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오는 길에 보성을 지나 왔다.

  산기슭에 차밭이 많았다. 찻잎의 초록은 다른 초록과는 다른 빛깔로 고왔다. 줄을 지어 동글동글하게 자란 차나무들의 행렬 속에서 문득 흰 수건을 머리에 쓴 배우, 전도연을 보았다. 그녀가 찻잎을 따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처음 그녀가 텔레비전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풋사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습도, 느낌도 그랬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로 시작되는 동요를 떠올리며 왜 사과가 예쁜 얼굴로 표현되는지 알 것 같았다. 상큼하고 고운 모습이었다.

 

  그 배우가 신인시절 출연한 텔레비전 단막극이 있었다. 차밭을 배경으로 찍은 아름다운 단막극이었다. 오래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것이다. 나는 멋대로 바로 그 차밭이 이 곳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제목도 확실히 기억난다.

  ‘한 번 기억된 것은 잘 잊히지 않는다

  긴 제목인데 신기하게 한순간에 글자들이 주르르 떠오른다. 정말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맞을까. 그제야 의심이 난다. 너무 일순간에 떠오른 것이라 새삼 의심하는 마음이 된다. 의문 없이 쉽게 떠올랐다 해서 반드시 정답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속는다. 자신의 기억에 속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다른 제목도, 의심스런 부분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냥 그대로 회상을 계속한다.

  찻잎을 따는 일을 하는 벙어리 소녀인 전도연, 도시에서 잠깐 다니러 온 오토바이 탄 청년. 스치듯 본 청년이 벙어리 소녀의 가슴에 자리를 잡게 되고, 그게 사랑인지도 모르고 사랑을 하게 된다. 말 한 마디도 건네 보지 못한 채, 아무에게도 말 못할, 상처가 되어버린 사랑을 품고, 한 번 기억된 것을 잊지 못하고 결국은 떨어진 꽃잎처럼 죽어간다는 이야기.

  여자의 죽음을 상징한 꽃잎의 행로. 개울물에 떨어진 꽃이 소용돌이에서 맴을 돌다, 결국은 물살에 떠내려가던 장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다. 대사가 별로 없었던 그 단막극의 영상들은, 잘 찍은 사진처럼 아름다웠다.

 

  차밭은 한참을 달릴 동안 계속되었다.

  차나무는 공기가 더러운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유난히 산빛도 맑아 보였다. 산을 돌고 돌며 닦여진 국도엔 달리는 차도 많지 않았고, 수자는 한 팔을 창턱에 걸친 채 느긋하게 운전을 하고 있었다.

  소형이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아주 기분이 좋을 때나, 잊고 싶은 게 있을 때.

 

누가 바람을 보았나, 나는 바람을 보았네.

당신이 잊고 간 손수건, 작별 인사의 손짓 같네.

가슴을 시리게 적셔오는, 손수건의 눈물 자욱

바람처럼 사라져 간, 당신의 추억이,

머무를 때는 보이지 않고, 떠난 뒤에야 보이네.

 

누가 사랑을 보았나, 나는 사랑을 보았네.

이별은 쉬운 것이었는데, 어려운 건 혼자 남는 것,

그것이 사랑은 아니던가. 이제야 알 것 같은데.

그리움을 아는 이는 나의 슬픔 알리라

떠난 뒤에야 보이는 건가, 눈물로 보이는 그대.

 

  역시 그녀는 조용필 마니아다. 그리고 그의 노래는 그녀의 구세주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노래는 다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할 그의 노래는 없다.

  구불구불 느리게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와 길게 뽑는 구성진 소형의 노래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줄 이은 차밭들.

 

  소형의 노래는 조용한 마을들을 향해 별똥이 떨어지듯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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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형이 들여다보는 렌즈 속에 단비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렌즈를 당겨 단비를 코앞에다 앉힌다.

  그런데 이상하다. 단비의 어깨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편안하게 기대어 앉은 모습이 아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잠깐이면 몰라도 저 자세는 단비의 자세가 아니다. 허리에 꼿꼿하게 힘을 주고 앉아 있을 여자가 아니란 말씀이다. 하도 기대는 걸 좋아해서 오죽하면 마야 부인이라 불린다는데.

  그럼 그렇지.

  자세히 보니 단비의 어깨가 약간씩 들썩였다. 얼굴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역력하게 느껴진다.

  그래 울어라. 말리지 않는다.

  이유가 궁금하지 않냐고? 글쎄, 몰래 우는 걸 보면 새로운 사건 사고는 아닌 게 분명하다. 새삼스레 알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 조용히 앉아 있다 보니 문득 떠올려지는 무엇이 있었겠지. 이야길 들어보면 눈물하곤 거리가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자연이란 게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떠오르는 기억. 그 기억이 슬프지 않은 데도 문득 눈물이 난다. 분명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인데, 그리고 즐거운 기억인데도 슬프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단비가 지금 그럴 지도 모른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 그런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 눈물이 났을지도.

  아니어도 할 수 없다. 어차피 마음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고, 그 마음을 자신인들 다 알겠는가.

  울고 싶은 자 울도록 버려두자며 소형은 카메라를 돌렸다.

 

  와불의 하체와 키 낮은 소나무가 같이 들어온다.

  와불의 발을 지나온 렌즈 속에 미경이 앉아 있다. 미경의 옆에 누워있는 수자의 다리도 보인다.

  고요하다.

  오늘 여행은 순전히 소형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일요일 과외가 많은 수자 때문에도 그렇지만, 월요일 출근 부담 때문에 미경이도 단비도 먼 거리 여행을 일요일엔 잘 하지 않으려 한다.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운주사까지 오게 된 건, 소형을 위로할 목적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무척 아름답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운주사가 생각나서 한 번 가고 싶다고 한 걸, 수자가 듣고 굳이 목적지로 삼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한 달을 병원에 계시다 결국 요양 병원에 들어가셨다.

  소형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병원에서도 어머니의 병세는 큰 차도가 없었다. 물리치료로 허리 통증은 좀 나아졌지만 이젠 혼자 대소변을 해결 못하는 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나아지리라는 기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식구들은 막연하게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곁에서 늘 지켜보는 소형은 부질없는 희망이라는 걸 알았다. 병원에서도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며 퇴원하기를 권했다.

  그리고 소형도 지쳤다. 한 달을 병원에서 자며 강의를 나갔다. 몸도 마음도 강의 준비도 엉망이었다. 나아진다는 보장만 있어도 그처럼 쉽게 맥이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희망 없는 고생은 고문에 가까웠다. 어느 비 오는 밤엔 깜깜한 하늘을 쳐다보며 제발 도와주세요하고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답답하면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비는 심정이 되는지도. 현실의 상황은 바뀔 희망이 전혀 없고 마음은 간절히 현실을 벗어나길 원할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게 기도인지 모른다.

 

  열두 시가 넘은 병원 로비에는 수위 아저씨만 있었다. 유리문에 붙어 서서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는 소형을, 아저씨가 의심스런 눈길로 지켜보았었다.

퇴원 결정이 되었다. 물론 퇴원은 당연히 소형의 집으로 하는 거였다. 모두들 걱정은 했지만 모셔간다는 형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형은 이대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결단을 내리는 건 제일 답답한 소형의 몫이 되어버렸다. 누구도, 형제자매 수두룩하게 두고, 부모를 요양 병원에 가게 하는 불효를 나서서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집으로 모실 마음도 없으면서, 책임질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대안이 없으면 그동안 계셨던 소형이 집으로 가게 되는 걸 거라고, 아니 그러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할 수만 있으면 소형도 그러고 싶었다. 어머니의 눈을 보며 병원 말을 꺼내고 싶진 않았다. 어머니의 눈빛에서 읽게 될 감정이 무서웠다. 두고두고 죄가 될, 아픈 짐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소형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어머니도 집만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어느 날 한밤중에 깨어, 어머니를 어깨에 메다시피 부축을 해서 화장실엘 갔다. 유난히 힘이 들었다. 아님 마음이 유난히 황폐해진 날인지도 몰랐다. 너무 힘이 들어 짜증이 났고 살기가 싫어졌다. 그건 사는 게 아니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양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하며, 찡그린 이마. 입술 끝은 아래로 처져 마귀할멈이 차라리 나았다. 너무 끔찍해 고개를 돌리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아니다. 어머니도 못할 짓이다. 짜증 부리는 자식 얼굴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서로가 할 짓이 아니다.

  반성? 물론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했다. 표정 관리? 시시때때로 거울을 보며 애썼다. 하지만 표정은 결심만으론 고쳐지지 않았다. 힘에 부치면 바로 마음이 헝클어지고 표정이 변했다. 반성하고 짜증내고,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나중엔 반성하는 일조차 사람을 지치게 했다.

  소형이 처음 요양 병원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빠는 펄쩍 뛰었다.

  <자식이 몇인데 무슨 소리?>

  그 말에 소형이 이렇게 물었다.

  <그럼 돌아가면서 할까? 그러면 나도 좀 살겠고,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어. 내가 먼저 죽겠어.>

  오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큰오빠뿐만 아니라, 아무도 어머니를 요양 병원에 모시자는 데 대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리는 형제도 없었다. 소형이 병원을 알아보고 병원비를 알려주고 얼마씩을 내면 되겠더라고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적어도 부모를 병원에 보내는 걸, 동의는 하지 않았다는 걸로 위안을 삼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님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너무 마음이 아파서인가? 그랬다면 이해를 못할 것도 없지만.

 

  하여튼 소형은 어머니를 병원에 보내는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입었다. 집에서도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며 간병을 해줄 수는 없었지만, 병원으로 거처를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아니라고 극구 부정을 하면서도 마치 부모를 버리는 것 같았고, 어머니의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 때마다 한 걸음씩 물러나는 식구들의 마음이 소형을 더 허탈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가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나 언니가 나서서 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그 일은 수자와 같이 했다. 어머니를 병원에 두고 나오면서 소형이 막연하게 운주사나 한 번 갔으면하고 중얼거렸다. 수자가 그 말을 새겨들었던 모양이었다.

 

  누군 피도 눈물도 없나?

 어느 자식이 아픈 부모를 병원에 혼자 두고 오고 싶겠어?

 소형은 그 일을 결국 자기가 하게 맡겨 둔 언니 오빠들을 원망했다. 병원 침대에 앉아 소형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길이 계속 소형을 따라다녔다.

  ‘자주 가면 되지, 내일 당장 가면 되지

하면서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어머니가 병원을 옮기고 일주일이 지났다. 집을 떠난 지는 한 달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처음 한 달은 돌아올 기약이 살아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침대는 막연히 어머니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처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기약 같은 건 없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빈 침대는 주인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온갖 상념을 일으키게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형은 아직도 빈 침대를 두고 침대 밑에서 잔다. 침대에는 어머니가 누워계신 것 같아 누울 수가 없다. 그 침대를 결국 치워버리게 될까. 아님 언젠가 쓰게 될까.

 

소형은 흐려서 보이지도 않는 카메라를 한참이나 그냥 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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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경은 운주사에 다섯 번을 왔다.

  대학 다닐 때 처음 온 이후로 이 친구들과 두 번, 학교 선생들로 구성된 답사 팀에서 한 번, 그리고 막내 동생이 결혼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혼자 여길 왔었다.

  막내 동생은 결혼 날을 겨울 방학 중으로 잡아 놓았다. 날을 받았다고 알리는 순간 미경은 방학을 포기했고 미경 어머니는 잘됐다고, 방학이라 정말 다행이라고 손뼉을 쳤었다. 알고 보니, 엄마 혼자 준비하기 버겁다고 동생 내외가 사려 깊게 결혼 날짜를 미경의 방학에 맞춘 것이라 했다. 남의 방학 계획을 저희들 멋대로 짜다니, 하는 괘씸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곧 웃으며 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제나 온전히 방학이 그녀의 것이었던 적은 없었다.

 

  방학 내내 미경은 어머니의 기사 노릇과 손 노릇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동생 내외가 신혼여행을 떠난 날, 막내까지 내보내고 난 어머니가 섭섭한지 자고 가라고 미경을 붙들었다. 체력이라면 자신 있었던 미경도 그 날은 녹초가 되었고, 결혼 준비에 넌더리가 나 결혼 냄새가 나는 집에 정말 있기가 싫었다.

  그 전날까지 까다로운 폐백 음식 준비로 미경은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그것도 음식에 별난 어머니 때문에, 맞추면 간단할 일을, 직접 한다고 고집을 부려 일이 더 많았다. 결혼 당일에도 신부보다 먼저 일어나 씽씽 달려와 신부를 예식장에 미리 태워다 주고, 전 날부터 집에 와 계신 나이 드신 친척들을 예식장으로 모셔드리고, 식당에 갈 음식 나르는 것도 미경의 차지였다. 예식장을 수없이 왔다갔다 하고, 주례비 챙기고, 멀리서 온 손님들 차비 챙겨드리고,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좀 나눠 하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한복 곱게 차려들 입고 어린 조카들 끼고 있는 동생들에겐 기대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미경이와 엄마가 계획하고 주문하고 한 일이라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했다. 결혼 당일에 엄마는 손님맞이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고 미경이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뛸 수밖에 없었다. 뛰어다니느라 동생 결혼식은 옳게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정말 결혼이란 게 없는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몇 번을 붙드는 어머니를 물리치고 미경이 집 앞에서 차를 돌려 나가자, 어머니는 달아나는 차 꽁무니에다 대고 소리 질렀다.

  ‘매정한 것, 너도 시집가서 자식 낳아 봐라.’

  그 말을 뒤로 하고 미경은 혼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 옷만 갈아입고 자기 시작해서 그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일어났다.

 

  눈을 뜨자 커튼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늦잠을 자서가 아니라 엄마가 어떻게 아직도 전화를 안했지?’하는 사실 때문이었다. 늦잠을 자는 편은 아니지만 조금만 늦어도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해가 저렇게 뜨도록 전화도 없었단 말인가. 어제 일로 화가 나셨구나. 그렇게 짐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별 할 일이 없구나. 화가 났어도 일을 두고 전화를 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도 그럴 것이 방학이 다 끝나 가는데, 하루도 집에 조용히 있어본 적이 없었다.

  미경은 그 날 하루 종일을 밀린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며 보냈다. 엄마는 화가 많이 났는지 날이 저물도록 전화도 하지 않았다. 미경이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엄마만 섭섭한 게 아니고 나도 섭섭해요, 하며 전화기를 바라보고 혼잣말을 했다.

  내일 가 보자, 하며 늦게까지 책을 읽다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눈을 뜨니 또 날이 훤히 밝아있었다.

  엄마가 오늘도 전화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었다.

 

  미경 어머닌 별일이 없어도 습관처럼 늘 전화를 하신다. 더구나 방학이다. 미경이 집에 있는 날은 아침저녁으로 전화가 온다. 어떤 날은 끼니때마다. 그저 밥 먹었느냐, 뭘 먹었느냐는 전화지만. 그런 전화에 너무나 익숙해있던 미경이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이나 전화가 없다니.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미경의 심리였다. 커튼을 젖히고 멍청히 앉아 있다 보니 그날도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햇살이 베란다에 가득했다. 전화를 해 봐야 되는데, 하는 건 생각뿐 그러기도 싫었다. 전화를 하는 것도, 털레털레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미경 자신도 자기의 심리 변화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게 귀찮아졌다.

  동생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은 가봐야지 않겠냐고 이성은 속삭이는데, 감정은 그 날은 더 가기 싫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갑자기 제부 앞에서 밥상을 차리는 것도 싫고, 과일을 깎아 들여가는 것도 싫고, 앉아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도, 친척 어른들의 걱정을 들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한 번 싫다는 마음이 들자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 놀랍게도 가지 말자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동생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전 날, 기다리다 못한 어머니로부터 먼저 전화가 왔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을 했던 모양이었다. 미경이 아무 일 없었던 듯 전화를 받자,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언제 올 거냐? 내일 니 동생 오는데, 장도 봐야 되고.’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화가 났었나? 미경의 입이 마음의 허락도 없이 내일 못 가는 데요하고 말해버렸다. 어머니는 미경의 반응이 너무 기막힌지 화도 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알아서 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동안 미경 어머니의 알아서 해라는 늘 마음 약한 미경이 알아서 하는효과를 낳았었다. 미경 어머니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경과 어머니 사이의 역사를 알고 있고 역사는 되풀이되리라 믿었다. 그런데 미경은 동생 내외가 돌아오는 날 새벽에 차를 몰고 운주사엘 왔었다.

 

  어머니의 원망과 섭섭함은 대단했다. 미경은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사실 할 말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작정하고 벌인 일이 아니니 무슨 말을 작정해 두었겠는가. 그럴수록 엄마는 억지를 부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미경의 입을 떼게 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니가 그럴 수 있냐.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못되게 됐느냐. 친구를 잘못 둔 것 아니냐. 그런 친구들 이제 그만 만나라.’

  어머니는 미경이가 친구들이랑 같이 행동한 줄 아는 모양이었다. 영문도 모를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그녀가 언제 집안 일 제쳐두고 친구가 먼저였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도 별 원망을 다 듣게 하고 있구나.

  해명이든 변명이든 해야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경은 엄마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만 있었다. 어머니가 섭섭해 하는 이유를 너무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 같이 끌려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했지만 표현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의 심정을 모른다면 몰라도 알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이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 스스로 말을 멈출 때까지 기다림으로써, 저절로 포기가 되고 기대를 잘라버리게 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긍정도 부정도 아닌 태도로 듣고 있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경이 입을 떼면 어머니가 어떤 기대를 하게 되든지 아니면 상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어머니 혼자 상상으로 받는 상처나 실망이 나을 것이었다.

   동생들의 눈초리에도 원망과 배신감이 들어있었다. 미경은 동생들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도, 설명하기도 싫었다. 자신의 심정을,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난 자매에게 일일이 설명해서 이해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그녀를 고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경은 식구들이 자기의 사소한 감정까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랐던 모양이었다.

 

  그 일은 끝까지 미경이 입을 다물어 버림으로써 해석은 식구들 몫이 되어버렸다. 식구들이 어떤 식으로 이해했는지는 미경도 잘 모른다. 그러나 그 때부터 미경은 집안일에서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었다. 실망한 만큼 기대도 접어버린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전화가 없는 날이 늘었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부탁하던 동생들도 눈치를 보며, 부탁 횟수가 줄었다.

  미경을 철석같이 믿던 그 마음들이 조금씩 덜어지면서 그 덜어진 자리가 좀 허전하게 느껴지긴 했다. 처음엔 그랬다. 시간이 흘렀고 얼마 안가 허전함 대신 편안함이 재빨리 그 자리를 채웠다.

  식구들이 그렇게 미경에게 기대게 된 책임은 미경 자신에게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맏이라는 지나친 책임감.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묘한 자부심. 어쩌면 그렇게 함으로써 식구들이 미경에게 쏟는 칭찬에 얽매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결혼을 하지 않아 불효는 했지만, 결혼과 상관없는 좋은 딸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걸 부모에게, 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그런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혼자 운주사를 오가며 미경은 마음을 열어놓고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고 시행착오였는지.

  미경은 그렇게 살려고, 그걸 보여주려고 결혼을 안했던 게 아니었다. 한 남자를 만나 생활 방식을 맞추고 그 남자의 가족과 얽혀 살아야 하는 게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복잡하고 싫었다. 자신이 없었다. 자신 없음은 꼭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로 발전했고, 점점 결혼과는 마음이 멀어졌다.

  결심은 섰지만 행동은 쉽지 않았다. 맏이로 태어나 친가와 외가의 유별난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부모의 기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미경의 선포는 집안에 폭탄이 될지도 몰랐다. 누군들 부모에게 그런 충격을 주고 싶겠는가. 나이가 들도록 결혼을 미룸으로써 자연스럽게 인식되도록 하고 싶었지만 처지가 그게 아니었다. 동생들까지 나이가 차게 되자 미경의 결심을 알 리 없는 어머니의 성화가 점점 심해져갔다. 그것보다 더 고역은 마음 없는 맞선을 계속 봐야 하는 것이었다.

  큰 동생이 사람을 데려와서 결혼하겠다고 한 날, 부모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결혼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함께 터뜨린 독립 선포. 물론 쉽진 않았다. 부모도 미경도 힘들었다. 맏이에 대한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죄책감이 컸다.

  힘든 과정을 겪으며 보상심리가 자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모의 수족 노릇을 자처했는지도 모른다.

  단순 명쾌하게 살고 싶었다. 여행이나 많이 다니며.

  그러나 그 많은 원망을 받으며 선택한 독립은, 미경이 꿈꾸던 대로와는 너무 다르게 흘러갔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 혼자만의 살림이 있는 집에 혼자 기거한다는 것 외에 꿈은 완전히 부도가 나버렸다. 시집 식구 대신 친정과 얽히고, 여행이나 많이 다니자 라는 꿈은, 휴일마다 부르는 어머니 덕분에 독립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차라리 집에 있을 땐 일요일마다 나올 수가 있었다. 미경은 나날이 바빠지는 자신을 의식할 여유도 없었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시집은 안가고 무슨 여행은 그렇게라는 비난이 숨어있었고, 가족과 함께 하는 건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칭찬이 따라다녔다. 친구들이 섭섭해 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땐 항상 같이 했었는데, 이젠 그들끼리 정해놓고 같이 갈 수 있냐고 통보만 한다. 그건 친구들의 배려였다. 그 자리에서 미경이 거절하면서 느껴야 할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들이 터득한 방법이었다. 신나게 계획을 짜고 있는 자리에, 못 간다는 소릴 하면 김샐까봐 말을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은 후론, 여행 계획을 그들끼리 짜서, 조용하게 사정을 물었다.

 

  양자 병립은 불가능인가.

  결혼한 사람들의 가족 여행은 모두가 인정하고 환영해주는 행사지만, 우리들의 여행은 늘 가족들에게 미안해하며 떠나야하는 이기적인 행사인가.

집에 제사가 있는 날, 결혼한 동생들이 어머 우리 그 날, 신랑 휴가 받은 날이야, 여행가기로 했는데하면 어머니는 흔쾌히 그래, 그래라. 제사야 뭐 우리끼리 지내면 되지로 간단히 끝낸다. 그러나 미경은 제사가 걸린 날 여행은 아예 안 되는 걸로 되어있다. 언젠가 계획 다 잡아 놓은 여행에, 제사 있는 날인 줄 모르고 가려고 했다가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조상 제사 소홀하면 벌 받는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조상 무서운 줄을 몰라. 여행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쌔고 쌘 날 두고 하필 그 날 여행이냐?’

  조상은 결혼 안한 후손에게는 너그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외치던 미경의 명쾌한 삶자유는 어디로 갔는가. 남편과 자식 대신 더 단단한 그 무엇이 미경의 다리를 얽어 놓고 있는 것 같았다. 인정도 받지 못하는, 아무도 깃발을 흔들어주지 않는 그 자유를 얻자고 부모와 그렇게 싸우며 독립을 했던가.

  미경은 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 눈을 부릅뜨고 앞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움직이면, 다른 곳을 보면, 눈물이 곧 흘러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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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자는 가방을 베고 드러누웠다.

  소나무 사이로 낮게 내려앉은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처음 단비와 놀러 다닐 땐 참 답답했다. 보고 싶고 가고 싶은 데는 많은데 단비는 어딜 가면 빨리 움직이려 하질 않았다. 힘이 들어 그럴 때도 있지만, 자연의 음미, 그게 단비의 취미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단비는 어디든 도착만 하면, 그 곳이 최종 목적지든 중간 쉼터이건 관계없이, 겨울에는 제일 양지 바른 곳,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찾아 아무 데나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단비가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으면 우리는 단비를 버려두고 곳곳을 쑤시고 다니다 오곤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우리도 나이가 들었는지, 점점 구경하는 범위가 줄었다. 며칠씩 여행을 해도 행선지는 몇 곳이 되지 않았다. 경치 좋은 콘도라도 잡게 되면 며칠을 콘도에만 머물기도 한다.

  수자는 하늘을 보며 자기도 단비의 취미에 물이 좀 든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쁘지도 않았다. 한가하게 누워 이런 저런 생각도 하고, 또 그렇게 한 곳에 머물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곤 했다.

 

  오늘은 구름이 끼어 정말 좋다.

  맑은 햇살은 다른 계절에나 가치가 돋보이지 더운 여름엔 그저 피하고 싶을 뿐이다. 더구나 들이나 산을 헤매고 다닐 때는. 더구나 와불이 누워있는 이 산마루엔 그늘다운 그늘이 없다. 그늘이라도 깊게 드리워줄 큰 나무가 있다면 몰라도 햇살 아래 그리 오래 머물 순 없을 것이다.

  날이 흐려 눈부심 없이 하늘도 볼 수 있으니 오늘 같은 날은 구름이 보배다.   솔개인지, 아주 높은 곳에 새가 한 마리 꼼짝 않고 떠 있었다.

  벌써 유월이다. 수자는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 칠순을 떠올렸다. 자식이라곤 달랑 수자뿐인 집이라 아버지의 칠순은 수자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잔치를 하기는 해야 할 텐데. 괜히 부모를 원망했다. 왜 동생이라도 하나 더 낳아주지 않았나. 이럴 때 의논이라도 같이 하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코웃음을 쳤다.

 

  어릴 땐, 혼자라는 게 하나도 불편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오로지 자기만 바라보는 부모, 삼촌, 이모가 있다는 게 얼마나 그녀를 흡족하게 했는지 모른다. 집에 사촌들이 놀러오는 것도 싫어했다. 엄마가 그들에게 관심을 쏟는 게 왜 그렇게 싫었던지. 엄마가 사촌들 밥숟가락에 반찬이라도 얹어주면 그 반찬을 안 먹겠다고 떼를 썼다.

  나서기 좋아하는 삼촌이 알아서 떡 벌어지게 잔치 준비하겠다고 떠들어대지만,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맡겨두고 뒷짐 지기는 싫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뒷짐 지기 싫은 게 아니라 삼촌의 설레발에 밀려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는 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충돌이 꽤 강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삼촌이 제 일처럼 나서주면 편하지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게 좀 묘하다. 편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삼촌이 하는 일은 수자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버지 환갑 때도 그랬다. 아버지와 어머닌 여행을 다녀오시기로 했고 여행을 가시기 전에 가까운 친지들이 모여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삼촌은 여행사에 전화하고 음식점을 예약했다. 그뿐이었다. 모여서 밥을 먹는 자리에서 삼촌은 자기가 예약한 곳인데 맛이 어떠냐고 물음으로써 공치사를 했고 예약한 여행지가 얼마나 좋은지 장광설을 풀어놓는 것으로 생색을 냈다.

  듣고 있는 친지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삼촌의 공로를 치하했을 지도 모르고 삼촌이 수자를 많이 도우고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고 어쩌면 수자는 언제 어른이 될까 걱정했을 지도 모른다.

 

  삼촌이 고맙지 않다고 한다면 옹졸하다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자는 고맙지 않았다. 그건 수자가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려울 때 도운 게 아니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식당도, 여행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식당도, 여행사도 수자의 부모를 배려한 곳이 아니었다. 배려를 받은 쪽은 오히려 식당과 여행사다. 삼촌의 문어발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과 관계있는 곳일 뿐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삼촌의 목적이 문제다. 삼촌은 그가 아는 사람에 초점이 더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환갑노인에게 신혼여행 단체 여행이라니.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젊은 기를 받고 어쩌고 그래봤자 속셈이 다 보였다. 수자는 조용한 온천 여행지를 선택하려고 했었다. 특히 어머닌 온천을 정말 좋아하신다. 은근히 내비쳤던 장소도 있었다. 하지만 삼촌의 설레발에 입을 다무셨다. 식당도 점잖지 못했다. 세련되고 현대적이지만 나이 드신 분들이 훨씬 많은 그 날의 모임엔 어울리지 않았다. 음악은 너무 시끄러웠고 멋만 부린 의자도 불편했다.

  비용은 물론 수자네 집에서 모두 나갔다. 답례품 준비는 소형이와 같이 했고 공항 배웅과 마중은 수자가 직접 했다.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고 얼마든지 분위기 좋은 식당도 물색할 수 있다. 그게 훨씬 좋았다. 부모의 취향을 제일 잘 아는 딸을 두고, 삼촌이 굳이 나설 일이 아니었다. 수자가 비용 지불 통보만 받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계산 능력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도 알고 안목도 있다. 삼촌도 그걸 알고 있다.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마음 보드라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저 좋은 게 좋은 분들이다. 삼촌과 수자의 은근한 알력을 모르는 게 아니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아도 표를 내지 못한다. 분란이 생길까봐 노심초사하시는 것도 알고 있다. 딸밖에 없다는 현실에서 힘을 얻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것도 화가 난다. 그래서 더 당당하게 자식 노릇을 하고 싶다. 좀 덜컥거리더라도 삼촌의 개입을 몰아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한 지는 오래다.

  수자가 지금까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부모의 마음.

  다치게 하는 게 싫어서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잔치는 무슨 잔치냐 둘이 여행이나 다녀올란다 하면서도, 누구네는 어디서 어떻게 했다더라, 자식들 죽 나서서 절하는 거 보기 좋더라 하면서 부러운 눈치였다. 아들이 없는 집이라고 쓸쓸해하는 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더 쓸쓸하게 해 드릴 수는 없었다. 똑 부러지게 수자가 나서서 해야 했다.

  어떻게 할 것인지 대충 계획도 세워놓았다. 소형이 강의 나가는 대학의 동료로부터 칠순 잔치 계획서도 하나 얻어 놓았다. 얼마 전에 부모님 칠순 행사를 한 걸 알고 소형이 얻어다 준 것이다. 식당을 빌려 한 것이라 비슷하게 하면 될 것 같았다. 계획서에 적힌 식순대로 하면 어려울 건 없었다. 음식 준비는 직접 하는 게 아니니까 계획만 꼼꼼하게 짜서 빠뜨리지 않고 잘 주문하고 예약하면 될 것이었다. 문제는 수자가 계획한대로 삼촌이 그대로 따라주느냐 안 따라주느냐이다.

 

  사람들은 여자가 일을 맡아하면 왜 못미더워 하는지 모르겠다. 여자가 나서서 주문하고 계획하면 꼭 남자는 어딨냐는 눈치다. 삼촌도, 아들이 없는 수자네 집안일에 항상 필요 이상으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충분히 수자가 할 수 있는 일도 삼촌이 나서서 뒤흔든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 번에도 삼촌이 자기 고집을 피우고 그래서 주도권이 어영부영 넘어가서, 칠순 잔치까지 자식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치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부모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서도 잘 할 일을, 바쁘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삼촌이 중간에 나서서 자기가 다한 것처럼 거들먹거리기 일쑤였다. 여자가 뭘 하겠냐는 표정으로 폼을 잡으며 설쳐댈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속이 거북하다.

칠순 잔치 때는 이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었다. 수자가 믿고 무슨 일이든 맡겨도 되는 편한 사람들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척 어른들이나 삼촌의 눈빛이 어떨지. 수자가 아직 미혼인 것도 못마땅한데, 친구들까지 그런 눈길을 받게 할 수는 없다.

  딸 하나 달랑 믿고 잔치 자리에 앉을 부모도 쓸쓸하겠지만, 터놓고 의논하고 걱정할 형제자매 하나 없이 친척들 사이에 끼어있을 자신을 생각해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미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 사촌들도 친구들보다 허물없진 않았다. 그런데 제일 가까운 친구들은 그 날 같이 있을 수가 없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싶은 게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잔치 준비는 이들과 의논하고 준비하고 할 텐데 초대할 수도 없다니. 수자는 혼자 생각에 분해 눈물까지 솟았다. 귀 쪽으로 주르르 흐르는 눈물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비는 여전히 등을 보인 채로 앉아 있고 소형은 카메라를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미경은 두 무릎 위에 얹은 손에 턱을 괸 채 꼼짝 않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친구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귀 쪽으로 흐른 눈물을 손으로 가만히 닦았다. 코가 맹맹했다. 코를 풀고 싶었지만 대신 옆으로 돌아누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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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운이 좋았다.

  토요일에 출발하기를 잘했다. 토요일 일요일에 과외가 몰려있는 수자가 그걸 몰아서 하느라고 고생을 좀 했겠지만.

  다들 조용할 때 운주사에 오고 싶어 했다. 우린 수자의 과외가 끝난 저녁 일곱 시에 출발을 했다. 광주에 도착하자 바로 여관을 잡아 자고 아침에 운주사로 왔다. 다행히도 예상이 적중했다. 날씨까지 우릴 돕느라고 구름을 깔아주었다. 운주사는 아주 조용했다. 돌부처도 석탑도 고요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인파에 쫓기고 밀리면서 제대로 본다는 건 거짓말이다. 특히 자연 속에 있는 것들을 즐기려면 오랫동안 그 속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침묵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즐기는 방법이다.

 

***

 

  등에 서늘하게 닿았던 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석불과 체온을 나누고 있는 중인가? 이렇게 있으면 같은 온도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 있을까? 실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멋대로 일어나는 생각을 막을 재주는 없다. 때를 맞추어 꽁지 긴 새 한 마리가 삑- 날카롭게 울며 땅을 스치듯 낮게 날아간다. 그 뒤를 따르는 또 한 마리. 물론 그들이 눈앞을 지나가는 걸 막을 재주도 없다. 한 쌍의 새는 재주를 부리듯 허공에서 곤두박질치고 솟구치며 나무 뒤로 사라진다. 수선스러운 새들이다. 사랑을 하는 중일까. 아님 먹이 싸움을 하는 중일까. 새가 사라져버린 허공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났다.

  친구들은 울타리 밖 내 뒤쪽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이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두었다.

  우린 피도 눈물도 없는 줄 안다. 나는 혼자 생각에 감정이 복받쳐 목이 아팠다. 그렇게 단정 짓는 사람들 앞에서 아니야, 나도 눈물이 있어하기가 얼마나 처량한가. 어차피 그들의 감정은 그들의 것이지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있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왠지 솜씨가 없을 것 같다고 느낀다면 나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느낀 자의 것이다. 그들에겐 그렇게 고정될 수밖에 없다. 생활을 같이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걸 제대로 알 수는 없다. 보여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이미지를 바꾸자고 상황에 맞지 않게 나의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그냥 그렇게 파란 안경과 빨강 안경 낀 사람들 사이에서 빨갛게 파랗게 보이며 살아갈 것이다. 사실,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지도 모른다.

 

  점심을 먹고 난 휴게실.

  하루 중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간이다.

  양치질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출근은 벌써 했지만 이 시간이 되서야 서로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많다 보니 온갖 이야기가 난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병원 24이야기가 나왔다.

  희귀한 병에 걸린 7살 소년의 이야기였다. 근육이 빠르게 굳어 간다는 병. 처음엔 팔 다리가 굳어가다 나중엔 식도가 굳어 음식물 삼키기도 힘들어지고 굳어진 근육이 심장까지 압박해 들어가 치료방법이 발견되지 않는 한 얼마 살지 못한다 했다. 나이가 어려도 큰 병이 있어 그런지 아이의 표정은 어른 같았다. 뛰어 노는 대신에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앉아서 손으로 뭘 만지거나 생각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아이인지라 투정도 부리는데 투정 어린 말속에는 죽음에 대한 깊은 공포심이 들어있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아이의 얼굴에 처연함을 드리워놓았다. 작은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무거운 죽음이라는 공포.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늘진 아이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대개 결혼을 했고 그 나이의 아이를 둔 엄마가 많아서인지 화제는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동정어린 표정과 끔찍해하는 표정이 엇갈렸다. 그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기 자식들 생각 사이에서 몸서리를 쳤으리라.

  ‘아프면 철이 빨리 드나 봐요. 어린아이 표정이 얼마나 처연한지.’

  그렇게 거들었다. 그 말에 어떤 잘못이 있었을까. 물론 내가 그걸 보면서 눈물이 났단 얘긴 하지 않았다. 울고 웃는 건 일상인데 굳이 말로 전해줄 이야긴 아니다. 감정은 느끼는 것이지 소포처럼 전달해야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선생님은 애를 안 낳아봐서 아픈 아이 둔 부모 심정이 어떤지 잘 모를 거야. 난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애가 아프면 정말 대신 아파주고 싶거든. 신선생은 그래도 눈물은 안 났을 거야. 그죠?’

  그렇게 내 감정을 정리해주는 선생이 있었다. 말은 망치가 되어 머리를 쳤다. 내가 받은 충격을 그 선생은 짐작이나 할까. 아니면 그 말은 내게 합당한 말인가. 충격도 내 자격지심의 결과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입장이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는 것이다. 난 보는 내내 아픈 소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소년이 받을 고통, 공포. 심정.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아픔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은 단연 소년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둔 선생들은 아니었다. 소년보다 소년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고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내게 한 말씀 던진 선생도 분명 부모심정에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다. 그녀 말대로라면 난 아직 소년 쪽이지 부모 쪽이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고통에 그렇게 순위까지 정해주며 자신의 아픔을 강조해야 하는가. 자신의 아픔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고통을 살짝 발밑에 밟아야만 하는가. 그냥 아프다고 하소연만 하는 걸로는 모자라는가. 고통에 강약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가장 아프지 않는가. 스치고 지나갈 감기도 앓는 동안은 괴롭고 혼자 앓아야 하는 건 서럽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서 그걸 참아야했기 때문이다. 무시하고 계속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너무 억장이 막히면 마음이 새어나가질 못한다. 그 선생이 작심하고 내게 상처를 입히려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어쩌면 그런 현실에 더 절망했을 지도 모른다. 이해 받지 못한다는, 아니면 오해를 받는다는, 아니면 함부로 정의된다는 사실에.

  참담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자식을 안 낳아본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부모 심정 안다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정말 부모가 안 되어 봤으니까.

 

  하지만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았다고 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건 아니다. 자식은 없지만 부모는 있고, 산통을 못 겪어 봤어도 남의 고통이 우습지는 않다. 그렇게 말하는 선생은 처녀 때 울어본 적이 없는가.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에 무심했던가. 슬픈 영화도, 병원 24시 같은 프로그램도 그녀가 처녀 때는 없었던가. 그런 걸 보고도 감정의 흔들림이 없었던가. 정말 그랬을까. 그 때 생각을 해 본적이나 있을까. 왜 돌아보지 않는 걸까. 상상력이란 게 아예 없는 걸까

 

  부모의 사랑이 크다고 다른 모든 사랑은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지. 대학에 들어가면 떨어진 사람을 무시하고, 일류 대학생은 다른 대학생을 무시하고, 일류 배우는 삼류 배우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인가. 사랑이란 게 기껏 이 정도인가. 엄마 된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엄마 된 자 외에는 사랑도 눈물도 논하지 말라, 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논의에 끼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니라 다른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아니, 나를 변호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 또 생기는 게 싫어서. 그리고 결코 변호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인간만큼 비참한 인간이 있을까

 

  괜히 떠올린 생각으로 서러워진 나는 들썩이는 어깨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써야 했다.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지난 일을 떠올리고 있지만 그 때의 비참한 내 심정을 그대로 겪고 있다. 그리고 그 날 참았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렸다. 닦지 않고 버려둔 눈물이 마구 얼굴을 타고 흐른다. 사람들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알량한 자존심이 그렇게 위로를 하고 있다. 난 울다가 웃는다.

  멀리서 들리는 새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없다.

  참으로 조용하다.

  친구들이 움직이는 기척은 아직 없다.

  관광객이 몰려 올 때까지 앉아 있으려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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