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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경은 운주사에 다섯 번을 왔다.
대학 다닐 때 처음 온 이후로 이 친구들과 두 번, 학교 선생들로 구성된 답사 팀에서 한 번, 그리고 막내 동생이 결혼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혼자 여길 왔었다.
막내 동생은 결혼 날을 겨울 방학 중으로 잡아 놓았다. 날을 받았다고 알리는 순간 미경은 방학을 포기했고 미경 어머니는 잘됐다고, 방학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손뼉을 쳤었다. 알고 보니, 엄마 혼자 준비하기 버겁다고 동생 내외가 사려 깊게 결혼 날짜를 미경의 방학에 맞춘 것이라 했다. 남의 방학 계획을 저희들 멋대로 짜다니, 하는 괘씸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곧 웃으며 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제나 온전히 방학이 그녀의 것이었던 적은 없었다.
방학 내내 미경은 어머니의 기사 노릇과 손 노릇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동생 내외가 신혼여행을 떠난 날, 막내까지 내보내고 난 어머니가 섭섭한지 자고 가라고 미경을 붙들었다. 체력이라면 자신 있었던 미경도 그 날은 녹초가 되었고, 결혼 준비에 넌더리가 나 ‘결혼 냄새’가 나는 집에 정말 있기가 싫었다.
그 전날까지 까다로운 폐백 음식 준비로 미경은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그것도 음식에 별난 어머니 때문에, 맞추면 간단할 일을, 직접 한다고 고집을 부려 일이 더 많았다. 결혼 당일에도 신부보다 먼저 일어나 씽씽 달려와 신부를 예식장에 미리 태워다 주고, 전 날부터 집에 와 계신 나이 드신 친척들을 예식장으로 모셔드리고, 식당에 갈 음식 나르는 것도 미경의 차지였다. 예식장을 수없이 왔다갔다 하고, 주례비 챙기고, 멀리서 온 손님들 차비 챙겨드리고,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좀 나눠 하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한복 곱게 차려들 입고 어린 조카들 끼고 있는 동생들에겐 기대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미경이와 엄마가 계획하고 주문하고 한 일이라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했다. 결혼 당일에 엄마는 손님맞이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고 미경이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뛸 수밖에 없었다. 뛰어다니느라 동생 결혼식은 옳게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정말 ‘결혼’이란 게 없는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몇 번을 붙드는 어머니를 물리치고 미경이 집 앞에서 차를 돌려 나가자, 어머니는 달아나는 차 꽁무니에다 대고 소리 질렀다.
‘매정한 것, 너도 시집가서 자식 낳아 봐라.’
그 말을 뒤로 하고 미경은 혼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 옷만 갈아입고 자기 시작해서 그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일어났다.
눈을 뜨자 커튼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늦잠을 자서가 아니라 ‘엄마가 어떻게 아직도 전화를 안했지?’하는 사실 때문이었다. 늦잠을 자는 편은 아니지만 조금만 늦어도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해가 저렇게 뜨도록 전화도 없었단 말인가. 어제 일로 화가 나셨구나. 그렇게 짐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별 할 일이 없구나. 화가 났어도 일을 두고 전화를 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도 그럴 것이 방학이 다 끝나 가는데, 하루도 집에 조용히 있어본 적이 없었다.
미경은 그 날 하루 종일을 밀린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며 보냈다. 엄마는 화가 많이 났는지 날이 저물도록 전화도 하지 않았다. 미경이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엄마만 섭섭한 게 아니고 나도 섭섭해요, 하며 전화기를 바라보고 혼잣말을 했다.
내일 가 보자, 하며 늦게까지 책을 읽다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눈을 뜨니 또 날이 훤히 밝아있었다.
엄마가 오늘도 전화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었다.
미경 어머닌 별일이 없어도 습관처럼 늘 전화를 하신다. 더구나 방학이다. 미경이 집에 있는 날은 아침저녁으로 전화가 온다. 어떤 날은 끼니때마다. 그저 밥 먹었느냐, 뭘 먹었느냐는 전화지만. 그런 전화에 너무나 익숙해있던 미경이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이나 전화가 없다니.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미경의 심리였다. 커튼을 젖히고 멍청히 앉아 있다 보니 그날도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햇살이 베란다에 가득했다. 전화를 해 봐야 되는데, 하는 건 생각뿐 그러기도 싫었다. 전화를 하는 것도, 털레털레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미경 자신도 자기의 심리 변화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게 귀찮아졌다.
동생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은 가봐야지 않겠냐고 이성은 속삭이는데, 감정은 그 날은 더 가기 싫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갑자기 제부 앞에서 밥상을 차리는 것도 싫고, 과일을 깎아 들여가는 것도 싫고, 앉아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도, 친척 어른들의 걱정을 들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한 번 싫다는 마음이 들자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 놀랍게도 ‘가지 말자’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동생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전 날, 기다리다 못한 어머니로부터 먼저 전화가 왔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을 했던 모양이었다. 미경이 아무 일 없었던 듯 전화를 받자,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언제 올 거냐? 내일 니 동생 오는데, 장도 봐야 되고.’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화가 났었나? 미경의 입이 마음의 허락도 없이 ‘내일 못 가는 데요’ 하고 말해버렸다. 어머니는 미경의 반응이 너무 기막힌지 화도 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알아서 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동안 미경 어머니의 ‘알아서 해라’는 늘 마음 약한 미경이 ‘알아서 하는’ 효과를 낳았었다. 미경 어머니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경과 어머니 사이의 역사를 알고 있고 역사는 되풀이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미경은 동생 내외가 돌아오는 날 새벽에 차를 몰고 운주사엘 왔었다.
어머니의 원망과 섭섭함은 대단했다. 미경은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사실 할 말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작정하고 벌인 일이 아니니 무슨 말을 작정해 두었겠는가. 그럴수록 엄마는 억지를 부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미경의 입을 떼게 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니가 그럴 수 있냐.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못되게 됐느냐. 친구를 잘못 둔 것 아니냐. 그런 친구들 이제 그만 만나라.’
어머니는 미경이가 친구들이랑 같이 행동한 줄 아는 모양이었다. 영문도 모를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그녀가 언제 집안 일 제쳐두고 친구가 먼저였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도 별 원망을 다 듣게 하고 있구나.
해명이든 변명이든 해야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경은 엄마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만 있었다. 어머니가 섭섭해 하는 이유를 너무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 같이 끌려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했지만 표현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의 심정을 모른다면 몰라도 알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이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 스스로 말을 멈출 때까지 기다림으로써, 저절로 포기가 되고 기대를 잘라버리게 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긍정도 부정도 아닌 태도로 듣고 있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경이 입을 떼면 어머니가 어떤 기대를 하게 되든지 아니면 상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어머니 혼자 상상으로 받는 상처나 실망이 나을 것이었다.
동생들의 눈초리에도 원망과 배신감이 들어있었다. 미경은 동생들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도, 설명하기도 싫었다. 자신의 심정을,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난 자매에게 일일이 설명해서 이해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그녀를 고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경은 식구들이 자기의 사소한 감정까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랐던 모양이었다.
그 일은 끝까지 미경이 입을 다물어 버림으로써 해석은 식구들 몫이 되어버렸다. 식구들이 어떤 식으로 이해했는지는 미경도 잘 모른다. 그러나 그 때부터 미경은 집안일에서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었다. 실망한 만큼 기대도 접어버린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전화가 없는 날이 늘었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부탁하던 동생들도 눈치를 보며, 부탁 횟수가 줄었다.
미경을 철석같이 믿던 그 마음들이 조금씩 덜어지면서 그 덜어진 자리가 좀 허전하게 느껴지긴 했다. 처음엔 그랬다. 시간이 흘렀고 얼마 안가 허전함 대신 편안함이 재빨리 그 자리를 채웠다.
식구들이 그렇게 미경에게 기대게 된 책임은 미경 자신에게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맏이라는 지나친 책임감.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묘한 자부심. 어쩌면 그렇게 함으로써 식구들이 미경에게 쏟는 칭찬에 얽매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결혼을 하지 않아 불효는 했지만, 결혼과 상관없는 좋은 딸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걸 부모에게, 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그런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혼자 운주사를 오가며 미경은 마음을 열어놓고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고 시행착오였는지.
미경은 그렇게 살려고, 그걸 보여주려고 결혼을 안했던 게 아니었다. 한 남자를 만나 생활 방식을 맞추고 그 남자의 가족과 얽혀 살아야 하는 게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복잡하고 싫었다. 자신이 없었다. 자신 없음은 꼭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로 발전했고, 점점 결혼과는 마음이 멀어졌다.
결심은 섰지만 행동은 쉽지 않았다. 맏이로 태어나 친가와 외가의 유별난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부모의 기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미경의 선포는 집안에 폭탄이 될지도 몰랐다. 누군들 부모에게 그런 충격을 주고 싶겠는가. 나이가 들도록 결혼을 미룸으로써 자연스럽게 인식되도록 하고 싶었지만 처지가 그게 아니었다. 동생들까지 나이가 차게 되자 미경의 결심을 알 리 없는 어머니의 성화가 점점 심해져갔다. 그것보다 더 고역은 마음 없는 맞선을 계속 봐야 하는 것이었다.
큰 동생이 사람을 데려와서 결혼하겠다고 한 날, 부모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결혼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함께 터뜨린 독립 선포. 물론 쉽진 않았다. 부모도 미경도 힘들었다. 맏이에 대한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죄책감이 컸다.
힘든 과정을 겪으며 보상심리가 자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모의 수족 노릇을 자처했는지도 모른다.
단순 명쾌하게 살고 싶었다. 여행이나 많이 다니며.
그러나 그 많은 원망을 받으며 선택한 독립은, 미경이 꿈꾸던 대로와는 너무 다르게 흘러갔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 혼자만의 살림이 있는 집에 혼자 기거한다는 것 외에 꿈은 완전히 부도가 나버렸다. 시집 식구 대신 친정과 얽히고, 여행이나 많이 다니자 라는 꿈은, 휴일마다 부르는 어머니 덕분에 독립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차라리 집에 있을 땐 일요일마다 나올 수가 있었다. 미경은 나날이 바빠지는 자신을 의식할 여유도 없었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시집은 안가고 무슨 여행은 그렇게’ 라는 비난이 숨어있었고, 가족과 함께 하는 건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칭찬이 따라다녔다. 친구들이 섭섭해 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땐 항상 같이 했었는데, 이젠 그들끼리 정해놓고 같이 갈 수 있냐고 통보만 한다. 그건 친구들의 배려였다. 그 자리에서 미경이 거절하면서 느껴야 할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들이 터득한 방법이었다. 신나게 계획을 짜고 있는 자리에, 못 간다는 소릴 하면 김샐까봐 말을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은 후론, 여행 계획을 그들끼리 짜서, 조용하게 사정을 물었다.
양자 병립은 불가능인가.
결혼한 사람들의 가족 여행은 모두가 인정하고 환영해주는 행사지만, 우리들의 여행은 늘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며 떠나야하는 이기적인 행사인가.
집에 제사가 있는 날, 결혼한 동생들이 ‘어머 우리 그 날, 신랑 휴가 받은 날이야, 여행가기로 했는데’ 하면 어머니는 흔쾌히 ‘그래, 그래라. 제사야 뭐 우리끼리 지내면 되지’로 간단히 끝낸다. 그러나 미경은 제사가 걸린 날 여행은 아예 안 되는 걸로 되어있다. 언젠가 계획 다 잡아 놓은 여행에, 제사 있는 날인 줄 모르고 가려고 했다가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조상 제사 소홀하면 벌 받는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조상 무서운 줄을 몰라. 여행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쌔고 쌘 날 두고 하필 그 날 여행이냐?’
조상은 결혼 안한 후손에게는 너그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외치던 미경의 ‘명쾌한 삶’과 ‘자유’는 어디로 갔는가. 남편과 자식 대신 더 단단한 그 무엇이 미경의 다리를 얽어 놓고 있는 것 같았다. 인정도 받지 못하는, 아무도 깃발을 흔들어주지 않는 그 자유를 얻자고 부모와 그렇게 싸우며 독립을 했던가.
미경은 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 눈을 부릅뜨고 앞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움직이면, 다른 곳을 보면, 눈물이 곧 흘러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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