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써왔던 언어 세계를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하고 아무 것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말도 글도 통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표현하고 무엇으로 위로를 삼을까.
그리고 단지, 언어만 사라지는 것일까.
작가는 헝가리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네 살 때부터 읽을 줄 알았고 읽고 쓰는 일을 좋아했으며 다른 언어가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그런 그녀가 소련의 압제를 피해 남편과 4개월된 어린 딸을 데리고 고국을 떠난다. 헝가리는 처음엔 독일에 다음엔 소련의 침략을 받아 삶을 위협당했기 때문이다. 난민이 되어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인 스위스, 뇌샤텔에 정착하지만 활자 중독자는 완전한 문맹이 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집과 공장을 오가는 세월.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프랑스어로 자유롭게 말하게 되기까지 5년이 걸린다. 하지만 여전히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읽고 쓰기는 그저 그 언어를 쓰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 습득되진 않는다. 그래서 스물 여섯의 나이에 읽고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대학의 여름 학기 수업에 등록해 2년 만에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는다. 그리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게 되기도 하지만 작가에게 프랑스어는 여전히 외국어다. 그리고 스위스도 여전히 외국이다.
고국을 떠나 외국어로 말하고 글을 써야 하는 그녀의 아픔은 이 글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한 나라가 다른 민족을 지배한다는 것.
그건 민족이 가진 모든 전통, 문화를 없애는 것이기도 하다.
언어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그건 가능해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를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민족의 전통을 지켜내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작가는 스위스에 살면서, 프랑스어로 말하고 작품을 쓰면서 그렇게 외쳤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다,고.
아마도 오랫동안 모국어를 쓰지 않으면서, 프랑스어로 생활하면서, 모국어가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순간순간 했을 것이다.
우리말도 뿌리째 흔들렸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35년은 짧은 세월이 아니다. 우리말을 쓰지 못했고 읽지 못했던 시간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일본어를 배우고 말했던 역사는 우리 글말과 입말에도 영향을 미쳐 말도 글도 일본식으로 오염되었다. .내가 지금 쓰는 문장도 사실 자신이 없다. 오염 속에선 오히려 오염 상태를 감지할 수조차 없으니.....
그래도 영원히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작가에 비하면 다행이라 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