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크게 웃지 않는다
외롭지 않아서 결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진정 고독한 자는 사랑을 구(求)하지 않는다? 그런 뜻도 아니다.
‘홀로’라는 건 생명을 가진 자들의 타고난 운명이다. 생사(生死)길엔 누구나 혼자이다. 그 사실이 변하지 않는 한 인간은 누구나 외롭게 되어있고 외로움은 다른 인간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다. 외로움이란 걸 인간이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로움에 관한 문제의 답은 좀 더 근본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음의 길로 가야하는 인간의 가슴 속엔, 탄생과 함께 ‘고독’도 숨어있다. 세월이 흐르면 고독도 자라고, 사람들은 고독이 주는 ‘혼자’라는 두려움을 어떻게든 잊어보려 한다. 그래서 사람을 찾고, 사람에게 기댄다. 기댄 상대의 심장 소리에 생명을 느끼고 다른 생명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 마치 두 생명이 합쳐지면 힘을 얻게 되고 그 힘이 운명을 거부할 힘이 되어주기라도 하는 듯이. 하지만 수천수만의 생명이 모여도 ‘고독’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진다고 보는 마음이 있을 뿐.
결혼을 한 많은 여자들은 말한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외로움을 너무 탄다고. 외로운 게 싫어서 결혼했다고. 그 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렇게도 들린다. 외로움을 탄다는 건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적이라는 건 아름다운 것이고, 여자의 아름다움은 누구에게 기대는 것이고, 누구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것은 마음이 섬세하고 정이 많다는 증거고, 섬세하고 정이 많은 여자는 당연히 사랑받고 보호받을 가치가 있고, 그래서 나는 지금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그러나 나는, 내 삶의 방식을 이렇게 변명한다.
얻지 못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견디는 것보다, 잃는 고통을 견디는 게 더 무섭다. 잃어버리고 또 다른 것으로 채울 용기도, 고통스런 변화에 대처하는 강한 심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큰 절망을 견딜 용기가 없어 크게 웃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나를 볼 때는, 정이 없어 정을 줄 상대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무서운 인연의 바다에 과감히 뛰어드는 그들의 강심장이 더 무정하게 보인다. 누구도, 목숨을 바친다 해도 다른 목숨을 지킬 수는 없다. 아무리 아끼고,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심지어 내 목숨보다 중하다 하더라도, 생명에 관한 한 그건 인간 능력 밖의 문제다. 무능한 사랑이다.
나는 두 갈래 길 중 잘 가지 않는 길을 택했을 뿐이다. 그 길은 인적이 드물고, 좁고, 그래서 두렵기까지 하지만 그 길에 항상 마음이 뺏긴다. 왁자지껄 사람이 많은 곳은, 멀리서 보는 것은 즐겁지만 섞이는 건 달갑지 않다. 섞이려면 반드시 이야기 속에 같이 들어가야 하는 것도 나에게는 고역이다.
모여 있어도 혼자가 될 수 있는 곳. 굳이 결속을 다지는 친목 도모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똑같은 놀이를 하고 있지 않아도 각자가 즐길 수 있는 곳. 연락이 닿을 수 있으면 됐지 늘 같이 있기를 바라지 않고, 같은 공간에 머물러도 같은 일을 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마음이 통하는 것과 생각이 통하는 것은 같지 않다. 생각까지 같기를 바라는 곳에서 나는 편안할 수가 없다. 반론을 하면 바로 배척을 당하거나 밀어내는 곳에서 말하기가 싫다. 개성을 존중한다면서 다른 생각을 수상히 여기고 인정하지 않는 편견을 모르는 척 즐길 수가 없다. 장미를 보고 가시 때문에 싫다고 하며, 소나무의 뾰족한 잎을 눈에 거슬려하고, 여름은 좋은데 비는 싫다는 식이다. 모든 것에 자신의 욕심을 우겨넣는, 존재의 그대로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몰개성적인 사고를 마음 편히 받아들일 아량이 내게는 없다.
소나무 가지에 감나무 잎이 달리고 가지 끝에는 장미꽃이 피는 나무를 상상해 보라. 이것이 존재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다. 나는 이들이 본래의 모습대로 제대로 자라고 피어나기를 원한다.
소나무는 대나무의 모습을 수상하게 볼까. 독수리는 고슴도치의 느린 걸음을 무시할까. 모여 사는 사자가 홀로 숲을 돌아다니는 호랑이를 가엾게 생각한다면 우습지 않은가. 똑같은 모습이나 똑같은 행위는 있을 수가 없다. 그게 자연이다. 그리고 나도 자연의 피조물이다. 누구도 나와 같을 수는 없고 나 또한 그들이 나와 같기를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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