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운이 좋았다.

  토요일에 출발하기를 잘했다. 토요일 일요일에 과외가 몰려있는 수자가 그걸 몰아서 하느라고 고생을 좀 했겠지만.

  다들 조용할 때 운주사에 오고 싶어 했다. 우린 수자의 과외가 끝난 저녁 일곱 시에 출발을 했다. 광주에 도착하자 바로 여관을 잡아 자고 아침에 운주사로 왔다. 다행히도 예상이 적중했다. 날씨까지 우릴 돕느라고 구름을 깔아주었다. 운주사는 아주 조용했다. 돌부처도 석탑도 고요를 즐기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인파에 쫓기고 밀리면서 제대로 본다는 건 거짓말이다. 특히 자연 속에 있는 것들을 즐기려면 오랫동안 그 속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침묵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즐기는 방법이다.

 

***

 

  등에 서늘하게 닿았던 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석불과 체온을 나누고 있는 중인가? 이렇게 있으면 같은 온도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 있을까? 실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멋대로 일어나는 생각을 막을 재주는 없다. 때를 맞추어 꽁지 긴 새 한 마리가 삑- 날카롭게 울며 땅을 스치듯 낮게 날아간다. 그 뒤를 따르는 또 한 마리. 물론 그들이 눈앞을 지나가는 걸 막을 재주도 없다. 한 쌍의 새는 재주를 부리듯 허공에서 곤두박질치고 솟구치며 나무 뒤로 사라진다. 수선스러운 새들이다. 사랑을 하는 중일까. 아님 먹이 싸움을 하는 중일까. 새가 사라져버린 허공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났다.

  친구들은 울타리 밖 내 뒤쪽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이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두었다.

  우린 피도 눈물도 없는 줄 안다. 나는 혼자 생각에 감정이 복받쳐 목이 아팠다. 그렇게 단정 짓는 사람들 앞에서 아니야, 나도 눈물이 있어하기가 얼마나 처량한가. 어차피 그들의 감정은 그들의 것이지 내가 다스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있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왠지 솜씨가 없을 것 같다고 느낀다면 나에 대한 이미지는 그렇게 느낀 자의 것이다. 그들에겐 그렇게 고정될 수밖에 없다. 생활을 같이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걸 제대로 알 수는 없다. 보여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이미지를 바꾸자고 상황에 맞지 않게 나의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그냥 그렇게 파란 안경과 빨강 안경 낀 사람들 사이에서 빨갛게 파랗게 보이며 살아갈 것이다. 사실,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지도 모른다.

 

  점심을 먹고 난 휴게실.

  하루 중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간이다.

  양치질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출근은 벌써 했지만 이 시간이 되서야 서로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많다 보니 온갖 이야기가 난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병원 24이야기가 나왔다.

  희귀한 병에 걸린 7살 소년의 이야기였다. 근육이 빠르게 굳어 간다는 병. 처음엔 팔 다리가 굳어가다 나중엔 식도가 굳어 음식물 삼키기도 힘들어지고 굳어진 근육이 심장까지 압박해 들어가 치료방법이 발견되지 않는 한 얼마 살지 못한다 했다. 나이가 어려도 큰 병이 있어 그런지 아이의 표정은 어른 같았다. 뛰어 노는 대신에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앉아서 손으로 뭘 만지거나 생각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아이인지라 투정도 부리는데 투정 어린 말속에는 죽음에 대한 깊은 공포심이 들어있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아이의 얼굴에 처연함을 드리워놓았다. 작은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무거운 죽음이라는 공포.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늘진 아이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대개 결혼을 했고 그 나이의 아이를 둔 엄마가 많아서인지 화제는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동정어린 표정과 끔찍해하는 표정이 엇갈렸다. 그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기 자식들 생각 사이에서 몸서리를 쳤으리라.

  ‘아프면 철이 빨리 드나 봐요. 어린아이 표정이 얼마나 처연한지.’

  그렇게 거들었다. 그 말에 어떤 잘못이 있었을까. 물론 내가 그걸 보면서 눈물이 났단 얘긴 하지 않았다. 울고 웃는 건 일상인데 굳이 말로 전해줄 이야긴 아니다. 감정은 느끼는 것이지 소포처럼 전달해야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선생님은 애를 안 낳아봐서 아픈 아이 둔 부모 심정이 어떤지 잘 모를 거야. 난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애가 아프면 정말 대신 아파주고 싶거든. 신선생은 그래도 눈물은 안 났을 거야. 그죠?’

  그렇게 내 감정을 정리해주는 선생이 있었다. 말은 망치가 되어 머리를 쳤다. 내가 받은 충격을 그 선생은 짐작이나 할까. 아니면 그 말은 내게 합당한 말인가. 충격도 내 자격지심의 결과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입장이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는 것이다. 난 보는 내내 아픈 소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소년이 받을 고통, 공포. 심정.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아픔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은 단연 소년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둔 선생들은 아니었다. 소년보다 소년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고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내게 한 말씀 던진 선생도 분명 부모심정에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다. 그녀 말대로라면 난 아직 소년 쪽이지 부모 쪽이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고통에 그렇게 순위까지 정해주며 자신의 아픔을 강조해야 하는가. 자신의 아픔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고통을 살짝 발밑에 밟아야만 하는가. 그냥 아프다고 하소연만 하는 걸로는 모자라는가. 고통에 강약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가장 아프지 않는가. 스치고 지나갈 감기도 앓는 동안은 괴롭고 혼자 앓아야 하는 건 서럽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서 그걸 참아야했기 때문이다. 무시하고 계속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너무 억장이 막히면 마음이 새어나가질 못한다. 그 선생이 작심하고 내게 상처를 입히려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어쩌면 그런 현실에 더 절망했을 지도 모른다. 이해 받지 못한다는, 아니면 오해를 받는다는, 아니면 함부로 정의된다는 사실에.

  참담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자식을 안 낳아본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부모 심정 안다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정말 부모가 안 되어 봤으니까.

 

  하지만 아이를 낳아 보지 않았다고 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건 아니다. 자식은 없지만 부모는 있고, 산통을 못 겪어 봤어도 남의 고통이 우습지는 않다. 그렇게 말하는 선생은 처녀 때 울어본 적이 없는가.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에 무심했던가. 슬픈 영화도, 병원 24시 같은 프로그램도 그녀가 처녀 때는 없었던가. 그런 걸 보고도 감정의 흔들림이 없었던가. 정말 그랬을까. 그 때 생각을 해 본적이나 있을까. 왜 돌아보지 않는 걸까. 상상력이란 게 아예 없는 걸까

 

  부모의 사랑이 크다고 다른 모든 사랑은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지. 대학에 들어가면 떨어진 사람을 무시하고, 일류 대학생은 다른 대학생을 무시하고, 일류 배우는 삼류 배우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인가. 사랑이란 게 기껏 이 정도인가. 엄마 된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엄마 된 자 외에는 사랑도 눈물도 논하지 말라, 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논의에 끼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던 게 아니라 다른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아니, 나를 변호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 또 생기는 게 싫어서. 그리고 결코 변호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인간만큼 비참한 인간이 있을까

 

  괜히 떠올린 생각으로 서러워진 나는 들썩이는 어깨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써야 했다.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지난 일을 떠올리고 있지만 그 때의 비참한 내 심정을 그대로 겪고 있다. 그리고 그 날 참았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버렸다. 닦지 않고 버려둔 눈물이 마구 얼굴을 타고 흐른다. 사람들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알량한 자존심이 그렇게 위로를 하고 있다. 난 울다가 웃는다.

  멀리서 들리는 새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없다.

  참으로 조용하다.

  친구들이 움직이는 기척은 아직 없다.

  관광객이 몰려 올 때까지 앉아 있으려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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