 숙소에 대한 갈등을 끝냈다. 그 ‘혹시?’가 ‘역시!’란 형태로 현실 앞에 실체를 드러냈을 때는 이미 실망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동안의 염려는 사치였던 것이다. 그나마 한 침대는 사용이 불가능한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모로 돌아누워 다시 잠을 청하려다 포기한다.
온 집안이 깨어나는 분위기에 술렁인다.
하늬가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그리고 바로 머리맡에 느껴지는 갈마의 기척. 갈마와 난 샴쌍둥이도 아닌데 머리를 맞댄 것처럼 너무 가까워 자는 척하는 것조차 불가능이다. 사람에겐 잠의 기운과 깨어남의 기운을 알아채는 감각이 있는 것 같다. 모두가 깨어났다는 걸 서로가 알고들 있다. 심지어 문간방에 혼자 잤던 높새까지도.
높새가 투덜거리며 안방으로 건너온다.
밤새 침대와 씨름했단다. 등이 얼마나 배기는지 공룡의 뼈 위에 자는 것 같았다나.
드디어 갈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잠 못 잤겠네요? 하면서.
그 와중에 난 계속 누워있다. 최후로 일어나는 자가 되리라. 이것이 내 목표다. 어떻게든 누워있는 시간을 늘려보려는 안간힘이다. 아침 시간을 벌어놓아야 하루가 덜 힘들다. 어차피 아침 먹고 나가면 저녁 시간이 되어야 들어올 테니까. 될 수 있으면 천천히 일어나 천천히 준비하고 천천히 나가야 한다. 그 방법만이 내가 살 길이다. 이들과 여행을 자주 다녀본 경험이 만든 생활의 지혜인 셈이다. 그래봤자 비밀도 아닌 것이 모두들 알고 있다. 아니 씨스뜨라의 법칙이 되고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법은 지켜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칙이 되니까. 그래서 난 항상 가장 먼저 잠자리에 눕고 가장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세상이 조용하다. 혹여 내가 늦게까지 앉아있거나 아님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다간 물의가 일어난다. 오늘은 오래 버티네? 라든가 왜 벌써 일어났어? 하며 놀란다.
하여간 지금 난 법 수행 중이다.
눈은 감은 채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보이는 듯하다. 하늬는 목욕 중이고 높새는 침대에 벌렁 누워 공룡 뼈 위에서 고생한 허리를 펴고 있다. 그리고 갈마는? 머리맡에 사람의 기척이 없다. 갈마는 뭘 하고 있을까, 하는데 발밑에 무엇이 닿는다.
발 좀 들어봐요.
눈을 뜨고 발치를 본다. 갈마가 작은 의자를 소파 끝에 붙여놓는다. 책상 아래 있던 등받이 없는 의자다. 소파 높이와 똑 같다. 우와! 나는 똑바로 누워 발을 쭉 뻗는다. 감탄이 절로 난다. 발이 들려있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것이었나? 싶게 편하다.
이제 괜찮죠?
네. 완전 편해요. 이러면 될 걸 왜 그러고 잤지?
글쎄 말이야. 어젠 너무 피곤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가만히 살펴보니까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대?
고마워요.
안락한 잠자리에 집착하는 나는 깊이 만족한다.
그리하여 발이 들리는 나의 독립 침대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남은 문제는 하나. 하루 만에 용도 폐기된 높새의 침대다. 별 수 없이 더블침대를 같이 쓰려나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첫날밤 이후 높새도 안방으로 합류하지만 잠자리 독립이 유지되었으니, 문간방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 와 안방 빈 공간에 깐 것이다. 문간방엔 씨스뜨라의 가방을 늘어놓아 매트리스를 깔 공간이 없기도 했지만 사실 방이 주는 아늑한 느낌이 없었다. 잘 사용하지 않는 방이었는지 쓰지 않는 물건을 죄다 모아놓은 것 같이 가구와 물건들로 빼곡했다. 더구나 수건과 자잘한 빨래를 너느라고 빨래줄까지 가로 쳐놓았으니 아마 난민촌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침대까지 그렇게 밤새 괴롭혔으니 남은 정이 있을 리가 없다. 높새는 시원하게 문간방과 함께 침대를 버리고 즐거이 안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너무 얇아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매트리스는 무겁지 않아 옮기기에 편했고 흔들리지 않는 방바닥에선 훌륭한 요가 되어주었다. 세상에 완전히 나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어 준 셈이다.
그래서 모스크바에서 남은 이틀 밤을 씨스뜨라는 한 방에서 자게 된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나 적응을 한다. 적응의 방법이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어떤 사람은 익숙한 환경으로 바꾸고 어떤 사람은 다른 환경에 익숙해진다. 불편한 점이 있지만 드디어 모든 것이 안정되었다. 하루 만에 낯선 곳이 고향처럼 된 것이다. 마침내 숙소는 씨스뜨라의 집이 되었고 관광은 외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