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은 평소에 하던 대로 오늘도 호출 이유를 금방 밝히지 않는다.
이 남자는 사람을 불러놓고는 항상 뜸을 들이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심리를 파악하고 있다. 상대가 ‘왜 그러십니까.’ 혹은 ‘무슨 일이십니까.’하고 묻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애써 표정을 감춘 약간 치켜든 얼굴과 먼 곳을 바라보며 상대의 눈길을 피한 모습이 그걸 잘 말해주고 있다. 아랫사람이 묻지도 않는데 자기가 먼저 입을 떼어 설명하는 건 뭔가 권위가 서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오늘은 부장의 바람에 부응하고 싶지가 않다. 필요 이상 큰소리로 사람을 불렀던 잔뜩 힘준 목소리에 기분은 이미 상했고, 상한 내 기분은 상대의 기분을 맞춰 줄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불렀으면 부른 사람이 먼저 목적을 이야기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화가 나면 윈리원칙을 따지는 법이다. 화난 마음엔 아량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고 바늘 하나 꽂을 대 없이 인색해져 있었다.
내가 인사만 하고 그냥 서 있자, 부장은 눈동자만 아래로 내려 나의 동태를 힐끗 살폈다.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상대가 가만히 있자, 먼저 말을 할까 어쩔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리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부장은 또 어색한 걸 오래 참아내지 못한다. 그래도 이렇게 뜸을 들이다가 먼저 말을 꺼낸다는 게 심히 내키지 않는지 들릴 듯 말듯한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좀 더 높이 치켜들었다.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을 정한 터라 아무런 동요가 없다. 결심하고 나면 결심한 것에 대한 것 외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버린 것에 대한 체념이 아주 빠르다. 그림처럼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서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림처럼 앉아 있기가 내 취미 생활이다. 난 이런 행동에 너무나 익숙해 있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사랑이 없으므로 마음이 쓰이지도 않는다. 단지 핵심을 떠난 심리전이 좀 피곤할 뿐이다.
한없이 그대로 서 있을 것 같은 내 심리를 눈치 챘는지 부장이 드디어 신경질적으로 목의 힘을 풀었다. 그러나 이런 대치 상태가 있고 난 후 보통의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면 뭔가 손해를 보는, 권위가 무너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므로 말이 곱게 나올 리가 없다. 칵, 하고 가래를 밀어 올리는 듯한
<신선생 말이야.>
로 말문을 열었다. 내겐 그 소리가 마치 전쟁 선포를 하는 신호처럼 들린다.
<어제는 왜 그냥 집에 갔어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다. 짜증이 났다. 항상 이런 식이다.
무슨 일이, 왜, 어떻게 되어서 불렀노라가 아닌, 핵심을 벗어난 질문부터 한다. 난 무슨 문제인지도 모르는 채, 피의자 심문 당하듯이, 또 문제와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는 나의 사생활에 관한 대답부터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간단히 이 상황이 해결되는지 알고는 있다. 다소곳이 고개를 떨구고, 죄 지은 사람처럼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 내용엔 상관없이 고분하게만 대꾸하면 된다. 그러면 어떤 일이든, 그게 아무리 큰 실수였다 할지라도 조용하고 쉽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 나쁜 취향에 맞장구까지 쳐줄 마음은 없다. 나는 예의를 갖춘 어법으로, 하지만 벌이 침을 놓듯 톡 쏘는 어투로 대답한다.
<퇴근 시간까지 특별한 일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뭐요?>
부장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선생들이 제법 와있는 교무실에서, 호기롭게 큰 소리로 교사를 부르고, 그렇게 딱딱하게 시작을 했을 때는, 용머리에 어울리는 용꼬리로 마감을 해야 하는데 뭔가 빗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상대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거나 아무소리도 없는 가운데 마무리가 되어야 자신은 비로소 용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별한 일이고 뭐고 간에 제 할 일은 하고 가야지. 퇴근 시간 됐다고 퇴근만 하면 되는 거예요. 예?>
부장은 ‘특별한’ 할 때 ‘특’ 소리가 이상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과장되게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나는 오늘따라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평소엔 ‘툭’하면 ‘울 밑에 호박 떨어지는 소리’하고 곧바로 답이 나올 정도로 그 ‘폼잡음’의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지만 오늘은 전혀 집히는 일이 없다. 모르고 당하는데 더 짜증이 났다. 이성은 흥분하지 말자고 다독이고 있지만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뒷목이 뻐근해져 왔다.
날카롭게 튀어나오는 소리를 침과 함께 꿀꺽 삼키며 겨우 가라앉힌다. 간신히 가시를 감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낀다. 물론 떨림이 상대에게까지 전달되진 않을 것 같다. 그건 뛰고 있는 내 심장만이 감지하는 몹시 억눌린 감정이다.
<제가 할 일 버려두고 일부러 퇴근이라도 했다는 말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