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는 바닷가를 따라 이어져 있다.

  해가 지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벽돌로 깨끗하게 포장된 산책로 군데군데엔 바다를 향한 벤치가 그림처럼 놓여있다.

  비록 목발을 짚고 거니는 거지만 미경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제야 다리 다치기 전의 편안한 눈빛이 돌아와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그녀의 가벼워진 마음 같았다.

 

  소형이 정말 판단을 잘 했다고 혼자 또 감탄을 했다. 수자도 기분이 한껏 좋다. 배가 부르니 세상이 아름답다. 미경이 걷는 앞에서 뒷걸음치며 뭐가 그리 우스운지 큰 소리로 웃어 제쳤다. 큰 웃음소리에 놀란, 산책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소형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다른 손으로는 수자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수자의 웃음은 아무도 못 말린다. 소리를 죽여 웃는, 터진 고무 호스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듯한 억눌린 웃음소리가 한참동안 이어졌다.

 나도 미경이도 소형이도 웃음이 터졌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웃음이 터졌다.   이유도 없이, 단지 웃는 소리에 웃음이 났다.

  파도 소리가 그녀들의 웃음소리를 바다로 끌고 들어갔다.

 

  바다에 어둠이 내리고 산책로에 불이 들어왔다.

  늘어선 벤치들은 가로등 불빛에 싸여 아늑해 보이지만 불빛이 닿지 않는 바다는 완전 깜깜이었다.

  우린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몇 명 보이던 산책객들은 어두워지자 모두 들어가 버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우린 앉아 있다. 어둠은 우릴 밝히고 있는 불빛에 끊임없이 도전하듯 몰려왔다. 아니 전속력으로 뛰어오다 번쩍, 하며 달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깜깜한 바다를 보다 가로등을 보면 그런 착각이 들었다. 마치 사진을 찍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파도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뚫어지게 보고 있는 시야에 들어오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대신 예민해진 귀가 솔깃하게 움직였다. 파도 소리에 싸여 움직이지 않고 있는 우리가 절해고도 같이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 파도 소리가 얼굴까지 다가왔다. 난 먼 바다에 흩어져있는 바위가 된다. 바닷물이 몰려온다. 몰려와서는 가슴을 치고, 또 한 번은 발만 훑고 물러났으며 그 다음은 어마하게 큰 소리를 내며 달려와 머리를 휘갈기고 지나간다.

  <단비 또 자니?>

  수자가 감고 있는 내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댄다.

  <하여튼 명상하는 걸 못 보네. 내가 앉아서 자는 거 봤어?>

  <못 봤지. 너 앉아서 잠들면 큰일 나게? 젓가락 목에 큰 머리. 목 부러지잖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친구라고 몇 안 되는데, 하나는 다리 부러져. 하나는 목 부러져. 나도 그런 친구들 둔 기구한 팔자는 되기 싫다.>

  수자는 정말 끔찍한 걸 보기라도 한 듯 진저리까지 쳤다.

  <아무래도 수자 화장실 가고 싶은 것 같다. 맞지?>

  소형이 수자 얼굴 앞에 얼굴을 갖다 대고 다그치듯 물었다. 눈치 하나는 정말 귀신 뺨친다. 수자가 어색해진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배가 살살 아프네.>

  <저녁 먹을 때 알아봤어. 잔뜩 먹고 겨울잠이라도 자러 들어가는 줄 알았지. 하여튼 많이 먹는 사람들이 문제라니까, 많이 먹고 많이 싸고. 국가적 낭비야.>

  내가 쏘아대자 미경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웃었다.

  우린 벤치에서 일어났다. 어둠이 얼굴로 몰려들었다. 앉아있을 때보다 더 어둡게 느껴졌다. 우리가 버리고 일어난, 아늑하던 불빛 속의 벤치가 몹시 쓸쓸하게 보였다. 빈자리란 그런 모양이었다.

 

***

 

  퇴실 시간을 꽉 채워 퇴실을 했다.

  정해놓은 행선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있다 해도 돌아다닐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퇴실하자마자 바로 집으로 향하는 건 뭔가 좀 밋밋하고 허전했다. 계산을 하고 어정어정 로비를 지나올 때까지도 계획을 못 잡고 있었다. 미경이 다리만 아니라면 어디 갈 데가 없겠냐만, 산도 안 되고 절도 안 되고 정말 갈 데가 없었다.

  유리문 밖에는 햇빛이 무섭게 내리쬐고 있었다.

  밖은 찜통이었다. 숨이 컥 막혔다. 미경이 다리 문제가 아니래도 어딜 걸어 돌아다닌다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모두의 표정이 그랬다. 차를 빼올 동안 기다리라며 수자가 유리 같은 쨍한 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려웠다. 햇빛 세례를 받고 있는 시멘트 바닥에서 수만의 빛 알갱이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대단한 태양이다. 감히 가볼 엄두도 안 나게 멀리 있으면서도 존재를 이렇게 징그럽게 인식시키다니. 뜨거움을 견디다 못한 피부가 하소연같은 땀방울을 내비칠 즈음 수자의 차가 나타났다. 구세주가 따로 없다.

  차에 타며 소형이 오동도가 어떠냐고 물었다. 다리가 놓여 있으니 다리 구경도 하고 한 바퀴 차로 돌아 나오면 어떻겠냐고.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던 우리에겐 웬만한 제안도 희소식이다. 그런데 제안이 멋지기까지 했다. 철썩이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다리를 건넌다?

  행선지가 정해지자 활기가 돌았다. 수자는 지체 없이 차를 몰았다. 장소만 정해지면 길은 수자가 알아서 찾아간다. 수자의 길 찾는 감각은 뛰어나다. 나는 그걸 동물적 감각이라고 늘 놀린다. 머리가 아니라 느낌으로 찾는 것 같으니까. 철새나 고래처럼 말이다. 어쨌든 길을 잘 아는 죄로 여행할 땐 거의 수자가 차를 몰게 된다. 운전 경력도 가장 길지만.

 

  그러나 오동도 입구에서 우리의 당당하던 행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차량은 다리를 건너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차를 두고 사람만 걸어서 다리를 건너야 한다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다리는 끝이 아물아물했다. 그 다리 위에 사람들이 양산을 쓰거나 모자를 쓰고 햇빛 속을 허물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의 표정이 안 가면 안 갔지 걸어서는 못 간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미경이 때문에라도 걷는다는 건 어림도 없었다. 어쩔까 잠시 망설이다 돌아가자고 결정을 보았다. 그래도 겨우 잡힌 계획이 무산되자 풀이 좀 죽은 얼굴들이었다.

  우리가 부산하게 떠들며 차를 돌리자, 웃으면서 포기하자, 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한 마디도 않던 미경이 바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애자 차량은 들어갈 수 있는데.>

  <정말? 어떻게?>

  수자가 운전대에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목발 있으니까 아마 해 줄걸?>

  <진작 말하지. 소형아! 미경이 목발 잘 보이게 창가에 대라.>

하면서 수자는 다시 차를 전진시켜 안내소 앞으로 갖다 댔다. 미경이 말이 맞았다. 목발을 본 안내소 직원이 장애 차량이라고 적힌 플라스틱판을 주며 앞 유리 안쪽에 세워 놓고 갔다 오라 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 옆에 차가 달리는 도로가 나란히 나 있다.

  우린 사람들이 다니는 복잡한 길을 옆에 두고, 조용한 도로로 들어섰다. 도로에는 우리가 탄 차밖에 없다.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이 차를 힐끗힐끗 돌아보았다. 차가 달리는 옆은 바로 바다다. 난간도 없는 다리 밑으로 보이는 바다가 무겁게 넘실대었다.

  친구들은 모두 바다를 보고 있었다.

  나는 눈길을 앞으로 향한다.

  길은 나란히 두 줄로 뻗어있다.

  두 길이 다리 끝에서 합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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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에게 난 어떤 존재일까.

  알뜰살뜰 보살펴야 할 필요가 없는 성인. 가끔 한가할 때나 생각이 나는 사람. 그 정도가 아닐까. 매일 무얼 먹고 사는지,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상을 볼 수 없고 일상을 알지 못한다. 사실은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었던 사람이다. 일상을 모르면서도 가족이란 기억을 놓지 않고 있을 뿐. 그러니 난 현재는 가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상을 같이 하는 가족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친구가 어떤 존재인지 언니는 모른다. 더 많은 일상을 함께 하는 친구가 차라리 이제 나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인지 모르는 것이다.

 

  언니의 말에 화가 났다기보다, 그동안 그런 시각으로 보고, 그런 투로 말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답답함이, 마침 언니를 상대로 터진 것이다. 언니의 애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언니의 말 사이에는 나에 대한 애정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해받지 못하는 관심과 애정이 더 아플 때도 있다. 이해 없는 사랑은 공기로 한 밥만큼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타인의 박대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심함이 더 서럽지 않겠는가. 섭섭하다는 뜻이 아니다. 난 어린애도 아니고 투정을 부릴 마음도 없으며 그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다만 적어도 한번쯤은 깊이 냉철하게 생각해 볼 문제란 뜻이다.

그 날 밤,

수화기를 다시 들지는 않았지만,

안개 속에 서 있는 것처럼 가슴이 막막했다.

 

  약한 바람이 일며 배에 무엇이 덮였다.

  소형이나 수자가 작은 담요 같은 걸 덮어 주었으리라. 잠이 든 건 아니었지만 자는 척 해버렸다. 나른나른 잠이 오는 중이라 눈을 뜨기가 아까웠다. 발뒤꿈치를 들고 가볍게 물러나는지 옷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조심스럽게 컵을 놓는 소리도 났다.

  자는 척 하다 정말 잠이 들어버렸다.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깼다. 수자가 슈퍼마켓에 내려갔다 온 모양이었다. 수자는 목소리만 큰 게 아니다.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다. 모든 세포가 아우성을 치는 듯한 그녀의 움직임을 모를 수는 없다. 발소리와 봉지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나는 침대에서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미경이 봉지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수자 배고픈가봐. 쟤 배고플 때 슈퍼 보내면 안 되는데. 단비야 너도 봤지? 지난번에 마트 갔을 때, 수자 거의 환갑잔치 하는 줄 알았잖아.>

  소형이 미경이와 같이 봉지를 풀어 수자가 사온 걸 꺼내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러니까 배 비었을 때 시장가는 거 아니래. 아줌마들이 그런다잖아. 배고플 때 장보면 평소보다 몇 배로 주워 담는대. 그래서 절약 차원에서도 시장 가기 전에는 배를 좀 채우고 간다더라.>

  <쟤는 자더니 언제 일어났어? 깜짝 놀랐잖아. 갑자기 뒤에서 소리가 나서.>

  난 수자와 반대다. 존재감이 없다. 내 움직임을 모르고 있다가 놀라는 사람이 많다. 그걸 수자가 제일 못 견뎌한다. 하지만 수자가 그녀의 수다한 움직임을 어쩔 수 없듯이 나도 어쩔 수 없다.

  정말 놀랐는지 쇠눈 같은 굵은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우리 언니도 자기 배부르면 밥하기 싫대. 특히 계모임이라도 있었던 날엔,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을 밥인데도 이 정도면 되겠지 싶고, 아이들 대충 차려서 먹인대. 한마디로 내 배 부르면 종 배도 부르다이거지.>

  <넌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하고, 언제 깼냐니까? 아직 잠 덜 깼어?>

  수자가 정말 화가 났다. 중요하지 않은 질문에 목을 맨다. 내가 언제 일어났는지가 지금 이 상황에서 그렇게 중요할 리가 없다. 배가 고프긴 고픈 모양이다. 배가 고프면 만사가 불만이다. 이럴 땐 심사 건드리지 않는 게 최고다. 속으로 더럽다 생각하지만 이 정돈 참을 수 있다. 우린 친구니까. 난 상냥하게 대꾸했다.

  <, 너 들어오는 소리에 깼지.>

  소형이도 눈치를 챘는지 풀던 봉지를 밀쳐놓으며 일어났다.

  <배고프다. 밥부터 먹자.>

  미경이는 아무 말이 없다. 모두 알고 있다. 수자의 버릇을. 아니 우리 모두의 버릇을.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바다는 짙은 푸른색으로 넘실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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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엔 여전히 햇살이 눈부시다.

  수자는 배에 물을 흠뻑 튀기며 상추와 깻잎을 씻었다. 소형은 특기인 된장찌개를 준비하고 있다. 난 침대에 몸을 펴고 누웠다. 밥을 먹을 때까지 누워 있고 싶었다. 조금 피곤했다.

  엉덩이를 밀고 다니던 미경이 어느새 몰래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오래 사귀고 여행을 여러 번 다녔어도 미경이 옷 갈아입는 걸 한 번도 못 보았다. 옷 갈아입는 걸 안 보여줄 뿐 아니라 우리가 갈아입을 때도 어느 틈에 피해 버리고 없다. 수자와 소형이 내가 동시에 뛰어들어 옷을 갈아입을 때에도 미경은 밖에서 기다리거나 외면해 있다. 우리가 뭐 없는 거 있느냐고 아무리 놀려도 소용이 없었다. 미경은 항상 아무도 모르게 귀신 같이 옷을 갈아입는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모양이다. 아니 비밀로 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다. 비밀이 많은 사람은 음흉하게 보이지만 비밀이 너무 없어도 신비감이 없어지는 건 사실이다. 미경은 우리에게 옷 갈아입는 모습을 신비로 남겨놓았다. 소형의 신비는 무얼까.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비법? 그건 그녀가 일부러 숨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지만 어쨌든 그 마음을 알 수 없으니 그것도 신비라고 해 두자. 그러면 수자의 신비는? 과외계의 인기스타?

  수자는 학생들이, 아니 학부모들까지 굉장히 좋아하는 과외 선생이다. 물론 실력을 인정받은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거의 개인 대 개인의 접촉으로 이루어지는 과외는 실력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인간관계도 생각보다 까다롭게 작용한다. 학생도 그렇지만 학부모와도. 그런데 수자의 학생으로 들어오면 선생을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 과외가 필요 없어지거나 경제적 사정으로 그만두어야 할 형편이 아니곤 다른 이유로 수자를 거부하는 걸 보지 못했다.

  내가 보기엔 무심하기도 하고 섬세한 배려 없는, 분명 기분 나쁠 말도 툭, 던지곤 하는데, 학생들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지. 하여튼 수자의 불퉁스러움이 어떤 사람들에겐 매력이 되는 모양이다. 그것도 내가 이해 못할 일이니 신비라 해두자. 그럼, 내 신비는 뭘까. 그들에게 알지 못할 나의 무엇이 있을까. 내 문젠 내가 답을 내지 못하겠다.

  중이 제 머린 못 깎는구나.

  나중에 직접 물어봐야겠다.

  개수대에서 나는 물소리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아늑하게 들린다.

  <! 좋다.>

  상추와 깻잎을 다 씻은 수자가 물이 묻은 티셔츠 앞자락을 펄럭이며 창가에 붙어 섰다. 아기처럼 창에 얼굴을 대고 바다를 보고 있는 수자. 수자의 얼굴 앞으로 멀리 지나가는 배가 보인다. 뱃고동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조용하다. 그런데 고요를 깨뜨리는 소리. 서 있던 수자가 쿵, 소리가 나도록 방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며 앉는 소리다.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저렇게 소리가 나도록 앉는데도 아프지 않을까. 과연 엉덩이뼈는 괜찮은 걸까. 볼 때마다 놀랍다. 우리가 그 소리에 놀라 물을 때마다 수자는 괜찮다고 했다. 굉장한 뼈대 집안인 모양이다. 맞다! 수자의 진짜 신비는 엉덩이뼈의 비밀이다. 집이 울리도록 소리가 나는데도 멀쩡하다니. 더구나 아프지도 않다니!

   

  찌개를 얹어놓은 가스레인지의 불을 줄이고 소형도 와서 앉았다.

  <수자 너 정말 뼈 조사 해봐야 되겠다. 신기하잖아. 소리만 들어선 거의 사고 수준이거든. 뭔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 말이야.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 안 올라오니?>

  <안 올라와.>

  수자는 창밖으로 향한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뚝 부러지는 대답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수자의 대답은 무뚝뚝하다. 처음 겪는 사람들은 화난 걸로 안다.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그 대답이 상쾌하진 않다. 소형은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고 창 밖을 봤다.

 

  나는 눈을 감았다.

  편안했다. 옛날, 가족이 모두 같이 살 때, 누구도 결혼하지 않았을 때, 집에 있던 것처럼 편안하다. 언제부턴가, 이젠 식구들과 있는 것보다 이들과 있는 게 더 편해졌다. 지금은 엄마가 계신 집도 옛날 같지는 않다. 언니집도 마냥 편할 수는 없다. 밥을 먹고도 뭘 해야 되지 않을까 서성거리게 되고, 여기서처럼 누워버리기도 어려워졌다. 물론 형부나 언니나 엄마나 동생은 그들 집이 제일 편한 곳이겠지만.

  이제 이들이 나의 새로운 가족이라는 생각을 한다. 누가 인정을 하건 말건 관계없이 생활이 그렇게 돼버렸다. 무슨 일을 도모할 때, 심지어 몸이 아플 때에도, 제일 쉽게 달려와 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나의 가족이 아니라 이들이다.

  가족이 편하게 느껴지는 건 생활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필요할 때 바로 곁에 있고, 바로 곁에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 가족이라도 생활공간이 달라지면 마음뿐이다. 상황을 알지 못하면서 즉각 도움을 줄 수는 없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일일이 설명을 하면서 위로를 받을 수는 없다. 사는 공간이 달라지면 생활 방식도 조금씩 달라져가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새로운 친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결혼으로 만난 부부만 결속이 단단한 건 아니다. 그들도 남남으로 만났고 살면서 질긴 끈이 생겼을 것이다. 처음부터 깊어지는 정은 없다. 시간이 추억을 만들고 추억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낳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멀어지면 아쉬운,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어 가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세월을 같이 했던 가족이듯, 우리도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어야 마땅하지 않은지. 내가 가장 필요할 때조차도 이제 언니나 동생은 조카들에게, 배우자에게 일이 생기면 당연히 올 수 없다. 나는 가족의 우선순위에서 제외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서로에게 우선권을 주는 걸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취하고 있는 형태의 가족 외의 가족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눈은 앞만 보게 되어 있으니까. 한 번씩 돌아보는 주변은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일 거니까.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방편으로나 여기겠지. 그 방편들은 늘 그 자리에 아무런 문제도 없이, 요구도 없이 존재할 때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미경이 이사하는 전날이었다. 퇴근해서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요일에 같이 친정에 가자는 전화였다. 나는 미경에게 갈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약속이 있다고 했다. 무슨 약속이냐고 묻길래, 이사 가는데 가봐야 된다고 했다. 언니는 엄마한테 오래 못 갔는데, 혼자 가려니까 재미없다고, 약속 취소하고 가면 안 되냐고 했다. 안 된다고 점잖게 말해도 알아들을 언니다. ‘약속 취소는 같이 가고 싶은 마음에 해본 소리다. 그런데 내가 그렇다. 그냥 한 소리란 걸 알면서도 곧바로 흥분해버린다. 그 날도 그랬다. 꼭 흥분하는 순간 반성이 된다. 물론 때는 늦었다.

  <언니는 무슨 소릴 그렇게 해. 약속 해놓고 안 가면 어떡해. 집에는 나중에 가도 되지만 이사 날짜는 정해져 있잖아.>

  언니도 곧바로 응수해왔다.

  <아이구, 됐다. 너는 뭐 그만한 일에 화를 내고 그러니? 친구도 좋지만.... 아니다. 그런 말은 그만두고. 하여튼 너도 참, 친구 일이라면. 너무 빠져서 그러는 거 아니다.>

  언니는 불을 질러놓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친구에게 빠지다니, 반성하던 마음은 다시 물 건너 가버렸다. 무슨 그런 말이 있어. 필요할 때 도와주는 걸 빠진다고 표현해야 될 정도로 친구가 그렇게 가벼운 존재인가? 자기 이사 갈 땐 이민이라도 가는 것처럼 동네방네 알려 놓고. 혼자 사는 사람 짐은 솜으로 만들었나? 언니한텐 도대체 친구가 뭐지? 언제든 다른 약속이 생기면 무시해버려도 되는 그런 사람인 모양이지. 아니, 세상에 무시해버려도 되는 사람이 어딨어? 그리고 약속이 왜 약속인데. 우선순위를 정해놓은 질서 같은 거 아니냐고. 질서는 아름다운 거지. , 아니. 그건 내 생각이고. 그것도 좋아. 친구가 필요 없는 사람도 있겠지. 각자의 가치관대로 살아가는 거니까. 소중한 게 모두에게 같으란 법은 없으니까.

  친구에게는 빠지면 안 되나? 남편, 아내, 자식에게는 빠져도 되고? 남녀가 서로에게 빠져 결혼하는 건, 나라가 인정하고 집안이 축복하는 거라 이건가? 우정이 결혼보다 가볍다고 누가 정해놓기나 했나? 하늘이 계시라도 내렸단 말인가? 십 년을 궂은 일 기쁜 일 같이 해가며 친해온 사이를, 무슨 권리로, 아니면 무슨 배짱으로 그렇게 간단히 뭉개버릴 수 있지? 나 늙으면 자식이라도 하나 떼 줄 건가. 언니 노후 설계에 나도 들어있는 모양이지?

 

  나는 화가 쉽게 안 풀려 수화기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사실 언니가 내 친구들을 푸대접 한 적도 없고, 소홀히 하라는 뜻으로 그 말은 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동생이니까 경계 없이 할 수 있는 말을 언니도 했을 것이다.

  결혼해서 바쁘게 살면서 친구들과 멀어지고, 멀어진 자리를 자식이나 남편이 차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세계가 그녀의 세계였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다. 젖먹이 아기도 이제 다 자랐고 크게 손갈 데가 없다. 여유 시간이 나고 그 세계에 틈이 생긴다. 뭔가 허전하다고 느낀다. 그 때 떠오르는 얼굴. 친구.

  옛날을 추억하며 전화번호를 누른다. 연락이 닿으면 무척 반가울 것이다. 가끔 만나기도 하고, 죽이 맞아 여행 계획이라도 세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행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갑자기 생각난 시부모 생일이나, 남편의 출장, 뭐 그런 일로 쉽게 취소도 하겠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친구도 같은 사정일지 모른다. 서로 잘 이해하고 또 다음을 약속할지도. 언니에겐 친구가 그런 존재이리라.

 

  하지만 내게 친구란, 그런 존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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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지금 충무로 가고 있는 중이다.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건성으로 보며 나는 누가 묻지도 않는 질문에 혼자 대답을 만들고 있다. 그건 내 오래된 버릇이다. 마음 상하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반박을 못하고 몇 날 며칠을 혼자 질문 하고 대답 하는 내 오래된 버릇. 그건 결국 세상과 맞닥뜨릴 용기가 없는 자의 내 살 파먹기 식의 삶의 방식이라고, 머리가 아프도록 인식을 하고 있다.

 

  여름 방학을 하고 보름이 지났다.

  미경은 방학하기 두 주 전, 이사 간지 며칠 만에 발목을 부러뜨렸다.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가 작동이 안 되었다 한다. 초조히 기다리다 바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침은 일 초가 귀하다. 그 날따라 좀 늦었다. 이사간지 얼마 안 된 집이라 낯이 설어 그런지 전날 밤 늦게 잠이 들었다. 결국 늦잠을 잤다.

  비상계단 쪽으로 달려가 계단을 두 개도 밟아보지 못하고 굴렀다. 출근이 뭔지, 다리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벌떡 일어나다 도로 주저 앉아버렸다. 오른 쪽 발목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무릎까지 뻗치며 저절로 악 소리가 났다. 다시 일어날 때, 아마 부러진 뼈 조각이 다른 곳을 건드려 수술이 좀 복잡해진 것 같았다. 발목에 얇은 철판을 대는, 두 시간이나 걸리는 수술을 받고 깁스를 했다.

 

  미경은 깁스를 한 채로 꼼짝없이 두 주나 병원에 누워있었다. 병원이라고는 거의 가 본적이 없던, 더구나 꼼짝없이 그렇게 오래 누워 있어본 적이 없는 미경은 답답해서 몸살을 했다. 겉보기엔 정적으로 보이는 미경이, 우리에 갇힌 야생 호랑이처럼 으르렁대는 걸 보고야 상당히 동적인 여자라는 게 믿겼다.

  미경은 깁스만 풀면 돌아다닐 수 있는 줄 아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깁스를 빨리 풀 수 없냐고 간호사에게 물었다. 미경은 병원에 있는 하루하루를 무섭게 저주했다. 미경의 고집 때문에 통원 치료를 하기로 하고 깁스를 한 채로 퇴원을 했고, 미경의 저주에 아랑곳없이 병원에서는 약속한 대로 한 달 만에 무거운 깁스에서 미경의 발목을 해방시켜 주었다.

 

  그런데 깁스를 풀기만 하면 가볍게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던 미경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깁스 푸는 날 따라갔던 소형이 말하기를 미경이 그 날 몰래 울더라 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소형이도 굉장히 놀랐다. 생각보다 수술 상처도 컸고, 당연하겠지만 근육을 쓸 필요가 없었던 오른 다리는 엄청나게 가늘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발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발까지 깁스를 해 발목 관절도 굳어버렸다. 물론 물리치료를 하고 운동을 하게 되면 차차 풀린다고 병원에서는 안심을 시켰다. 그러나 깁스를 푸는 날을 너무나 손꼽아 기다려 온 미경에게, 바닥을 딛고 설 수도 없는 발은 당연히 큰 충격이었다. 무슨 일에든 몸을 아끼지 않던 미경은, 생각보다 겁이 많았다. 깁스로 단단히 감겨있을 땐 목발을 짚고 걷기도 하더니만, 갑자기 헐렁해진 발목으로 땅을 디디기가 겁이 나는지, 오른 발로는 디디려고 하지도 않았다.

  답답한 병원과 무거운 깁스에서 해방된 미경은 또 다시 집에 갇힌 꼴이 되었다. 방학이었으므로 우린 뻔질나게 미경의 집을 드나들었다. 우리가 자주 드나들어도 미경의 마음은 밖에 가 있는지, 숲에서 쫓겨난 맹수처럼 정기 없는 눈이 슬프기까지 했다.

 

  미경이 목발을 짚고 조심스럽게 땅을 디딜 수 있게 되자, 소형이 수자와 의논해 충무 바닷가의 콘도를 예약했다. 미경이 의향은 필요 없다고 했다. 물어봤자 못 간다고 할 게 뻔 하다고, 그건 미안해서지 가기 싫은 게 결코 아니라고 단정을 했다. 소형의 판단은 정확했다. 남의 속을 헤아리는 데는 과연 천재였다. 가자고 했을 때, 미경의 이마에 그려진 말은 나 때문에 너희들 마음껏 다니지 못해 어쩌지?’였다. 미경이 표정만 보고도 소형은 마음까지 헤아려 대답을 했다.

  <우리도 이제 몸을 움직여 신나게 놀 나이도 아니고.>

  여기까지 말하고 소형은 한 번 싱겁게 웃었다.

  <그저 바다나 실컷 보자. 관광이 아니라 휴양이라 생각해. 하루에도 몇 군데 관광지를 도는 후진국형 관광이 아니라, 느긋하게 바닷가에 누워 햇살이나 쪼이고 책이나 읽는 선진국형 휴양을 하자는 거지.>

**

 

  넓은 창은 바다를 향해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짐을 내려놓고 커튼을 열자 바로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는 온 몸 가득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찬란했다. 덩그러니 높은 침대에 누우면 하늘과 바다만 보여 마치 바다에 떠있는 것 같았다.

  바다를 보는 미경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 잘 왔다는 얼굴이었다. 미경은 창가로 가 한참을 정신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보는 그녀의 어깨 위에 날개가 자라나 펄럭이는 것 같았다. 그녀에겐 옷이 날개가 아니라 자유가 날개구나. 그런데 우리 중 가장 자유롭지 못하다.

 

  미경은 웬만한 일은 앉은걸음으로 다니며 처리했다. 엉덩이를 바닥에 댄 채, 왼다리로 바닥을 밀며 잘도 움직였다. 그렇게 다니면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를 못 도와 안달이었다.

  <앉아서 대접받는 것도 연습이 돼야 자연스럽게 되는 거구만. 아무나 마님 하는 것이 아니여.>

하면서 소형이 혀를 찼다.

  <다리 안 다쳤어도 한 끼 해 먹이는 거 뭐 어려운 일이라고. 너 그런 몸으로 밥한다면 우리 인간성이 뭐가 되겠어? 너라면 그러고 싶겠니?>

  수자도 왁왁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미경의 대답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럼 설거지는 내가 할게. 싱크대에 기대서서 하면 된다. 집에서도 그렇게 했거든.>

  수자와 소형은 말도 하기 싫은지 둘이 서로 마주보고 입만 벌렸다.

  <그러자. 우리 밥 먹고 미경이 목발 옆구리에 끼워 놓고 설거지시키고, 우린 뭘 할까. 오랜만에 추억을 되살려 수건돌리기나 할까?>

 냉장고에 음료수와 반찬들을 챙겨 넣고 있던 내가 돌아보며 말참견을 했다.   그제야 미경이 배시시 웃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림이 좀 그랬던 모양이다. 미경의 억지는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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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게 웃지 않는다

    

      

 

  외롭지 않아서 결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진정 고독한 자는 사랑을 구()하지 않는다? 그런 뜻도 아니다.

  ‘홀로라는 건 생명을 가진 자들의 타고난 운명이다. 생사(生死)길엔 누구나 혼자이다. 그 사실이 변하지 않는 한 인간은 누구나 외롭게 되어있고 외로움은 다른 인간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다. 외로움이란 걸 인간이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로움에 관한 문제의 답은 좀 더 근본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음의 길로 가야하는 인간의 가슴 속엔, 탄생과 함께 고독도 숨어있다. 세월이 흐르면 고독도 자라고, 사람들은 고독이 주는 혼자라는 두려움을 어떻게든 잊어보려 한다. 그래서 사람을 찾고, 사람에게 기댄다. 기댄 상대의 심장 소리에 생명을 느끼고 다른 생명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마치 두 생명이 합쳐지면 힘을 얻게 되고 그 힘이 운명을 거부할 힘이 되어주기라도 하는 듯이. 하지만 수천수만의 생명이 모여도 고독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진다고 보는 마음이 있을 뿐.

  결혼을 한 많은 여자들은 말한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외로움을 너무 탄다고. 외로운 게 싫어서 결혼했다고. 그 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렇게도 들린다. 외로움을 탄다는 건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적이라는 건 아름다운 것이고, 여자의 아름다움은 누구에게 기대는 것이고, 누구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것은 마음이 섬세하고 정이 많다는 증거고, 섬세하고 정이 많은 여자는 당연히 사랑받고 보호받을 가치가 있고, 그래서 나는 지금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그러나 나는, 내 삶의 방식을 이렇게 변명한다.

  얻지 못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견디는 것보다, 잃는 고통을 견디는 게 더 무섭다. 잃어버리고 또 다른 것으로 채울 용기도, 고통스런 변화에 대처하는 강한 심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큰 절망을 견딜 용기가 없어 크게 웃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나를 볼 때는, 정이 없어 정을 줄 상대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무서운 인연의 바다에 과감히 뛰어드는 그들의 강심장이 더 무정하게 보인다. 누구도, 목숨을 바친다 해도 다른 목숨을 지킬 수는 없다. 아무리 아끼고,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심지어 내 목숨보다 중하다 하더라도, 생명에 관한 한 그건 인간 능력 밖의 문제다. 무능한 사랑이다.

 

  나는 두 갈래 길 중 잘 가지 않는 길을 택했을 뿐이다. 그 길은 인적이 드물고, 좁고, 그래서 두렵기까지 하지만 그 길에 항상 마음이 뺏긴다. 왁자지껄 사람이 많은 곳은, 멀리서 보는 것은 즐겁지만 섞이는 건 달갑지 않다. 섞이려면 반드시 이야기 속에 같이 들어가야 하는 것도 나에게는 고역이다.

  모여 있어도 혼자가 될 수 있는 곳. 굳이 결속을 다지는 친목 도모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똑같은 놀이를 하고 있지 않아도 각자가 즐길 수 있는 곳. 연락이 닿을 수 있으면 됐지 늘 같이 있기를 바라지 않고, 같은 공간에 머물러도 같은 일을 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마음이 통하는 것과 생각이 통하는 것은 같지 않다. 생각까지 같기를 바라는 곳에서 나는 편안할 수가 없다. 반론을 하면 바로 배척을 당하거나 밀어내는 곳에서 말하기가 싫다. 개성을 존중한다면서 다른 생각을 수상히 여기고 인정하지 않는 편견을 모르는 척 즐길 수가 없다. 장미를 보고 가시 때문에 싫다고 하며, 소나무의 뾰족한 잎을 눈에 거슬려하고, 여름은 좋은데 비는 싫다는 식이다. 모든 것에 자신의 욕심을 우겨넣는, 존재의 그대로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몰개성적인 사고를 마음 편히 받아들일 아량이 내게는 없다.

  소나무 가지에 감나무 잎이 달리고 가지 끝에는 장미꽃이 피는 나무를 상상해 보라. 이것이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다. 나는 이들이 본래의 모습대로 제대로 자라고 피어나기를 원한다.

  소나무는 대나무의 모습을 수상하게 볼까. 독수리는 고슴도치의 느린 걸음을 무시할까. 모여 사는 사자가 홀로 숲을 돌아다니는 호랑이를 가엾게 생각한다면 우습지 않은가. 똑같은 모습이나 똑같은 행위는 있을 수가 없다. 그게 자연이다. 그리고 나도 자연의 피조물이다. 누구도 나와 같을 수는 없고 나 또한 그들이 나와 같기를 원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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