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의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시다.
처음엔 손이 조금씩 떨렸는데, 나중에는 숟가락질이 힘들 정도로 떨리고 걷는 것도 굼떠지기 시작했다. 파킨슨씨병이라나. 근육이 서서히 굳어져갔다.
다행히 노인들은 진행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운 좋으면 움직일 수 있는 가운데 운명할 수도 있다 했다. 활달하고 건강하시던 소형이 어머니가 그 병을 앓기 시작한 지 이제 십 년이 다 되어간다.
발병을 하고 처음 몇 년간은 재빠르지 못해도 느릿느릿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스스로 생활은 할 수 있었다. 많이 걷는다든지 힘든 등산 같은 것만 아니면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도 다녔다.
병명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이름조차 입 밖에 내기 싫어하며 무시무시하게 느끼던 식구들도 그 상태로 몇 해를 끌자 만성이 되었다. 그 정도면 별 무서운 병이 아니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렇게 안심을 하고 있는 동안 병은 복병처럼 야금야금 소형의 어머니 몸을 정복해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손이 눈에 띄게 떨렸고 혼자 나가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소형은 오남매 중 막내다.
위로 오빠 둘, 언니가 둘. 모두 결혼하여 든든하게들 잘 살고 있다.
어머니가 병이 나기 전까지, 아니, 병을 알고 난 뒤에도, 혼자 움직이며 집안일을 거들 수 있을 때까지도, 소형이가 어머니의 손발이 되리란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모시고 살고 있던 오빠는 물론이고 언니들도, 병이 깊어지면 우리라도 모셔야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고, 밥 먹는 것까지 힘들어져 숟가락질을 거들어야 하는 횟수가 잦아지자 문제는 달라졌다. 자다가 일어나 소변을 보러 갈 때면 종종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싸버렸고 아침에는 혼자 잘 일어나지를 못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큰오빠 부부 싸움이 잦아졌다.
오빠 댁은 절대 시어머니 때문이 아니라고, 왜 자기를 그런 옹졸한 사람으로 만드느냐고 항변했지만 급기야 이혼 말까지 나왔다. 병이 깊어지면 우리라도, 하던 언니들도 핵심적인 문제는 피하는 눈치였다.
큰오빠 댁은 은행원이다.
바쁜 출근 시간에 쫓기며 해야 하는 아침 수발, 쌓이는 빨래.
일요일은 일요일대도 쉴 시간이 없었다. 혼자 목욕을 못하는 시어머니를, 때 미는 건 비록 남의 손을 빌린다 해도, 목욕탕에 모시고 갔다 와야 했으며 시시때때로 불려 들어가 일어나고 눕는 걸 도와야 하고 대소변을 볼 때마다 손이 필요했다.
대놓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부부 싸움의 원인이 시어머니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순 없었다. 일이 넘치고 힘에 부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니까. 새언니는 나날이 날카로워졌다. 오빠도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에 묵묵히 받아주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매에 장사 없다고, 같이 받아치는 일이 많아졌다. 싸움이 잦아졌고,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거친 말들이 오고 갔다. 점점 사이가 벌어지고 싸울 때마다 냉전 기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급기야 사이좋던 부부 사이에서 이혼 말까지 나오게 된 것이었다.
일이 심각해지자 서울 살던 언니 둘이 내려오고 작은오빠 내외도 불려왔다. 부랴부랴 가족회의가 소집된 그 날, 일요일에 있었던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일요일 아침.
삼십 분 가량 시어머니 아침 수발을 들고 있던 새언니가 숟가락을 소반 위에 탁 소리 나게 놓으며 ‘어머니, 이제 그만 드세요.’ 하고 소반을 들고 나왔다. 물론 아직 밥은 반이나 남아 있었다. 그 소리를 오빠가 듣고 말았다.
나중에 소형이가 어머니를 모시게 되고 난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 말은 새언니가 밥 수발을 들 때마다 종종 했던 소리였단다. 사실 이해 못할 것도 없는 행동이긴 하다. 일요일은 그렇다 쳐도, 평소 출근 시간은 쫓기고 어머니 씹는 속도는 나날이 느려지고, 애가 타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그 소리를 그 동안은 오빠가 용케 못 들었고, 아니 어쩌면 오빠의 귀를 피하여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튼 그 날 새언니는 그 정도의 조심도 귀찮고 싫어졌는지 그렇게 상을 거두고 방을 나왔다. 상대를 배려하고 조심하는 것도 남아있는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마음인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난초의 마른 잎을 손질하고 있던 오빠가 방을 나오는 언니에게 무서운 얼굴로 다가오더니, 받쳐 들고 있던 소반을 휙 낚아채었다.
<당신, 이 정도였어?>
소반을 뺏길 때까지만 해도 이성이 남아 있던 새언니가 오빠의 ‘당신 이 정도였어?’에 완전히 돌아버렸단다. ‘아이고’를 신호로 대성통곡을 하다가 오빠가 들고 있던 소반을 도로 뺏어 거실에다 팽개쳤다. 얼마나 모질게 팽개쳤는지 소반 다리가 남김없이 다 부러지고 음식 찌꺼기가 베란다 창에까지 튀었다.
<그래, 나 이 정도야. 기껏 한다는 말이 그 말이야? 당신 어머닌데, 당신은 뭐했어.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씩 밥 수발 들어봤어? 내가 집에서 노는 사람이야? 나 옳게 아침 먹어 본지 오래됐어. 등 받쳐 일으키고 등 받쳐 눕히고, 누군 힘이 장산 줄 알아? 그래도 당신은 일요일에 낚시 가고 등산가고 하더라? 난 외출은커녕 일요일이라고 낮잠 자본 기억도 이제 가물가물해. 그런데 하다하다 힘에 부쳐 짜증 좀 냈다고 당신이 나한테 이래? 불평조차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지금 당장 불평 끊지. 불평도 끊고 수발도 끊을게. 당신이 해. 점잖은 당신이 알아서 해. 나도 이제부터라도 점잖게 살고 싶으니까.>
그 길로 새언니는 입은 옷 그대로 나가 버렸다.
오빠는 옷도 그렇고 돈도 없이 나갔으니 곧 돌아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점심때가 지나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나 있을 때는 흥, 겁날 줄 알어. 하며 제법 오기를 부리던 오빠도, 불안한 어머니가 혼자 화장실엘 가려고 일어나다 오줌을 싸버려 침대시트까지 버리자 초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