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입을 뗀 오빠는 말을 잘했다. 오빠가 이렇게 말을 길게 할 수 있다니. 영락없는 말없는 경상도 남자인줄로만 알았는데 뜻밖의 모습이었다.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담고 있는 뜻은 자꾸 흩어지고 목소리만 생생히 인식되는 기묘한 현상에 빠졌다. 어쩌면 오빠의 말이 길게 이어지는 동안 소형의 결심이 굳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어졌는지도.

 

  어머니와 같이 산다?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 일어날 상황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동안 언니, 오빠들이 그런 믿음을 주었고 농담으로도 해 본 적이 없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오빠는 믿음을 준 것과는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도 소형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는 말과 듣는 내용은 다를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소형은 언니 오빠들이 한 말과는 다른 내용을 이미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 의심 없이 믿고 있었던 게 그 증거인지도 모른다. 의심이 없다는 건 믿음도 없다는 것인지 모른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사람의 가슴에 한 점 의심이 없다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않은가.

 

  가족회의의 결과가 그랬다고?

  내가 엄마를 모신다고?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한 결정이 그랬단 말이지?

  그렇게 결정을 보았다면 해야 되는 거겠지.

  이미 마음에 결심이 섰는데 오빠는 소형의 말없음을 거부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설득을 계속했다.

  <힘들겠지만 네가 일단은 딸린 식구가 없어 적어도 눈치 볼 사람은 없잖아.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이 한 집안 식구가 되어 산다는 거, 비록 부부라도 서로 영 허물이 없지는 않거든. 네가 모시고 산다고 해서 너한테 전적으로 다 맡기자는 건 아니고, 네 언니들도 자주 내려와 보기로 약속했고 그리고 여기서도 반찬도 해 나르고 자주 들여다 볼 거야. 너하고 같이 계시기만 하는 거지. 또 상황이 좋아지면, 네 새언니도……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소형이 말이 없자 오빠는 초조해졌다.

 

  만약 사람이 마음을 볼 수 있다면 어떤 세상이 되었을까.

  오해로 인한 싸움 같은 건 없겠지.

  사랑도 좀 더 쉬워질까.

  모든 범죄도 예방이 되는 걸까.

  아님 아예 나쁜 마음을 품지 않는 세상이 될까.

  그런 세상이었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오빠는 그런 세상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소형의 마음을 볼 수 없었다.

  물론 소형도 오빠의 마음을 다 읽지는 못한 체 혼자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니 벌써 문제 해결 방안에 돌입했다. 어머니 문제는 이제 그녀의 문제였다. 그녀의 문제로 인식하고 새로운 숙제에 골몰해 있었다. 머리 속엔 그녀의 작은 원룸이 꽉 들어찼다.

 

  방을 어떻게 써야 하나?

  워낙 작은 평수의 아파트라 따로 방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소형이 거처하는 방이자 거실이자 부엌인 공간 외에 어머니가 계실 곳이라곤 드레스 룸으로 쓰는 코딱지만한 방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무늬만 방이지 사람이 거처할 곳은 못 된다. 아마 누우면 장롱 속에 갇힌 기분일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을 쓰는 수밖에 없겠지?

  그런 생각들을 알 리가 없는 오빠는 겨우 찾은 마지막 해결 방법이 무산된다고 느껴졌는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급해졌다.

  <소형아, 이 오빠 좀 살자. 어떻게 좀 안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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