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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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쿄 선로변 작은 동네에 코코야라는 반찬 가게가 있다.

 주인 코코는 예순 한 살, 개점할 때부터 같이 일하던 종업원 마쓰코는 예순 살, 그리고 최근에 들어온 종업원 이쿠코가 제일 연장자다.

 육십 초반의 세 여자는 현재 모두 혼자다. 지금은 같은 혼자의 몸이지만 혼자가 된 사연은 물론 각기 다르다 그 사연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담담하게 펼쳐진다. 결코 담담하지 않은 사연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물론 작가의 능력 때문이거나 의도이리라.  

 이야기의 중심 무대는 반찬 가게다. 철따라 나오는 재료들이 반찬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끊임없이 묘사된다. 그리고 반찬을 만들면서 하는 이야기 속에 주인공들의 아픈 과거도 끼어든다. 아픈 사연들은 맛있게 만들어지는 반찬의 재료들과 버무려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사연들의 가시가 덜 날카롭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코코는 사랑하는 남편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생계와 생활의 수단이 된 그 반찬 가게가 원인이었다. 10살 아래인 메구미란 여자와 동업으로 연 반찬 가게. 남편은 메구미란 여자와 살고 싶어 했다. 코코는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하고 남편은 그녀 곁을 떠났다. 서로 미워져서가 아니라 남편이 메구미란 여자를 더 좋아하게 되어서였다. 헤어졌지만 남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코코. 그렇게 10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이쿠코는 남편이 죽고 1년이 지나 코코야에 취직을 했다. 아들 소노는 2살 때 죽었다. 폐렴으로. 그리고 30년을 남편을 원망하면서 산다. 열이 나는 아들을 당장 병원에 데려가자 했지만 남편이 날이 밝기를 기다려 가자고 했다는 이유에서다. 아침에 병원에 데려갔지만 아들은 폐렴으로 죽었다.

  마쓰코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남자는 계속 그녀로부터 도망간다. 그녀를 피해 결혼도 하고 다시 이혼한 남자를 내내 짝사랑한다. 그렇게 60이 넘을 때까지 오직 한 남자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세 여자의 과거와 현재가 반찬의 재료들처럼 섞이며 전개되는 이야기.

재료가 다양하고 맛있는 반찬들이 되는 것처럼, 그들의 과거 사연도 아름답게 혹은 담담하게 변하고 마무리된다. 인생은 반찬처럼 끝없는 재료 앞에 놓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재료로 수많은 다른 맛을 낼 수 있듯이 사람도 각자의 맛을 내는 운명 앞에 서 있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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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지음, 법정(法頂) 옮김 / 문학의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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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쇼코라는 학자의 깊고 넓은 지식과 철학이 담담히 흐르는 강물처럼 멋진 책이다.

 

 

 

도도히 흐르는 깊고 넓은 강물 앞에서 말을 잃고 그저 바라만 보았던 적이 있다.

조용하지만 멈추어 있지 않았고, 흐르지만 소리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그 흐름 속에 같이 호흡하고 있을까. 짐작도 되지 않을 정도겠지만 각각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인도 철학과 불교를 전공한 작가의 석가모니 전기는 특별했다.

작가는 아마도 수많은 불교 문헌을 연구하며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려내었을 것이다. 2500년이나 지난 시절의 인물이니 엄청난 공부가 밑받침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어차피 인물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니 당시의 역사와 문화, 풍속 연구는 기본이니까. 더구나 그 시절 인도 지역엔 온갖 종교가 난무했고 사상가도 많았다. 물론 이런 풍토 속에 살았던 석가도 당연히 그 영향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일생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 시절 다른 종교와의 비교 연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책을 읽다보면 석가 생존 당시 인도 지역의 종교, 사상, 풍속을 저절로 알게 된다. 독자는 책을 읽을 뿐이니 절로 알게 되는 것이지만 작가는 어땠을까. 절로 알게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니 공부의 깊이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처럼 방대한 연구로 태어났을 글이지만 지식이 자랑처럼 불쑥불쑥 튀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 정말 도도히 흐르는 넓고 깊은 강물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넓고 깊은 강물처럼 석가의 일생이 깊고 그윽하게 가슴에 와 닿은 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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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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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될 때까지 써왔던 언어 세계를 떠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하고 아무 것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말도 글도 통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표현하고 무엇으로 위로를 삼을까.

그리고 단지, 언어만 사라지는 것일까.

 

  작가는 헝가리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네 살 때부터 읽을 줄 알았고 읽고 쓰는 일을 좋아했으며  다른 언어가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그런 그녀가 소련의 압제를 피해 남편과 4개월된 어린 딸을 데리고 고국을 떠난다. 헝가리는 처음엔 독일에 다음엔 소련의 침략을 받아 삶을 위협당했기 때문이다. 난민이 되어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인 스위스, 뇌샤텔에 정착하지만 활자 중독자는 완전한 문맹이 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집과 공장을 오가는 세월.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프랑스어로 자유롭게 말하게 되기까지 5년이 걸린다. 하지만 여전히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읽고 쓰기는 그저 그 언어를 쓰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만으로 습득되진 않는다 그래서 스물 여섯의 나이에 읽고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대학의 여름 학기 수업에 등록해 2년 만에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는다. 그리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게 되기도 하지만 작가에게 프랑스어는 여전히 외국어다. 그리고 스위스도 여전히 외국이다.

 고국을 떠나 외국어로 말하고 글을 써야 하는 그녀의 아픔은 이 글 구석구석에 스며있다.

 

 한 나라가 다른 민족을 지배한다는 것.

 그건 민족이 가진 모든 전통, 문화를 없애는 것이기도 하다.

언어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그건 가능해보인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를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민족의 전통을 지켜내는 것이라 해도 좋겠다. 작가는 스위스에 살면서, 프랑스어로 말하고 작품을 쓰면서 그렇게 외쳤다.

 이 언어가 나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다,고.

 아마도 오랫동안 모국어를 쓰지 않으면서, 프랑스어로 생활하면서, 모국어가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순간순간 했을 것이다.

 

 우리말도 뿌리째 흔들렸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35년은 짧은 세월이 아니다. 우리말을 쓰지 못했고 읽지 못했던 시간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일본어를 배우고 말했던 역사는 우리 글말과 입말에도 영향을 미쳐 말도 글도 일본식으로 오염되었다.내가 지금 쓰는 문장도 사실 자신이 없다. 오염 속에선 오히려 오염 상태를 감지할 수조차 없으니.....

 그래도 영원히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작가에 비하면 다행이라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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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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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 전문의사의 문학적 글쓰기.

소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렇다.

 

<의식의 강>은 작가가 남긴 마지막 책이지만 내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책이다. 물론 이 책으로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며 의학적 활동만큼 많은 책도 집필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책 하나로 작가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뛰어난 의사가 아니라는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작가에 대한 자세한 소개도 어렵다. 그래서 작가 평가는 책 서문 일부를 인용하는 걸로 대신한다.

 

 ' 과학에 관한 그의 지식은 신경과학이나 의학만에 국한되지 않았고, 그는 모든 과학적 이류, 아이디어, 의문들에 열광했다. 이 책의 주된 관점과 시각도 그의 광범위한 과학 지시과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경험뿐만 아니라 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물의 삶을 파헤친다.

올리버 색스는 <의식의강>에서 진화론, 식물학, 화학, 의학, 신경과학, 그리고 예술을 다루며 자신이 위대하고 과학적이며 독창적이라 여기는 영웅들, 특히 다윈, 프로이트, 울리엄 제임스를 언급한다. 이들은 색스가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한 마음의 동반자였으며, 그의 저술 중 상당 부분은 그들과 나눈 대화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다윈이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색스는 예리하고 치밀한 관찰자로서 각종 연구 사례를 수집하는 데서 희열을 느꼈고, 그 사례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환자나 동료들과 주고받은 광범위한 서신과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프로이트가 그러했드, 색스는 인간의 가장 불가사의한 행동을 이해하는 에 이끌렸다. 그리고 윌리엄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다신이 다루는 시간, 기억, 창의력에 관한 주제가 이론적으로 기울어질 경우에도 경험의 특이성에 주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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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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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산문집이다.

 

주로 소설 쓰는 일에 관한 내용이지만 결국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이라는 것이 결국 삶을 통찰하는 지혜 없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니까.

깊은 내용이지만 무겁다는 느낌도 없다.

심오한 사상도 재미있게  다루는 재주가 소설가의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책이지만 읽고 난 뒤의 감흥은 무척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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