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들릴 때마다 느꼈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없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빨래며 침대를 가득 채우고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서인지 휑한 침대며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 허전해 보이기까지 했다.

  <입원했어. 밥 먹고 얘기해 줄게. 밥 먼저 먹자.>

  소형은 부러 수선을 피우며 숟가락을 들었다.

  침대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비어있는 침대를 보니 이상했다.

  올 때마다 침대가 넘치게 누워 계시던 소형 어머니.

  몸집 큰 소형이 어머니가 쓰기에 침대가 좀 작았지만 아무리 머리를 틀어도 15평이라는 한계를 그 방법으로 밖에는 극복할 방도가 없었다.

 

  집은 좁고 드레스 룸으로 쓰는 방은 도저히 답답해서, 더구나 아픈 사람을 기거하게 하는 건 무리였다. 소형도 그 방에선 잘 수가 없었다. 침구가 들어간다 해도 꽉 들어찬 옷들 속에 싸여 질식할 것 같았다. 옷 먼지가 가득한 곳에서 잘 수는 없었다.

  결론은, 거실이자 방인 그녀가 쓰는 주 공간을 같이 쓰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소형은 자기가 쓰던 큰 침대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작은 침대를 새로 들여놓았다. 큰 침대를 그대로 두고는 그 밑에 이부자리 하나를 더 깔 공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형이 침대를 포기한 것이다.

  요에서 자면 아무리 푹신하게 깔아도 바닥이 자기 몸을 밤새 밀어내는 것 같아, 자긴 서방 없인 살아도 침대 없인 못산다 했었다. 그러나 소형 어머니는 침대가 아니면 혼자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고 걸터앉은 자세에서 바닥을 디뎌야 서기가 쉬웠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소형으로선 서방도 침대도 포기하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침대 밑에 요를 폈다 개었다 하며 나름 인고의 삶을 살고 있었다.

  <침대 그만 보고 밥 먹어. 밥은 잘 안 해 먹으면서.>

  <학교 가면 점심 때 밥 먹잖아.>

  <하긴.>

  <학교만 가면 적어도 하루 한 끼는 보장된다니까.>

  <저녁은?>

  <사 먹을 때도 있고. 되는 대로.>

  <사 먹는 밥 어디 살로 가니?>

  <꼭 할머니 같은 소리한다. 그 소리 우리 엄마 십팔번이잖아.>

  <어머닌 잘 계셔?>

  <잘 계시겠지. . 요샌 내가 주로 전화하지. 전화도 자주 안 와. 눈에 안보이면 걱정도 덜 되나봐. 처음엔 매일 전화해서 꼭 울고 끊더니……. 집 내 보내면 굶어 죽을 줄 알았는데 잘 살고 있으니까, 차라리 어떤 점에서는 마음이 더 편하신가봐.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그래. 방학 때 집에서 하루 종일 애 보고 있으면 걱정이 더 된대. 기어다니면서 뭘 주워 먹지 않나, 소파에서 놀면 떨어질까 위태위태하고. 그런데 학교 나오면 바쁘고 또 안보이니까 잊어버리기도 하고 더 편한 면도 있대. 엄마도 아마 그러실 거야. 코앞에서 밥 먹는 거 보고 있으면 먹는 꼴 한심하고 걱정스럽겠지만 안 보이면 걱정하다가도 잘 먹겠지하고 상상 위안이란 걸 할 수도 있잖아.>

  <그 말 맞아. 우리 언니 오빠들도 보면. 안 보이면 존재도 잊어버리나봐.>

  ‘잊어버리나봐를 한숨 섞어 내뱉던 소형이 한숨과 함께 숟가락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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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떻게 좀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어머니가 오신 이후로 소형의 생활은 말 그대로 백팔십도 달라졌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독신인 소형이가 늘 허둥대고 사는 걸 놀리기도 할 정도로.

 

  언니, 오빠들의 말은 공수표가 되어버렸다.

  말은 쉽다. 말은 행동보다 늘 쉽다. ‘이란 말이 거슬린다면 대체로로 바꾸어 줄 수는 있지만 글쎄, 말이 행동보다 어려운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하여간 현실에서 말은 말로 끝나고 있다.

  서울서 대구를 자주 온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온다 해도 몇 시간씩 머물다 가는 손님밖에 안 되었다. 새언니들도 처음 얼마 동안은 반찬을 해들고 부지런히 드나들었지만 지금은 명절이나 생일을 챙기는 게 고작이다. 어쩌면 지금은 그것조차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반성하지 않으면 끝없이 커지는 게 인간의 욕망이니까. 만족을 모른다는 건 인간의 불치병이니까. 늘 더 편안하고 더 행복하길 추구하니까.

 

***

 

  나는 정말 물만 찍어 바르고 아파트 열쇠만 달랑 들고 집을 나왔다.

  소형의 집은 내가 살고 있는 같은 아파트 2층이다. 나는 7, 소형은 2. 소형이 어머니가 오시기 전까지는 정말 자주 들락거렸다. 괜히 밤늦게 내려가서 벨을 누르고 소형이 나오면 잘 자, 하고 올라오기도 했다.

  나는 코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거부하고 계단을 택했다. 내려가는 거야 별로 힘도 들지 않지만 그보다 난 체질적으로 작은 통 속에 갇히는 엘리베이터가 싫다. 그래서 동행이 있어 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엘리베이터는 피한다.

  나보다 일찍 독립하고 정착한 소형이 덕분에 난 어렵지 않게 이 아파트를 구했다. 소형이 부동산 중개소에 알아보고 흥정을 하고 계약하는 데 따라다니고 같이 집을 꾸몄다. 덕분에 혼자라는 고독감을 씹어볼 사이도 없이 독립생활을 시작했고 안착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된장 끓이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소형은 찌개 종류를 좋아한다. 찌개 없는 소형의 밥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식사 초대를 받을 때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마지막까지 끓고 있는 찌개를 볼 수 있다. 소형은 손님이 도착하면 비장의 카드라도 내밀 듯이 비로소 가스 불을 끄고 찌개를 내려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렇다면 찌개 맛은?

  결론만 말하면 맛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모든 찌개의 맛이 비슷하나니, 이름만 다른 소형표 찌개의 조리 방법을 여기에 공개한다.

  소형표 찌개는 제목만 다르지 내용물이 비슷하다. 어떤 재료가 많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자기 멋대로 이름을 붙여 부른다. 된장찌개에도 김치가 들어가고 김치찌개에도 된장이 약간, 그리고 햄과 소시지가 들어간다. 버섯 찌개에도 된장, 김치, 햄이 기본으로 들어가고 온갖 종류의 버섯을 듬뿍 넣는다.

 

  좋게 말하면 창의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기본도 모르고 끓여내지만 아까 말한 대로 맛은 괜찮다. 그녀의 말을 빌면 음식도 머리로 한단다. 머리 좋은 사람이 음식 솜씨도 좋다나. 하여튼 자기 찌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 . 하나 빼먹은 게 있다. 소형은 또 모든 찌개에 당면을 즐겨 넣는다. 나는 잡채 외에 다른 음식에 들어가는 당면을 잘 먹지 않는 반면 소형은 잡채만 빼고 모든 음식에 들어있는 당면 건져먹는 걸 좋아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왔니? 빨리 들어와. 다 됐다.>

하면서 역시 비장의 무기, 그 때까지 끓고 있던 찌개를 내려 식탁 위에 올린다.

의자에 앉으며 나는 물었다.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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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입을 뗀 오빠는 말을 잘했다. 오빠가 이렇게 말을 길게 할 수 있다니. 영락없는 말없는 경상도 남자인줄로만 알았는데 뜻밖의 모습이었다.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담고 있는 뜻은 자꾸 흩어지고 목소리만 생생히 인식되는 기묘한 현상에 빠졌다. 어쩌면 오빠의 말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 소형의 결심이 굳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어졌는지도.

 

  어머니와 같이 산다?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 일어날 상황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동안 언니, 오빠들이 그런 믿음을 주었고 농담으로도 해 본 적이 없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오빠는 믿음을 준 것과는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도 소형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는 말과 듣는 내용은 다를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소형은 언니 오빠들이 한 말과는 다른 내용을 이미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의심 없이 믿고 있었던 게 그 증거인지도 모른다. 의심이 없다는 건 믿음도 없다는 것인지 모른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사람의 가슴에 한 점 의심이 없다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가족회의의 결과가 그랬다고?

  내가 엄마를 모신다고?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한 결정이 그랬단 말이지?

  그렇게 결정을 보았다면 해야 되는 거겠지.

  이미 마음에 결심이 섰는데 오빠는 소형의 말없음을 거부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설득을 계속했다.

  <힘들겠지만 네가 일단은 딸린 식구가 없어 적어도 눈치 볼 사람은 없잖아.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이 한 집안 식구가 되어 산다는 거, 비록 부부라도 서로 영 허물이 없지는 않거든. 네가 모시고 산다고 해서 너한테 전적으로 다 맡기자는 건 아니고, 네 언니들도 자주 내려와 보기로 약속했고 그리고 여기서도 반찬도 해 나르고 자주 들여다 볼 거야. 너하고 같이 계시기만 하는 거지. 또 상황이 좋아지면, 네 새언니도……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소형이 말이 없자 오빠는 초조해졌다.

 

  만약 사람이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

  오해로 인한 싸움 같은 건 없겠지.

  사랑도 좀 더 쉬워질까.

  모든 범죄도 예방이 되는 걸까.

  아님 아예 나쁜 마음을 품지 않는 세상이 될까.

  그런 세상이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오빠는 그런 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소형의 마음을 볼 수 없었다.

  물론 소형도 오빠의 마음을 다 읽지는 못한 체 혼자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니 벌써 문제 해결 방안에 돌입했다. 어머니 문제는 이제 그녀의 문제였다. 그녀의 문제로 인식하고 새로운 숙제에 골몰해 있었다. 머리 속엔 그녀의 작은 원룸이 꽉 들어찼다.

 

  방을 어떻게 써야 하나?

  워낙 작은 평수의 아파트라 따로 방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소형이 거처하는 방이자 거실이자 부엌인 공간 외에 어머니가 계실 곳이라곤 드레스 룸으로 쓰는 코딱지만한 방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무늬만 방이지 사람이 거처할 곳은 못 된다. 아마 누우면 장롱 속에 갇힌 기분일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을 쓰는 수밖에 없겠지?

  그런 생각들을 알 리가 없는 오빠는 겨우 찾은 마지막 해결 방법이 무산된다고 느껴졌는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해졌다.

  <소형아, 이 오빠 좀 살자. 어떻게 좀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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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급해진 오빠에 의해 형제자매들이 다 불려오고, 그들이 모여 결론이 나지 않는 어머니 문제로 진이 빠져있을 무렵,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새언니는 들어왔다. 그리고, 모여 있는 시댁 식구들을 보고 놀라지도 않고 그대로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그 날 무슨 말이 오고갔는지,

  결론은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나 있었다.

 

  그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이었다.

  소형이 아직 깊이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큰오빠였다.

  소형은 전화 속의 주인공이 큰오빠임을 확인하는 순간 직감했다고 했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아닐 거라 부정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들어낸 의식이었다. 아님 희망사항이었거나.

  잦았던 큰오빠 내외의 부부 싸움 소식. 그럴 때마다 드는 막연한 초조함. 부부 싸움 할 일 없는 자신이 해결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늘 깔려있었던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비슷한 말이라도 언니들이나 오빠들에게 비치면

  ‘무슨 소리! 네가 무슨? 우리가 있는데!’

  같은 강력한 부정의 말이 돌아왔다.

  그랬기 때문에 , 그건 내가 못할 일인가.’ 했단다.

  단순하게 듣고 단순하게 믿었단다.

 

  큰오빠의

  ‘소형이냐?’

  하는 물음에 소형은

  ‘.’

  대답만 하고 다음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소형이 뭐라고 말을 해버리면 왠지 오빠가 할 말을 못하고 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몇 초가 흐르고 한숨 소리가 크게 한 번 나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이게 너한테 할 말은 아니다만……소형아!>

  말을 하다 소형을 불러놓고는 또 한참을 수화기를 붙들고 한숨을 쉬었다. 소형은 기다렸다.

  <어머니 문젠데…….>

  짐작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막상 듣는 순간 가슴은 설마했다.

  소형은 들리지 않게 역시속말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려운 말문을 연 오빠의 그 다음 말은 쉽게 이어졌다.

  <오래 걸리겠니. 네 새언니가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미형이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안 되고, 선형이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잖니. 잔손길이 많이 가니까 아무래도 그렇고……. 네 작은오빠가 좀 모셨으면 좋겠지만 너무 갑자기 그러니까 막막하다고 작은 새언니가 좀, 하여튼 당장은 곤란한 모양이더라. 그러니까 소형이 네가 당분간만 어머니 좀 모시고 살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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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형의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시다.

  처음엔 손이 조금씩 떨렸는데, 나중에는 숟가락질이 힘들 정도로 떨리고 걷는 것도 굼떠지기 시작했다. 파킨슨씨병이라나. 근육이 서서히 굳어져갔다.

  다행히 노인들은 진행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운 좋으면 움직일 수 있는 가운데 운명할 수도 있다 했다. 활달하고 건강하시던 소형이 어머니가 그 병을 앓기 시작한 지 이제 십 년이 다 되어간다.

 

  발병을 하고 처음 몇 년간은 재빠르지 못해도 느릿느릿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스스로 생활은 할 수 있었다. 많이 걷는다든지 힘든 등산 같은 것만 아니면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도 다녔다.

  병명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이름조차 입 밖에 내기 싫어하며 무시무시하게 느끼던 식구들도 그 상태로 몇 해를 끌자 만성이 되었다. 그 정도면 별 무서운 병이 아니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렇게 안심을 하고 있는 동안 병은 복병처럼 야금야금 소형의 어머니 몸을 정복해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손이 눈에 띄게 떨렸고 혼자 나가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소형은 오남매 중 막내다.

  위로 오빠 둘, 언니가 둘. 모두 결혼하여 든든하게들 잘 살고 있다.

  어머니가 병이 나기 전까지, 아니, 병을 알고 난 뒤에도, 혼자 움직이며 집안일을 거들 수 있을 때까지도, 소형이가 어머니의 손발이 되리란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모시고 살고 있던 오빠는 물론이고 언니들도, 병이 깊어지면 우리라도 모셔야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고, 밥 먹는 것까지 힘들어져 숟가락질을 거들어야 하는 횟수가 잦아지자 문제는 달라졌다. 자다가 일어나 소변을 보러 갈 때면 종종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싸버렸고 아침에는 혼자 잘 일어나지를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큰오빠 부부 싸움이 잦아졌다.

  오빠 댁은 절대 시어머니 때문이 아니라고, 왜 자기를 그런 옹졸한 사람으로 만드느냐고 항변했지만 급기야 이혼 말까지 나왔다. 병이 깊어지면 우리라도, 하던 언니들도 핵심적인 문제는 피하는 눈치였다.

  큰오빠 댁은 은행원이다.

  바쁜 출근 시간에 쫓기며 해야 하는 아침 수발, 쌓이는 빨래.

  일요일은 일요일대도 쉴 시간이 없었다. 혼자 목욕을 못하는 시어머니를, 때 미는 건 비록 남의 손을 빌린다 해도, 목욕탕에 모시고 갔다 와야 했으며 시시때때로 불려 들어가 일어나고 눕는 걸 도와야 하고 대소변을 볼 때마다 손이 필요했다.

  대놓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부부 싸움의 원인이 시어머니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순 없었다. 일이 넘치고 힘에 부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니까. 새언니는 나날이 날카로워졌다. 오빠도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에 묵묵히 받아주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매에 장사 없다고, 같이 받아치는 일이 많아졌다. 싸움이 잦아졌고,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거친 말들이 오고 갔다. 점점 사이가 벌어지고 싸울 때마다 냉전 기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급기야 사이좋던 부부 사이에서 이혼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었다.

 

  일이 심각해지자 서울 살던 언니 둘이 내려오고 작은오빠 내외도 불려왔다. 부랴부랴 가족회의가 소집된 그 날, 일요일에 있었던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일요일 아침.

  삼십 분 가량 시어머니 아침 수발을 들고 있던 새언니가 숟가락을 소반 위에 탁 소리 나게 놓으며 어머니, 이제 그만 드세요.’ 하고 소반을 들고 나왔다. 물론 아직 밥은 반이나 남아 있었다. 그 소리를 오빠가 듣고 말았다.

  나중에 소형이가 어머니를 모시게 되고 난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 말은 새언니가 밥 수발을 들 때마다 종종 했던 소리였단다. 사실 이해 못할 것도 없는 행동이긴 하다. 일요일은 그렇다 쳐도, 평소 출근 시간은 쫓기고 어머니 씹는 속도는 나날이 느려지고, 애가 타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 소리를 그 동안은 오빠가 용케 못 들었고, 아니 어쩌면 오빠의 귀를 피하여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튼 그 날 새언니는 그 정도의 조심도 귀찮고 싫어졌는지 그렇게 상을 거두고 방을 나왔다. 상대를 배려하고 조심하는 것도 남아있는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마음인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난초의 마른 잎을 손질하고 있던 오빠가 방을 나오는 언니에게 무서운 얼굴로 다가오더니, 받쳐 들고 있던 소반을 휙 낚아채었다.

  <당신, 이 정도였어?>

  소반을 뺏길 때까지만 해도 이성이 남아 있던 새언니가 오빠의 당신 이 정도였어?’에 완전히 돌아버렸단다. ‘아이고를 신호로 대성통곡을 하다가 오빠가 들고 있던 소반을 도로 뺏어 거실에다 팽개쳤다. 얼마나 모질게 팽개쳤는지 소반 다리가 남김없이 다 부러지고 음식 찌꺼기가 베란다 창에까지 튀었다.

  <그래, 나 이 정도야. 기껏 한다는 말이 그 말이야? 당신 어머닌데, 당신은 뭐했어.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씩 밥 수발 들어봤어? 내가 집에서 노는 사람이야? 나 옳게 아침 먹어 본지 오래됐어. 등 받쳐 일으키고 등 받쳐 눕히고, 누군 힘이 장산 줄 알아? 그래도 당신은 일요일에 낚시 가고 등산가고 하더라? 난 외출은커녕 일요일이라고 낮잠 자본 기억도 이제 가물가물해. 그런데 하다하다 힘에 부쳐 짜증 좀 냈다고 당신이 나한테 이래? 불평조차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지금 당장 불평 끊지. 불평도 끊고 수발도 끊을게. 당신이 해. 점잖은 당신이 알아서 해. 나도 이제부터라도 점잖게 살고 싶으니까.>

 

  그 길로 새언니는 입은 옷 그대로 나가 버렸다.

  오빠는 옷도 그렇고 돈도 없이 나갔으니 곧 돌아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점심때가 지나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나 있을 때는 흥, 겁날 줄 알어. 하며 제법 오기를 부리던 오빠도, 불안한 어머니가 혼자 화장실엘 가려고 일어나다 오줌을 싸버려 침대시트까지 버리자 초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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