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이 들여다보는 렌즈 속에 단비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렌즈를 당겨 단비를 코앞에다 앉힌다.
그런데 이상하다. 단비의 어깨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편안하게 기대어 앉은 모습이 아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잠깐이면 몰라도 저 자세는 단비의 자세가 아니다. 허리에 꼿꼿하게 힘을 주고 앉아 있을 여자가 아니란 말씀이다. 하도 기대는 걸 좋아해서 오죽하면 ‘마야 부인’이라 불린다는데.
그럼 그렇지.
자세히 보니 단비의 어깨가 약간씩 들썩였다. 얼굴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역력하게 느껴진다.
그래 울어라. 말리지 않는다.
이유가 궁금하지 않냐고? 글쎄, 몰래 우는 걸 보면 새로운 사건 사고는 아닌 게 분명하다. 새삼스레 알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이겠지. 조용히 앉아 있다 보니 문득 떠올려지는 무엇이 있었겠지. 이야길 들어보면 눈물하곤 거리가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자연이란 게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 떠오르는 기억. 그 기억이 슬프지 않은 데도 문득 눈물이 난다. 분명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인데, 그리고 즐거운 기억인데도 슬프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단비가 지금 그럴 지도 모른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 그런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 눈물이 났을지도.
아니어도 할 수 없다. 어차피 마음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고, 그 마음을 자신인들 다 알겠는가.
울고 싶은 자 울도록 버려두자며 소형은 카메라를 돌렸다.
와불의 하체와 키 낮은 소나무가 같이 들어온다.
와불의 발을 지나온 렌즈 속에 미경이 앉아 있다. 미경의 옆에 누워있는 수자의 다리도 보인다.
고요하다.
오늘 여행은 순전히 소형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일요일 과외가 많은 수자 때문에도 그렇지만, 월요일 출근 부담 때문에 미경이도 단비도 먼 거리 여행을 일요일엔 잘 하지 않으려 한다.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운주사까지 오게 된 건, 소형을 위로할 목적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무척 아름답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운주사가 생각나서 한 번 가고 싶다고 한 걸, 수자가 듣고 굳이 목적지로 삼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한 달을 병원에 계시다 결국 요양 병원에 들어가셨다.
소형이 강력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병원에서도 어머니의 병세는 큰 차도가 없었다. 물리치료로 허리 통증은 좀 나아졌지만 이젠 혼자 대소변을 해결 못하는 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나아지리라는 기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식구들은 막연하게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곁에서 늘 지켜보는 소형은 부질없는 희망이라는 걸 알았다. 병원에서도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며 퇴원하기를 권했다.
그리고 소형도 지쳤다. 한 달을 병원에서 자며 강의를 나갔다. 몸도 마음도 강의 준비도 엉망이었다. 나아진다는 보장만 있어도 그처럼 쉽게 맥이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희망 없는 고생은 고문에 가까웠다. 어느 비 오는 밤엔 깜깜한 하늘을 쳐다보며 ‘제발 도와주세요’하고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답답하면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비는 심정이 되는지도. 현실의 상황은 바뀔 희망이 전혀 없고 마음은 간절히 현실을 벗어나길 원할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게 기도인지 모른다.
열두 시가 넘은 병원 로비에는 수위 아저씨만 있었다. 유리문에 붙어 서서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는 소형을, 아저씨가 의심스런 눈길로 지켜보았었다.
퇴원 결정이 되었다. 물론 퇴원은 당연히 소형의 집으로 하는 거였다. 모두들 걱정은 했지만 모셔간다는 형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형은 이대로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결단을 내리는 건 제일 답답한 소형의 몫이 되어버렸다. 누구도, 형제자매 수두룩하게 두고, 부모를 요양 병원에 가게 하는 불효를 나서서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집으로 모실 마음도 없으면서, 책임질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대안이 없으면 그동안 계셨던 소형이 집으로 가게 되는 걸 거라고, 아니 그러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할 수만 있으면 소형도 그러고 싶었다. 어머니의 눈을 보며 병원 말을 꺼내고 싶진 않았다. 어머니의 눈빛에서 읽게 될 감정이 무서웠다. 두고두고 죄가 될, 아픈 짐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소형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어머니도 집만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어느 날 한밤중에 깨어, 어머니를 어깨에 메다시피 부축을 해서 화장실엘 갔다. 유난히 힘이 들었다. 아님 마음이 유난히 황폐해진 날인지도 몰랐다. 너무 힘이 들어 짜증이 났고 살기가 싫어졌다. 그건 사는 게 아니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양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하며, 찡그린 이마. 입술 끝은 아래로 처져 마귀할멈이 차라리 나았다. 너무 끔찍해 고개를 돌리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아니다. 어머니도 못할 짓이다. 짜증 부리는 자식 얼굴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서로가 할 짓이 아니다.
반성? 물론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했다. 표정 관리? 시시때때로 거울을 보며 애썼다. 하지만 표정은 결심만으론 고쳐지지 않았다. 힘에 부치면 바로 마음이 헝클어지고 표정이 변했다. 반성하고 짜증내고,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나중엔 반성하는 일조차 사람을 지치게 했다.
소형이 처음 요양 병원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오빠는 펄쩍 뛰었다.
<자식이 몇인데 무슨 소리?>
그 말에 소형이 이렇게 물었다.
<그럼 돌아가면서 할까? 그러면 나도 좀 살겠고,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어. 내가 먼저 죽겠어.>
오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큰오빠뿐만 아니라, 아무도 어머니를 요양 병원에 모시자는 데 대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리는 형제도 없었다. 소형이 병원을 알아보고 병원비를 알려주고 얼마씩을 내면 되겠더라고 결정을 내릴 때까지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적어도 부모를 병원에 보내는 걸, 동의는 하지 않았다는 걸로 위안을 삼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님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너무 마음이 아파서인가? 그랬다면 이해를 못할 것도 없지만.
하여튼 소형은 어머니를 병원에 보내는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입었다. 집에서도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며 간병을 해줄 수는 없었지만, 병원으로 거처를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아니라고 극구 부정을 하면서도 마치 부모를 버리는 것 같았고, 어머니의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 때마다 한 걸음씩 물러나는 식구들의 마음이 소형을 더 허탈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가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나 언니가 나서서 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그 일은 수자와 같이 했다. 어머니를 병원에 두고 나오면서 소형이 막연하게 ‘운주사나 한 번 갔으면’ 하고 중얼거렸다. 수자가 그 말을 새겨들었던 모양이었다.
누군 피도 눈물도 없나?
어느 자식이 아픈 부모를 병원에 혼자 두고 오고 싶겠어?
소형은 그 일을 결국 자기가 하게 맡겨 둔 언니 오빠들을 원망했다. 병원 침대에 앉아 소형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길이 계속 소형을 따라다녔다.
‘자주 가면 되지, 내일 당장 가면 되지’
하면서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어머니가 병원을 옮기고 일주일이 지났다. 집을 떠난 지는 한 달 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처음 한 달은 돌아올 기약이 살아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침대는 막연히 어머니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처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기약 같은 건 없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빈 침대는 주인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온갖 상념을 일으키게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형은 아직도 빈 침대를 두고 침대 밑에서 잔다. 침대에는 어머니가 누워계신 것 같아 누울 수가 없다. 그 침대를 결국 치워버리게 될까. 아님 언젠가 쓰게 될까.
소형은 흐려서 보이지도 않는 카메라를 한참이나 그냥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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